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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미술사] 르네상스 미술 총정리

  미술사의 흐름을 알기 위해 "서양 미술사"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이 글은 전체 시리즈 중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 전체 미술사 흐름이 궁금하시다면 [서양 미술사 총정리: 시대별 특징과 흐름] 게시물을 먼저 확인해 보세요.



  르네상스(Renaissance)는 '재생', '부활'을 뜻하는 프랑스어로, 신 중심의 중세 시대를 벗어나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인간 중심적인 문화와 사상을 다시 꽃피우려 했던 예술 운동을 의미합니다. 신화 속 신들조차 인간과 닮았던 고대처럼, 다시 한번 인간의 이성과 잠재력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르네상스를 한 문단으로

르네상스 미술은 15세기 피렌체에서 시작해 16세기 로마와 베네치아에서 절정에 이른 미술 운동이며, 선원근법과 해부학으로 인체와 공간을 눈에 보이는 대로 재현하려 한 점이 그 이전 시기와 갈리는 지점입니다. 같은 시기 네덜란드와 독일에서는 이상적인 비례 대신 눈앞의 사물을 극도로 정밀하게 옮기는 다른 길이 열렸습니다. 아래에서는 이 두 갈래를 나눠 보고, 대표 작품 네 점을 실제 크기와 소장처까지 확인하며 따라갑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초기 르네상스 (15세기 피렌체)

  초기 르네상스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피렌체의 부유한 메디치 가문은 학문과 예술을 적극적으로 후원하며 르네상스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이 시기 화가들은 신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인체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자연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원근법, 명암법과 같은 혁신적인 기법이 등장했고, 유화 물감이 발명되면서 표현의 깊이가 더해졌습니다. 대표적인 예술가로는 마사치오, 도나텔로, 보티첼리 등이 있습니다.

전성기 르네상스 (16세기 로마와 베네치아)

  16세기에 접어들며 미술의 중심지는 로마와 베네치아로 이동했습니다. 교황청이 예술을 적극적으로 후원하면서 로마가 유럽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고, 베네치아는 무역으로 쌓은 부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화파를 발전시켰습니다. 이 시기에 바로 우리가 아는 3대 천재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가 등장합니다. 이들은 원근법, 해부학 등 초기 르네상스의 성과를 완벽하게 구사하여 미술사에 길이 남을 걸작들을 탄생시켰습니다.

본문에 이름만 나온 두 사람, 도나텔로와 보티첼리

초기 르네상스의 대표 예술가로 마사치오와 함께 도나텔로와 보티첼리를 들었는데, 두 사람이 무엇을 했는지는 각자의 대표작 한 점씩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도나텔로의 청동 다비드는 높이 158cm이며 피렌체 바르젤로 국립미술관에 있습니다. 제작 시기는 자료마다 갈려 1430년대 후반부터 1440년대 사이로 폭넓게 잡힙니다. 이 조각이 미술사에서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는 이유는 크기나 재료가 아니라, 고대 이후 처음으로 건축에 붙지 않고 홀로 서는 실물 크기의 남성 나체상이라는 점입니다. 벽감이나 기둥에 기대지 않고 사방에서 볼 수 있게 만든 조각은 그때까지 없었습니다. 뒤에 볼 미켈란젤로의 다비드가 왜 그런 자세로 설 수 있었는지도 이 선례에서 시작됩니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은 1485년경 작품으로 캔버스에 템페라로 그렸고, 크기는 세로 172.5cm, 가로 278.5cm이며 우피치 미술관에 있습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재료와 주제의 조합입니다. 이 시기 대형 그림은 대개 나무판에 그렸는데 이 작품은 캔버스를 썼고, 다루는 내용도 성경이 아니라 고대 신화입니다.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옮겨 갔다는 앞의 설명이 화면에서 확인되는 지점이 바로 이런 주제 선택입니다.

