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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1880년 편지, 새장 속의 새는 무엇을 말했는가

편지 한눈에 보기
· 발신: 빈센트 반 고흐 → 테오 반 고흐
· 번호: 신번호 155 / 1914년판(Brieven aan zijn broeder) 133번
· 작성: 1880년 7월, 벨기에 퀴에메스(몽스 인근)
· 발신 당시 나이: 27세, 무직·무수입 상태
· 저본: 요 판 고흐-봉어 편집 1914년판, Archive.org 공개도메인본(원문 프랑스어)

1880년 7월, 벨기에 퀴에메스의 광부 샤를 드크뤼크의 집. 스물일곱의 빈센트 반 고흐는 직업도 수입도 없이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씁니다. 얼마 전 두 사람이 함께 걸었던 산책길에서 테오가 던진 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때는 우리가 많은 것에 동의했는데, 그 뒤로 너는 많이 변했어, 예전의 네가 아니야." 이 편지는 그 말에 대한 답입니다.

"너는 변했다"는 말에 대한 답장

빈센트는 곧바로 반박합니다. 변한 것은 겉모습일 뿐, 속은 그대로라는 것입니다.

"tu m'as rappelé qu'il y avait un temps où nous étions aussi à nous promener à deux près du vieux canal et moulin de Rijswijk, «et alors» disais-tu «nous étions d'accord sur bien des choses, mais» as-tu ajouté — «depuis lors tu as bien changé, tu n'es plus le même». Hé bien, cela n'est pas tout à fait ainsi, ce qui a changé, c'est qu'alors ma vie était moins difficile, et mon avenir moins sombre en apparence, mais quant à l'intérieur, quant à ma manière de voir et de penser, cela n'a pas changé."

번역: "네가 상기시켰지, 우리가 레이스베이크의 오래된 운하와 물레방아 곁을 함께 거닐던 시절이 있었다고. '그때는' 네가 말했지 '우리가 많은 것에 동의했었는데, 하지만' 너는 이렇게 덧붙였지, '그 뒤로 너는 많이 변했어, 예전의 네가 아니야.' 글쎄, 완전히 그런 건 아니야. 변한 게 있다면 그때는 내 삶이 덜 힘들었고 겉보기에 미래도 덜 어두웠다는 것뿐이야. 하지만 내면으로는, 보고 생각하는 방식으로는 나는 변하지 않았어."

겉으로 드러난 처지, 곧 직업 없음과 불투명한 미래는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내면의 변화와 같은 것으로 보지 말라고 못 박습니다.

그가 실제로 방어한 것

그다음 빈센트가 방어하는 것은 흥미롭게도 '그림'이 아니라 '애정의 대상들'입니다. 그는 렘브란트, 밀레, 들라크루아에 대한 애정이 조금도 식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셰익스피어, 디킨스, 미슐레, 비처 스토 같은 문학에 대한 애정도 나란히 늘어놓습니다. 렘브란트 안에 셰익스피어가 있고, 셰익스피어 안에 렘브란트가 있다는 식의 문장으로, 그는 회화와 문학을 같은 감정의 두 표현으로 묶습니다.

이 대목이 중요한 이유는, 훗날의 서사가 기대하는 것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는 "나는 화가가 되겠다"고 말하는 대신, "나는 여전히 같은 것들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그의 항변은 진로 선언이 아니라 취향과 신념의 항변입니다.

게으름뱅이는 두 종류다

편지의 중심은 곧 자기 규정으로 옮겨 갑니다. 그는 스스로를 세상이 흔히 말하는 '게으름뱅이(fainéant)'로 여기지 않을까 봐 걱정하면서, 게으름뱅이에도 두 종류가 있다고 구분합니다.

"Il y a celui qui est fainéant par paresse et lâcheté de caractère, par la bassesse de sa nature (…) Puis il y a l'autre fainéant, le fainéant bien malgré lui, qui est rongé intérieurement par un grand désir d'action, qui ne fait rien, parce qu'il est dans l'impossibilité de rien faire, puisqu'il est comme en prison dans quelque chose, parce qu'il n'a pas ce qui lui faudrait pour être productif, parce que la fatalité des circonstances le réduit à ce point."

번역: "성격의 게으름과 비겁함으로, 천성의 저열함으로 게으른 자가 있다 (…) 그리고 또 다른 게으름뱅이가 있다. 본의 아니게 게으른 자, 행동하고 싶은 큰 욕구에 안으로 갉아먹히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에 있기 때문에, 무언가에 갇힌 죄수와도 같기 때문에, 생산적이기 위해 필요한 것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상황의 가혹한 운명이 그를 그 지경으로 몰아넣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다."

그는 자신을 후자로 규정합니다. 게으른 것이 아니라 갇혀 있다는 것입니다. 이 '갇힘'이라는 단어가 바로 다음 대목의 비유로 이어집니다.

새장 속의 새

여기서 편지는 이 서한 전체에서 가장 유명한 이미지로 넘어갑니다.

"Un oiseau en cage au printemps sait fortement bien qu'il y a quelque chose à quoi il serait bon, il sent fortement bien qu'il y a quelque chose à faire, mais il ne peut le faire, qu'est-ce que c'est? il ne se le rappelle pas bien, puis il a des idées vagues, et se dit «les autres font leurs nids et font leurs petits et élèvent la couvée», puis il se cogne la crâne contre les barreaux de la cage. Et puis la cage reste là et l'oiseau est fou de douleur."

