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벤스, 자기 손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값으로 매긴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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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8년, 루벤스는 헤이그 주재 잉글랜드 외교관 더들리 칼턴에게 그림 목록을 보냅니다. 자기 그림과 칼턴이 모아 둔 고대 조각을 맞바꾸기 위한 교환 협상이었습니다. 처음 제안한 조건은 6,000플로린어치 자기 그림과 칼턴의 집에 있던 고대품 전부를 맞바꾸는 것이었습니다. 루벤스는 북유럽에서 손꼽히는 고대 조각 수집가였고, 그 조각들을 얻으려고 자기 그림을 내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항목마다 누구의 손이 얼마나 들어갔는지가 적혀 있었습니다.

이 그림은 전부 내 손으로 그린 원작이다. 이것은 제자가 시작하고 내가 전면적으로 손봤다. 저것은 풍경과 동물을 전문화가와 협업했다. 손이 얼마나 들어갔는지가 값을 정하는 유일한 기준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가격 변수였고, 루벤스는 그것을 거래 조건으로 명시했습니다. 오늘날 미술관이 루벤스 단독작인지, 루벤스와 공방인지, 루벤스 공방인지를 두고 나누는 그 구분을 이 화가는 400년 전에 스스로 거래 목록으로 만들어 두었습니다.

인물 한눈에 보기
• 한 줄 정의: 대규모 회화 공방을 운영하며 외교관으로도 활동한, 플랑드르 바로크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경영자
• 본명: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 생몰: 1577년 6월 28일 독일 지겐 출생 ~ 1640년 5월 30일 안트베르펜에서 사망(향년 62세)
• 국적·활동지: 플랑드르. 안트베르펜을 근거지로 이탈리아, 마드리드, 런던, 파리
• 활동 분야: 제단화, 신화화, 초상, 풍경, 태피스트리 밑그림
• 대표작: 십자가를 세움, 십자가에서 내림, 마리 드 메디시스 연작, 삼미신, 모피를 두른 헬레나 푸르망
챙 넓은 검은 모자를 쓰고 흰 주름 칼라를 두른 남자가 몸을 옆으로 튼 채 이쪽을 바라보는 반신 초상
페테르 파울 루벤스, 〈자화상〉, 1623년, 영국 왕실 컬렉션. 챙 넓은 모자와 흰 주름 칼라 차림으로, 작업 중인 화가의 모습이 아니다. 칼라 아래로 금사슬이 조금 드러난다(왕실 컬렉션 기록).

공방, 그리고 손의 등급

루벤스의 이름이 붙은 그림은 대단히 많습니다. 한 사람이 그렸다고 보기 어려운 양입니다. 실제로 그는 혼자 그리지 않았습니다.

배에서 내리는 왕비를 향해 물속의 인물들이 밧줄을 당기고 위쪽에서 인물들이 나팔을 분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 〈마리 드 메디시스의 마르세유 상륙〉, 1622~1625년, 파리 루브르 박물관. 24점 연작이 4년 만에 나왔다.

안트베르펜의 그의 집에는 조직이 있었습니다. 많은 대형 주문에서 대표적인 방식은 이랬습니다. 루벤스가 구상을 잡고 작은 유화 스케치를 직접 만들면, 훈련된 화가들이 그것을 큰 화면으로 옮겼습니다. 마지막에 그가 손을 대 마무리했습니다. 이 세 단계 자체는 그만의 발명이 아니라 당시 플랑드르 공방에서 드물지 않은 방식이었습니다. 이 조직을 거쳐 간 사람 중에는 안토니 반 다이크가 있었습니다. 공방 밖에서 그와 함께 일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프란스 스네이더르스는 동물과 정물을 맡아 사실상 상시로 협업했고, 야코프 요르단스는 자기 공방을 따로 운영하던 대가로서 큰 주문에 간헐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방식이 숨겨진 것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적어도 1618년 칼턴과의 거래에서 그는 주문자에게 어느 정도가 자기 손인지를 밝혔고, 그것이 값에 반영되었습니다. 다만 값이 손의 비율만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어서 크기와 주제, 완성도가 함께 작용했습니다.

