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 묵상] 카라바조의 '엠마오의 저녁식사' 깊이 보기 (1601년 vs 1606년)

  카라바조는 누가복음 24장의 내용을 토대로, 부활하신 예수께서 두 제자와 엠마오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그림을 남겼습니다. 그는 이 주제로 두 개의 그림을 남겼는데, 여기서는 1601년에 먼저 그려진 작품을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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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복음 24장에서 두 제자는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라는 마을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낯선 사람이 나타나 그들과 동행하며 성경에 대해 이야기해 주지만, 제자들은 그가 예수님인 줄 알아보지 못합니다. 날이 저물자 그들은 함께 저녁을 먹게 됩니다. 카라바조의 그림은 예수께서 빵을 들고 감사 기도를 하실 때, 비로소 그를 알아본 두 제자가 경악하는 극적인 순간을 포착하고 있습니다.

 

엠마오의 저녁식사, 1601년, 141x196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이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조금 실망스러울 수 있습니다. 수염도 없고 위엄도 없어 보이는 젊은 예수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카라바조는 여러 상징을 통해 깊은 기독교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먼저 왼쪽에 있는 제자는 놀라서 의자에서 막 일어서려 합니다. 그의 찢어진 팔꿈치 옷은 제자의 가난하고 검소한 삶을 상징합니다.

 

  오른편에 있는 제자(클레오파)는 놀라 두 팔을 크게 벌리고 있습니다. 이 자세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연상시키며, 제자들이 예수와 하나 되어야 함을 표현합니다. 그의 가슴에는 조개껍데기가 달려 있는데, 이는 '산티아고 순례길'로 유명한 성 야고보의 상징물로서, 신앙의 여정을 뜻합니다.

 

  두 제자와는 대조적으로 무표정하게 서 있는 사람은 여관 주인으로,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그는 예수와 그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이 경이로운 순간에도 아무런 감흥이 없는 것입니다.

 

  하얀 식탁보 위에는 빵과 포도주, 그리고 과일 바구니가 놓여 있습니다. 바구니에는 사과(원죄), 포도(그리스도의 피, 성찬), 무화과(풍요 또는 심판), 석류(부활) 등 다양한 상징을 지닌 과일들이 담겨 있습니다.

 

과일 바구니 부분 확대

  특이하게도 바구니 속 사과는 썩어 있고, 바구니는 금방이라도 식탁에서 떨어질 듯 위태롭게 걸쳐 있습니다. 이는 원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 세상의 불완전함과 덧없음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이 바구니에는 희망의 상징이 숨겨져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바구니가 만들어내는 그림자가 물고기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 시절, 물고기를 뜻하는 그리스어 '익투스(ΙΧΘΥΣ)'는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 구원자'의 첫 글자를 딴 비밀 암호였습니다. 카라바조는 이 물고기 상징을 통해 어둡고 불안한 세상 속에서도 예수를 통해 구원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상징 물고기 '익투스' (출처 : christianity.com)

  이 그림을 그린 후 5년 뒤, 카라바조는 밀라노의 브레라 미술관에 소장된 또 다른 버전의 <엠마오의 저녁식사 Supper at Emmaus>를 그렸습니다. 이전 작품과 비교했을 때, 두 번째 그림은 훨씬 더 어둡고 차분하며 인물들의 감정이 절제되어 있습니다. 이는 살인 후 도망자 신세가 되었던 화가 자신의 고통스러운 처지가 반영된 것으로, 그 순간의 신성함을 더욱 내밀하게 강조합니다.

 

엠마오의 저녁식사, 1606년,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카라바조의 그림은 얼핏 보면 성화로서의 거룩함이 부족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림 곳곳에 깊은 신학적 상징을 배치하여,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 역사하시는 신의 모습을 그 누구보다 강렬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