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티첼리 봄 해석과 등장인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 아홉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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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8년 피렌체의 한 저택에서 재산 목록을 만들던 사람은 어느 방 벽에 걸린 그림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레투초 위에 걸린 나무 그림 한 점, 그 안에 여자와 남자 아홉 인물이 그려져 있다.」 레투초는 등받이가 달린 긴 궤짝 의자입니다. 학자들은 이 항목을 지금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 있는 산드로 보티첼리의 〈봄(프리마베라)〉으로 봅니다. 이 그림이 문서에 처음 나타나는 자리에는 인물의 이름이 하나도 없습니다. 비너스도, 플로라도, 메르쿠리우스도 없이 그저 아홉 사람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 아홉을 신화 속 이름으로 부르지만, 그 이름이 모두 같은 무게로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이탈리아 인물 사전(Dizionario Biografico degli Italiani)은 이 그림의 해석이 백 년 동안 열띤 논쟁의 대상이었다고 쓰고, 우피치는 구성의 복잡한 의미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고 적습니다. 이 글은 화면을 오른쪽 끝에서 시작해 왼쪽으로 따라가면서, 아홉 사람 가운데 어디까지가 확실하고 어디부터 갈리는지를 나눠 봅니다.

도판을 확대하고 옛 글과 맞대어 확인한 것은 셋입니다. 첫째, 가장 오래된 목록에는 이름이 없고, 〈봄〉이라는 제목도 1550년 바사리의 설명 구절에서 굳은 관례 이름입니다. 둘째, 오른쪽 세 인물에서는 오비디우스 『행사력』의 플로라 이야기가 화면 위에 그대로 이어지고, 큐피드와 세 그라티아이도 옛 글과 화면의 표지가 함께 이름을 받쳐 줍니다. 셋째, 남은 둘이 갈립니다. 가운데 여인은 이름이, 왼쪽 끝 메르쿠리우스는 그 자리에 선 이유가 갈리고, 백 년 넘은 해석 논쟁은 대부분 이 둘에서 출발합니다.

어두운 오렌지나무 숲 앞 꽃핀 풀밭에 아홉 인물이 가로로 늘어서 있다. 오른쪽에서는 푸른 몸의 남자가 님프를 붙잡고, 그 옆에 꽃무늬 옷의 여인이 서 있으며, 가운데에는 붉은 망토를 두른 여인이, 그 위에는 눈을 가린 아기 큐피드가 날고, 왼쪽에서는 세 여인이 손을 맞잡고 춤추며 왼쪽 끝 젊은 남자가 막대를 들어 올린다
산드로 보티첼리, 〈봄(프리마베라)〉, 1480년 무렵, 포플러 나무판에 템페라 그라사, 207 × 319 cm,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1890년 목록 8360번. 제작연도는 자료에 따라 1475년 무렵에서 1487년 사이로 갈리고, 203 × 314 cm로 적은 자료도 있다. 아홉 인물이 거의 같은 땅 높이에 가로로 늘어서고, 큐피드만 위에 떠 있다.

보티첼리 봄 기본 정보와 원래 걸린 자리

〈봄〉은 피렌체의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가 1480년 무렵 그린 그림입니다. 연도는 자료에 따라 1475년 무렵부터 1480년대 중후반까지 넓게 적힙니다. 포플러 나무판에 템페라 그라사로 그렸는데, 달걀 같은 결합제로 안료를 갠 템페라 물감에 기름 성분을 섞은 것을 말합니다. 우피치가 밝힌 크기는 세로 207센티미터, 가로 319센티미터로, 사람 키보다 높고 폭은 3미터가 넘습니다. 화가의 생애 전체는 짝 글인 산드로 보티첼리 생애와 작품, 그는 정말 자기 그림을 불태웠을까에서 따로 다루고, 이 글은 이 한 점만 봅니다.

이 그림은 원래 걸렸던 자리가 꽤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5세기 말 그림은 피렌체 비아 라르가(Via Larga, 지금의 비아 카보우르) 거리에 있던 메디치 가문 방계의 시내 저택, 로렌초 디 피에르프란체스코 데 메디치와 동생 조반니의 집에 있었습니다. 로렌초의 방 바로 옆방이었고, 그림은 앞에서 말한 레투초 위 벽에 걸려 있었습니다. 이탈리아 인물 사전은 그 의자의 크기가 그림과 꼭 맞아 둘이 처음부터 한 벌로 계획되었다고 봅니다. 1503년에는 큰 흰 액자에 들어 있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 목록들은 1975년 두 연구자가 각각 출판하면서 알려졌고, 목록의 해는 자료에 따라 1498년 또는 1499년으로 적힙니다. 그 전에는 그림이 처음부터 메디치 가문의 카스텔로(Castello) 별장을 꾸미려고 그려졌다는 견해가 있었는데, 이 발견으로 출발점이 시내 저택의 한 방으로 바뀌었습니다.