오늘날의 감각으로 보면 이상하지만, 당시 회화는 개인의 표현이기 이전에 주문 제작품이었습니다. 당시 대형 주문화에서 공방 제작은 자연스러웠지만, 주문자와 수집가에게 루벤스의 손이 얼마나 들어갔는지는 여전히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루벤스는 저자성과 공방 제작을 구분하면서도 최종 품질을 자기 이름으로 책임졌고, 그 구분을 문서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가 남긴 그림의 양은 재능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이 조직을 설계한 능력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이탈리아에서 보낸 8년

1600년, 스물두 살의 루벤스는 이탈리아로 떠나 여덟 해를 머뭅니다. 만토바 공작의 궁정에 소속되어 로마와 베네치아를 오갔고, 공작의 심부름으로 스페인 궁정에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화가로 갔지만 이때 이미 사절 노릇을 배운 셈입니다.

그가 이탈리아에서 가져온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색입니다. 베네치아 화가들에게서 살빛과 천의 질감을 색으로 세우는 법을 익혔습니다. 다른 하나는 몸입니다. 미켈란젤로와 고대 조각에서 근육이 긴장한 상태의 형태를 가져왔고, 카라바조의 강한 명암도 이 시기에 직접 보았습니다.

1608년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그는 급히 귀국합니다. 임종에는 닿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안트베르펜에 남기로 합니다. 이듬해 결혼했고, 대공 부부의 궁정화가가 되었으며, 곧 도시에서 가장 바쁜 화가가 됩니다.

넬로가 본 그림

안트베르펜 성모 대성당에는 루벤스가 그린 제단화가 네 점 있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작 두 점이 십자가를 세움과 십자가에서 내림이고, 나머지 두 점은 성모 승천과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2026년 1월부터 복원 작업에 들어가, 원래 걸려 있던 자리에는 사진 출력물이 놓여 있습니다. 한국 독자에게 이 그림은 대개 다른 경로로 먼저 옵니다. 소설 『플란다스의 개』에서 소년 넬로가 마지막까지 보고 싶어 했던 그림들이 바로 이 두 제단화입니다.

화면 가운데를 흰 천이 대각선으로 가로지르고 그 위로 그리스도의 몸이 미끄러져 내려온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 〈십자가에서 내림〉, 1611~1614년, 안트베르펜 성모 대성당. 대각선으로 흘러내리는 흰 천을 따라 시선이 움직인다.

십자가에서 내림을 따라가 보면 이렇습니다. 화면 가운데를 흰 천이 대각선으로 가로지릅니다. 그 천 위로 그리스도의 몸이 미끄러져 내려오고, 여러 인물이 손과 흰 천으로 그 무게를 나눠 받치고 있습니다. 사다리 위의 인물은 천 끝을 이로 물고 있습니다. 화면에서 가장 밝은 것은 몸과 천이고, 나머지는 어둡습니다.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십자가를 비스듬히 세워 올리고 있고 근육과 자세가 한쪽으로 쏠려 있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 〈십자가를 세움〉, 1610~1611년, 안트베르펜 성모 대성당. 원래 성 왈부르가 교회의 제단화였다가 프랑스 반출을 거쳐 대성당으로 옮겨졌다.

같은 성당에 걸린 십자가를 세움은 정반대입니다. 그쪽은 근육이 뒤틀리고 인물들이 몸을 던져 십자가를 밀어 올립니다. 하나는 올리는 힘이고 하나는 내리는 무게입니다.

