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 나는 그림을 그릴 줄도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작성자

카테고리:

,

훗날 르누아르는 1883년 무렵의 자신을 돌아보며 화상 앙브루아즈 볼라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인상주의의 끝까지 갔고, 그림도 데생도 그릴 줄 모른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 사람은 훗날 인상주의 화가들 가운데 가장 사랑받게 될 그림들을 이미 그려 놓은 뒤였습니다. 무도회의 빛과 사람들의 웃음을 화면 가득 담아내던 화가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그림을 그릴 줄 모른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 화가가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입니다. 흔히 ‘행복만 그린 화가’로 소개되지만, 그의 생애를 따라가 보면 이 선언은 우연한 자기 비하가 아니라 한 사람이 자신의 확신을 무너뜨리고 다시 배우기 시작하는 지점이었습니다. 그 궤적은 도자기 공방의 소년 시절부터 시작됩니다.

흰 수염과 모자를 쓴 노년의 남자가 옆으로 몸을 튼 채 정면을 바라보는 반신 초상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 〈자화상〉, 1899년. 관절염이 손을 굳히기 시작하던 무렵의 얼굴이다.
인물 한눈에 보기
• 한 줄 정의: 빛과 색채로 일상의 즐거움을 그리다가, 정점에서 스스로를 의심하고 고전으로 되돌아간 인상주의 화가
• 생몰: 1841년 2월 25일 ~ 1919년 12월 3일(프랑스 리모주에서 태어나 카뉴쉬르메르에서 사망)
• 국적·활동지: 프랑스. 리모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파리로 이주해 평생 활동했고, 말년은 남프랑스에서 보냈습니다
• 활동 분야: 유화, 도자기 채색(초기)
• 대표작: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뱃놀이 일행의 오찬, 샤르팡티에 부인과 아이들

도자기에 꽃을 그리던 소년

르누아르는 1841년 프랑스 중부의 도시 리모주에서 재봉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845년 무렵 가족은 파리로 이주합니다. 1854년, 열세 살 무렵 그림 재능을 알아본 부모는 그를 파리의 도자기 공방 레비 프레르에 견습생으로 보냅니다. 그는 이곳에서 4년 가까이 접시와 그릇에 꽃다발을 그려 넣는 일을 합니다.

이 경험이 남긴 것은 단순한 기술 이상이었습니다. 도자기 위에 빠르고 정확하게, 그러면서도 산뜻하게 붓을 놀리는 훈련은 훗날 그의 유화에서도 발견되는 가볍고 반짝이는 붓질의 뿌리가 됩니다. 그런데 산업용 도자기 인쇄 기술이 보급되면서 손으로 그리는 도자기 화가의 자리는 점점 줄어들었고, 그는 다른 길을 찾아야 했습니다.

글레르 화실에서 만난 친구들

1861년, 르누아르는 샤를 글레르의 아틀리에에 들어갑니다. 파리 국립미술학교에 등록하면서 함께 다닌 화실이었습니다. 이곳에서 그는 평생의 동료가 될 화가들을 만납니다. 클로드 모네, 알프레드 시슬레, 프레데리크 바지유였습니다. 함께 야외에서 빛을 관찰하며 그림을 그리던 이들의 실험이 훗날 인상주의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모네의 생애를 함께 보면 이 시절의 우정이 각자의 화풍에 어떻게 이어졌는지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1874년 첫 인상주의 전시회를 시작으로, 르누아르는 이 그룹의 핵심 일원으로 활동합니다. 다만 그 참여가 끝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1·2·3회전에 나간 뒤 그는 살롱 쪽으로 노선을 틀었고, 1882년 7회전에 다시 이름을 올립니다. 인상주의라는 화풍 자체의 형성 과정은 인상주의·후기인상주의 개관에서 더 넓게 짚었습니다.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빛

1870년대 중후반은 르누아르가 인상주의 화가로서 가장 사랑받는 그림들을 완성한 시기입니다. 1876년의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는 몽마르트르의 야외 무도장에 모인 사람들을 그린 대작입니다.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이 사람들의 얼굴과 옷 위에 얼룩덜룩한 반점으로 흩어지는 효과를, 그는 놀라운 밀도로 화면 전체에 구현했습니다. 이 작품에 대한 자세한 해설은 별도 글로 다뤘습니다.

나무 그늘 아래 야외 무도장에서 사람들이 춤추고 앉아 이야기하며 햇빛 조각이 옷과 바닥에 얼룩처럼 떨어진 그림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1876년, 오르세 미술관. 나뭇잎 사이로 든 햇빛이 얼굴과 옷 위에 얼룩덜룩한 반점으로 앉아 있다.

