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의 〈건초 더미〉 연작은 건초를 그린 그림이 아닙니다. 모네가 쓴 프랑스어 낱말 meule(뫼유)은 쌓아 올린 더미를 뜻하고, 이 연작에서 가리키는 것은 밀을 거둔 뒤 밭 가에 쌓아 두는 밀짚 낟가리입니다. 모네의 작품 전체를 정리한 와일덴스탱 카탈로그 레조네(작품 총목록)는 「건초 더미」라는 번역을 두고 가장 단호하게 물리쳐야 할 오역이라고 적었습니다. 한국어에서는 이 연작을 흔히 건초 더미라고 부르지만, 와일덴스탱은 그림 속 대상을 밀 낟가리로 설명합니다.
이름을 바로잡고 나면 다음 질문이 따라옵니다. 같은 낟가리를 그린 그림들은 서로 어떻게 다른가, 그리고 모네가 낟가리 앞에서 갑자기 연작을 발견했다는 이야기는 기록으로 얼마나 확인되는가. 이 글은 시카고 미술관 등의 공식 도판 다섯 점을 나란히 놓고 하루와 계절의 차이를 눈으로 따라간 뒤, 전해지는 이야기들을 출처별로 나누어 읽습니다.
작품 한눈에 보기 클로드 모네, 〈낟가리〉(Meules) 연작, 1888~1889년 5점과 1890~1891년 25점, 캔버스에 유채. 시카고 미술관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낟가리 연작을 소장한다고 스스로 밝힙니다.
확인한 것은 셋입니다. 첫째, meule은 건초가 아니라 곡물 낟가리이고 소장처마다 제목도 갈려 있습니다. 둘째, 연작은 두 번의 제작 시기로 나뉘며 1891년 5월 파리 전시에는 낟가리 15점이 걸렸습니다. 셋째, 낟가리 앞에서 연작이 마법처럼 태어났다는 이야기는 와일덴스탱이 받아들이지 않는 서술입니다.
건초가 아니라 곡물 낟가리, meule의 뜻
건초와 낟가리는 만들어지는 때부터 다릅니다. 건초는 베어 낸 풀을 말린 것이고, 낟가리는 거둔 밀단을 탈곡할 때까지 밭 가에 쌓아 둔 것입니다. 와일덴스탱은 베어 낸 풀밭에 잠시 놓이는 작은 건초 더미를 부수적인 모티프로 따로 떼어 놓고, 모네가 연작으로 매달린 대상은 우람한 밀 낟가리였다고 설명합니다. 낟가리는 아래가 좁고 위가 원뿔인 모양으로 쌓았고, 위쪽은 호밀 짚으로 덮어 아랫부분과 모양과 색이 달랐다고 합니다. 시카고 미술관은 모네가 그린 낟가리의 높이를 15~20피트, 곧 4.5~6미터쯤으로 소개합니다.
이 낟가리들이 서 있던 곳은 모네의 지베르니 집에서 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클로 모랭(Clos Morin)이라는 땅입니다. 와일덴스탱은 이곳을 마을의 한 농부, 에밀 앙브루아즈 케뤼엘(Quéruel)이 해마다 낟가리를 쌓는 터로 쓰던 밭이라고 적습니다. 모네에게는 집에서 몇 걸음 거리의 모티프였던 셈입니다.
소장처들의 제목도 같지 않습니다. 시카고 미술관은 〈Stacks of Wheat〉, 곧 밀 낟가리라고 부르고, 보스턴 미술관은 〈Grainstack〉, 곧 곡물 낟가리라고 부르며 설명에 grainstacks or haystacks라고 병기합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Haystacks〉라는 제목을 씁니다. 같은 연작을 두고 기관마다 다르게 부르니, 이 글에서는 와일덴스탱의 판단을 따라 밀 낟가리라 부르고 검색에 쓰이는 이름은 제목에 남겼습니다. 다만 곡물의 종류까지 달리 보는 견해도 있다는 지적이 있어, 이 글은 건초가 아닌 낟가리라는 점까지만 단정합니다.