다만 이 두 점은 짝으로 그려진 그림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세움은 원래 성 왈부르가 교회의 제단화였습니다. 1794년 프랑스로 반출됐다가 1815년 안트베르펜으로 돌아왔고, 이듬해 성모 대성당에 설치됐습니다. 원래 있던 성 왈부르가 교회는 그 뒤 1817년에 헐렸습니다. 지금 한자리에서 두 그림을 비교할 수 있는 것은 화가의 설계가 아니라 200년 뒤의 사정 덕분입니다. 그래도 나란히 놓고 보면 같은 사람이 힘의 방향을 어떻게 뒤집어 그렸는지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같은 주제를 20년 남짓 뒤 렘브란트도 그렸습니다. 렘브란트의 화면은 훨씬 작고 어둡고 조용합니다. 같은 장면을 두고 한 사람은 무게를 그렸고 다른 사람은 슬픔을 그렸습니다.

화가가 평화조약을 중개하다

루벤스는 화가로서만 살지 않았습니다. 그는 실제로 외교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여러 언어를 했고, 궁정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으며, 화가라는 신분이 민감한 외교 이동을 덜 의심받게 했습니다.

1620년대 후반 그는 스페인과 잉글랜드 사이의 강화를 중개합니다. 처음에는 안트베르펜에서 밀서를 주고받았고, 그다음에 두 궁정을 차례로 직접 오갔습니다. 1628년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마드리드에 머물렀고, 이어 런던으로 건너가 여러 달을 보냅니다. 그가 참여한 협상은 1630년 11월 마드리드에서 체결된 잉글랜드와 스페인의 평화조약으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루벤스는 1624년 펠리페 4세에게 귀족 특허를 받았고, 런던 외교 임무 중이던 1630년에는 찰스 1세에게 기사 작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 그의 편지에는 다른 이야기도 나옵니다. 궁정의 일에 지쳤고 집으로 돌아가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가 감당한 두 가지 일 가운데 그가 원한 쪽은 분명했습니다.

쉰셋에 열여섯 살과 재혼하다

1626년 아내 이사벨라 브란트가 세상을 떠납니다. 결혼 17년째였습니다. 그가 외교 임무에 몰두한 시기가 이 직후와 겹칩니다.

1630년, 쉰셋의 루벤스는 열여섯 살의 헬레나 푸르망과 재혼합니다. 서른일곱 살 차이였습니다. 네 해 뒤인 1634년 12월 18일, 그는 친구 페이레스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결혼을 돌아봅니다. 모두가 궁정에서 혼인하라고 권했지만 자신은 젊고 시민 계층 집안의 아내를 얻었다고, 붓 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사람을 원했다고 적었습니다. 헬레나의 집안은 태피스트리를 거래하던 상인 집안이었습니다.

모피를 몸에 두른 여인이 맨살을 반쯤 감싼 채 이쪽을 돌아본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 〈모피를 두른 헬레나 푸르망〉, 1636~1638년경, 빈 미술사박물관. 판매용이 아니라 자기 집에 두려고 그린 그림으로, 죽을 때까지 그가 소장했다.

이 결혼 이후 그의 그림에서 눈에 띄게 달라지는 것이 있습니다. 헬레나가 반복해서 화면에 등장합니다. 신화 속 여신으로, 그리고 그냥 아내로 그려집니다. 모피를 두른 초상은 주문받은 그림이 아니라 자기 집에 두려고 그린 것으로 보입니다. 유언장에서 그는 이 그림을 아내에게 남겼습니다.

만년에 그는 풍경을 그렸습니다

만년의 루벤스는 1635년 메헬렌 근처 엘레바이트에 스테인이라는 성을 사서 그곳에 머뭅니다. 그리고 아무도 주문하지 않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자기 집 주변의 들판과 아침 안개, 소를 몰고 가는 농부 같은 것들입니다.

이른 아침 안개가 깔린 들판 너머로 자기 집인 성이 보이고 앞쪽에 말 두 필이 끄는 수레와 사냥꾼이 있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 〈스테인 성이 있는 이른 아침 풍경〉, 1636년 무렵, 런던 내셔널 갤러리. 주문 없이 자기 집 앞을 그린 그림이다.

평생 왕과 신과 영웅을 그린 사람이 만년에 거듭 그린 것은 자기 집 앞 풍경이었습니다. 이 시기의 풍경화 가운데 상당수는 주문이나 판매보다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그린 것이었습니다. 이 그림들 가운데 많은 수는 그가 죽을 때까지 그의 소장에 남아 있었습니다. 뒷날 특히 컨스터블은 스테인 성이 있는 이른 아침 풍경을 연구하고 높이 평가했습니다.