누가 주문했는지는 갈립니다. 이탈리아 인물 사전은 로렌초 디 피에르프란체스코를 위해 그렸다고 보고, 미술사가 프랑크 쵤너는 이 집안의 결혼을 주선한 로렌초 일 마니피코를 그림의 추정 주문자로 듭니다. 어느 쪽이든 주문 계약서 같은 문서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림은 1530~1540년 무렵 카스텔로 별장에 기록되고, 1550년 조르조 바사리가 거기서 〈비너스의 탄생〉과 함께 보았습니다. 바사리는 이 그림을 「그라티아이가 꽃으로 꾸며 주는 또 하나의 비너스, 봄을 나타내며」라고 묘사했습니다. 〈봄〉이라는 제목은 여기서 왔습니다. 그러나 바사리의 문장에서 「봄」은 제목이 아니라 그림을 설명하는 구절이고, 우피치도 「프리마베라」를 관례로 붙은 이름이라고 적습니다. 인물의 이름도 이 무렵부터 기록에 나타납니다. 바사리가 비너스와 그라티아이를 적었고, 1598년 카스텔로 목록은 「춤추는 세 여신과 위의 큐피드, 메르쿠리우스, 다른 인물들」이라고 적었습니다. 오른쪽 세 인물에게는 이 두 기록 어디에도 이름이 없습니다.

1815년 그림은 우피치로 옮겨졌지만, 당시 사적 통로였던 바사리 회랑에 걸려 거의 알려지지 않은 채 있었습니다. 1864년 무렵에는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가 있었고 1908년에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지금은 우피치에 있으며, 2026년 6월 전시실을 새로 꾸미면서 〈비너스의 탄생〉과 처음으로 서로 마주 보는 벽에 걸렸습니다.

보티첼리 봄 등장인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 그림에는 읽는 순서가 적혀 있지 않습니다. 그래도 오른쪽 끝에서 시작해 따라가면 두 가지가 맞물립니다. 하나는 화면 속 움직임입니다. 오른쪽 세 인물은 모두 왼쪽으로 몸을 내밀며 나아가고, 위에 뜬 큐피드도 머리를 왼쪽에 두고 납니다. 다른 하나는 이야기입니다. 오른쪽 끝의 장면은 고대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의 『행사력』에 나오는 이야기의 첫머리와 겹칩니다. 미술사가 폴 홀버턴도 이 그림이 왼쪽에서 오른쪽이 아니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순서가 놓인 듯 보인다고 썼습니다.

이름을 따질 때 이 글이 쓰는 기준은 하나입니다. 옛 글(원전)과 화면 속 표지가 이름과 그 자리에 선 까닭까지 함께 받쳐 주면 확실한 것으로, 어느 한쪽이 비면 갈리는 것으로 봅니다. 이 기준으로 아홉을 나누면 일곱과 둘이 됩니다.

오른쪽 셋, 제피로스와 클로리스와 플로라

세부: 오른쪽 끝 나무 사이로 푸르스름한 몸의 남자가 볼을 부풀린 채 몸을 숙여 비치는 옷의 여인을 두 손으로 붙잡고, 여인은 왼쪽으로 달아나며 고개를 돌려 그를 올려다보고, 그 왼쪽에 꽃무늬 옷을 입은 여인이 서 있다
같은 그림의 오른쪽 세부다. 제피로스의 두 손이 클로리스의 어깨와 등에 닿아 있고, 그를 둘러싼 나무줄기가 휘어 있다. 클로리스의 몸은 왼쪽으로, 얼굴은 뒤쪽 제피로스를 향한다.

오른쪽 끝 나무 사이로 한 남자가 몸을 숙이며 들어옵니다. 몸빛이 푸르스름한 회청색이고, 볼을 잔뜩 부풀렸으며, 어깨 뒤 화면 모서리에 짙은 날개깃이 보입니다. 그를 둘러싼 나무줄기들은 휘어 있습니다. 그의 두 손이 앞에 있는 여인의 어깨와 등에 닿습니다. 여인은 왼쪽으로 달아나면서 고개만 뒤로 돌려 그를 올려다봅니다. 몸에는 거의 다 비치는 얇은 옷만 걸쳤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무언가가 흘러나옵니다.

세부: 고개를 젖혀 위를 올려다보는 여인의 입가에서 짙은 잎이 달린 가는 줄기와 작은 꽃들이 흘러나와 아래로 늘어지고, 그 아래쪽에 붉은 꽃 한 송이가 보인다
같은 그림의 클로리스 얼굴 세부다. 입에서 잎 달린 가는 줄기와 작은 꽃들이 흘러나와 왼쪽 아래로 늘어진다. 꽃의 종류는 이 크기에서 가려지지 않는다.

확대하면 입에서 나오는 것은 잎이 달린 가는 줄기와 작은 꽃들입니다. 줄기는 아래로 늘어지며 왼쪽 옆 여인 쪽으로 향하고, 끝에 달린 붉은 꽃은 옆 여인의 소매와 옷 무늬 바로 곁에 닿습니다. 그 줄기를 따라 눈을 옮기면 꽃이 끊기지 않고 이어집니다. 옆 여인의 흰 옷에는 꽃 다발 무늬가 수십 개 흩어져 있고, 목에는 꽃 화환을, 머리에는 화관을 썼습니다. 치마를 접어 만든 품에는 분홍과 흰 장미를 가득 안았고, 오른손을 그 장미 속에 넣었습니다. 입에서 나온 꽃이 옷의 꽃이 되고, 옷의 꽃이 품의 장미로 모입니다.

이 세 인물의 이야기는 오비디우스가 로마의 축일들을 노래한 『행사력』 5권에 있습니다. 시인이 꽃의 여신 플로라에게 묻자, 여신은 「말하는 동안 입에서 봄 장미를 내쉬며」 이렇게 답합니다. 「지금 플로라라 불리는 나는 클로리스였다. 봄이었고 나는 거닐고 있었다. 제피로스가 나를 보았고 나는 물러났다. 그가 쫓고 나는 달아났다. 그가 더 강했다.」 그 뒤 서풍의 신 제피로스는 그녀를 신부라 불러 그 폭력을 갚았고, 그녀에게 꽃을 다스리는 일을 맡겼다고 여신은 말합니다. 화면 오른쪽은 이 이야기를 그대로 따라갑니다. 쫓는 바람, 달아나는 님프, 꽃으로 덮인 여신입니다. 다만 한 가지가 다릅니다. 시에서 장미를 내쉬는 것은 지나간 일을 이야기하는 플로라인데, 그림에서 꽃이 나오는 것은 지금 붙잡히는 님프의 입입니다.

