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코코 미술의 시작을 알린 와토의 명작 <키테라섬으로의 순례>! 사랑, 환상, 쓸쓸함이 교차하는 이 그림 속 숨은 상징과 이야기를 자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절대왕정이 저물고 귀족 사회가 문화의 중심이 된 18세기 초 프랑스, 예술은 이전과는 다른 감성을 담기 시작했습니다. 장 앙투안 와토(Jean-Antoine Watteau,1684-1721)의 <키테라섬으로의 순례(Le Pèlerinage à l'île de Cythère)>는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있는 작품으로, 화려하면서도 덧없는 사랑의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내며 로코코 회화의 문을 열었습니다.
와토가 창시한 '페트 갈랑트(Fête Galante)'는 우아한 옷차림을 한 귀족들이 자연 속에서 사랑을 나누고 대화하는 모습을 묘사한 장르입니다. '페트'는 축제, '갈랑트'는 우아함을 의미하며, 이는 17세기 네덜란드의 서민 풍속화에 대한 귀족 버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페트 갈랑트에는 교훈적인 메시지 대신, 덧없기에 더 애틋한 삶의 즐거움과 낭만적인 감성이 담겨 있습니다.
와토가 왕립 아카데미 회원 자격을 얻기 위해 이 그림을 제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당시 아카데미는 역사화나 종교화처럼 장엄한 주제를 최고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카데미는 와토의 뛰어난 재능을 인정하여, 1717년 그의 입회를 위해 '페트 갈랑트'라는 새로운 장르를 공식적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로코코 회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귀족들의 감각적이고 우아한 취향이 미술계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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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테라섬으로의 순례> 1717년, 캔버스에 유채, 129x194cm, 파리 루브르 박물관 |
'키테라'는 그리스 신화 속 사랑과 미의 여신 비너스(아프로디테)가 태어난 섬입니다. 따라서 '키테라섬으로의 순례'라는 제목은 연인들이 사랑의 성지를 향해 여정을 시작하는 장면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림 전체에 흐르는 미묘한 슬픔과 아쉬움 때문에, 반대로 사랑의 섬에서 환상 같은 시간을 보낸 연인들이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장면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사랑을 위해 떠나는 설렘과 동시에, 남겨진 현실에 대한 미련과 여정의 불확실함이 공존하기에 그림 전체에 쓸쓸한 정서가 배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와토가 명확한 윤곽선 대신 뿌옇고 부드러운 붓질을 사용한 것 역시, 꿈처럼 모호하고 덧없는 사랑의 본질을 표현하는 듯하여 인상적입니다.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화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하는 세 쌍의 연인이 마치 시간의 흐름처럼 연속적인 동작을 보여줍니다. 맨 오른쪽 연인은 아직 사랑을 속삭이고 있고, 중간의 연인은 남자의 재촉에 여인이 아쉬운 듯 자리에서 일어나며, 왼쪽의 연인은 마침내 배를 향해 발걸음을 옮깁니다. 하지만 여인은 여전히 뒤를 돌아보며 미련을 버리지 못합니다.
오른쪽에는 장미 넝쿨로 장식된 비너스 조각상이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날개 달린 아기 천사들(푸티)은 연인들의 곁을 맴돌며 사랑의 여정을 재촉하거나 장난을 칩니다. 연극 무대의 배경처럼 부드럽게 펼쳐진 숲과 황금빛 하늘은 이 공간이 현실과는 다른, 꿈과 환상의 세계임을 암시합니다.
와토의 <키테라섬으로의 순례>는 단순히 우아한 귀족들의 유흥을 그린 그림이 아닙니다. 이 작품 속에는 사랑의 시작과 끝, 환희와 쓸쓸함, 현실과 환상이 시처럼 뒤섞여 있습니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과 그 덧없음을 함께 표현한 이 그림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조용한 감동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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