1640년 5월, 그는 오래 앓던 통풍으로 손을 쓰기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사인은 심부전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예순둘이었습니다. 화가로서는 유럽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이었고, 외교관으로서는 잉글랜드와 스페인의 평화협상에 기여했으며, 마지막에는 주문 없이 그린 풍경 몇 점을 남겼습니다.

세 여인이 서로 팔을 얹고 둥글게 서 있고 뒤로 나무와 하늘이 보인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 〈삼미신〉, 1630년대 중반,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죽을 때까지 자신의 컬렉션에 간직한 개인적 그림이다.

주요 작품

안트베르펜의 제단화

  • 십자가를 세움(1610~1611): 근육이 뒤틀린 인물들이 십자가를 밀어 올린다. 안트베르펜 성모 대성당
  • 십자가에서 내림(1611~1614): 흰 천이 대각선으로 화면을 가른다. 『플란다스의 개』의 두 제단화 가운데 하나. 안트베르펜 성모 대성당

궁정의 대작

  • 마리 드 메디시스 연작(1622~1625): 24점 연작. 파리 루브르
  • 삼미신: 죽을 때까지 자신의 컬렉션에 간직한 개인적 그림. 마드리드 프라도
  • 평화와 전쟁(1629~1630): 정식 제목은 미네르바가 마르스로부터 팍스를 보호하다. 런던 체류 중 찰스 1세에게 바친 그림. 외교의 산물이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

사적인 그림

  • 모피를 두른 헬레나 푸르망: 주문이 아니라 자기 집에 두려고 그린 아내의 초상. 빈 미술사박물관
  • 스테인 성이 있는 이른 아침 풍경: 만년에 주문 없이 그린 풍경. 런던 내셔널 갤러리

자주 묻는 질문

루벤스 그림인데 루벤스가 안 그렸다면 가짜인가요?

곧바로 가짜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제작 당시 루벤스의 구상과 감독 아래 만들어진 공방 작품은 정상적인 제작 방식의 결과였습니다. 루벤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적어도 1618년 칼턴과의 거래에서는 자기 손이 얼마나 들어갔는지를 주문자에게 밝히고 값을 달리 받았습니다. 다만 오늘날에는 ‘루벤스 단독작’ · ‘루벤스와 공방’ · ‘루벤스 공방’이 서로 다른 귀속 등급으로 구분되며 가치도 달라집니다.

플란다스의 개에 나오는 그림은 어디서 볼 수 있나요?

벨기에 안트베르펜의 성모 대성당에 있습니다. 소설에서 넬로가 보고 싶어 한 것은 십자가를 세움과 십자가에서 내림 두 점입니다. 십자가에서 내림은 그 성당을 위해 그려져 지금도 그 자리에 있고, 십자가를 세움은 원래 성 왈부르가 교회의 제단화였다가 프랑스 반출과 반환을 거쳐 이 성당에 배치된 것입니다. 작성 시점 기준으로 두 점 모두 이 성당에서 볼 수 있습니다.

다시 그 목록으로

1618년의 그 목록으로 돌아가 봅니다. 그는 어느 그림이 전부 자기 손인지, 어느 그림에 다른 사람의 손이 들어갔는지를 적어 보냈습니다. 거래 상대가 작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자기 손과 다른 화가의 손을 구체적으로 구분한 것입니다.

그 투명성은 겸손이라기보다 사업의 언어였습니다. 그는 자기 이름이 무엇을 보증하는지 정확히 알았고, 그것을 관리했습니다. 화가가 왕들 사이를 오가며 조약을 중개할 수 있었던 것도 같은 능력이었을 것입니다. 다음에 그의 큰 그림 앞에 서게 된다면 인물들의 손을 세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많은 손이 한 방향으로 힘을 쓰고 있다면, 그것을 설계한 사람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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