1880년부터 이듬해까지 그린 〈뱃놀이 일행의 오찬〉 역시 이 시기의 정점입니다. 센강 변 레스토랑 테라스에 모인 친구들의 오찬 장면으로, 화면 왼쪽 아래에서 강아지를 안고 있는 젊은 여성이 바로 훗날 그의 아내가 되는 알린 샤리고입니다. 이 무렵 그녀는 몽마르트르에서 삯바느질을 하던 스물한두 살의 재봉사였고, 그는 곧 마흔을 앞둔 화가였습니다.

강가 레스토랑 테라스에서 사람들이 식사를 마치고 이야기하며 왼쪽 아래 여자가 작은 개를 안아 들고 있는 그림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 〈뱃놀이 일행의 오찬〉, 1880~1881년, 필립스 컬렉션. 왼쪽 아래에서 강아지를 안은 여자가 뒷날 그의 아내가 되는 알린 샤리고다.

나는 그림을 그릴 줄 모른다

1881년 가을, 르누아르는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납니다. 1879년 살롱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뒤였지만 생계가 넉넉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피렌체에서 티치아노의 그림을, 로마에서 라파엘로의 벽화를 보았고, 나폴리 근교 폼페이에서 고대 로마의 벽화를 직접 마주했습니다. 그는 큰 충격을 받습니다. 인상주의가 추구해 온 빛과 색채의 효과에는 능했지만, 정작 인체의 형태와 윤곽을 정확하게 그려 내는 데생 실력은 부족하다는 확신이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도입에서 본 그 말, “나는 인상주의의 끝까지 갔고, 그림도 데생도 그릴 줄 모른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이 무렵을 두고 그가 훗날 볼라르에게 들려준 회고입니다(볼라르, 『르누아르의 생애와 작품』 1919년 초판 127쪽). 당시의 선언으로 남아 있는 기록은 아닙니다. 이후 몇 년간 그는 화면 속 인물의 윤곽을 뚜렷하게 되살리고 색보다 형태를 우선하는 방향으로 화풍을 바꿉니다. 이 시기는 훗날 앵그르(화가 장오귀스트도미니크 앵그르)를 떠올리게 한다는 뜻에서 ‘앵그르풍’으로, 그리고 그 자신의 표현으로는 ‘아이그르(manière aigre, 딱딱하고 신맛 도는 양식이라는 뜻)’로 불립니다. 이 방향으로 그린 〈대 목욕하는 여인들〉은 공개되었을 때 기대한 호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앞서 인용한 그 회고에서 르누아르는 이 시기를 두고 “한마디로, 나는 막다른 골목에 있었다”고까지 말했습니다. 이후 그는 다시 부드러운 색채로 돌아오되, 형태에 대한 감각은 놓지 않는 자신만의 균형을 찾아갑니다.

물가에서 세 여자가 앉거나 서 있고 뒤편에서 물놀이하는 인물들이 보이며 윤곽선이 뚜렷하게 그려진 그림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 〈대 목욕하는 여인들〉, 1884~1887년, 필라델피아 미술관. 인상주의 시기와 달리 인체의 윤곽이 또렷하게 되살아나 있다.

알린과 세 아들

알린 샤리고와 르누아르는 1880년 무렵 만나 오랫동안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다가, 1885년 첫아들 피에르가 태어난 뒤인 1890년에 정식으로 결혼합니다. 이후 두 아들이 더 태어납니다. 1894년의 장, 1901년의 클로드입니다. 흥미롭게도 세 아들의 이후 삶은 저마다 아버지의 다른 면을 이어받은 듯합니다. 장남 피에르는 무대와 영화의 배우가 되었고, 둘째 장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영화감독 가운데 한 사람이 되어 뒷날 아버지에 관한 회고록 〈내 아버지, 르누아르〉를 씁니다. 막내 클로드는 도예가가 되어, 아버지가 소년 시절 도자기 공방에서 시작했던 그 일로 되돌아갑니다.

알린은 결혼 전후로 남편의 그림에 자주 등장했습니다. 〈뱃놀이 일행의 오찬〉과 〈시골의 춤〉 속 여성이 그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는 1915년, 르누아르보다 4년 앞서 세상을 떠납니다.

야외 나무 아래에서 남녀 한 쌍이 춤추고 여자가 부채를 든 채 얼굴을 관객 쪽으로 돌린 세로 그림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 〈시골의 춤〉, 1883년, 오르세 미술관. 그림 속 여자가 알린 샤리고로 알려져 있다.

손이 굳어가도

1890년대 들어 르누아르의 손가락 관절은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붓기 시작합니다. 1897년 자전거 사고로 팔이 부러지면서 상태는 더 나빠졌고, 1912년 무렵에는 걷지 못해 휠체어에 의지하게 됩니다. 이 마비를 뇌졸중으로 적은 기록도 있지만 관절염이 목뼈까지 번진 결과로 보는 연구도 있어, 원인은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손가락은 안으로 오그라들었습니다.

