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예즈 〈키스〉, 아름다운 이별 속에 숨겨진 이탈리아 독립의 암호
두 사람이 포개진 입술. 남자의 손은 여인의 어깨를 꼭 붙잡고, 여인의 손가락은 그의 목덜미를 감쌉니다. 캔버스 한가운데서 벌어지는 이 찰나의 장면을 처음 마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숨이 멎을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을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천천히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연인의 키스가 아닙니다. 이탈리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명화로 자주 꼽히는 프란체스코 하예즈의 〈키스(Il Bacio)〉는 아름다운 이별의 장면 뒤에 이탈리아 독립의 열망을 암호처럼 새겨 넣은 작품입니다. 로맨스와 정치가 이토록 완벽하게 하나로 녹아든 그림은 미술사를 통틀어 손꼽을 정도입니다.
• 1859년 출품 당시 제목: Il bacio. Episodio della giovinezza. Costumi del secolo XIV(청춘의 한 장면, 14세기 의상)
• 작가: 프란체스코 하예즈(Francesco Hayez, 1791~1882)
• 제작: 1859년
• 재료: 캔버스에 유화
• 크기: 112×88cm
• 소장: 브레라 미술관(Pinacoteca di Brera), 밀라노(1886년 비스콘티의 유증으로 소장)
낭만주의 화가 하예즈, 그리고 격변의 밀라노
프란체스코 하예즈(Francesco Hayez, 1791~1882)는 베네치아에서 태어나 밀라노에서 꽃을 피운 이탈리아 낭만주의 회화의 거장입니다. 종교화·역사화·신화화를 두루 그렸지만, 오늘날 전 세계에 그의 이름을 알린 것은 이 단 하나의 작품, 〈키스〉입니다.
하예즈가 활동하던 19세기 이탈리아는 지금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이탈리아'라는 통일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반도 전체가 여러 군소 국가로 쪼개져 있었고, 하예즈가 살던 밀라노는 나폴레옹 체제가 무너진 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 아래 놓여 있었습니다. 자유를 열망하는 이탈리아인들 사이에서 통일과 독립을 향한 뜨거운 운동, 이른바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 부흥·재건)의 물결이 들끓고 있었습니다.
하예즈는 이 시대의 공기를 온몸으로 흡수한 화가였습니다. 프랑스계 아버지와 이탈리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에게 이탈리아의 독립과 프랑스와의 연대는 단순한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그가 캔버스 앞에 섰을 때, 그 붓끝에는 화가 개인의 감성만이 아니라 시대 전체의 열망이 실려 있었습니다.
1859년, 비밀 동맹과 하나의 캔버스
〈키스〉가 탄생한 1859년은 이탈리아 근대사에서 결정적인 해입니다. 그로부터 1년 전인 1858년 7월, 이탈리아 통일 운동의 핵심 정치가 카밀로 카부르(Camillo di Cavour)와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는 프랑스의 작은 온천 마을 플롱비에르(Plombières)에서 비밀리에 만납니다. 두 사람은 이 자리에서 오스트리아가 먼저 피에몬테를 공격할 경우 프랑스가 이탈리아 편에서 참전한다는 밀약을 맺습니다. 이것이 바로 플롱비에르 밀약입니다.
이듬해 봄, 오스트리아의 최후 통첩을 피에몬테가 거부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고 프랑스군이 약속대로 합류했습니다. 이 그림은 밀라노 귀족 알폰소 마리아 비스콘티 디 살리체토(Alfonso Maria Visconti di Saliceto)의 의뢰로 그려졌습니다. 완성작은 1859년 9월 브레라 아카데미 연례 전시회에 출품되어 즉각적인 찬사를 받았고, 이후 비스콘티의 저택에 걸려 있다가 1886년 그의 유언에 따라 브레라 미술관에 기증되었습니다.
