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스 〈춤 I〉, 다섯 몸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그린 원
캔버스의 위쪽 절반은 깊고 진한 파랑이다. 아래쪽 절반은 풀밭처럼 짙은 초록. 그 경계선 위에서, 다섯 개의 몸이 원을 그리며 돌고 있다. 인물들의 피부는 밝은 분홍빛과 살구빛 사이에 놓여 있고, 배경에는 나무도 없고 건물도 없고 지평선도 모호하다. 하늘과 땅, 그 사이에 몸만 있다.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의 〈춤 I(La Danse I)〉이다. 1909년 작, 가로 390cm에 달하는 이 대형 유화는 현재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소장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그림을 한 번쯤 보았지만, 정작 이 그림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누가 의뢰했고 왜 두 번 그려졌으며 제한된 색이 어떤 계산 위에 놓였는지를 아는 이는 드물다.
| 앙리 마티스, 〈춤 I〉, 1909. 캔버스에 유채, 260.4×390.4cm. 뉴욕 현대미술관 소장. |
모스크바의 수집가, 파리의 화가: 슈추킨의 의뢰
1909년 3월, 러시아의 섬유 사업가이자 전위적 컬렉터인 세르게이 슈추킨(Sergei Shchukin, 1854~1936)은 자신의 모스크바 저택 계단참을 장식할 대형 패널을 마티스에게 의뢰했다. 그는 이미 마티스의 작품을 수집하고 있었고, 피카소와 세잔을 비롯한 프랑스 현대미술도 함께 모으고 있었다. 최종적으로 정해진 주제는 춤과 음악이었다.
슈추킨의 저택은 단순한 개인 공간이 아니었다. 그의 수집품은 러시아 혁명 이전 일주일에 하루 일반에게 공개됐고, 모스크바의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이 살아 있는 미술관을 드나들었다. 계단참에 걸릴 그림은 저택 안으로 들어온 방문객을 맞으며 건축 공간 전체와 함께 작동하는 대형 장식화였다.
마티스는 의뢰받은 최종작과 거의 같은 크기의 캔버스에 〈춤 I〉을 빠르게 그려 전체 구성을 탐색했다. 이 작품은 소형 밑그림이 아니라, 다섯 몸과 원형 움직임이 대형 화면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시험한 구성 연구였다. 마티스는 1910년 최종 패널 〈춤 II〉에서 인물색을 더 짙은 적색 계열로 밀어붙이고, 파랑과 초록의 대비도 한층 강하게 만들었다. 〈춤 II〉와 짝을 이루는 〈음악〉은 슈추킨의 저택에 설치됐고, 〈춤 I〉은 마티스에게 남아 있다가 훗날 MoMA에 들어갔다.
마티스가 모스크바를 방문한 때는 두 패널이 완성된 뒤인 1911년이다. 〈춤 II〉와 〈음악〉도 그해 슈추킨 저택에 설치됐다. 따라서 현장의 빛과 공간을 본 뒤 〈춤 II〉의 색을 수정했다는 이야기는 연대와 맞지 않는다. 다만 이 작품들이 처음부터 계단참이라는 건축적 장소를 전제로 설계됐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제한된 색, 다섯 개의 몸: 구성의 해부
〈춤 I〉을 처음 보는 사람이 받는 인상은 단순하다는 것이다. 배경에 구체적인 묘사가 없고, 전통적인 원근법도 없으며, 그림자도 거의 없다. 화면은 파랑과 초록, 연분홍과 검정이라는 제한된 팔레트로 조직되어 있다. 그러나 이 단순함은 무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정보를 걷어 내고 선과 색과 형태의 작용을 남긴 결과다.
색채의 구조: 파랑·초록·연분홍의 역할 분담
마티스는 1908년 〈화가의 노트(Notes d'un peintre)〉에서 한 색조가 다른 색조를 약화하지 않도록 화면 전체의 관계와 균형을 조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춤 I〉은 색을 자연의 표면에 맞추기보다, 서로 다른 색면이 함께 작동하도록 배치한 그림이다.
파랑은 넓은 공간을 열고, 초록은 인물들의 발밑에서 완만한 언덕을 만든다. 연분홍빛 인물들은 두 배경 위로 떠오르며, 검은 머리와 윤곽은 몸의 방향을 분명하게 잡는다. 색의 수는 적지만 넓은 색면 사이의 대비가 커서 화면은 조용히 머무르지 않는다. 각 색은 다른 색과 맞부딪치며 전체를 하나의 리듬으로 묶는다.
