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뒤집으면 사람이 보인다? 아르침볼도의 기발한 <채소 정원사>
16세기를 뛰어넘는 놀라운 창의성을 보여준 이탈리아 출신 화가, 주세페 아르침볼도의 <채소를 기르는 정원사(L’Ortolano)>라는 작품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밀라노에서 태어난 아르침볼도(Giuseppe Arcimboldo, 1526~1593)는 신성로마제국의 궁정화가로서 빈과 프라하에서 약 25년 동안 막시밀리안 2세와 루돌프 2세 황제를 섬겼습니다. 궁정화가의 주요 임무는 왕실 가족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이었지만, 아르침볼도는 아주 파격적인 시도를 했습니다. 왕의 근엄한 모습을 그대로 화폭에 담는 대신, 온갖 과일, 채소, 꽃, 동물 등을 조합해 황제의 얼굴을 묘사한 것입니다. 초상화는 실존 인물을 똑같이 그려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과감히 깨버린 시도였습니다.
그의 대표작인 '사계' 연작에서 그는 <봄>을 여러 꽃으로, <여름>을 과일과 채소로, <가을>을 풍성한 곡식으로, <겨울>을 앙상한 나뭇가지로 조합하여 황제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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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를 기르는 정원사> 1590년경, 36 X 24cm, 크레모나 시립 미술관 |
자칫하면 황제의 분노를 살 수 있는 파격적인 그림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황제들은 유머 감각이 넘쳤고 이 그림들을 매우 좋아했다고 합니다. 아르침볼도를 총애했던 두 황제는 그의 그림을 유럽 여러 궁정에 선물했고, 자연스럽게 그의 작품은 전 유럽에서 대단한 인기를 얻었습니다.
16세기를 살았던 아르침볼도는 어떻게 이런 기발한 발상을 했을까요? 아마도 화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와 태피스트리 디자인 작업을 도왔던 경험이, 각기 다른 조각들을 모아 새로운 형상을 만드는 그의 독창적인 스타일의 밑거름이 된 것입니다.
소개해 드릴 <채소를 기르는 정원사>도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한 그림이 두 가지 모습으로 보이는 아주 특별한 작품입니다. 처음 보면 채소가 담긴 그릇을 그린 정물화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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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도 회전했을 때 나타나는 '정원사'의 얼굴 |
이 그림은 어떻게 감상해야 할까요? 그림을 180도 뒤집어 보면 그릇은 모자가 되고, 그릇에 담겨 있던 채소들이 모여 익살스러운 정원사의 얼굴을 만들어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림의 제목이 <채소를 기르는 정원사>인 이유입니다. 그림을 뒤집어 인물화로 보았을 때, 툭 튀어나온 광대뼈는 양파, 오뚝한 코는 하얀 무, 붉은 입술은 반으로 잘린 버섯으로 선명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평범한 정물화가 위아래를 뒤집자 전혀 다른 인물화로 변하는 것을 보면 누구나 두 번 놀라게 됩니다. 채소로 사람의 얼굴을 표현했다는 창의성에 한 번, 그리고 그림의 위아래를 뒤집어 인물화와 정물화를 넘나드는 재치에 또 한 번 놀라는 것이지요.
이처럼 아르침볼도는 사물의 형태나 표면에서 사람의 모습을 찾아내는 기법으로 위트 넘치는 작품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가 사망한 뒤 그의 그림은 잠시 잊혔다가 20세기 초현실주의가 등장하면서 재조명되었고, 살바도르 달리와 같은 현대 화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또한 오늘날에는 그의 작품이 아이들에게 무한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길러주는 훌륭한 교재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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