프란스 할스의 <웃고 있는 기사> 옷소매에 숨겨진 사랑의 암호
이번에는 네덜란드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초상화가, 프란스 할스의 <웃고 있는 기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안트베르펜에서 태어나 하를럼에서 활동한 할스(Frans Hals, 1582/83년경-1666)는 렘브란트와 함께 네덜란드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초상화가였습니다. 하지만 명성과 달리 경제적으로는 평생 풍족하지 못했고 가정적으로도 순탄치 않았다고 합니다.
할스는 밑그림 없이 캔버스에 바로 물감을 칠하는 '알라 프리마(alla prima)' 기법을 사용하여, 인물의 자연스러운 표정을 순간적으로 포착하고 그 생동감을 표현하는 데 뛰어난 화가로 유명합니다. 특히 그는 대형 집단 초상화로 명성을 떨쳤지만, 그의 상징적인 작품은 단연 <웃고 있는 기사>입니다. 미국의 미술사학자 세이무어 슬라이브(Seymour Slive)는 이 작품을 바로크 시대 가장 뛰어난 초상화 중 하나로 평가합니다. 18세기 후반까지 초상화에서 인물이 활짝 웃는 모습을 거의 그리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의 작품은 더욱 특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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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고 있는 기사> 1624년, 83x67.3cm, 런던 월리스 컬렉션(The Wallace Collection) |
고급스러운 의상을 입은 젊은 남자가 우리를 보며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미소 짓는 가장 유명한 여성 초상화가 <모나리자>라면, 남성 초상화의 걸작은 단연 <웃고 있는 기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로 한껏 말려 올라간 콧수염과 자신감 넘치는 표정이 압권입니다.
그렇다면 이 남성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웃고 있는 기사>라는 제목과 달리, 그림 속 인물은 기사가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확한 신분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정교하게 수놓아진 값비싼 의상과 레이스 칼라, 커프스 등으로 미루어 보아 당대의 유행에 민감했던 부유한 신흥 시민 계급의 일원으로 추정됩니다. 자신감과 유머가 넘치는 표정, 위풍당당한 자세, 살짝 내려다보는 듯한 시선은 그의 사회적 지위와 자신감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또한 오른쪽 상단에서 모델에 대한 약간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데, ‘AETA SUAE 26, AN° 1624’라는 라틴어 문구를 통해 그가 26세이고 이 그림이 1624년에 그려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약혼을 기념하기 위한 초상화로 추정됩니다. 그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소매를 장식한 화려한 자수인데, 여기에는 사랑의 상징들이 가득합니다. 사랑의 즐거움과 고통을 상징하는 벌과 화살, 연인의 매듭, 타오르는 횃불과 불꽃 등 사랑과 관련된 문양이 빼곡히 수놓아져 있습니다. 또한 힘을 상징하는 오벨리스크와 행운을 의미하는 전령의 신 헤르메스의 모자와 지팡이도 보입니다. 이러한 상징들을 종합했을 때, 이 그림은 사랑하는 연인을 위한 선물이거나 청혼을 목적으로 주문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할스의 작품은 그가 사망한 후 잊혔다가 19세기에 들어서야 재평가받기 시작했습니다. 이 작품은 프랑스의 한 미술 수집가가 소장하고 있었는데, 1865년 그의 소장품 경매에서 제4대 하트퍼드 후작이 당시로서는 매우 높은 가격에 그림을 구매하면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후 할스의 작품은 에두아르 마네와 같은 인상파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며 다시 주목받게 되었습니다. 1872년 런던의 한 박물관에 이 그림이 공개되었을 때, 대중의 인기를 끌기 위해 <웃고 있는 기사(The Laughing Cavalier)>라는 별칭이 붙여졌고, 이 제목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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