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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화가 렘브란트, 고난의 세월을 담은 <사도 바울풍의 자화상> — Art is long

빛의 화가 렘브란트, 고난의 세월을 담은 <사도 바울풍의 자화상>

  빛의 화가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는 명성과 부를 누리던 젊은 시절부터, 주변의 관심을 잃고 가난에 시달린 노년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그가 남긴 자화상은 유화, 드로잉, 판화를 합쳐 80여 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위작도 많아 정확한 작품 수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초기에는 화법을 연구하기 위해 모델료를 지불할 필요가 없는 자신의 다양한 표정을 그렸습니다. 그는 자화상을 그리기 위해 작업실에 의상과 소품까지 준비해 놓았으며, 비꼬는 표정, 익살맞은 표정, 야심만만한 청년, 왕, 부유한 상인, 거지, 사도 바울의 모습, 숨이 넘어갈 듯 웃는 모습 등 기발한 발상으로 자신의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렘브란트는 왜 이렇게 평생 동안 많은 자화상을 그린 것일까요? 그 이유를 우리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의 자화상 속에서 렘브란트의 성격이나 인품, 심지어는 가치관의 변화까지 읽어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풍 자화상>이란 작품을 보여주는 이미지
<사도 바울풍의 자화상 > 1661년, 91x77cm,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


  〈사도 바울풍의 자화상〉은 렘브란트가 세상을 떠나기 8년 전인 1661년에 자신을 성경 속 인물인 사도 바울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터번을 쓴 노인의 모습으로, 깊게 패인 주름과 희끗희끗 바랜 머리카락과 수염이 세월의 흔적을 뚜렷이 보여줍니다. 입술은 굳게 다물고 있고, 눈은 깊은 생각과 경험을 그윽하게 담고 있습니다. 지나온 날의 굴곡이 심했던 듯한 얼굴은 고독해 보이기도 하고,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을 표정으로 대신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말년의 렘브란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헌신적이었던 두 번째 아내 헨드리키에와 유일하게 장성했던 아들 티투스마저 먼저 세상을 떠났으며, 대중들에게 그의 그림은 점점 잊혀 가며 경제적으로는 파산 상태에 있었습니다. 렘브란트가 죽었을 때의 기록에 의하면 화구 하나, 옷 한 벌, 손수건 여덟 장, 성경 한 권이 그가 남긴 유산의 전부였다고 합니다.

 

  생의 마지막 길목에서 렘브란트는 왜 사도 바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그렸던 것일까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유대인이었던 바울은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다가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예수를 만나 회개하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인물입니다. 그림 속 렘브란트는 바울의 상징인 순교의 칼을 쥐고, 품에는 그의 서신(Epistles)을 상징하는 두루마리를 품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는 화가로서의 성공과 실패를 모두 겪은 자신의 삶을, 예수를 박해하던 자에서 위대한 사도가 된 바울의 극적인 삶에 빗대어 표현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요? 아니면 풍요로울 때나 가난할 때나 변함없는 자신의 신앙과 가치관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요?

 

   이렇게 렘브란트의 자화상에 대한 글을 작성하면서, 만약 나 자신을 그린다면 어떤 인물에 빗대어 또 어떤 모습으로 그리게 될지 고민하게 하는 깊은 여운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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