이 두 여인을 어떻게 부를지는 연구자마다 달랐습니다. 우피치와 이탈리아 인물 사전은 클로리스가 제피로스에게 붙잡혀 플로라로 바뀌는 것으로, 곧 같은 인물의 전과 후로 읽습니다. 그러나 1893년 이 그림을 『행사력』과 맞대어 읽은 아비 바르부르크는 달아나는 님프를 플로라로, 꽃옷의 여인을 봄의 여신으로 불렀습니다. 1908년 보티첼리 연구서를 낸 허버트 혼(Herbert Horne)은 달아나는 쪽을 「봄」으로, 꽃옷 쪽을 플로라로 보았고, 에르빈 파노프스키는 꽃옷의 여인을 봄의 호라(계절의 여신)라고 불렀습니다. 화면에서는 두 여인의 옷자락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날립니다. 꽃옷 여인의 치마 끝 주름은 오른쪽으로 펼쳐지고, 님프를 감싼 어두운 투명 천은 아래에서 왼쪽으로 부채꼴을 그립니다. 이 차이를 두 순간의 표시로 읽을지는 해석의 몫입니다. 이름표는 이렇게 흔들렸지만, 세 인물이 『행사력』의 플로라 이야기에서 왔다는 점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바람의 몸빛과 입에서 나오는 꽃과 꽃옷이라는 화면의 표지와, 오비디우스의 글이 함께 받쳐 주기 때문입니다.

큐피드와 세 그라티아이

가운데 여인은 뒤에서 따로 보기로 하고, 먼저 그 머리 위를 봅니다.

세부: 흰 띠로 눈을 가린 곱슬머리 아기가 날개를 달고 수평으로 날며 활을 당기고, 화살 끝의 금빛 불꽃 모양 촉이 왼쪽 아래를 향하며, 등에는 붉은 화살통이 있고 둘레 나무에 주황 열매와 흰 꽃이 달려 있다
같은 그림의 위쪽 가운데 세부다. 큐피드는 흰 띠로 눈을 가렸고, 화살촉은 금빛 불꽃 모양이다. 화살은 왼쪽 아래, 세 그라티아이 쪽을 향한다.

가운데 여인의 머리 바로 위에 날개 달린 아기가 몸을 수평으로 눕힌 채 날고 있습니다. 흰 띠로 눈을 가렸고, 등에는 붉은 화살통을 멨습니다. 활을 당긴 화살의 끝은 금빛 불꽃 모양이고, 그 끝이 왼쪽 아래를 향합니다. 우피치는 이 아이를 눈을 가린 채 사랑의 화살을 쏘는 큐피드라고 적습니다. 불꽃 화살에도 출처가 있습니다. 파노프스키는 피렌체의 시인 안젤로 폴리치아노가 쓴 시 『스탄체』에서 큐피드가 활을 얼마나 세게 당겼는지 「왼손은 불타는 금에, 활시위는 오른 가슴에 닿는다」고 한 대목으로 이것을 설명했습니다. 1598년 목록도 이미 「위의 큐피드」라고 적었습니다. 화면의 표지와 글이 함께 이름을 받치는 경우입니다.

세부: 비치는 얇은 옷을 입은 맨발의 세 여인이 둥글게 서서 머리 위로 손가락을 엇걸어 들어 올리고, 얼굴 높이와 허리께에서도 서로 손을 맞잡고 있으며, 가운데 여인은 등을 보인다
같은 그림의 왼쪽 세부다. 세 사람의 손은 머리 위, 얼굴 높이, 허리께 세 곳에서 이어진다. 비치는 옷 아래로 몸의 윤곽이 보이고, 셋 다 맨발이다.

화살이 향하는 쪽에 세 여인이 둥글게 서 있습니다. 가운데 여인은 등을 보이고, 양쪽 두 사람은 얼굴을 서로 쪽으로 돌렸습니다. 세 사람의 손은 세 군데에서 이어집니다. 머리 위로 높이 들어 손가락을 엇건 곳, 얼굴 높이에서 맞잡은 곳, 허리께에서 맞잡은 곳입니다. 옷은 몸의 윤곽이 그대로 비칠 만큼 얇고, 셋 다 맨발입니다. 바사리가 비너스를 꾸며 준다고 적은 그라티아이(우아함의 여신들)가 이들입니다.

이 모습은 15세기 피렌체 사람들이 읽던 글과 거의 그대로 겹칩니다. 건축가이자 이론가인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는 『회화론』에서 세 자매를 「서로 손을 잡고, 웃으며, 띠를 풀고 깨끗한 옷을 입은」 모습으로 그렸다고 썼고, 그가 기댄 로마 철학자 세네카의 문장은 「손을 깍지 끼고, 웃으며, 띠 푼 비치는 옷을 입은」입니다. 맞잡은 손과 비치는 옷은 화면에 그대로 있습니다. 다만 웃음은 화면에 없습니다. 세 얼굴은 모두 차분합니다. 그래도 이름에는 흔들림이 없습니다. 옛 글이 정한 모습과 화면의 손과 옷이 함께 받쳐 주기 때문입니다.

