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밥티스트 그뢰즈의 기타 연주자, 최고를 위한 몰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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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장 밥티스트 그뢰즈(Jean-Baptiste Greuze, 1725~1805)
• 작품명: 기타 연주자(1757년 살롱 출품 당시 원제 Un Oiseleur qui, au retour de la chasse, accorde sa Guitarre, 사냥에서 돌아와 기타를 조율하는 새사냥꾼)
• 제작: 1757년 살롱 출품 · 제작 시기를 1755~1757년으로 적는 자료도 있습니다
• 재료: 캔버스에 유화
• 크기: 약 64 × 48cm(바르샤바 국립박물관본, 미술관 기록 간 62~64cm로 소폭 차이)
• 소장: 바르샤바 국립박물관, 소장품 번호 M.Ob.914 / 낭트본은 루브르 회화부 소속(MNR 83)으로 낭트 미술관에 위탁 전시

사냥에서 막 돌아온 사내가 겉옷도 벗지 않은 채 의자에 앉자마자 악기부터 움켜쥐었습니다. 몸을 한껏 비틀어 귀를 악기에 바짝 붙인 자세는 무언가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장 밥티스트 그뢰즈의 〈기타 연주자〉(1757)라는 제목만 보면 흥겨운 연주 장면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 남자의 손과 귀는 지금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장 밥티스트 그뢰즈 기타 연주자 1757년 남자가 기타 튜닝 페그를 조율하는 장면

장 밥티스트 그뢰즈, 〈기타 연주자〉, 1757년, 캔버스에 유화.

그뢰즈 기타 연주자, 연주가 아니라 조율이다

오른손 손가락은 기타 머리 부분의 튜닝 페그를 붙잡고 있습니다. 왼손은 프렛판이 아니라 몸통과 현이 만나는 아래쪽을 받치듯 잡고 있어, 화음을 짚는 모양이라기보다 손끝으로 현의 진동과 장력을 함께 가늠하는 자세에 가깝습니다. 고개는 기타 몸통 쪽으로 기울어 귀가 악기에 바짝 붙어 있습니다. 눈으로 악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귀로 음을 확인하는 순간입니다.

제목도 이 장면을 가리킵니다. 1757년 살롱에 걸렸을 때의 원제는 〈사냥에서 돌아와 기타를 조율하는 새사냥꾼〉이었습니다. 지금 흔히 쓰는 〈기타 연주자〉라는 제목에서는 두 가지가 지워져 있습니다. 이 남자의 직업과, 이 장면이 사냥에서 돌아온 직후라는 시간입니다.

그뢰즈 기타 연주자 악기 머리의 줄감개와 붉은 술 그리고 페그를 잡은 손 확대

악기의 머리. 줄감개가 여럿 박혀 있고 붉은 술이 달려 있으며, 손가락이 줄감개 하나를 잡고 돌린다.

악기 자체도 오늘 우리가 아는 기타와는 다르게 생겼습니다. 머리 부분에 줄감개가 여러 개 박혀 있어 여섯 줄 기타와는 수가 맞지 않고, 붉은 술이 하나 달려 있습니다. 프렛보드가 짧은 편이라는 점도 눈에 띕니다. 18세기 중반의 기타는 오늘의 기타로 곧장 이어지는 물건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이 정확히 어떤 계통의 악기인지까지는 이 화면만으로 정하기 어렵습니다.

옷차림도 이 순간의 성격을 말해 줍니다. 파란 겉옷이 어깨에서 흘러내려 바닥까지 늘어져 있고, 한쪽 팔은 소매에서 빠져나와 흰 셔츠 소매가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겉옷을 다 벗지 않은 채로 앉은 자세는, 이 남자가 방금 어딘가에서 돌아와 자리에 앉자마자 기타부터 집어 든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

그뢰즈 기타 연주자 분홍과 크림과 올리브 초록의 세로 줄무늬 반바지 확대

반바지는 분홍과 크림과 올리브 초록이 세로로 교차하는 줄무늬다. 어두운 실내에서 눈에 띄는 색이다.

