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앙투안 와토의' 키테라섬으로의 순례' 작품 해설과 상징 분석
로코코 미술의 시작을 알린 와토의 명작 〈키테라섬으로의 순례〉! 사랑, 환상, 쓸쓸함이 교차하는 이 그림 속 숨은 상징과 이야기를 자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그림에는 남아 있는 기록이 하나 있습니다. 아카데미 등록부에 적힌 제목이 줄로 그어지고 다른 말로 고쳐졌다는 것입니다. 새 장르는 그 순간에 생겼습니다. 아래에서는 그 기록에서 출발해 화면을 읽고, 오래된 논쟁 하나와 세 점의 버전까지 따라가 봅니다.
아카데미 등록부에 줄이 그어진 날
절대왕정이 저물고 귀족 사회가 문화의 중심이 된 18세기 초 프랑스, 예술은 이전과는 다른 감성을 담기 시작했습니다. 장 앙투안 와토(Jean-Antoine Watteau,1684-1721)의 〈키테라섬으로의 순례(Le Pèlerinage à l'île de Cythère)〉는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있는 작품으로, 화려하면서도 덧없는 사랑의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내며 로코코 회화의 문을 열었습니다.
와토가 왕립 아카데미 회원 자격을 얻기 위해 이 그림을 제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당시 아카데미는 역사화나 종교화처럼 장엄한 주제를 최고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카데미는 와토의 뛰어난 재능을 인정하여, 1717년 그의 입회를 위해 '페트 갈랑트'라는 새로운 장르를 공식적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로코코 회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귀족들의 감각적이고 우아한 취향이 미술계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 장면은 문서로 남아 있습니다. 날짜는 1717년 8월 28일입니다. 등록부에는 와토가 주문받은 그림을 가져왔다고 적으면서 그 그림이 무엇을 그린 것인지를 함께 적었는데, 처음 적힌 말은 키테라섬으로의 순례였습니다. 그런데 그 대목에 줄이 그어졌고, 같은 사람의 필체로 우아한 축제 한 점이라는 뜻의 말이 그 자리에 대신 적혔습니다.
이 짧은 수정이 미술사에서 갖는 무게는 큽니다. 아카데미는 주제의 등급으로 그림을 줄 세우는 기관이었고, 이 그림은 그 사다리 어디에도 놓을 자리가 없었습니다. 역사화도 종교화도 초상화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존 칸에 억지로 끼워 넣는 대신 칸을 하나 새로 만들었습니다. 장르가 먼저 있고 그림이 뒤따른 것이 아니라, 그림 하나 때문에 장르가 생긴 흔치 않은 경우입니다.
덧붙이자면 와토가 아카데미의 승인을 받고 실제로 작품을 낼 때까지는 몇 해가 걸렸습니다. 재촉을 여러 번 받은 끝에 제출한 그림이 이것입니다.
페트 갈랑트라는 장르
와토가 창시한 '페트 갈랑트(Fête Galante)'는 우아한 옷차림을 한 귀족들이 자연 속에서 사랑을 나누고 대화하는 모습을 묘사한 장르입니다. '페트'는 축제, '갈랑트'는 우아함을 의미하며, 이는 17세기 네덜란드의 서민 풍속화에 대한 귀족 버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페트 갈랑트에는 교훈적인 메시지 대신, 덧없기에 더 애틋한 삶의 즐거움과 낭만적인 감성이 담겨 있습니다.
이 장르가 이후 프랑스 회화에서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프라고나르의 〈그네〉를 나란히 놓고 보면 분명해집니다. 와토에게 있던 쓸쓸함이 한 세대 뒤에는 거의 사라지고 유희만 남습니다.
작품 한눈에 보기
화가 : 장 앙투안 와토
제작 : 1717년
재료 : 캔버스에 유채
크기 : 129 x 194 cm
소장 : 파리 루브르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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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테라섬으로의 순례〉 1717년, 캔버스에 유채, 129x194cm, 파리 루브르 박물관 |
화면 읽기, 세 쌍의 연인과 되돌아보는 얼굴
'키테라'는 그리스 신화 속 사랑과 미의 여신 비너스(아프로디테)가 태어난 섬입니다. 따라서 '키테라섬으로의 순례'라는 제목은 연인들이 사랑의 성지를 향해 여정을 시작하는 장면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림 전체에 흐르는 미묘한 슬픔과 아쉬움 때문에, 반대로 사랑의 섬에서 환상 같은 시간을 보낸 연인들이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장면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화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하는 세 쌍의 연인이 마치 시간의 흐름처럼 연속적인 동작을 보여줍니다. 맨 오른쪽 연인은 아직 사랑을 속삭이고 있고, 중간의 연인은 남자의 재촉에 여인이 아쉬운 듯 자리에서 일어나며, 왼쪽의 연인은 마침내 배를 향해 발걸음을 옮깁니다. 하지만 여인은 여전히 뒤를 돌아보며 미련을 버리지 못합니다.