가운데 여인, 비너스인가

세부: 흰 옷 위에 붉은 망토를 두른 여인이 고개를 기울인 채 오른손을 들어 손바닥을 바깥으로 보이며 서 있고, 그 뒤로 나무 사이가 트여 밝은 하늘이 보이며, 둘레의 잎 덤불이 아치처럼 여인을 두른다
같은 그림의 가운데 세부다. 여인 뒤의 덤불은 둘레로 하늘이 트이며 아치 모양을 이룬다. 가슴께에 둥근 금빛 펜던트가 있고, 발에는 가는 금빛 끈 샌들을 신었다.

이제 건너뛰었던 가운데로 돌아옵니다. 여인은 다른 인물들보다 조금 뒤로 물러나 서 있습니다. 그 뒤에서는 빽빽한 숲이 끊기고 밝은 하늘이 트이며, 둘레의 잎 덤불이 반원을 그리며 그녀를 감쌉니다. 흰 옷의 목둘레에는 금빛 장식이 있고, 가슴께에 둥근 금빛 펜던트가 하나 달려 있습니다. 붉은 망토를 왼손으로 허리께에 쥐었는데, 망토 안쪽은 짙은 청색 바탕에 금빛 그물무늬입니다.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였고, 오른손을 들어 손바닥을 바깥으로 보이며 왼쪽, 곧 그라티아이 쪽을 향합니다.

이 여인을 비너스로 보는 근거는 셋입니다. 첫째, 바로 머리 위에 큐피드가 있습니다. 혼은 가운데 인물이 비너스라는 것을 그 위를 나는 큐피드가 보여 준다고 했습니다. 둘째, 바사리가 1550년에 이미 이 그림을 그라티아이가 꾸며 주는 비너스라고 적었습니다. 셋째, 뒤의 덤불입니다. 혼은 이것을 흰 꽃이 핀 도금양(지중해 상록 관목) 덤불로 보고, 후광처럼 비너스를 두른다고 썼습니다. 도금양은 비너스의 나무입니다. 폴리치아노는 『스탄체』에서 비너스의 정원을 노래하며 「여신이 늘 바라보는 도금양이 흰 꽃으로 푸른 머리를 꾸민다」고 했습니다. 우피치도 이 여인을 정숙하게 옷을 입은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 비너스로 적습니다.

반대쪽 근거도 있습니다. 홀버턴은 비너스라면 벗은 몸이거나 비둘기, 그녀가 얻은 사과 같은 지물(신을 알아보게 하는 물건)을 갖추어야 하는데 이 여인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고 지적합니다. 그래서 둘레의 인물들은 의인화된 「형상」이고 이 여인만은 「사람」이라고 보았습니다. 다만 그는 다른 학자들이 이 전제를 받아들이지 않는 듯하다고 스스로 덧붙였습니다. 이탈리아 학자 클라우디아 빌라는 1998년 이 여인을 「필롤로지아(문헌학, 학문의 의인화)」로 읽었고, 같은 무렵 이 여인을 철학과 신학의 천상 상징으로 본 연구도 나왔습니다.

두 쪽을 저울에 올리면 이렇습니다. 비너스라는 이름을 받치는 표지는 머리 위의 큐피드와 뒤의 도금양, 곧 그녀의 둘레에 있습니다. 그녀 자신에게는 비너스만의 지물이 없습니다. 오른쪽 세 인물처럼 장면 전체를 풀어 주는 원전도 이 여인에게는 없습니다. 바사리의 문장은 그림이 그려지고 수십 년 뒤의 설명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대부분이 비너스로 부르고 근거도 그쪽이 더 많지만, 이 여인은 이 글의 기준에서 갈리는 쪽에 섭니다.

메르쿠리우스, 왜 거기 서 있나

세부: 붉은 망토를 걸치고 투구를 쓴 젊은 남자가 왼손을 허리에 얹고 오른팔을 높이 들어 뱀 두 마리가 얽힌 막대 끝을 화면 왼쪽 위 구석의 회색 구름에 대며, 몸에는 끝이 휜 긴 칼을 차고 발에는 발가락이 드러나는 갈색 장화를 신었다
같은 그림의 왼쪽 끝 세부다. 메르쿠리우스는 카두케우스(뱀 두 마리가 얽힌 지팡이)를 들어 왼쪽 위 구석의 구름에 댄다. 고개는 그 지팡이 끝을 향하고, 다른 인물들 쪽을 보지 않는다.

왼쪽 끝에는 젊은 남자가 서 있습니다. 투구를 썼고, 작은 금빛 불꽃 무늬가 흩어진 붉은 망토를 걸쳤으며, 몸을 가로지르는 검대에 끝이 갈고리처럼 휜 긴 칼을 찼습니다. 왼손은 허리에 얹었고, 오른팔은 높이 들어 뱀 두 마리가 얽힌 막대 끝을 화면 왼쪽 위 구석의 회색 구름 띠에 댑니다. 고개를 들어 그 끝을 올려다볼 뿐 다른 여덟 인물 쪽은 보지 않습니다. 발에는 발가락이 드러나는 갈색 장화를 신었습니다.

이 사람의 이름에는 다툼이 거의 없습니다. 우피치는 투구와 날개 달린 신을 신고 카두케우스로 구름을 건드리는 신들의 전령 메르쿠리우스라고 적고, 1598년 목록도 이미 그를 메르쿠리우스라고 불렀습니다. 구름을 건드리는 몸짓에도 원전이 있습니다. 혼은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4권에서 메르쿠리우스가 「그 지팡이에 기대어 바람을 몰고 흐린 구름을 헤쳐 나간다」고 한 대목을 이 몸짓에 연결했습니다.

