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호아킨 소로야(Joaquín Sorolla, 1863~1923)
• 작품명: 바닷가 산책(Paseo a orillas del mar)
• 제작: 1909년
• 재료: 캔버스에 유화
• 크기: 205 × 200cm
• 소장: 마드리드 소로야 미술관
• 비고: 1909년 여름 발렌시아 해변에서 제작, 모델은 아내 클로틸데와 큰딸 마리아
발렌시아 해변에 흰옷을 입은 두 여인이 걷고 있습니다. 왼쪽 사람은 커다란 양산을 기울여 들고 바람에 날리는 모자를 손으로 붙잡고 있습니다. 오른쪽 사람은 밀짚모자를 손에 들고 있습니다. 호아킨 소로야의 〈바닷가 산책〉(1909)은 여름 한때의 산책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얼굴을 나란히 놓고 보면, 화가가 한 사람에게만 얼굴을 허락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얼굴 하나는 지워졌고 얼굴 하나는 남았습니다. 이 차이는 빛의 우연이 아니라 화가가 붓을 쓴 결과입니다. 그 결과가 이 그림을 산책 풍경이 아니라 산책 도중에 붙잡힌 한 순간으로 만듭니다.
두 얼굴, 하나는 지워지고 하나는 돌아본다
왼쪽 여인은 화가의 아내 클로틸데 가르시아입니다. 얼굴을 확대해 보면 이목구비가 거의 없습니다. 살빛으로 칠한 면 위에 푸른 회색 물감이 반투명하게 한 겹 덮여 있습니다. 그 아래로 이마와 뺨과 턱의 위치만 비쳐 보입니다. 눈이 있을 자리에는 어두운 얼룩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 얼룩은 모자 그늘과 잘 구분되지 않고, 눈꺼풀도 눈동자도 찾을 수 없습니다.
| 호아킨 소로야, 〈바닷가 산책〉, 1909년, 캔버스에 유화, 205 × 200cm, 마드리드 소로야 미술관, 소장품 번호 834. 두 인물의 얼굴을 번갈아 보면 그려진 정도가 다르다. |
붓의 움직임을 보면 더 분명해집니다. 이 부분의 붓자국은 얼굴의 굴곡을 따라가지 않고, 베일이 바람에 밀리는 방향을 따라 위에서 아래로 길게 지나갑니다. 얼굴을 그리다가 베일을 덮은 것이 아니라 베일을 그리는 붓이 얼굴 위를 그대로 통과한 것입니다.
오른쪽 여인은 큰딸 마리아입니다. 이쪽은 눈동자, 눈썹, 다문 입술, 목의 선까지 분명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시선의 방향입니다. 마리아는 바다도 보고 있지 않고, 두 사람이 걸어가는 앞쪽도 보고 있지 않습니다. 고개를 살짝 돌려 화면 바깥을 봅니다. 시선이 빠져나가는 곳은 화면 오른쪽 아래 바깥입니다. 그래서 그림 앞에 선 사람은 대개 자기 쪽을 본다고 느끼게 됩니다.
이 한 번의 돌아봄이 그림의 성격을 바꿉니다. 두 여인이 걷는 장면을 우리가 뒤에서 보고 있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고개를 돌려 화면 밖을 확인한 구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산책 풍경이 아니라 산책 도중에 붙잡힌 한 순간이 됩니다.
바닷가 산책, 화면 밖으로 잘려 나간 모자
이 그림은 세로 205cm, 가로 200cm로 거의 정사각형입니다. 큰 화면인데도 소로야는 그 안에 인물을 여유 있게 담지 않고, 오히려 잘라냈습니다.
클로틸데의 챙 넓은 모자를 보면 위쪽이 화면 상단에 걸려 잘려 나갔습니다. 모자에 달린 보라색 장식도 끝이 화면 밖으로 나갑니다. 왼쪽으로 길게 날리는 베일 역시 왼쪽 가장자리에서 끊깁니다. 화면 안에 다 들어오지 못한 것들이 오히려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말해 줍니다.
화면 아래쪽에는 아무것도 놓이지 않은 모래가 띠처럼 넓게 남아 있습니다. 인물의 발밑에서 화면 끝까지가 전부 젖은 모래이고, 그 위로 두 사람의 그림자만 비스듬히 지나갑니다. 시점도 높아서 우리는 두 사람을 약간 내려다보게 됩니다. 인물을 화면 중앙에 놓고 눈높이를 맞추는 초상화의 방식과는 다릅니다.
이런 잘라내기와 높은 시점은 당시 보급되던 사진의 화면과 닮았습니다. 대상을 다 담으려 하지 않고, 셔터를 누른 그 순간에 프레임 안에 들어온 것만 남기는 방식입니다. 마리아가 고개를 돌린 순간이 스냅사진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서 한 번 더 보강됩니다.