〈춤 I〉과 〈춤 II〉를 비교하면 이 전략이 더욱 선명해진다. 〈춤 I〉의 인물들은 옅은 분홍빛과 살구빛에 가깝고, 배경의 초록도 상대적으로 부드럽다. 〈춤 II〉에서는 인물들이 더 짙은 적색으로 바뀌고, 파랑과 초록의 대비도 강해진다. 이 차이는 슈추킨의 색채 강화 요구로 확인된 결과가 아니라, 마티스가 구성 연구를 최종 장식 패널로 발전시키며 내린 조형적 선택으로 보는 편이 정확하다.
다섯 인물과 하나의 열린 손: 원의 긴장감
다섯 인물은 원을 형성하며 춤을 춘다. 주의 깊게 보면, 화면 앞쪽 아래에 위치한 두 인물의 손이 서로 닿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원이 완전히 닫히지 않은 것이다.
이 열린 손에 대한 해석은 나뉜다. 한편에서는 원이 이미 완성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이루어지는 중이며, 관람자도 그 움직임 안으로 끌려 들어간다고 읽는다. 다른 한편에서는 〈춤 I〉이 구성 연구의 성격을 지닌 만큼, 최종작으로 가기 전의 미결 상태가 남은 것으로 보기도 한다. 어느 한쪽으로 확정되지는 않지만, 이 작은 간극은 그림에 정적인 포즈 대신 운동감과 불완전한 긴장을 부여한다.
인물의 해부학은 의도적으로 단순화되어 있다. 근육의 세부나 얼굴 표정, 나이와 성별을 판단할 만한 개별적 특징이 거의 없다. 이 인물들은 특정 개인의 초상이라기보다 춤추는 몸 자체에 가깝다. 마티스는 인체를 사실적으로 설명하기보다 움직임과 에너지를 몇 개의 윤곽으로 압축했다.
| 왼쪽 〈춤 I〉, 1909, MoMA. 오른쪽 〈춤 II〉, 1909~1910, 에르미타시 미술관. 같은 원형 구성에서 색채의 강도가 달라진다. |
원의 기억: 사르다나와 오래된 형식의 비교
마티스의 원형 무용 이미지는 어디서 왔는가. 확인 가능한 출발점은 1905년 여름 콜리우르에서 본 카탈루냐 민속무 사르다나다. 여기에 고대 도기화와 고갱의 인물화를 나란히 놓으면, 〈춤〉의 형식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겼는지 더 분명하게 볼 수 있다.
고대 그리스 도기화에서는 인물이 빈 배경 위에 윤곽으로 또렷하게 놓이고, 몸의 연속된 자세가 장면의 리듬을 만든다. 이런 특징은 〈춤〉의 평면적 인물 배치와 형식적으로 비교할 수 있다. 다만 마티스가 특정 도기나 군무 장면을 직접 본떠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단정할 자료는 충분하지 않다.
더 분명한 연결은 카탈루냐 민속무 사르다나(Sardana)다. 마티스는 1905년 여름 지중해 연안의 콜리우르에서 어부들이 해변에 원을 이루어 추는 사르다나를 보았다. 손을 잇고 원을 만드는 대형과 집단의 리듬은 이후 마티스의 춤 모티프에서 반복됐다. 〈춤 I〉에서는 그 기억이 특정 장소의 풍속 장면이 아니라, 파랑과 초록 사이를 도는 다섯 몸의 구조로 압축되어 있다.
폴 고갱(Paul Gauguin)의 평면적 색채와 단순화된 인물화도 비교 대상이 된다. 고갱은 배경의 깊이를 줄이고 넓은 색면과 윤곽으로 인물을 조직했다. 마티스 역시 세부 묘사를 줄였지만, 〈춤 I〉에서는 특정 문화와 장소를 설명하는 표지가 거의 사라지고 몸과 색의 관계만 남는다. 두 화가의 형식은 나란히 놓고 볼 수 있지만, 〈춤 I〉이 특정 고갱 작품을 직접 계승했다고 확정하기는 어렵다.
편안한 안락의자를 꿈꾼 화가와 이 그림의 긴장
마티스는 1908년 〈화가의 노트〉에서 예술이 피로한 사람이 쉬어 갈 수 있는 편안한 안락의자와 같기를 바란다고 썼다. 이 말 때문에 마티스의 그림을 갈등과 거리를 둔 안온한 장식으로만 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춤 I〉의 단순함은 편안함을 쉽게 얻기 위한 생략이 아니다.