두 차례의 제작 시기, 1888~1889년과 1890~1891년
낟가리 연작은 한 번에 그린 것이 아닙니다. 와일덴스탱은 1888년 수확 뒤 시작해 1889년에 걸친 첫 시기와 1890년 늦여름부터 1891년 초까지의 두 번째 시기로 나눕니다. 첫 시기는 카탈로그 번호 1213번부터 1217번까지 다섯 점입니다. 큰 낟가리와 작은 낟가리가 센강 건너 언덕선 앞에 서는 모티프 셋, 왼쪽으로 돌아 포플러 줄이 언덕선을 가리는 모티프 둘입니다. 와일덴스탱은 이 시작을 비교적 소박한 출발이었고 연작 방식에서 곧바로 큰 진전을 이루지는 못했다고 평합니다.
두 번째 시기는 1266번부터 1290번까지 스물다섯 점으로, 와일덴스탱은 이쪽을 단연 가장 중요한 시기로 꼽습니다. 1890년 10월 7일 모네는 편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서로 다른 효과의 연작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철에는 해가 너무 빨리 져서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편지에서 낟가리를 가리키는 괄호는 모네가 쓴 것이 아니라 제프루아가 편지를 옮겨 적으면서 넣은 것이라고 와일덴스탱이 주석에서 밝힙니다. 12월 3일 편지에서 모네는 눈이 내렸고 날씨가 더없이 좋아 이 기회를 쓰고 있다고 적었고, 1891년 1월 21일 편지에서는 일에 몰두해 겨울의 효과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고 적었습니다.
눈이 쌓인 겨울 그림들은 낟가리가 눈에 덮여 있을 때만 그릴 수 있었습니다. 와일덴스탱은 눈이 녹자 농부가 서둘러 낟가리를 헐어 탈곡했다고 서술합니다. 시카고 미술관은 모네가 이 연작을 야외에서 여러 이젤을 놓고 동시에 작업했고, 작업실에서 색의 조화를 다듬었다고 설명합니다.
와일덴스탱은 연작 방식이 첫 낟가리와 만나는 순간 마법처럼 태어난 것이 아니라고도 적습니다. 연작 방식은 경험으로 점차 자랐고, 1890~1891년의 낟가리와 특히 뒤이은 포플러 연작에서 완전히 피어났다는 것입니다. 낟가리 앞에서 연작을 발견했다는 흔한 서사에 대한 연구자의 반론입니다.
다섯 점, 다른 날의 낟가리
스물다섯 점을 모두 늘어놓을 수는 없어서, 소장처 공식 도판으로 확인되는 그림 가운데 시각과 계절이 다르게 읽히는 다섯 점을 골랐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구도로 그렸다고 보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와일덴스탱은 이 그림들을 모네가 이젤 위치를 옮겨 가며 그린 것으로 분류합니다. 그래서 아래 다섯 점에서는 낟가리의 위치와 수도 달라집니다.
| 클로드 모네, 〈낟가리, 여름의 끝〉(Meules, fin de l’été), 1890~1891년(오르세는 1891년으로 표기), 캔버스에 유채, 60.5 × 100.8 cm, 오르세 미술관, 파리, RF 1975 3. 와일덴스탱은 제목에 「아침 효과(effet du matin)」를 덧붙인다. 큰 낟가리의 꼭대기는 연한 노랑과 흰색이고 아랫부분은 분홍빛 자주다. |
첫 번째는 오르세 미술관의 〈낟가리, 여름의 끝〉입니다. 와일덴스탱은 여기에 「아침 효과」를 덧붙여 부릅니다. 작은 낟가리는 왼쪽에, 큰 낟가리는 오른쪽에 있고 큰 낟가리의 꼭대기는 화면 위쪽 4분의 1 지점에 닿습니다. 그림자는 낟가리의 오른쪽과 아래로 뻗습니다. 하늘의 위쪽은 연한 청백색이고 그 아래로 연한 청색의 먼 언덕이 띠를 이룹니다. 햇빛을 받은 큰 낟가리의 꼭대기는 연한 노랑과 흰색이고 아랫부분은 분홍빛 자주입니다. 그림 왼쪽 아래에는 서명 「Claude Monet 91」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91이 제작 연도는 아닙니다. 와일덴스탱은 1890년에 작업한 그림 다수를 1891년 전시 때 서명하고 날짜를 적었다고 설명합니다.