바닷가 산책, 흰 옷은 흰색으로 칠해지지 않았다
멀리서 보면 두 사람의 옷은 흰색 덩어리로 보입니다. 확대해 보면 사정이 다릅니다. 옷의 그늘진 면은 푸른색과 보라색이고, 모래에서 반사된 빛이 닿은 아랫자락에는 노란 기와 옅은 초록이 섞여 있습니다. 순수한 흰색은 빛이 가장 강하게 닿은 어깨와 소매 위쪽에만 얇게 얹혀 있습니다.
바다도 마찬가지입니다. 화면 위쪽의 바다는 파란색 한 가지가 아닙니다. 남색과 회보라와 청록이 가로 방향의 붓자국으로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파도의 흰 선은 그 위를 한 번 지나가는 짧은 획으로 처리되어 있습니다.
이 그림을 소장한 쪽이 붙인 해설도 물과 모래의 색을 푸른색과 연보라와 청록으로 적습니다. 화가가 남긴 기록이 아니라 뒤에 쓰인 설명이라 근거의 급은 그만큼 낮습니다. 다만 화면에서 색을 세는 눈이 같은 자리에 멈춘다는 것은 적어 둘 만합니다.
소로야를 두고 흔히 지중해의 빛을 그렸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그가 한 일은 빛 자체를 그린 것이 아닙니다. 빛이 닿은 물체의 색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관찰해 옮긴 것입니다. 스페인 미술에서 빛의 효과를 앞세운 이런 경향을 루미니스모(luminismo)라고 부릅니다. 소로야는 이 흐름과 인상주의를 비롯한 여러 갈래를 자기 방식으로 합쳐 썼습니다.
성공의 정점에서 고른 소재가 아내와 딸의 산책이었습니다
이 그림은 1909년 여름 발렌시아 해변에서 그려졌습니다. 소로야가 미국에서 대규모 전시를 마치고 돌아온 직후입니다. 뉴욕에서 그의 그림은 예상을 넘는 반응을 얻었고, 화가는 국제적인 명성을 안고 고향 바다로 돌아왔습니다.
이 시기의 소로야는 이미 팔릴 그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성공한 직후에 그가 그린 것이 기념비적인 대작이나 역사화가 아니라 아내와 딸의 산책이었다는 사실은 기억해 둘 만합니다.
스페인 밖에서 소로야의 이름은 아직 익숙하지 않습니다. 20세기 미술의 서술이 추상 쪽으로 빠르게 이동하면서 야외의 빛을 다룬 화가들이 오래 뒤로 밀렸기 때문입니다. 마드리드에는 그가 살던 집과 화실을 그대로 쓰는 소로야 미술관이 있습니다. 〈바닷가 산책〉도 그곳에 있습니다.
소로야, 해변에 캔버스를 세운 화가
소로야는 발렌시아의 카바냘 해변을 야외 작업장처럼 썼습니다. 사진 속 그는 바닷바람에 넘어가지 않도록 큰 캔버스를 고정해 두고 서서 그리고 있습니다. 이 크기의 화면을 해변까지 옮겨 세우는 일 자체가 작업의 일부였다는 뜻입니다.
| 해변에서 대형 캔버스를 고정한 채 작업하는 소로야. 화면 왼쪽으로 날리는 베일이 어디에서 왔는지 짐작하게 하는 장면이다. |
야외에서 관찰한 흔적은 화면에도 남아 있습니다. 옷자락이 모두 한쪽으로만 밀리는 각도, 베일이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방향, 모래 위 그림자가 뻗는 모양을 함께 봅니다. 셋이 서로 어긋나지 않습니다. 바람과 해의 방향이 하나로 정해진 자리에서 본 화면입니다.
소로야의 가족에게 주어진 두 역할
가족은 소로야에게 가장 가까운 모델이었습니다. 다만 〈바닷가 산책〉을 가족 사랑의 기록으로만 읽으면 화면이 실제로 하는 일을 놓치게 됩니다. 이 그림에서 아내는 얼굴이 지워진 채 바람에 밀리는 흰 덩어리로 남았습니다. 딸은 얼굴을 가진 채 고개를 돌려 화면 밖을 봅니다. 한 사람은 화면의 움직임을 맡고 다른 한 사람은 화면의 정지를 맡는 구조입니다.
그림 앞에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확인해 볼 것은 마리아의 눈입니다. 처음에는 흰옷과 양산과 바다가 먼저 보이지만, 한 번 그 눈을 알아차리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그쪽이 먼저 보입니다. 바람에 날리는 옷자락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멈춰 있는 것이 그 시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