흰 상의 아래로 보이는 반바지는 분홍과 크림과 올리브 초록이 세로로 교차하는 줄무늬입니다. 어두운 실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색입니다. 사냥에서 돌아온 사람의 옷이라기에는 화려한데, 그 화려함과 곁에 놓인 사냥 도구가 한 사람에게 같이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악기를 보고 있지 않다

여기까지는 조율에 몰두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얼굴을 확대해 보면 예상과 다른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귀는 악기에 가까이 있는데, 눈은 뜨여 있고 화면 밖을 향합니다. 악기를 보고 있지 않습니다. 눈꺼풀이 내려와 있지도 않습니다. 그림 앞에 선 사람은 그 시선을 자기 쪽으로 받게 됩니다.

그뢰즈 기타 연주자 남자의 얼굴 확대 귀는 악기에 붙어 있고 눈은 화면 밖을 향한다

남자의 얼굴. 귀는 악기에 가까이 있는데 눈은 화면 밖을 향한다.

조율하는 사람과 이쪽을 보는 사람이 한 얼굴 안에 같이 있습니다. 그 시선이 무엇을 뜻하는지, 누구를 보는 것인지는 화면이 말해 주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이 장면은 남자가 혼자 있는 방을 우리가 몰래 들여다보는 구도가 아닙니다.

탁자와 바닥에 놓인 것들

화면 왼쪽은 이 남자의 일이 쌓여 있는 자리입니다. 탁자 위, 탁자 아래, 그리고 오른쪽 벽까지 사냥의 흔적이 흩어져 하나의 환경을 이룹니다.

탁자 위에는 머리에 긴 깃 한 가닥이 솟은 새가 날개를 펴고 누워 있고, 그 곁에 끈에 매달려 탁자 밖으로 늘어진 새가 하나 더 있습니다. 둥근 초록 유리병, 버들로 엮은 바구니, 나무 살을 촘촘히 세워 만든 새장, 사다리 모양의 나무 틀, 그리고 긴 막대 하나가 함께 놓여 있습니다.

그뢰즈 기타 연주자 탁자 위의 새와 초록 유리병과 버들 바구니와 나무 살 새장 확대

탁자 위. 긴 깃이 솟은 새, 끈에 매달린 새, 초록 유리병, 버들 바구니, 나무 살로 짠 새장이 놓여 있다.

탁자 아래 바닥에는 검고 흰 새 한 마리가 부리를 아래로 떨군 채 놓여 있습니다. 그 아래에 깔린 것이 중요합니다. 둥글게 감은 그물과 밧줄입니다. 새를 잡은 도구와 잡힌 새가 한자리에 함께 있습니다.

그뢰즈 기타 연주자 바닥에 놓인 검고 흰 새와 둥글게 감은 그물과 밧줄 확대

바닥. 검고 흰 새가 부리를 떨군 채 둥글게 감은 그물과 밧줄 위에 놓여 있다.

그림의 원제가 〈사냥에서 돌아와 기타를 조율하는 새사냥꾼〉이라는 것을 여기서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남자의 정체가 취미로 기타를 치는 젊은이가 아니라 막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새사냥꾼이라는 것을 제목과 화면이 함께 말해 줍니다. 한쪽 소매만 벗은 자세는 그래서 다급함의 흔적입니다. 짐을 다 정리하기도 전에 기타 소리부터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앞선 것입니다.

기타 연주자의 빛과 어둠

빛은 화면 왼쪽 위에서 들어옵니다. 왼쪽 벽이 밝은 잿빛으로 떠 있고, 남자의 얼굴과 흰 상의, 페그를 쥔 손가락에 빛이 모입니다. 바닥에 놓인 새의 흰 가슴에도 같은 방향에서 빛이 닿습니다.

어두운 쪽은 반대편입니다. 화면 오른쪽 구석은 갈색에 가까운 검은 공간이고, 그 안에 벽에 기대 세워 둔 그물과 긴 장대가 윤곽만 겨우 보일 만큼 묻혀 있습니다. 실제로 화면에서 가장 알아보기 어려운 부분이 여기입니다.

그뢰즈 기타 연주자 오른쪽 어두운 구석에 벽에 기대어 세워 둔 그물과 장대 확대

오른쪽 구석. 벽에 기대 세운 그물과 장대가 어둠에 묻혀 윤곽만 남는다.