| 클로드 모네, 〈밀 낟가리(여름의 끝)〉(Stacks of Wheat (End of Summer)), 1890~1891년, 캔버스에 유채, 60 × 100.5 cm, 시카고 미술관, 1985.1103. 큰 낟가리의 왼쪽 가장자리에 주황색 테가 돈다. |
두 번째는 시카고 미술관의 〈밀 낟가리(여름의 끝)〉입니다. 와일덴스탱 목록에서 이 그림은 오르세 그림과 같은 여름 끝의 풍경이지만 저녁 효과로 적혀 있습니다. 낟가리 한 쌍은 오르세 그림과 마찬가지로 왼쪽에 작은 것, 오른쪽에 큰 것으로 서지만, 하늘은 연한 노랑과 연두로 바뀌었고 보라색 언덕은 더 낮은 자리에 깔려 있습니다. 큰 낟가리의 왼쪽 가장자리에는 주황색 테가 돌고, 가운데에는 흰 벽의 건물이 한 채 보입니다. 와일덴스탱은 이 그림에서 조명의 변화가 특히 극적이라고 적었습니다. 시카고 미술관의 출처 기록은 이 그림이 1891년 5월 9일 뒤랑뤼엘 장부에 3,000프랑으로 올랐다고 밝힙니다.
| 클로드 모네, 〈밀 낟가리(하루의 끝, 가을)〉(Stacks of Wheat (End of Day, Autumn)), 1890~1891년, 캔버스에 유채, 65.8 × 101 cm, 시카고 미술관, 1933.444. 낟가리 전체가 연어빛 붉은색이고 오른쪽 윤곽에 청록 테가 얇게 돈다. |
세 번째는 가을 해 질 무렵의 〈밀 낟가리(하루의 끝, 가을)〉입니다. 이 그림에서는 낟가리 전체가 연어빛 붉은색으로 물들고 큰 낟가리의 오른쪽 윤곽에는 청록 테가 얇게 돕니다. 하늘은 위에서부터 청록, 연노랑, 복숭아색으로 이어지고, 앞의 두 그림과 달리 뚜렷한 그림자가 없습니다. 땅은 분홍빛 회색이고 왼쪽 아래와 바닥에 연두가 깔립니다. 와일덴스탱은 이 그림에서 해가 앞서 본 저녁 그림보다 훨씬 덜 서쪽으로 졌고 나무에 가을빛이 돈다고 적습니다. 시카고 미술관은 가을 그림 거의 전부에서 낟가리의 원뿔 꼭대기가 지평선을 뚫고 하늘로 솟는다고 설명합니다. 이 도판에서 낟가리 꼭대기 뒤쪽에 언덕선이 있는지 직접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 클로드 모네, 〈밀 낟가리(일몰, 눈 효과)〉(Stacks of Wheat (Sunset, Snow Effect)), 1890~1891년, 캔버스에 유채, 65.3 × 100.4 cm, 시카고 미술관, 1922.431. 눈 위의 그림자는 파랗고 낟가리의 그림자는 왼쪽 앞으로 떨어진다. |
네 번째는 눈 덮인 겨울 해넘이의 〈밀 낟가리(일몰, 눈 효과)〉입니다. 큰 낟가리가 화면 가운데에서 약간 왼쪽에 서고, 작은 낟가리는 그 뒤 왼쪽으로 물러나 있습니다. 위쪽 오른편 하늘이 주황에서 살구색으로 달아오르고 지평선은 청보라색입니다. 눈 위의 그림자는 파랗고 낟가리 몸통은 갈주황 바탕에 청보라 얼룩이 앉았습니다. 그림자는 왼쪽 앞으로 떨어집니다. 하늘의 밝은 쪽이 오른쪽 위에 있고 그림자가 왼쪽 앞으로 눕는다는 점을 함께 보면 빛이 어느 쪽에서 오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와일덴스탱은 겨울에는 해가 지나는 길이 훨씬 짧다고 이 그림에 적었습니다. 이 그림은 1891년 7월 20일 뒤랑뤼엘 장부에 3,200프랑으로 올랐습니다.