원근법은 누가 회화에 들여왔나

선원근법은 화면 안의 평행선들이 하나의 소실점으로 모이도록 정하고, 그 규칙에 맞춰 사물의 크기를 줄여 그리는 작도법입니다. 눈에 보이는 깊이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계산해서 만드는 방식이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이 방법이 회화에서 처음으로 온전히 작동한 사례로 꼽히는 것이 아래에서 볼 마사치오의 벽화입니다. 이 그림에서 천장의 격자 무늬는 위로 갈수록 촘촘해지고, 양쪽 기둥의 간격은 안쪽으로 갈수록 좁아집니다. 그 결과 실제로는 평평한 벽인데도 관람자의 눈에는 예배당 하나가 벽 속으로 파여 들어간 것처럼 보입니다.

여기서 놓치기 쉬운 것이 관람자의 자리입니다. 이런 작도는 특정한 한 지점에서 볼 때 가장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도록 설계됩니다. 그림 앞에서 좌우로 걸어 보면 깊이의 느낌이 조금씩 흔들리는데, 그 흔들림이 곧 이 그림이 계산된 결과라는 증거입니다.

유화는 발명된 것이 아니라 자리를 잡은 것이다

앞에서 유화 물감의 등장을 이 시기의 변화로 들었는데, 여기에 한 가지 사정을 덧붙일 수 있습니다. 기름을 섞어 안료를 개는 방식은 그 이전에도 알려져 있었고, 15세기 네덜란드에서 크게 정교해졌습니다. 얀 반 에이크는 흔히 유화의 발명자로 소개되지만, 자료를 따라가면 발명자보다 선구자에 가깝습니다.

중요한 것은 재료가 바꾼 작업 방식입니다. 달걀 노른자로 개는 템페라는 빨리 마르기 때문에 색과 색을 화면 위에서 섞기 어렵습니다. 반면 기름은 늦게 마르므로,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색을 겹치고 문질러 경계 없는 단계를 만들 수 있습니다. 반 에이크가 한 일이 바로 이 긴 건조 시간을 이용해 젖은 채로 색을 섞으며 빛과 그늘의 미세한 차이를 얻어낸 것입니다.

같은 원리가 뒤에 나올 스푸마토와 이어집니다. 안개처럼 부드러운 경계는 붓질의 재주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늦게 마르는 재료가 있어야 가능한 결과입니다.

북유럽 르네상스

  15세기경 이탈리아와는 별도로 네덜란드, 독일 등 북유럽에서도 르네상스가 시작되었습니다. 북유럽 르네상스는 이탈리아처럼 고전적인 이상미를 추구하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현실을 극도로 정교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특히 유화 기법의 발전과 판화 예술의 탄생을 통해 미술의 대중화를 이끌었습니다. 대표적인 화가로는 판화의 거장 알브레히트 뒤러, 최고의 초상화가 한스 홀바인, 그리고 마티아스 그뤼네발트 등이 있습니다.

북유럽의 정밀함이 어디까지 갔는지는 얀 반 에이크의 1434년작 부부 초상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참나무 판에 유채로 그린 이 그림은 세로 82.2cm, 가로 60cm로 그리 크지 않은데, 그 안에 놋쇠 상들리에의 반사와 볼록 거울에 비친 방 전체가 들어 있습니다. 지금은 런던에 있고, 1842년에 600파운드로 구입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제단화의 형식과 나란히 보면 북유럽 회화가 실내 공간을 다루는 방식이 더 분명해집니다.

두 갈래의 차이를 한눈에

  • 이탈리아: 이상적 비례와 고전 부활 · 프레스코와 대형 벽화 · 인체 해부와 선원근법 · 후원자는 메디치 가문과 교황청
  • 북유럽: 눈앞의 사물을 정밀하게 재현 · 판넬 유채와 판화 · 세부 묘사와 광택의 재현 · 후원자는 도시의 상인과 시민

판화가 바꾼 것, 그림이 여러 장이 되다

판화는 같은 이미지를 여러 장 찍어낼 수 있게 만든 기술이며, 이것이 북유럽 르네상스가 미술의 대중화를 이끌었다고 평가받는 실질적인 이유입니다. 그림 한 점은 한 사람이 가지면 끝이지만, 판화는 수백 장이 여러 도시로 흩어집니다.

