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치아노의 <현세의 덧없음 Vanitas> "당신의 아름다움은 영원한가?"
베네치아 르네상스의 거장 티치아노의 초상화는 단순한 인물 묘사를 넘어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의 <바니타스(Vanitas, 현세의 덧없음)>라는 작품을 통해 인간 삶의 공허함과 덧없음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베네치아를 대표하는 화가 티치아노 베첼리오(Tiziano Vecellio, 1488년경-1576)는 16세기 최고의 초상화가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플랑드르 화풍의 사실적인 묘사를 받아들이면서도, 인물의 내면과 철학적 의미를 담아내는 자신만의 초상화 양식을 만들어냈습니다.
![]() |
<바니타스(현세의 덧없음)> 1515년경, 97x81.2cm, 독일 뮌헨 알테 피나코테크 |
'바니타스(Vanitas)'는 라틴어로 ‘헛됨’, ‘허무’를 뜻하며, 인생의 덧없음을 주제로 하는 정물화 장르를 말합니다. 얼핏 보면 이 그림은 단순한 미인도처럼 보이지만, 여인이 든 거울 속에는 전혀 다른 현실이 비치고 있습니다. 거울 안에는 금은보화와 돈주머니, 그리고 섬뜩하게도 한 노파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 |
<바니타스> 부분 확대 |
거울은 진실을 비추는 동시에 허영을 상징합니다. 거울 속 금은보화는 덧없이 사라질 부를, 노파의 얼굴은 젊은 여인의 피할 수 없는 미래, 즉 늙고 병들어 죽음에 이르는 운명을 상징합니다.
티치아노는 독특한 이중 화면 구성을 통해, 여인의 눈부신 젊음과 아름다움이 영원하지 않으며 그 끝은 결국 허무라는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지금 이 여인의 아름다움도 거울 속 노파처럼 결국 시들어 사라질 것이라는 교훈을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림 속 젊은 여인은 자신의 미래가 비치는 거울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이는 인생의 허무함을 아직 깨닫지 못했음을 의미하거나, 혹은 피할 수 없는 미래를 애써 외면하려는 인간의 본성을 암시하는 등 여러 해석을 가능하게 합니다.
초상화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깨를 훤히 드러낸 옷차림과 관람객을 응시하는 당당한 시선은 당시 정숙한 귀부인보다는 화려한 사교계의 여인이나 누군가의 연인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그러나 티치아노는 여인을 관능적으로만 그리지 않고, 우아하고 기품 있는 모습으로 표현했습니다.
티치아노는 '색채(colorito)'를 중시했던 베네치아 화파의 거장답게, 빛과 색의 조화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 그림에서도 빛을 받은 부위에 흰색을 덧칠해 피부가 스스로 빛나는 듯한 효과를 냈습니다. 여인의 하얀 옷과 밝은 피부는 그녀의 젊음과 순수함을 강조하지만, 동시에 죽음의 창백함을 암시하는 이중적인 장치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현재의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동시에, 그 아름다움이 필연적으로 사라질 것임을 암시합니다. 티치아노는 이 그림을 통해 “당신의 젊음과 아름다움, 재물과 명예는 모두 사라질 것입니다. 지금 당신이 집착하는 그것은 정말로 영원한가요?”라고 묻는 듯합니다. 이러한 철학적 메시지를 담아냈기에 티치아노가 '최고의 초상화가'로 불리는 것이겠지요.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