반대로 왼쪽 탁자의 정물은 뭉개져 있지 않습니다. 새의 깃 한 가닥, 유리병 표면의 반사, 버들 바구니의 결까지 촘촘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어두운 데 두고 흐리게 처리한 쪽은 오른쪽이고, 왼쪽은 오히려 공들여 그린 자리입니다.

그러니까 이 화면에서 그뢰즈가 밀어 넣은 것은 사냥 도구이고, 끌어낸 것은 남자와 악기, 그리고 탁자 위의 물건들입니다. 조금 전까지의 일은 어둠 속에 두고, 지금 이 순간 손과 귀가 붙들고 있는 것에 빛을 모았습니다.

그뢰즈의 같은 그림이 두 도시에 있는 이유

그뢰즈는 이 그림을 1757년 파리 살롱에 냈습니다. 지금 이 구도의 그림은 두 도시에 있습니다. 하나는 바르샤바 국립박물관에 소장품 번호 M.Ob.914로 있고, 다른 하나는 프랑스 낭트 미술관에 걸려 있습니다. 다만 낭트본은 낭트 미술관의 소유가 아닙니다. 루브르 회화부에 배정된 작품(MNR 83)이고 낭트에는 위탁되어 있습니다. 이 점은 마지막 절에서 다시 다루겠습니다.

그런데 이 두 점의 관계에 대해서는 기록이 갈립니다.

한쪽은 프랑스 국립 기록입니다. 루브르가 관리하는 낭트본의 공식 표기는 작가란에 「프랑스 화파, 그뢰즈, 장 밥티스트(?)」처럼 물음표를 붙여 그뢰즈 귀속 자체를 확정하지 않고, 이력란에는 이 그림을 1757년 살롱에 출품된 바르샤바본의 「오래된 복제 또는 모사」로 적습니다. 이 기록을 따르면 살롱에 걸린 원작은 바르샤바본이고 낭트본은 그 뒤에 나온 사본입니다.

다른 쪽은 이와 반대로 적습니다. 국내에 나온 미술 서적 가운데는 그뢰즈가 이 그림을 두 버전으로 제작했고 1757년 파리 살롱에서 두 작품을 모두 처음 전시했다고 쓴 것이 있습니다. 이 서술을 따르면 낭트본도 그뢰즈 본인의 손으로 그린 두 번째 작품이 됩니다.

어느 쪽이 옳은지 여기서 가릴 수는 없습니다. 확인되는 것은 두 기록이 서로 다르게 적는다는 사실까지입니다. 다만 그 작품을 관리하는 쪽이 자기 소장품의 작가란에 물음표를 남겨 두었다는 점은 그 자체로 말해 주는 바가 있습니다. 확정하지 못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덧붙여 이 그림의 예비 그림이 파리 국립도서관에 보존되어 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완성작에 앞서 구도를 잡아 본 밑그림이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제작 시기를 1757년 한 해가 아니라 그뢰즈가 로마에 머물던 1755년에서 1757년 사이로 적는 자료도 있습니다.

낭트본의 치수가 문서마다 다르게 적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기보다 표기 방식의 차이입니다. 화폭 자체는 세로 71cm, 가로 56cm이고, 가로를 81cm로 적은 문서는 액자까지 재어 약 95 × 81cm로 표기한 것입니다. 바르샤바본이 약 64 × 48cm이니, 두 점은 크기도 같지 않습니다.

낭트의 그림에 딸린 또 하나의 이야기

낭트 미술관에 있는 그림에는 화면 안의 이야기와 별개로, 그림 자체의 사연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 그림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로 반출되었다가 종전 후 프랑스로 돌아온 이른바 MNR(국가회수문화재) 작품입니다.

공식 기록에 따르면 1941년 9월 독일 크레펠트의 카이저 빌헬름 미술관에 팔려 나갔다가, 1948년 3월 뒤셀도르프발 첫 반환 수송편으로 프랑스에 돌아왔습니다. 이후 1950년 루브르 회화부에 배정되었고, 1953년부터 낭트 미술관에 위탁 전시되어 지금까지 정당한 소유자를 찾는 절차가 끝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러니 이 그림에는 확정되지 않은 것이 둘 있는 셈입니다. 누가 그렸는지와 누구의 것인지입니다. 조율에 몰두한 남자를 그린 그림이, 정작 자기 이름과 주인을 팔십 년 가까이 확인받지 못한 채 낭트의 벽에 걸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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