캔버스 위에 숨겨진 암호들, 색과 빛으로 읽는 정치적 메시지
이 그림이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라는 사실은, 두 사람의 의상을 주의 깊게 살펴보는 순간 분명해집니다. 남자가 걸친 망토의 초록 안단과 빨간 스타킹은 이탈리아 국기의 색입니다. 여인이 입은 파란색과 흰색 드레스는 프랑스 국기의 색입니다. 두 사람의 열렬한 포옹은 곧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동맹을 상징하는 것으로 널리 해석됩니다. 물론 이 색채 해석이 하예즈 본인이 남긴 기록에서 직접 확인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작품이 탄생한 역사적 맥락, 의뢰인의 주문 내용, 그리고 이후 하예즈가 이 색채 구성을 다른 버전에서도 반복해 강조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이 해석은 오늘날 가장 설득력 있는 읽기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림 왼쪽에 어둡게 처리된 형상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처음에는 동료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이 형상은 여성입니다. 두 사람의 이별을 안타깝게 지켜보는 것 같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해석으로는 곧 패배하게 될 오스트리아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림의 빛은 키스하는 두 사람에게 쏟아지고, 이 어두운 형상은 그 빛의 바깥에 머무릅니다. 빛과 어둠의 배치만으로 승자와 패자를 조용히 선언한 것입니다.
여인의 드레스에서도 눈을 떼기 어렵습니다. 실크 특유의 광택과 몸의 굴곡을 따라 흐르는 주름이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적 과시가 아닙니다. 이 사실적인 질감이 바로 그림 전체의 긴장감을 살아 있게 만드는 핵심 장치입니다. 정치적 우화로 읽히는 이 장면이 동시에 실제 두 연인의 이별처럼 느껴지는 것은, 드레스의 주름 하나하나가 관객에게 "이것은 진짜다"라는 신호를 보내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이 14세기풍 의상을 입고 있는 것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이 그림이 1859년 브레라 전람회에 걸릴 때 붙었던 제목에도 "청춘의 한 장면, 14세기 의상"이라는 말이 들어 있었다고 전합니다. 19세기 이탈리아 예술계에는 동시대 배경을 그대로 화폭에 담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관념이 있었습니다. 하예즈는 이 관행을 역으로 이용했습니다. 옛 시대 복장이라는 위장막 뒤에 당대 이탈리아의 가장 뜨거운 정치적 열망을 숨겨 놓은 것입니다. 덕분에 관객들은 억압 없이 이 그림과 마주하고, 가슴 속에서 스스로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화면 구성에서도 놓치면 안 될 것이 있습니다. 남자는 이미 한쪽 발을 계단 쪽으로 내딛고 있고, 그의 허리께 망토 아래로는 칼집에 든 단검이 은은히 드러나 보입니다. 곧 전쟁터로 향할 사람의 표식입니다. 키스가 끝나는 순간 그는 계단을 올라 사라질 것입니다. 이 미묘한 발의 위치는 이 장면이 "만남"이 아니라 "이별"임을 화면 안에서 조용히 선언하는 구성적 장치입니다.
두 사람의 얼굴은 왜 보이지 않는가
이 그림에는 널리 퍼진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남자는 눈을 감았는데 여인만은 눈을 뜨고 있고, 그것이 이 그림의 비밀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도판을 원본 화소까지 확대해서 보면 사정이 다릅니다.
남자의 눈은 애초에 화면에 없습니다. 챙 넓은 모자가 앞으로 깊이 기울어 이마부터 눈까지를 통째로 덮고 있어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코와 입뿐입니다. 눈을 감았는지 떴는지 판단할 근거 자체가 그려져 있지 않습니다. 여인의 눈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썹의 아치는 또렷하게 그려져 있지만 그 아래는 남자의 모자 챙이 드리운 그늘에 들어가 있고, 홍채도 흰자도 칠해져 있지 않습니다. 위의 세부 확대 사진에서 직접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 대목의 정확한 서술은 "여인이 눈을 뜨고 있다"도, "감고 있다"도 아닙니다. 하예즈는 두 사람의 눈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얼굴에서 가장 많은 것을 말해 주는 부분을 지우고, 손과 몸과 옷자락만 남긴 것입니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하면, 눈이 없기 때문에 이 두 사람이 누구든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얼굴 앞에서 관객은 자기가 아는 이별을 그 자리에 놓게 됩니다. 떠나보낸 사람이 있는 관객에게는 그 사람의 얼굴이, 조국을 생각하는 관객에게는 또 다른 것이 거기 채워집니다. 이 그림이 특정한 두 연인의 초상이 아니라 한 시대의 이별 전체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얼굴을 지운 자리가 관객이 들어가는 자리입니다.