갈리는 것은 그가 왜 이 장면에 있느냐입니다. 파노프스키는 이 그림의 인물 가운데 폴리치아노의 시로 설명되지 않는 것은 메르쿠리우스 하나뿐이라고 보고, 그를 「이상하고 끼어든 인물」이라고 불렀습니다. 다른 연구자들은 5월과 연결합니다. 메르쿠리우스는 어머니 마이아를 통해 5월과 이어지는 신이고, 결혼설을 따르는 쪽에서는 이 그림과 연결되는 결혼이 원래 5월로 잡혀 있었다는 점을 함께 듭니다. 쵤너는 그의 얼굴을 로렌초 일 마니피코와 견주어 볼 수 있다고 시험 삼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이름은 화면과 글이 받치지만, 이 자리에 선 까닭은 어느 원전도 직접 말해 주지 않습니다.

화면에서 눈에 띄는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아홉 인물 가운데 신을 신은 사람은 메르쿠리우스(장화)와 가운데 여인(샌들) 둘입니다. 세 그라티아이와 플로라, 클로리스는 맨발이고, 제피로스의 발은 화면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름이나 자리가 갈리는 두 사람이 마침 신을 신은 두 사람이라는 것은 화면에서 확인되는 사실이지만,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밝혀 주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일곱과 둘

오른쪽에서 왼쪽까지 따라오면 아홉은 이렇게 나뉩니다. 제피로스와 클로리스와 플로라, 큐피드, 세 그라티아이, 이 일곱은 옛 글과 화면의 표지가 함께 이름을 받칩니다. 오른쪽 셋에서는 원전이 줄거리까지 대 주고, 큐피드와 그라티아이에서는 생김새까지 대 줍니다. 남은 둘은 사정이 다릅니다. 가운데 여인은 이름을 받치는 표지가 둘레에만 있고, 메르쿠리우스는 이름은 분명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이유를 말해 주는 글이 없습니다. 1498년의 목록이 아홉 사람이라고만 적은 그림에서, 지금 이름을 확실하게 부를 수 있는 것은 메르쿠리우스까지 여덟이고, 그 자리에 선 까닭까지 옛 글이 대 주는 것은 일곱입니다.

루크레티우스와 폴리치아노가 노래한 봄의 행렬

오른쪽 셋에 『행사력』이 있다면, 화면 전체를 한 줄로 묶어 줄 글은 없을까요. 연구자들이 일찍부터 꺼내 든 것이 로마 시인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5권의 네 줄입니다. 「봄과 비너스가 가고, 비너스의 날개 달린 전령이 앞서 걷는다. 제피로스의 발자국 가까이에서 어머니 플로라가 그들 앞길에 미리 꽃을 뿌려 온 길을 고운 빛깔과 향기로 채운다.」 바르부르크는 이 대목의 두 낱말을 고쳐 읽은 교정 독법을 따라 날개 달린 전령을 봄의 전령 제피로스로 읽었고, 파노프스키는 사본에 적힌 대로 비너스의 전령, 곧 큐피드로 읽었습니다. 여기서는 뒤의 읽기를 따릅니다.

이 네 줄과 화면을 나란히 놓으면 등장하는 이들은 거의 겹칩니다. 비너스와 그 앞을 나는 날개 달린 전령, 제피로스와 그 곁의 플로라, 그리고 꽃입니다. 큐피드가 머리를 왼쪽에 두고 비너스 위를 나는 모습도 행렬의 「앞서」와 어울립니다. 그러나 순서까지 같지는 않습니다. 시에서 플로라는 모두의 앞길에 꽃을 뿌리는데, 화면이 왼쪽으로 나아간다고 보면 플로라는 비너스의 앞이 아니라 뒤에 있습니다. 시에 따로 나오는 「봄」도 화면에서는 한 인물로 딱 짚이지 않습니다. 바르부르크와 혼이 오른쪽 여인 하나를 「봄의 여신」이나 「봄」이라고 부른 것은 이 대목과 나란히 놓고 보면 이해가 됩니다. 루크레티우스는 이 그림의 등장인물 목록에는 가깝지만, 그 배치를 그대로 정해 준 글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바르부르크는 여기에 폴리치아노를 더했습니다. 『스탄체』 1권은 비너스가 다스리는 곳을 「모든 우아함이 기뻐하는 왕국, 꽃의 아름다움이 머리에 정원을 이루는 곳, 제피로스가 온통 들떠 플로라 뒤를 날며 푸른 풀을 꽃피우는 곳」이라고 노래합니다. 바르부르크는 이 시를 근거로 이 그림을 차라리 「비너스의 왕국」이라 불러야 한다고 했고, 폴리치아노가 보티첼리의 조언자였다고 보았습니다. 파노프스키도 이 그림이 주로 폴리치아노에 기대고 있다고 썼고, 이것을 「신의 현현이 아니라 축제」라고 표현했습니다. 신이 나타나는 장엄한 순간이 아니라, 봄의 정원에 신들이 모여 있는 장면이라는 뜻입니다.

보티첼리 봄 해석, 백 년 넘게 갈린 이유

미술사가 쵤너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보티첼리의 〈봄〉만큼 많은 학술적 해석을 받은 르네상스 그림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썼습니다. 그 해석들을 차례로 보면, 대부분이 앞에서 갈린다고 한 두 사람, 가운데 여인과 메르쿠리우스에서 출발한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출발점은 1893년 바르부르크입니다. 그는 『행사력』의 플로라 이야기에 이 그림 구성의 핵심이 있다고 보고, 폴리치아노의 시를 더해 「비너스의 왕국」을 읽어 냈습니다. 그는 이 그림이 1478년 살해된 줄리아노 데 메디치와 그보다 앞서 세상을 떠난 시모네타 베스푸치를 기리려 한 것이라고도 보았습니다.

