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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침볼도의 '채소 정원사' "그림을 뒤집으면 사람이 보여요"

작품 한눈에 보기
• 작가: 주세페 아르침볼도(Giuseppe Arcimboldo, 1526~1593)
• 작품명: 정원사(L'Ortolano)
• 제작: 1587~1590년경
• 재료: 패널에 유화
• 크기: 35.8 × 24.2cm
• 소장: 크레모나 시립 알라 폰초네 미술관
• 비고: 위아래를 뒤집으면 채소 그릇이 사람 얼굴이 되는 가역 회화

이 그림에는 위아래가 없습니다. 지금 보이는 방향에서는 검은 그릇에 양파와 무와 버섯이 담긴 정물이지만, 화면을 180도 돌리는 순간 그릇은 모자가 되고 채소들은 웃는 얼굴이 됩니다. 어느 쪽으로 걸어도 완성된 그림입니다.

같은 채소들이 두 번 다른 것으로 보이려면, 각각의 형태와 자리가 두 역할을 동시에 감당해야 합니다. 코가 될 뿌리채소, 입이 될 버섯 두 개, 눈이 될 벌어진 열매까지, 어떤 자리에 무엇을 놓았기에 이 전환이 성립하는지 하나씩 짚어 보겠습니다.

먼저 채소 그릇 하나를 봅니다

아르침볼도 정원사 채소가 담긴 검은 그릇으로 보이는 정물 방향

주세페 아르침볼도, 〈정원사〉, 1587~1590년경, 패널에 유화, 35.8 × 24.2cm, 크레모나 시립 알라 폰초네 미술관. 그릇 방향으로 놓은 화면입니다.

둥근 갈색 양파가 화면 한가운데를 차지합니다. 그 옆으로 흰 뿌리채소가 몇 개 누워 있고, 붉은 갓의 버섯 두 개가 겹쳐 놓여 있습니다. 뒤쪽으로는 흰 무 다섯 개가 줄기를 위로 세운 채 나란히 서 있고, 그 사이로 민들레와 치커리의 톱니 잎이 뻗어 오릅니다.

이 채소들을 받치는 것은 검은 금속 그릇입니다. 몸통에 흰 광택 한 줄기가 세로로 길게 지나가고, 그릇 아래에는 탁자 면과 옅은 그림자가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시장에서 막 사 온 채소를 그린 그림입니다.

뒤집으면 어디에 무엇이 놓이는가

아르침볼도 정원사를 180도 뒤집었을 때 나타나는 사람 얼굴

같은 화면을 180도 돌린 방향. 그릇의 흰 광택이 그대로 모자의 반사광이 됩니다.

가장 먼저 자리를 바꾸는 것은 그릇입니다. 바닥에 놓여 있던 검은 그릇이 위로 올라가 챙 넓은 모자가 되고, 아까 세로로 흐르던 광택은 모자에 떨어진 빛으로 바뀝니다. 그릇의 둥근 테두리가 이마와 모자가 만나는 선이 됩니다.

얼굴 한가운데에는 흰 뿌리채소가 비스듬히 돌출해 코가 됩니다. 코 아래에는 버섯 두 개가 위아래로 겹쳐 입술이 됩니다. 두 갓 사이가 살짝 벌어져 있어서 입이 웃는 모양으로 읽힙니다.

눈은 껍질이 벌어진 호두와 헤이즐넛이 맡고 있습니다. 벌어진 틈으로 보이는 어두운 알맹이가 눈동자처럼 보입니다. 뺨은 둥근 양파와 순무가 나눠 맡습니다. 정물 방향에서 밑동으로 보이던 부분이 뒤집히면 뺨의 둥근 부피로 바뀝니다.

아래쪽에서는 민들레와 치커리의 톱니 잎이 사방으로 퍼져 수염이자 옷깃이 됩니다. 정물 방향에서 그릇 뒤로 솟아오르던 흰 무 다섯 개는, 뒤집히면 턱 아래로 늘어진 목장식처럼 가지런히 걸립니다.

그릇이 없었다면 얼굴도 없습니다

이 그림에서 결정적인 장치는 채소가 아니라 그릇입니다. 사람의 얼굴에서 윤곽을 잡아 주는 것은 이목구비가 아니라 머리의 외곽선인데, 채소만 쌓아 놓으면 그 외곽선이 생기지 않습니다. 아르침볼도는 그 자리에 단단한 검은 그릇을 놓았습니다.