시간을 따라 변한 키스, 네 번의 버전이 말하는 것
하예즈는 〈키스〉를 한 번 그리고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탈리아의 역사가 변화하는 흐름 속에서 같은 주제를 여러 차례 화폭에 담았고, 그중 소재를 알 수 있는 것만 네 점입니다. 단순히 같은 그림을 반복한 것이 아닙니다. 버전마다 역사의 온도가 다릅니다.
가장 먼저 그려진 것은 1859년 유화 버전으로, 현재 브레라 미술관에 소장된 바로 그 작품입니다. 밀라노 암브로시아나 미술관(Pinacoteca Ambrosiana)에는 이 유화를 거의 그대로 옮긴 타원형 수채화 한 점이 있습니다. 하예즈 자신이 그린 것으로 확인되지만 정확한 제작 연도는 1859년 이후로만 알려져 있고, 배경을 간략하게 처리한 점 말고는 브레라의 원작과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이 수채화는 1962년 네그로니 프라티 모로시니 가문이 유증한 초상화 네 점과 함께 암브로시아나에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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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브로시아나 미술관의 타원형 수채화 버전, 브레라 원작을 옮겨 그린 것입니다. |
두 번째 유화는 1861년 밀리우스(Mylius) 가문의 의뢰로 그려졌습니다. 이 버전에서는 여인의 드레스가 흰색으로 바뀌고, 남자 망토의 초록 안단, 빨간 스타킹, 그리고 여인의 흰 드레스가 교차하면서 이탈리아 삼색기의 색상을 화면 안에 자연스럽게 형성합니다. 프랑스를 상징하는 파란색과 흰색의 조합에서 이탈리아 삼색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한 것입니다. 이 버전은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되었고, 2008년 소더비 경매에서는 78만 파운드가 넘는 가격에 낙찰되었습니다.
세 번째인 1867년 버전은 그해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되었습니다. 이 버전을 다른 버전과 구별 짓는 가장 뚜렷한 요소는 계단 위에 던져진 흰 베일입니다. 남자의 초록 망토, 여인의 파란 드레스와 함께 이 흰 베일이 놓이면서, 이탈리아와 프랑스 두 나라의 국기 색이 화면 안에서 한층 더 선명하게 겹쳐집니다. 창문과 기둥의 위치 같은 배경 세부도 앞선 버전들과 조금씩 다릅니다. 파리 박람회에 걸린 이 그림은 러시아 황족인 블라디미르 대공의 눈에 들었고, 그는 하예즈에게서 이 작품을 직접 사들였습니다. 이 그림은 러시아 황실의 소장품이 되어 후손에게 대물림되다가, 2016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하예즈 작품 경매 최고가를 기록하며 새 개인 소장자에게 넘어갔습니다.
이 그림이 이탈리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
〈키스〉는 단순한 낭만적 명화가 아닙니다. 억압과 분열의 시대를 살았던 이탈리아 사람들이 직접 말할 수 없었던 것을 대신 말해준 작품입니다. 통일을 원했던 애국자들은 이 두 사람의 키스에서 자신들의 꿈을 보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전쟁터로 보내야 했던 사람들은 얼굴이 지워진 이 두 사람 자리에 자기 자신을 놓았습니다.
하예즈의 진짜 능력은 깊은 의미를 철저히 감추고, 누구나 다가올 수 있는 아름다움을 앞에 세운 데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관객도 이 그림 앞에서 가슴이 뛰고, 역사를 아는 관객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감동을 경험합니다. 그 두 층위의 감동이 동시에 열려 있다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힘입니다.
〈키스〉는 현재 밀라노의 브레라 미술관(Pinacoteca di Brera)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언젠가 밀라노를 여행하게 된다면 이 두 사람의 입술이 닿는 찰나 앞에 잠시 멈춰 서 보시길 권합니다. 남자의 발이 이미 계단 첫 단에 올라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두 사람의 눈이 그늘 안에 들어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 보시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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