| 클로드 모네, 〈밀 낟가리(눈 효과, 흐린 날)〉(Stack of Wheat (Snow Effect, Overcast Day)), 1890~1891년, 캔버스에 유채, 66 × 93 cm, 시카고 미술관, 1933.1155. 구름 뒤의 희미한 해는 낟가리 꼭대기의 오른쪽 위에 있다. |
다섯 번째는 흐린 날의 눈 풍경, 〈밀 낟가리(눈 효과, 흐린 날)〉입니다. 앞의 네 점과 달리 낟가리는 한 기뿐이고 화면 왼쪽 절반에 서 있습니다. 그 뒤로 청색 언덕이 화면 가득 가로로 이어지고, 오른쪽에는 눈 덮인 지붕의 마을이 있습니다. 하늘의 구름 뒤로 희미한 해가 걸려 있는데, 낟가리 꼭대기에서 오른쪽 위를 보면 찾을 수 있습니다. 와일덴스탱은 구름을 뚫은 해가 언덕 쪽으로 기운다고 적습니다. 시카고 미술관은 겨울 그림 대부분에서 낟가리가 언덕과 들의 띠에 감싸여 겨울잠을 자는 듯 보인다고 설명하는데, 이 그림에서 낟가리와 언덕선이 어떻게 겹치는지 앞의 가을 그림과 견주어 볼 만합니다.
다섯 점을 이어 보면 낟가리의 윤곽은 비슷한 원뿔인데 색과 그림자, 하늘의 빛은 그림마다 달라집니다. 제프루아는 낟가리를 거울 표면에서처럼 주변의 영향이 새겨지는 일시적인 사물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글은 도판에서 이 비유가 읽힌다고 봅니다.
1891년 5월, 낟가리 열다섯 점의 전시
1891년 5월 파리의 뒤랑뤼엘 화랑에서 모네의 전시가 열렸습니다. 모네는 편지에서 전시할 그림이 22점이고 그중 15점이 낟가리 연작이라고 알렸고, 제프루아의 도록 서문과 방문객 바이방크의 기록도 15점이라는 숫자에서 일치합니다. 개막일은 자료마다 다릅니다. 와일덴스탱은 5월 4일부터 16일까지로 적고, 제프루아의 책에 실린 서문 각주는 5일부터 20일까지로 적습니다.
제프루아는 서문에서 이 열다섯 점을 한데 모은 것이 같은 주제가 새겨지고 같은 풍경이 비치는, 예술적으로 놀랍게 성공한 증명이라고 썼습니다. 네덜란드에서 온 방문객 바이방크는 1892년에 낸 책에서 전시장을 이렇게 기억합니다. 열다섯 점이 모두 하루의 다른 시각과 한 해의 다른 계절에 그린 같은 낟가리였고, 그중 한 점이 자신에게 나머지 그림을 보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는 것입니다. 바이방크에 따르면 마침 전시장에 들어온 모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에게 풍경은 풍경으로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습이 순간마다 바뀌기 때문입니다. 풍경은 그 둘레, 곧 공기와 빛으로 삽니다」. 방문자가 전한 말이어서 모네가 남긴 확정된 직접 발언으로 쓰지는 않습니다.
바이방크는 같은 낟가리라고 적지만 앞 절에서 본 대로 카탈로그와 화면은 낟가리의 위치와 수가 그림마다 달라진다고 말합니다. 전시장에서 받은 인상과 도판을 하나씩 대조한 분류는 서로 다른 층의 이야기입니다.
값은 뒤랑뤼엘 장부에 2,500프랑, 3,000프랑, 3,200프랑으로 적혀 있습니다. 와일덴스탱은 한 점에 2,500프랑, 때로 3,000프랑이었다고 요약합니다. 장부에서는 5월 9일 하루에 낟가리 일곱 점이 한꺼번에 기록됩니다. 시카고 미술관의 출처 기록이 같은 날짜로 앞에서 본 〈밀 낟가리(여름의 끝)〉를 3,000프랑, 〈밀 낟가리(눈 효과, 흐린 날)〉를 2,500프랑으로 적은 것이 그 가운데 둘입니다.
전해 오는 이야기 둘
연작에는 널리 퍼진 일화 둘이 따라붙습니다. 어느 쪽도 그림을 그리던 때에 쓰인 기록은 아닙니다.
첫째는 블랑슈와 캔버스 이야기입니다. 모네가 한창 그리는 중에 빛이 갑자기 바뀌자 블랑슈 오슈데에게 집에 가서 다른 캔버스를 가져오라고 시켰는데, 가져오자마자 또 달라져서 또 다른 것, 또 하나를 부탁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근거는 1927년 모네가 트레비즈 공작에게 들려준 말과 1942년 블랑슈가 남긴 회고입니다. 와일덴스탱은 모네가 기억을 극적으로 만들어 말하고 있다고 평합니다. 손수레에 인상의 수만큼 캔버스를 싣고 나갔다는 블랑슈의 증언도 같은 회고에 속합니다.