알브레히트 뒤러의 목판 연작 묵시록은 1498년에 나왔고, 1513년과 1514년에 제작한 세 점의 인그레이빙은 뒷날 마이스터슈티헤, 곧 대표 판화로 묶여 불립니다. 그중 하나인 멜렌콜리아 I은 세로 24cm, 가로 18.8cm에 지나지 않습니다. 손에 들고 볼 수 있는 크기라는 점이 이 매체의 성격을 그대로 말해 줍니다.

기법도 구분해 둘 만합니다. 목판(우드컷)은 나무판에서 찍히지 않을 부분을 파내고 남은 면에 잉크를 묻히는 볼록판이고, 인그레이빙은 금속판에 직접 홈을 파서 그 홈에 잉크를 채워 찍는 오목판입니다. 목판은 굵은 선과 강한 흑백 대비에, 인그레이빙은 가늘고 촘촘한 선에 유리합니다. 뒤러의 두 계열을 나란히 보면 이 차이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대표 작품 소개

 마사치오 / 성 삼위일체 (1425~1427)  ✔  자세한 내용을 보시려면 클릭하세요!

  초기 르네상스의 대표작으로, 수학적인 원근법을 회화에 완벽하게 적용한 최초의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에 있으며, 평면의 벽에 실제 공간이 있는 듯한 깊이감을 만들어냈습니다.

실제 크기는 세로 667cm, 가로 317cm입니다. 사람 키의 네 배 가까운 벽면이라는 뜻이고, 그래서 관람자는 그림을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올려다보게 됩니다. 아래에서 위를 보는 시선을 전제로 작도되었기 때문에, 도판으로 정면에서 볼 때보다 성당에서 직접 볼 때 깊이감이 훨씬 강하게 작동합니다.

마사치오의 성삼위일체를 보여주는 이미지
마사치오의 <성삼위일체>

레오나르도 다빈치 / 모나리자 (1503~1506)  ✔  자세한 내용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초상화로, 인물의 신비로운 미소와 배경을 안개처럼 부드럽게 처리하는 '스푸마토' 기법을 통해 르네상스 회화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이 그림은 캔버스가 아니라 포플러 나무판에 유채로 그렸고, 크기는 세로 79.4cm, 가로 53.4cm입니다. 앞의 벽화와 나란히 놓으면 차이가 분명해집니다. 마사치오의 벽화는 건물의 일부이고, 이 초상은 들고 옮길 수 있는 물건입니다. 현재는 루브르 회화부 소장품으로 드농관 711번 전시실에 있으며 소장 번호는 INV 779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보여주는 이미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미켈란젤로 / 다비드 (1501-1504)
  고대 그리스 로마의 이상적인 인체 비례를 부활시킨 르네상스 최고의 조각상입니다. 해부학적 정확성과 완벽한 균형미를 통해 인간 중심의 시대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흰 대리석으로 깎았고 받침을 포함한 높이는 517cm, 무게는 5,560kg입니다. 지금은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있고 소장 번호는 Inv. Scult. n. 1076입니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조각상을 보여주는 이미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조각상