그릇은 두 방향 모두에서 자기 역할을 합니다. 정물에서는 채소를 담는 그릇이고, 뒤집으면 얼굴을 완성하는 모자입니다. 색도 마찬가지입니다. 화면에서 유일하게 어두운 덩어리이기 때문에 뒤집었을 때 밝은 채소들과 분리되어 곧바로 모자로 읽힙니다.

여기에서 아르침볼도의 작업 순서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채소를 먼저 그리고 얼굴을 찾아낸 것이 아니라, 얼굴에 필요한 자리를 정해 놓고 그 자리에 맞는 채소를 골랐을 가능성이 큽니다. 코가 될 무는 길이와 각도가 정해져 있어야 하고, 입이 될 버섯은 두 개가 겹쳐야 하며, 눈이 될 열매는 껍질이 벌어져 있어야 합니다.

위아래 어느 쪽도 뒤집힌 그림이 아닙니다

이 작품은 크레모나의 시립 알라 폰초네 미술관에 있습니다. 미술관이 이 그림을 소개하는 방식 자체가 이 그림의 성격을 말해 줍니다. 위아래를 180도 돌리면 채소 그릇에서 사람의 얼굴로 바뀐다는 것이 미술관이 밝히는 이 작품의 핵심입니다.

이 그림에는 원래의 위아래가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두 방향 가운데 어느 쪽도 뒤집힌 상태가 아니며, 어느 방향으로 걸어도 완성된 그림입니다.

구름에서 동물을, 벽의 얼룩에서 사람 얼굴을 보는 것처럼 무늬나 사물에서 저절로 얼굴을 읽어 내는 현상을 파레이돌리아라고 부릅니다. 다만 이 그림은 그런 우연한 착시가 아닙니다. 크레모나 미술관은 이 작품을 정물과 인물이 동시에 성립하도록 처음부터 설계된 가역 이미지(immagini reversibili)로 소개합니다. 얼굴은 우연히 떠오른 것이 아니라 아르침볼도가 의도적으로 짜 넣은 것입니다.

세 명의 황제를 섬긴 25년

이런 작업 방식은 그의 초기 경력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화가였던 아버지 비아조는 밀라노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에 참여했고, 주세페 자신도 이후 코모 대성당에서 태피스트리 밑그림을 그렸습니다. 작은 색유리나 실 조각을 맞붙여 하나의 형상을 만드는 이 매체들의 작업 방식은, 채소 하나하나를 짜 맞춰 얼굴을 만드는 이 그림의 구성 원리와 닮아 있습니다.

아르침볼도는 1526년 밀라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1562년부터 합스부르크 궁정에 들어가 페르디난트 1세, 막시밀리안 2세, 루돌프 2세까지 세 황제를 섬겼습니다. 빈에서 1583년까지 일한 뒤 프라하로 옮겨 1587년까지 머물렀으니, 궁정에서 보낸 기간은 25년 남짓입니다. 궁정화가의 본업은 황제와 왕실 가족의 초상을 위엄 있게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실제로 그린 것은 과일과 채소와 꽃과 책을 조합해 만든 얼굴이었습니다. 대표작인 사계 연작에서 봄은 꽃으로, 여름은 과일과 채소로, 가을은 수확물로, 겨울은 마른 나뭇가지와 껍질로 얼굴을 이룹니다. 계절이 바뀌면 얼굴을 이루는 재료도 바뀝니다.

이런 그림이 황제의 눈 밖에 나지 않은 것은 당시 궁정 문화의 취향과 관계가 있습니다. 16세기 궁정에서는 보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기교와 착상을 높이 평가했고, 진기한 물건과 그림을 모아 두는 방을 따로 두기도 했습니다. 아르침볼도의 그림은 그 취향에 정확히 맞는 물건이었습니다.

정원사인가, 정원의 신인가

이 그림의 인물이 누구인지는 확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채소를 기르는 사람, 곧 정원사로 보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읽기입니다. 제목도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다른 해석도 있습니다. 연구자들 가운데는 이 얼굴을 정원과 풍요를 관장하는 신 프리아포스와 연결해 읽는 이들이 있습니다. 채소와 뿌리를 쌓아 만든 형상이 다산의 상징으로 읽힐 여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쪽이든 이 그림이 밭에서 나온 것들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림 앞에서 마지막으로 해 볼 일은 시선을 한 번 더 뒤집는 것입니다. 얼굴을 본 다음 다시 그릇 방향으로 돌아가면, 이번에는 양파가 그냥 양파로 보이지 않습니다. 뺨이었던 것이 다시 양파가 되는 그 순간이 이 작은 패널이 노린 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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