오른쪽에는 장미 넝쿨로 장식된 비너스 조각상이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날개 달린 아기 천사들(푸티)은 연인들의 곁을 맴돌며 사랑의 여정을 재촉하거나 장난을 칩니다. 연극 무대의 배경처럼 부드럽게 펼쳐진 숲과 황금빛 하늘은 이 공간이 현실과는 다른, 꿈과 환상의 세계임을 암시합니다.
여기에 화면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것을 하나 더 얹겠습니다. 이 그림은 좌우의 온도가 다릅니다. 오른쪽 절반은 황금빛 갈색 나뭇잎과 따뜻한 빛으로 채워져 있고, 왼쪽 절반은 옅은 푸른빛 안개와 흐린 물빛으로 식어 있습니다. 연인들은 그 따뜻한 쪽에서 차가운 쪽으로 걸어갑니다.
사랑의 섬을 향해 떠나는 길이라면 목적지 쪽이 더 밝고 따뜻해야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이 화면에서 온기는 그들이 등지고 있는 쪽에 있습니다. 되돌아보는 여인의 얼굴이 향하는 방향도 그쪽입니다. 아쉬움이라는 감정을 표정만으로 설명하지 않고 화면의 색 온도로 만들어 둔 셈입니다.
맨 오른쪽 끝의 조각도 다시 보십시오. 이것은 온몸을 갖춘 입상이 아니라 기둥 위에 상반신만 얹힌 형태이고, 그 기둥에 장미 넝쿨이 감겨 있습니다. 화환은 이미 바쳐진 것입니다. 참배가 끝났다는 표시로 읽을 수 있는 대목이며, 다음 절의 논쟁이 여기에서 출발합니다.
출항인가 귀항인가
이 그림을 부르는 가장 익숙한 이름은 '키테라섬으로의 출항'입니다. 그런데 그 제목은 와토가 붙인 것이 아닙니다. 화가는 1721년에 세상을 떠났고, 출항이라는 말이 붙은 것은 1733년 무렵 이 그림을 옮긴 판화에서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논쟁하는 제목은 화가가 죽은 뒤 십여 년이 지나 생긴 이름입니다.
1961년, 미술사가 마이클 레비는 이 그림이 떠나는 장면이 아니라 떠나오는 장면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인물들은 아직 섬으로 가는 중이 아니라 이미 섬에 있었고, 이제 돌아가려 배 쪽으로 움직이는 중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제목은 '키테라로의 출항'이 아니라 '키테라로부터의 출발'이 되어야 합니다.
화면에서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요소들은 확인이 가능합니다. 비너스 기둥에 감긴 장미 화환은 이미 바쳐졌고, 인물들은 그 조각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순례자의 지팡이를 든 남자가 이미 서 있고, 앉아 있던 사람들이 차례로 일어나는 중입니다. 참배를 시작하는 무리라기보다 자리를 뜨는 무리의 동작에 가깝습니다.
물론 반론도 있습니다. 배가 아직 기슭에 있고 연인들이 그쪽으로 향한다는 사실만으로는 방향을 확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논쟁은 지금까지도 정리되지 않았고, 와토 자신이 답을 남기지 않았다는 점에 대부분의 연구자가 동의합니다. 이 글은 어느 한쪽을 정답으로 제시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제목이 나중에 붙었다는 사실을 알고 보면 화면이 달리 보인다는 점만은 분명합니다.
세 점의 버전, 프랑크푸르트와 루브르와 베를린
와토는 이 주제를 세 번 그렸습니다.
| 버전 | 제작 | 크기 | 소장 |
|---|---|---|---|
| 프랑크푸르트본 | 1709~1710년 무렵 | 약 45 x 55 cm | 독일 프랑크푸르트 슈테델 미술관 |
| 루브르본 (아카데미 입회작) | 1717년 | 129 x 194 cm |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
| 베를린본 | 1718~1719년 무렵 | 루브르본과 거의 같은 크기 | 독일 베를린 샤를로텐부르크 궁 |
프랑크푸르트본은 화면이 작고 구성도 훨씬 단순합니다. 나머지 두 점은 크기가 거의 같지만 화면은 뚜렷하게 다릅니다. 베를린본은 루브르본을 다시 그린 것으로, 와토의 후원자였던 인물의 주문으로 제작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장 앙투안 와토, 〈키테라섬으로의 순례〉 베를린본, 1718~1719년 무렵, 캔버스에 유채, 베를린 샤를로텐부르크 궁 소장. 위의 루브르본과 번갈아 보십시오.