1945년 에른스트 곰브리치는 이 그림을 철학자 마르실리오 피치노 주변의 신플라톤주의(플라톤 철학을 바탕으로 한 15세기 피렌체의 사상)로 읽었습니다. 근거는 피치노의 한 편지입니다. 피치노는 별들을 사람의 성품에 하나씩 대응시키면서 이렇게 씁니다. 「비너스, 곧 인간다움에 눈길을 두라. 인간다움은 하늘에서 태어난, 뛰어난 몸을 지닌 님프다. 그 손은 베풂과 너그러움이고, 발은 친절과 절제다.」 이 편지를 그림에 연결한 공은 곰브리치에게 있다고 파노프스키가 적었습니다. 이 읽기에서 가운데 여인은 비너스이면서 「인간다움(후마니타스)」입니다. 1960년 파노프스키는 이 그림을 「자연의 비너스의 왕국」이라 부르자고 하면서, 이 이름이 가운데 여인을 루크레티우스의 생명을 낳는 비너스로도, 피치노의 후마니타스로도 볼 여지를 남긴다고 했습니다.

다른 큰 갈래는 결혼 그림이라는 해석입니다. 1906년 프란츠 비크호프가 보티첼리의 신화화를 결혼 그림으로 보는 견해를 처음 내놓았지만 특정한 결혼을 짚지는 않았고, 1978년 로널드 라이트바운이 이 그림을 구체적인 결혼과 연결했습니다. 라이트바운은 이탈리아 인물 사전에서 이 그림이 로렌초 디 피에르프란체스코와 세미라미데 아피아니의 결혼을 기념한다고 「우리 견해로는」이라는 단서를 달아 썼습니다. 결혼은 1482년 5월로 잡혀 있었는데, 로렌초 일 마니피코의 어머니 루크레치아가 3월 25일 세상을 떠나 7월 19일로 미뤄졌습니다. 그는 그림의 봄이 원래 잡혀 있던 5월을 가리킬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홀버턴은 지금 이 해석에 폭넓은 합의가 있는 듯하다고 하면서도, 증거는 없다고 분명히 적었습니다. 반대하는 연구자들도 있습니다. 보티첼리가 1481년 늦여름부터 1482년 봄이나 여름까지 로마에 가 있었다는 점이 날짜를 맞추는 데 걸림돌로 거론됩니다.

같은 결혼설 안에서도 방향이 바뀐 일이 있습니다. 미렐라 레비 단코나는 1983년 결혼설을 자세히 논증했다가, 1992년에는 그것을 거두었습니다. 대신 1478년 살해된 줄리아노 데 메디치와 피오레타(오레타) 데 파치 사이에서 태어날 아들 줄리오, 뒤의 교황 클레멘스 7세의 출생을 앞두고 그렸다가 나중에 고쳤다고 보았습니다.

군데군데 떨어져 나간 벽화에서 붉은 모자의 젊은 남자가 왼쪽에 서 있고, 붉은 망토의 여인이 그의 손을 잡아 오른쪽에 둘러앉은 여러 여인에게로 이끌며, 맨 오른쪽 높은 자리에 붉은 옷의 여인이 앉아 손을 들고 있다
산드로 보티첼리, 〈비너스(?)가 일곱 자유 학예에 소개하는 젊은이〉, 15세기 마지막 4분기(1475~1500년), 프레스코, 237 × 269 cm, 루브르 박물관, 파리, RF 322. 피렌체 근교 빌라 렘미의 방 벽에 있던 그림으로 1873년에 발견되었다. 학예를 뜻하는 여인들이 둘러앉아 젊은이를 맞는다.

1998년 클라우디아 빌라는 전혀 다른 원전을 꺼냈습니다. 고대 말기의 저술가 마르티아누스 카펠라의 『필롤로지아와 메르쿠리우스의 결혼』입니다. 학문을 사람으로 그린 이 책에 기대어, 빌라는 가운데 여인을 필롤로지아로, 꽃옷의 여인을 수사학으로 읽었습니다. 이 책에서 신랑이 메르쿠리우스라는 점이 왼쪽 끝 인물과 맞물립니다. 보티첼리의 손에서 학문이 실제로 여인들로 그려진 예가 지금 루브르 박물관(Musée du Louvre)에 있습니다. 피렌체 근교 빌라 렘미(Villa Lemmi)의 방 벽에 있던 프레스코로, 한 여인이 젊은이의 손을 잡고 일곱 자유 학예를 뜻하는 여인들에게 데려가는 장면입니다. 루브르는 이 이끄는 여인을 비너스로 보되 이름 뒤에 물음표를 붙여 두었고, 두 장면의 해석이 크게 갈린다고 적습니다. 이 프레스코가 〈봄〉에 대한 빌라의 읽기를 증명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보티첼리 주변에서 비너스로 볼 만한 여인을 놓고 이름을 확정하지 못하는 일이 이 그림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보여 줍니다.

우피치는 이 논쟁 위에서 한발 물러나 있습니다. 구성의 복잡한 의미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지만, 작품이 사랑과 평화와 번영을 기린다고만 적습니다. 결혼설은 우피치의 공식 해설에 나오지 않습니다.