1909년 피카소가 입체주의의 언어로 대상을 해체하고 있었다면, 마티스가 선택한 것은 환원이었다. 인간의 기쁨과 움직임을 가장 적은 선과 색으로 되돌려 놓는 것, 불필요한 것을 걷어 내고 색과 몸만 남기는 것. 〈춤 I〉의 화면은 단순해 보이지만, 다섯 인물의 간격과 팔의 곡선, 파랑과 초록의 경계가 조금만 달라져도 원의 균형은 무너진다.
어린아이도 이 그림에서 춤을 알아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즉각적인 인식 뒤에는 거대한 화면을 몇 개의 색면과 윤곽으로 붙들어 놓은 계산이 있다. 마티스가 말한 평온은 복잡성을 피한 결과가 아니라, 복잡한 조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상태에 가깝다.
미술사 안의 〈춤 I〉: 야수파의 색에서 추상미술의 문턱까지
야수파(Fauvism)는 1905년 살롱 도톤느에 출품된 마티스와 앙드레 드랭 등의 강렬한 색채 회화를 두고 비평가 루이 복셀이 야수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붙은 이름이다. 이들은 선언문과 조직을 갖춘 공식 운동이라기보다, 자연색에 얽매이지 않는 색과 굵은 붓질을 공유한 느슨한 작가 집단이었다.
〈춤 I〉은 야수파에서 시작된 색채의 해방을 대형 장식화의 언어로 확장한다. 배경의 깊이는 거의 사라지고, 인물과 공간은 넓은 색면과 윤곽으로 나뉜다. 이런 평면화와 제한된 색면은 훗날의 추상회화와 나란히 놓고 비교할 수 있다. 다만 마티스에서 로스코나 케네스 놀런드로 이어지는 직접 계보를 단정하기보다, 색면이 화면 전체를 조직하는 서로 다른 방식을 비교하는 편이 정확하다.
슈추킨 저택이 일주일에 하루 공개됐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모스크바의 예술가들은 그곳에서 프랑스 현대미술을 직접 접할 수 있었다. 마티스의 대형 장식화와 강렬한 색채는 러시아 전위미술이 형성되던 시각 환경의 일부였다. 그러나 말레비치나 곤차로바의 특정 작품을 〈춤〉의 직접 결과로 단정할 수는 없다.
어떻게 볼 것인가: 감상 가이드
MoMA를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춤 I〉 앞에 잠시 머물러 보기를 권한다. 이 그림은 멀리서 볼 때와 가까이 다가섰을 때 전혀 다른 경험을 준다.
첫 번째 시선, 전체에서: 두 팔을 높이 든 인물에서 시작해 좌우로 이어진 팔의 곡선을 따라가면 원형 움직임을 쉽게 추적할 수 있다. 몸의 자세는 서로 다르지만, 팔과 다리가 다음 인물의 방향을 받아 넘기며 하나의 회전을 만든다.
두 번째 시선, 손에서: 화면 아래쪽에서 서로 닿지 않는 두 손을 찾아보자. 이 간극은 원이 닫히기 직전의 긴장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는 지점 가운데 하나다. 원이 완전히 닫혀 있다면 움직임은 안정된 고리가 되지만, 열린 채 남아 있기 때문에 이 춤은 아직 진행 중인 것처럼 보인다.
세 번째 시선, 가까이서: 인물의 윤곽선에 다가가면 선이 단호하면서도 고르게 매끈하지 않다는 사실이 보인다. 마티스는 구성 과정에서 여러 부분을 조정했지만, 최종 윤곽은 몸의 세부를 설명하기보다 움직임의 방향을 경제적으로 전달한다.
마지막으로 배경의 파랑과 초록이 만나는 선을 따라 시선을 천천히 움직여 보자. 이 경계는 지평선을 연상시키지만 구체적인 장소를 확정하지 않으며, 화면을 두 개의 넓은 색면으로 나눈다. 현실의 풍경을 자세히 묘사하지 않아도, 다섯 몸은 이 단순한 경계 위에서 하늘과 땅 사이를 도는 존재가 된다.
작품 핵심 정리
- 작품명·연도: 〈춤 I〉, 1909년 초, 캔버스에 유채, 260.4×390.4cm
- 소장처: 뉴욕 현대미술관(MoMA)
- 의뢰 배경: 슈추킨이 주문한 최종 〈춤〉과 〈음악〉을 위한 대형 장식 프로젝트
- 작품 성격: 최종 〈춤 II〉의 구성을 탐색한 대형 연구작이면서 독립적인 긴장을 지닌 작품
- 색채 구조: 파랑·초록·연분홍·검정으로 제한된 팔레트
- 핵심 장면: 닿지 않은 두 손이 만드는 열린 원과 계속되는 움직임
- 미술사적 위치: 야수파의 색채 해방을 평면적 대형 장식화로 확장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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