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에버렛 밀레이의 마리아나 : 해설과 상징
몸에 꼭 맞는 파란 벨벳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자수를 놓다 말고 허리를 젖힙니다. 얼핏 보면 고단한 하루의 짧은 휴식처럼 보이는 이 장면은,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 시작해 시인 테니슨을 거쳐 밀레이의 캔버스에 도착한 긴 이야기의 끝자락입니다.
• 작품명: 마리아나(Mariana)
• 작가: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1829~1896)
• 제작: 1851년
• 재료: 마호가니 패널에 유화
• 크기: 59.7×49.5cm
• 소장: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 런던(1999년 상속세 물납으로 소장)
최연소 왕립예술원 입학생, 밀레이
섬세한 기법과 색채의 마법으로 유명한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1829~1896)는 어릴 때부터 천재적인 그림 실력을 드러냈습니다. 그가 9살 때 어머니가 왕립예술원을 찾아가 입학시켜 달라고 요구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왕립예술원에 입학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기에, 먼저 다른 미술학교에서 기초 교육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1840년 12월 12일, 밀레이는 열한 살의 나이로 왕립예술원 부속학교에 입학했는데, 이는 왕립예술원 역사상 최연소 입학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밀레이는 왕립예술원에서 가르치는, 인간과 자연을 이상적으로 묘사하는 방식에 반감을 가졌습니다. 그는 1848년 친구들과 함께 의기투합해 '라파엘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를 창립하여 자연과 사람을 있는 그대로 충실하게 묘사하려 노력했습니다. 라파엘전파는 이름 그대로, 라파엘로 이전 시대의 사실적이고 자연스러운 화풍을 추구하는 화가 그룹입니다.
희곡에서 시로, 시에서 그림으로
밀레이의 작품 중 〈오필리아(Ophelia)〉가 가장 유명하지만, 〈마리아나〉도 그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얼핏 보면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여인이 일을 멈추고 허리를 펴는 장면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보다 훨씬 깊은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1830년, 훗날 영국의 계관시인이 되는 앨프리드 테니슨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자에는 자로(Measure for Measure)〉에서 영감을 받아 「마리아나」라는 시를 썼습니다. 테니슨이 계관시인 자리에 오른 것은 그로부터 이십 년이 지난 1850년의 일입니다. 희곡 속 마리아나는 지참금이 든 배가 난파되자 약혼자 안젤로에게 파혼당한 비운의 여인입니다. 밀레이는 이 그림을 1851년 왕립예술원 전시회에 출품하면서 테니슨의 시 구절을 그대로 캡션으로 달았습니다.
"그녀는 말했네, 내 삶은 쓸쓸해,
그는 오지 않으리, 그녀가 말했네.
그녀는 말했네, 나는 지쳤어, 지쳤어,
아, 차라리 죽을 수 있다면!"
약혼자에게 버림받은 마리아나는 셰익스피어의 원작 대사에 나오는 표현 그대로 "해자로 둘러싸인 저택(moated grange)"에서 홀로 살아갑니다. 그림은 마리아나가 자수로 시간을 보내다 잠시 일어서서 지친 허리를 펴는 순간을 포착했습니다. 몸에 꼭 맞는 파란 벨벳 드레스를 입고 단정하게 묶어 올린 금발머리, 가볍게 허리를 젖히는 여인의 모습은 무척 우아해 보입니다. 하지만 여인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깊은 우수에 잠겨 있습니다. 창밖의 풍경과 방 안으로 떨어진 낙엽들은 계절이 쓸쓸한 가을임을 암시하며, 동시에 그녀가 얼마나 오래 이 자리를 지켜왔는지를 말해 줍니다.
화면 속 세부에 담긴 이야기
마리아나가 있는 방의 창문은 뾰족한 아치 형태의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어 있는데, 이는 주로 성당이나 교회에서 볼 수 있는 양식입니다. 밀레이는 이 창문을 그리기 위해 옥스퍼드 머튼 칼리지 예배당 동쪽 끝에 있는, 13세기 후반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실제 '수태고지' 스테인드글라스를 참고했습니다. 신성한 부름을 받아 순명하는 성모 마리아와, 세속적인 사랑에 버림받아 고독하게 살아야 하는 마리아나의 처지가 이 창문 하나로 극적으로 대비됩니다.
창문 아래에는 밀레이가 상상으로 지어낸 가문 문장이 그려져 있는데, 그 안에 눈풀꽃(snowdrop)과 함께 "하늘에는 안식이 있다(In coelo quies)"는 라틴어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른 봄 가장 먼저 피는 눈풀꽃은 전통적으로 위안을 상징하는 꽃이며, 마리아나가 지금 이곳에서 얻지 못하는 안식을 오직 죽음 너머에서만 찾을 수 있으리라는 암시로 읽힙니다.
화면 오른쪽 아래 바닥에는 작은 생쥐 한 마리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 역시 테니슨의 시에서 그대로 가져온 세부입니다. 시는 "낡은 징두리널 뒤에서 생쥐가 찍찍거리거나 틈새로 고개를 내밀었다"고 노래합니다. 밀레이가 실제로 화실을 가로질러 도망치던 생쥐를 잡아 그 모습을 보고 그렸다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자수틀 옆에 감겨 있는 완성된 자수 두루마리 역시, 그녀가 이 일을 얼마나 오래 되풀이해 왔는지를 조용히 증언합니다.
이 작품은 스테인드글라스, 벨벳 드레스, 자수 등 중세 고딕 디자인과 장식 공예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며, 밀레이의 정밀하고 섬세한 기법과 눈부신 색채 감각을 보여주는 걸작입니다.
1851년, 러스킨의 옹호
1851년 왕립예술원에 처음 걸렸을 때, 라파엘전파 화가들의 그림은 거친 비평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미술평론가 존 러스킨은 이 흐름을 적극적으로 옹호했습니다. 그는 화면 속 탁자 위에 놓인 흰 천의 주름 묘사를 두고 "이번 왕립예술원 전시 전체에서, 완벽한 진실성과 힘과 마무리에서 이에 비교할 수 있는 드레이퍼리 연구는 단 하나도 없다"고 평가했고, 이런 그림들을 가리켜 "뒤러의 시대 이후로 이토록 진지하고 완성도 높은 예술은 없었다"고까지 말했습니다. 무명에 가까웠던 젊은 화가들의 그림이 비평가들의 조롱을 딛고 오늘날의 지위를 얻게 된 데에는 이 옹호가 적지 않은 역할을 했습니다.
지금 이 그림은 테이트 브리튼에 있습니다. 원래 이 작품은 밀레이의 오랜 친구였던 헨리 프랜시스 메이킨스가 사들여 시작된 메이킨스 컬렉션에 속해 있었고, 그 손자 로저 메이킨스(초대 셔필드 남작)가 1996년 세상을 떠난 뒤 상속세 420만 파운드를 그림으로 물납하는 형식으로 1999년 테이트에 소장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마리아나〉라는 작품을 소개해 드렸는데, 그 배경 이야기를 알고 나니 그림이 새롭게 보이지 않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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