앞의 기준으로 이 해석들을 다시 보면 갈림길이 어디인지 보입니다. 오비디우스의 이야기와 그라티아이는 대부분의 해석이 공통으로 딛는 바닥입니다. 빌라처럼 꽃옷의 여인에게 새 이름을 주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의 새 해석은 가운데 여인에게 다른 이름(후마니타스, 필롤로지아, 한 사람)을 주거나 메르쿠리우스의 몸짓에 뜻을 붙이는 데서 시작합니다. 원전과 화면이 함께 받쳐 주지 않는 두 자리라서 그만큼 다른 글이 들어올 틈이 큽니다. 그중 그림 밖의 물리적 사실과 맞물리는 것은 결혼설입니다. 로렌초의 방 옆방이라는 자리, 그림에 맞춘 의자, 붙잡힌 님프가 신부가 되어 꽃의 여신이 되는 오른쪽의 이야기가 서로 어긋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받쳐 주는 것은 침실 곁의 방이라는 자리와 그림의 이야기가 서로 맞물린다는 데까지이고, 특정한 결혼을 위해 그렸다는 문서는 없습니다. 지지자 스스로 증거가 없다고 쓰는 이상, 이 글도 거기서 멈춥니다.

봄의 꽃과 오렌지나무

그림의 아랫단 풀밭에는 흰색, 노란색, 분홍색, 푸른색의 작은 꽃이 수백 송이 흩어져 있습니다. 우피치는 이 그림에서 알아볼 수 있는 식물이 적어도 42종이며, 녹색 식물 14종과 꽃식물 28종이라고 밝힙니다. 보티첼리가 아마 식물 표본집을 곁에 두고 정확하게 그렸을 것이라고도 덧붙입니다. 인터넷에는 이보다 훨씬 큰 숫자가 돌지만, 그림을 가진 미술관이 밝힌 수는 42종입니다. 오비디우스의 플로라가 「나는 자주 그 색깔들을 세어 보려 했지만 할 수 없었다. 수가 너무 많았다」고 한 꽃들을, 지금은 미술관이 종 단위로 세어 둔 셈입니다.

1908년 혼은 보티첼리가 피렌체 둘레 숲과 들에서 본 것만 그렸다며 장미, 제비꽃, 데이지, 산딸기, 보라 붓꽃, 야생 난초, 관동, 대극을 꼽았습니다. 2002년 미국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rt) 전시 도록은 식물학 연구를 인용해, 이 식물들이 대부분 4월과 5월에 꽃피는 이탈리아 토종이며 예외는 1월에 피는 헬레보루스와 3월에 피는 관동(우리말로 머위라 부르는 식물과는 다른 종)뿐이라고 정리했습니다. 같은 도록은 님프 클로리스의 발치에 있는 보라 붓꽃도 짚었는데, 화면 오른쪽 아래 클로리스의 발 옆에 짙은 보라색 붓꽃이 실제로 보입니다.

뒤쪽 숲도 확대해 볼 만합니다. 인물들 뒤로 늘어선 나무의 짙은 잎 사이에 주황색 둥근 열매와 흰 별 모양 꽃이 같은 가지에 함께 달려 있습니다. 우피치는 이 숲을 오렌지나무와 월계수의 숲이라고 적습니다. 한 계절에 다 피지 않는 꽃들이 한 풀밭에 모이고, 꽃과 열매가 한 가지에 함께 달린 화면입니다.

화면의 식물이 전체적으로 어두운 데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우피치는 식물의 색이 어두운 것이 일부는 원래 안료가 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지금 숲이 거의 검게 보이는 것은 처음 칠한 색 그대로가 아닐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 어두운 바탕 덕분에 지금 화면에서는 주황 열매와 흰 꽃, 인물의 흰 옷이 더 뚜렷하게 떠오릅니다.

〈비너스의 탄생〉과 짝인가, 시모네타 모델설

〈봄〉은 흔히 〈비너스의 탄생〉과 한 쌍으로 소개됩니다. 바사리가 1550년 카스텔로에서 두 그림을 함께 보았고, 파노프스키도 두 그림이 서로 짝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원래 자리를 알려 주는 목록은 다른 그림을 가리킵니다. 1499년 무렵 〈봄〉과 같은 방에 함께 기록된 것은 〈팔라스와 켄타우로스〉입니다.

올리브 가지를 몸에 감은 여인이 긴 도끼창을 짚고 서서 한 손으로 켄타우로스의 머리채를 붙잡고, 활을 든 켄타우로스는 고개를 숙인 채 괴로운 표정을 짓는다
산드로 보티첼리, 〈팔라스와 켄타우로스〉, 1480년대 초, 캔버스에 템페라, 207 × 148 cm,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1499년 무렵의 목록에서 〈봄〉과 같은 방에 기록되었다. 여인의 옷과 팔에 올리브 가지가 감겨 있다.