두 화면을 번갈아 보면 차이가 금방 잡힙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오른쪽 끝의 조각 : 루브르본은 기둥 위에 상반신만 얹힌 헤르마이고 장미 넝쿨이 감겨 있습니다. 베를린본은 온몸을 드러낸 비너스 입상이며 받침대 위에 서 있고 아기 천사들이 그 몸에 매달려 있습니다.
- 왼쪽의 배 : 루브르본의 배는 붉은 천을 두른 금빛 나룻배이고 돛대가 없습니다. 베를린본에는 높은 돛대와 돛이 서 있어 누가 보아도 항해하는 배입니다.
- 아기 천사의 수 : 베를린본에서 크게 늘어나 돛대 주위와 하늘을 빽빽하게 채웁니다.
- 인물 : 베를린본은 오른쪽 아래에 기대어 누운 인물 등이 더해져 화면이 붐빕니다.
여기에서 앞 절의 논쟁과 이어지는 지점이 나옵니다. 아카데미가 실제로 받았던 그림, 그래서 새 장르를 만들게 한 그림에는 항해할 수 있는 배가 없습니다. 돛대와 돛이 등장하는 것은 나중에 다시 그린 베를린본입니다. 출항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붙는 화면은 루브르본이 아니라 베를린본 쪽인 셈입니다.
같은 화가가 같은 구도를 다시 그리면서 무엇을 바꾸었는지 비교하는 일은 그 자체로 재미있는 감상법입니다. 한 화가의 두 버전을 나란히 놓고 읽는 다른 사례로는 다빈치의 〈암굴의 성모〉 두 점을 비교한 글이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페트 갈랑트는 누가 언제 만든 장르인가요?
1717년 8월 28일 왕립 회화 조각 아카데미가 와토의 입회 작품을 받으면서 만들었습니다. 등록부에는 원래 키테라섬으로의 순례라고 적혔다가 그 대목에 줄이 그어지고 우아한 축제라는 뜻의 한 문장으로 고쳐 적혔습니다.
키테라섬으로의 순례는 떠나는 장면인가요, 돌아오는 장면인가요?
결론이 나지 않은 논쟁입니다. 1961년 미술사가 마이클 레비는 인물들이 이미 섬에 있었고 이제 떠나는 중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출항이라는 제목 자체가 와토가 죽은 뒤인 1733년 무렵 판화에서 붙은 것이라는 점도 근거가 되었습니다.
키테라섬 그림은 몇 점인가요?
와토가 이 주제로 그린 것은 세 점입니다. 1709년 무렵의 작은 프랑크푸르트본, 1717년 아카데미 입회작인 루브르본, 그리고 1718년에서 1719년 무렵의 베를린 샤를로텐부르크본입니다.
루브르본과 베를린본은 무엇이 다른가요?
크기는 거의 같지만 화면이 다릅니다. 루브르본의 오른쪽 끝에는 장미 넝쿨을 감은 비너스 헤르마가 있고 배에는 돛대가 없습니다. 베를린본에는 온몸을 드러낸 비너스 조각상이 서 있고 왼쪽에 돛대와 돛을 갖춘 배가 등장하며 아기 천사의 수가 크게 늘어납니다.
마치며
개인적으로는 사랑을 위해 떠나는 설렘과 동시에, 남겨진 현실에 대한 미련과 여정의 불확실함이 공존하기에 그림 전체에 쓸쓸한 정서가 배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와토가 명확한 윤곽선 대신 뿌옇고 부드러운 붓질을 사용한 것 역시, 꿈처럼 모호하고 덧없는 사랑의 본질을 표현하는 듯하여 인상적입니다.
와토의 〈키테라섬으로의 순례〉는 단순히 우아한 귀족들의 유흥을 그린 그림이 아닙니다. 이 작품 속에는 사랑의 시작과 끝, 환희와 쓸쓸함, 현실과 환상이 시처럼 뒤섞여 있습니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과 그 덧없음을 함께 표현한 이 그림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조용한 감동을 남깁니다.
그러고 보면 이 그림은 제목도, 장르 이름도, 방향도 화가가 정해 주지 않았습니다. 등록부에 그어진 줄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는 보는 사람 몫으로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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