이 시기를 두고 흔히 전해지는 이야기는 그가 붓을 손에 끈으로 묶어 그림을 그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정확한 내용은 자료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어떤 자료는 붓을 팔이나 손에 실제로 동여맸다고 서술하는 반면, 다른 자료는 그 천이 붓을 고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그라든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지 않도록 감은 붕대였다고 설명합니다. 어느 쪽이 정확한 사실인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가 손의 상태와 무관하게 1907년 남프랑스 카뉴쉬르메르의 저택 레 콜레트(Les Collettes)로 거처를 옮긴 뒤에도 죽는 순간까지 그림을 놓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루브르에서 본 자신의 그림

1919년, 뤽상부르 미술관 친구회가 르누아르가 1876~1877년에 그린 〈샤르팡티에 부인〉 흉상 초상화를 국가에 기증했고, 국가가 이를 받아들였고, 그림은 그해 루브르의 재개관 전시에 걸렸습니다. 정식으로 루브르에 배정된 것은 1929년이고, 지금은 오르세 미술관에 있습니다. 이 기증에는 초상화 속 인물의 딸 조르제트 샤르팡티에, 이제는 성인이 되어 투르농 부인(Tournon)이 된 그녀도 함께했습니다. 이 그림은 그가 아이들과 함께 그린 더 큰 그림 〈샤르팡티에 부인과 아이들〉(1878)과는 다른 작품으로, 그 그림은 이미 1907년에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해 8월, 78세의 르누아르는 몸을 이끌고 파리로 올라가 자신의 그림이 옛 거장들의 작품과 나란히 걸린 것을 직접 봅니다. 도자기 공방의 견습생으로 시작한 화가가 루브르의 벽에 걸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그해 12월 3일, 르누아르는 카뉴쉬르메르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그의 마지막 말로 전해지는 것은 이렇습니다. “나는 이제 그림에 대해 뭔가를 조금씩 알아 가는 것 같다.”

응접실 소파에 앉은 여자와 그 옆에 흰옷을 입은 두 아이, 그리고 아이가 올라탄 큰 개가 함께 있는 초상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 〈샤르팡티에 부인과 아이들〉, 1878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1879년 살롱전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대형 초상화다.
풀밭과 물가에 여자들이 누워 있거나 앉아 있고 화면 전체가 따뜻한 붉은빛과 초록으로 채워진 그림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 〈목욕하는 여인들〉, 1918~1919년 무렵, 오르세 미술관. 손이 굳은 만년에 그린 대작이다.

이 글의 도판은 모두 위키미디어 커먼즈의 퍼블릭 도메인 파일입니다. 캡션에 재질이나 치수, 소장품 번호가 없는 작품은 소장기관 기록을 확인하지 못해 적지 않았습니다.

주요 작품

  •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1876, 오르세) · 몽마르트르 야외 무도장의 빛과 사람들을 담은 인상주의의 대표작.
  • 뱃놀이 일행의 오찬(1880~1881, 필립스 컬렉션) · 센강 변 테라스의 오찬. 훗날 아내가 되는 알린 샤리고가 등장합니다.
  • 샤르팡티에 부인과 아이들(1878, 메트로폴리탄) · 1879년 살롱전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대형 초상화. 1907년 미국 미술관이 처음 구매한 르누아르 회화입니다.
  • 샤르팡티에 부인(1876~1877년경, 오르세) · 아이들 없이 부인만 그린 흉상 초상화. 1919년 뤽상부르 미술관 친구회의 기증으로 국가 소장이 되어 루브르에 걸렸고, 르누아르가 죽기 넉 달 전 직접 보러 간 그림입니다.
  • 목욕하는 여인들(1918~1919년경, 오르세) · 만년의 풍만하고 따뜻한 색채로 그린 대작. 당대에도 지금도 호불호가 갈립니다.

다시, 조금씩 알아 간다

도자기에 꽃을 그리던 소년은 인상주의의 정점에서 자신이 그림을 그릴 줄 모른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죽기 몇 달 전에는 자신의 그림이 루브르에 걸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는 이제야 뭔가를 조금씩 알아 가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확신에서 부정으로, 부정에서 다시 겸허함으로 이어지는 이 궤적이야말로 ‘행복만 그린 화가’라는 이름표보다 그를 더 정확하게 설명합니다.

어두운 배경 앞에서 검은 옷을 입은 여자가 몸을 살짝 튼 채 정면을 바라보는 흉상 초상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 〈샤르팡티에 부인〉, 1876~1877년 무렵, 현재 오르세 미술관. 1919년 국가 소장이 되어 그해 루브르 재개관 전시에 걸렸고, 화가가 죽기 넉 달 전 직접 보러 간 그림이다.
📌 문의 및 쪽지함
반갑습니다!
문의사항은 이 쪽지함으로 남겨주세요!
🔒 관리자에게만 안전하게 전송됩니다.
⏰ 현재:
🚀 최초:
🕐 방금 접속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