이 그림은 이탈리아 인물 사전에 따르면 1499년 목록에서 여인이 「카밀라」로 적혀 있었고, 「팔라스」라는 이름은 19세기 말에 붙었습니다. 같은 목록이 옆 그림의 여인에게는 이름을 적고 〈봄〉에는 아홉 인물이라고만 적은 것입니다. 〈비너스의 탄생〉은 사정이 반대입니다. 알려진 옛 메디치 목록 어디에도 나오지 않고, 나무판이 아니라 캔버스에 그렸으며, 이탈리아 인물 사전은 〈봄〉보다 몇 해 뒤의 작품으로 봅니다. 홀버턴은 1975년의 목록 출판이 〈비너스의 탄생〉을 〈봄〉의 짝에서 떼어 놓았다고 정리합니다. 2026년 6월 우피치가 두 그림을 마주 보게 건 것은 전시 배치이지 제작 관계의 증거가 아닙니다. 〈비너스의 탄생〉 쪽 이야기는 짝 글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해석, 이 그림에 태어나는 장면은 없다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또 하나 자주 따라오는 이야기가 피렌체의 미인 시모네타 베스푸치가 플로라나 비너스의 모델이라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1873년 존 러스킨의 책 『아리아드네 플로렌티나』 부록에 실린 한 사람의 메모, 곧 목이 길고 가는 같은 모델이 〈봄〉을 비롯한 여러 그림에 나온다는 메모에서 시작됩니다. 시모네타는 1476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봄〉의 제작 시기는 자료에 따라 1475년 무렵까지 올라가므로 사망 연도만으로 모델 여부를 가를 수는 없습니다. 혼도 1478년 무렵 착수됐을 수 있는 그림은 〈봄〉 하나뿐이라고 보았습니다. 그가 든 더 결정적인 이유는 이 그림들 어디에도 실제 인물의 초상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우피치와 이탈리아 인물 사전의 〈봄〉 해설에는 시모네타 모델설이 나오지 않습니다.

보티첼리 봄 표현 기법

〈봄〉은 포플러 나무판에 그렸습니다. 우피치는 기법을 템페라 그라사, 곧 기름 성분을 섞은 템페라로 적습니다. 1908년 혼은 이 그림이 석고를 아교로 갠 젯소 바탕 위에 니스를 바르지 않은 템페라로 그려졌고, 보존 상태가 놀랍도록 좋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는 먼지층 때문에 화면이 조금 어둡게 보인다고도 적었습니다.

그 어둠을 걷어 낸 것이 피렌체 피에트레 두레 공방(Opificio delle Pietre Dure)이 맡아 1982년에 끝낸 복원입니다. 이탈리아 문화 매체가 전하는 복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복원으로 노란 니스층에 덮여 있던 원래 색이 다시 드러났습니다. 같은 조사는 보티첼리가 클로리스와 아마 제피로스를 빼고 거의 모든 인물을 먼저 그린 뒤 식물을 그렸다고 전합니다. 오른쪽 끝 제피로스의 몸빛도 이 복원과 관련이 있습니다. 쵤너가 인용한 연구에 따르면 복원 뒤 제피로스는 녹색이 아니라 푸르스름하게 보이게 되었습니다. 혼은 이 푸른빛을 바람의 공기 같은 몸을 나타내려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화면에서 직접 확인되는 손길도 있습니다. 그라티아이의 옷은 얇은 흰 칠과 가는 흰 선으로 그려져, 옷자락 아래로 다리와 허리의 윤곽이 그대로 비칩니다. 클로리스의 흰 옷도 마찬가지로 몸의 윤곽을 다 드러냅니다. 큐피드의 화살촉, 메르쿠리우스의 칼자루와 망토의 작은 불꽃 무늬, 가운데 여인의 펜던트와 망토 안감의 그물무늬에는 금빛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것이 실제 금인지는 기술 조사 보고를 확인해야 말할 수 있으므로, 여기서는 금빛이라고만 적어 둡니다.

보티첼리 봄 자주 묻는 질문

보티첼리 봄은 누가, 언제 그렸나요?

피렌체의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가 1480년 무렵 그렸습니다. 연도는 자료에 따라 1475년 무렵에서 1480년대 중후반까지 갈립니다. 15세기 말에는 메디치 가문 방계 로렌초 디 피에르프란체스코 형제의 시내 저택에 걸려 있었습니다.

보티첼리 봄은 어디서 볼 수 있나요?

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있습니다. 2026년 6월부터는 〈비너스의 탄생〉과 서로 마주 보는 벽에 걸려 있습니다.

보티첼리 봄의 등장인물은 몇 명이고 누구인가요?

아홉 명입니다. 오른쪽부터 서풍의 신 제피로스, 님프 클로리스, 꽃의 여신 플로라, 가운데의 비너스로 불리는 여인과 그 위의 큐피드, 세 그라티아이, 왼쪽 끝의 메르쿠리우스입니다. 이름은 메르쿠리우스까지 여덟이 옛 글과 화면으로 받쳐집니다. 가운데 여인은 이름이, 메르쿠리우스는 그 자리에 선 이유가 연구자마다 다르게 읽힙니다.

보티첼리 봄에는 꽃이 몇 종류 그려져 있나요?

우피치는 알아볼 수 있는 식물을 적어도 42종(녹색 식물 14종, 꽃식물 28종)으로 밝힙니다. 대부분 4월과 5월에 피는 이탈리아 토종 식물입니다.

봄과 비너스의 탄생은 한 쌍으로 그린 그림인가요?

그렇게 소개되는 일이 많지만 기록은 다른 쪽을 가리킵니다. 〈봄〉과 같은 방에 기록된 것은 〈팔라스와 켄타우로스〉이고, 〈비너스의 탄생〉은 옛 메디치 목록에 나오지 않으며 재료도 캔버스로 다릅니다. 두 그림을 함께 본 첫 기록은 1550년 바사리입니다.

프리마베라는 무슨 뜻인가요?

이탈리아어로 봄입니다. 화가가 붙인 제목은 아니고, 1550년 바사리가 이 그림을 「봄을 나타낸다」고 설명한 구절에서 굳은 관례 이름입니다. 15세기 르네상스 미술의 흐름은 르네상스 미술 총정리에서 함께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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