둘째는 탈곡을 미루게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눈이 녹자 농부가 낟가리를 서둘러 헐려 했는데 모네가 대가를 치르고 그것을 늦추게 했다는 이야기로, 장피에르 오슈데가 1960년에 낸 책에 실려 있습니다. 와일덴스탱은 이 일화의 책임을 오슈데에게 맡기고 자신은 보증하지 않는다고 적습니다.
두 이야기는 모두 모네가 낟가리를 얼마나 집요하게 따라갔는지를 보여 주는 쪽으로 읽힙니다. 이 글이 확인한 사실은 그보다 적습니다. 모네가 여러 이젤에서 동시에 작업했다는 시카고 미술관의 설명이 있고, 편지에는 해가 너무 빨리 진다는 모네 자신의 말이 있습니다. 손수레와 대가 지급은 거기에 얹힌 회고입니다.
칸딘스키의 회상, 알아볼 수 없던 낟가리
이 연작 앞에서 쓴 글로 잘 알려진 사람이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입니다. 그는 1913년에 낸 회상 글 『과거를 돌아보며』(Rückblicke)에서 모스크바에서 열린 프랑스 인상주의 전시를 기억합니다. 무엇보다 모네의 〈건초더미〉가 있었고, 그 앞에서 「갑자기 처음으로 한 점의 그림을 보았다」고 적습니다. 그것이 건초더미라는 것은 도록이 알려 주었고, 자신은 알아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알아보지 못한 것이 괴로웠고, 화가가 이렇게 불분명하게 그릴 권리는 없다고 생각했으며, 막연히 이 그림에서 대상이 빠져 있다고 느꼈다고 씁니다.
이 회상에는 연도가 없고 어느 그림인지도 적혀 있지 않습니다. 와일덴스탱은 취리히 쿤스트하우스가 소장한 낟가리 그림의 전시 이력에 1896~1897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의 프랑스 미술전을 적고 칸딘스키의 책을 함께 서지에 올렸습니다. 칸딘스키가 본 그림이 그것이라는 것은 연구자의 추정으로 남아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그가 독일어로 그 그림을 건초더미(Heuhaufen)라고 불렀다는 것, 그리고 알아볼 수 없었다는 경험을 그림에서 대상이 빠져 있다는 느낌으로 적었다는 점입니다.
다시 볼 때 확인할 곳
연작을 다시 볼 때는 각 그림에서 낟가리 꼭대기와 그림자 끝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꼭대기가 화면의 어느 높이에 있는지, 그 뒤에 언덕선이 있는지, 그림자가 어느 쪽으로 얼마나 뻗는지를 나란히 놓으면 낟가리가 왜 하루와 계절을 재는 자 노릇을 하는지 보입니다. 시카고 미술관은 모네가 이 연작 뒤에 포플러, 루앙 대성당, 그리고 지베르니의 자기 정원으로 같은 방식을 이어 갔다고 설명합니다.
모네의 생애 전체는 클로드 모네의 생애와 작품에서 이어 볼 수 있습니다.
모네 건초더미 연작에 대해 자주 묻는 질문
모네의 건초더미 연작은 모두 몇 점인가
와일덴스탱 카탈로그 번호로 세면 1888~1889년의 다섯 점과 1890~1891년의 스물다섯 점, 모두 서른 점입니다. 이 합계를 카탈로그가 따로 적은 것은 아니고 번호를 센 값입니다. 이 가운데 1891년 5월 뒤랑뤼엘 전시에는 열다섯 점이 걸렸습니다.
왜 건초가 아니라 낟가리라고 부르나
와일덴스탱이 건초 더미라는 번역을 오역으로 규정했기 때문입니다. 와일덴스탱은 모네가 그린 것을 수확한 밀단을 탈곡 전까지 쌓아 둔 낟가리로 설명합니다.
건초더미 연작의 가격은 얼마였나
뒤랑뤼엘 장부에는 한 점에 2,500프랑, 3,000프랑, 3,200프랑으로 적혀 있습니다.
건초더미 연작의 재료는 무엇인가
이 글에서 본 오르세와 시카고 미술관의 다섯 점은 모두 캔버스에 유채로 그린 그림입니다.
어느 미술관에서 소장하나
시카고 미술관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낟가리 연작을 소장한다고 스스로 밝히고, 파리 오르세 미술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보스턴 미술관 등도 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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