라파엘로 / 아테네 학당 (1510~1511) ✔  자세한 내용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과 당대 예술가들의 모습을 한자리에 그려 인문주의의 이상을 집대성한 작품입니다. 바티칸 궁의 '서명의 방'을 장식하고 있는 이 벽화는 조화와 균형이라는 르네상스 고전주의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프레스코이며 크기는 세로 500cm, 밑변 770cm입니다. 벽 위쪽이 아치로 둥글게 마무리되는 형태라 밑변이 가장 넓습니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을 보여주는 이미지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다비드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다비드 제작은 1501년 8월 16일에 피렌체 대성당 관리국이 미켈란젤로에게 맡기면서 시작되었고, 보수는 400두카트였습니다. 완성 뒤인 1504년 1월 25일에는 설치 장소를 정하기 위한 위원회가 열렸는데, 그 자리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 산드로 보티첼리, 필리피노 리피, 페루지노 같은 당대 화가들이 참여했습니다. 위원회는 이 조각을 베키오 궁 입구에 세우기로 결정했고, 조각상은 1504년 9월 8일 시민들에게 공개되었습니다.

앞의 본문에서 이들을 3대 천재로 소개했는데, 그중 두 사람이 같은 위원회 자리에 앉아 한 조각의 위치를 두고 의논했다는 사실은 이 시기 피렌체의 규모를 보여줍니다. 미술사가 나중에 정리한 이름들이 당시에는 같은 도시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흰 대리석 표면도 원래 모습 그대로는 아닙니다. 처음에는 머리의 화관, 오른쪽 다리 뒤의 그루터기, 그리고 손에 쥔 무릿매의 일부가 금박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야외에 서 있는 동안 이 금박은 사라졌고, 조각은 400년 가까이 광장에서 비바람을 맞다가 1873년에 실내로 옮겨졌습니다. 지금 시뇨리아 광장에 서 있는 것은 복제상입니다. 대리석은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정밀 세정을 거쳤습니다.

아테네 학당이 걸린 방

아테네 학당은 벽에 걸린 그림이 아니라 벽 자체에 그린 프레스코이고,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발주로 1509년부터 1511년 사이에 제작되었습니다. 이 방은 스탄차 델라 세냐투라, 우리말로 서명의 방이라 불립니다.

방 전체를 함께 보면 이 그림의 자리가 달라 보입니다. 아테네 학당은 네 벽 가운데 한 면일 뿐이고, 맞은편과 양옆에는 신학과 시와 법을 각각 주제로 삼은 벽화가 함께 있습니다. 철학을 다룬 한 면만 떼어 보면 이 방이 인간 지식의 영역을 나누어 배치한 공간이라는 설계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배치는 앞서 본 다른 작품들과도 이어집니다. 마사치오의 벽화가 예배당의 한 부분이었듯, 이 시기의 큰 그림들은 대체로 특정한 방과 특정한 자리를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미술관에 옮겨 걸 수 있는 그림이 표준이 된 것은 그 뒤의 일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르네상스는 언제 어디서 시작되었나요?

르네상스 미술은 15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시작되어 16세기에 로마와 베네치아로 중심이 옮겨 갔습니다. 같은 시기 네덜란드와 독일에서는 이탈리아와 별개로 북유럽 르네상스가 진행되었습니다.

Q. 원근법을 회화에 처음 적용한 작품은 무엇인가요?

마사치오의 성 삼위일체가 수학적 원근법을 회화에 온전히 적용한 최초의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벽에 그린 프레스코이며 크기는 667 x 317cm입니다.

Q. 유화는 얀 반 에이크가 발명했나요?

발명자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기름으로 안료를 개는 방식은 그 이전에도 알려져 있었고, 반 에이크는 늦게 마르는 성질을 이용해 젖은 상태로 색을 섞는 방법을 정교하게 발전시킨 선구자로 서술됩니다.

Q.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는 얼마나 큰가요?

받침을 포함한 높이가 517cm이고 무게는 5,560kg입니다. 흰 대리석으로 1501년부터 1504년까지 제작했으며 지금은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있습니다.

Q. 시뇨리아 광장의 다비드는 진품인가요?

복제상입니다. 원본은 1504년부터 광장에 서 있다가 1873년에 실내로 옮겨졌고, 그 자리에는 복제상이 놓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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