번역: "봄철 새장 속의 새는 자신이 쓸모 있을 무언가가 있음을 강하게 느낀다. 무언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강하게 느끼지만, 그것을 할 수가 없다. 그것이 무엇인지 자신도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막연한 생각들을 품을 뿐이다. '다른 새들은 둥지를 짓고 새끼를 낳아 기르는데'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이내 제 머리를 새장 창살에 부딪는다. 그래도 새장은 그대로 있고, 새는 고통으로 미쳐 간다."

이어 그는 계절의 변화를 끌어들입니다. 새를 돌보는 아이들은 새장 속 새에게 "부족한 게 없지 않냐"고 말하지만, 철새의 계절이 오면 새는 폭풍우를 머금은 하늘을 바라보며 자기 안에서 운명에 대한 반란을 느낍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스스로도 정확히 모르면서, 지금 있는 곳이 자기 자리가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히 아는 상태, 그것이 이 비유가 그리는 마음입니다.

"나는 새장에 갇혀 있다, 바보들아!"

비유는 곧 새의 목소리를 빌린 절규로 바뀝니다.

"«Je suis en cage, je suis en cage, et il ne me manque donc rien, imbéciles! J'ai tout ce qu'il me faut moi! Ah de grâce, la liberté, être un oiseau comme les autres oiseaux!»"

번역: "'나는 새장에 갇혀 있다, 나는 새장에 갇혀 있다, 그러니 나에게는 부족한 게 없다는 거지, 이 바보들아! 나는 나에게 필요한 걸 다 가지고 있다고! 아, 제발, 자유를, 다른 새들처럼 그냥 한 마리 새가 되는 것을!'"

그는 곧바로 이 비유를 사람에게로 옮겨 옵니다. "게으른 인간은 게으른 새를 닮았다"고 쓰면서, 평판이 훼손됐거나 상황의 가혹한 운명이나 불행이 사람을 이런 식으로 가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감옥에서 벗어나는 길은 우정과 사랑, 깊고 진지한 애정이라고 적습니다. 편지의 결론은 화가가 되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테오에게 보답하고 싶다는 다짐, 언젠가 너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다짐입니다.

편지가 말하지 않은 것

이 편지는 흔히 "반 고흐가 화가가 되기로 결심을 밝힌 편지"로 소개됩니다. 그런데 편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어도, 그림을 그리겠다거나 화가가 되겠다는 문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편지가 실제로 다루는 것은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항변, 갇혀 있다는 감각, 신앙과 사랑에 대한 사유, 그리고 동생에게 보답하고 싶다는 다짐입니다. '화가(peintre)'도 '그리다(peindre)'도 '회화(peinture)'도 이 편지에는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림에 관한 말이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결정적인 대목에서 그가 꺼내 드는 것이 그림입니다.

“ce but devient plus défini, se dessinera lentement et sûrement, comme le croquis devient esquisse et l’esquisse tableau, au fur et à mesure qu’on travaille plus sérieusement”

그 목표는 점점 뚜렷해지고,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윤곽을 드러낼 것이다. 크로키가 스케치가 되고 스케치가 그림이 되듯이, 더 진지하게 일할수록.

여기서 크로키와 스케치와 그림은 그가 하려는 일이 아닙니다. 살아갈 목표가 잡혀 가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한 비유입니다. 자기 인생이 어디로 가는지를 말하려는 순간, 그는 그림 그리는 과정을 끌어옵니다. 화가가 되겠다는 말은 없는데, 생각의 방식은 이미 그림 쪽에 가 있습니다. '예술가(artiste)'라는 단어도 두 번 나오지만, 전도자를 예술가에 빗대거나 '위대한 예술가들'을 가리킬 때이지 자기 자신을 두고 쓴 적은 없습니다.

이 편지 다음에 그가 밀레의 그림을 모사하기 시작하고, 그해 10월 브뤼셀로 떠나 미술을 공부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별도로 확인되는 전기적 사실입니다. "화가 선언 편지"라는 통설은 이 이후의 행적을 알고 있는 후대의 시점에서, 이 편지를 그 행적의 원인으로 역산해 붙인 이름입니다. 편지 자체는 그 결심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편지가 실제로 보여 주는 것은 결심이 아니라,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갈증입니다. 그 갈증에 '그림'이라는 이름이 붙는 것은 이 편지 바깥의 이야기입니다.

확인한 자료

이 글이 인용한 대목의 원문 대조와 출처는 다음과 같습니다.

  • 원문: 『Brieven aan zijn broeder』(1914, 편집 요 판 고흐-봉어), Archive.org 공개도메인본. 편집자가 1925년 사망해 보호기간이 만료된 판본입니다.
  • 인용 대목의 OCR 오식 정정 내역은 이 글 작성 과정에서 전수 대조했습니다(정정 내역은 운영자 기록으로 보관).
  • 편지 밖 전기적 맥락(보리나주·드크뤼크 하숙·1880년 10월 브뤼셀행)은 널리 확인되는 반 고흐 생애 기록을 따랐으며, 이번 작업에서 별도 1차 사료로 재검증하지는 않았습니다.

※ vangoghletters.org은 저작권 보호 대상이라 이 글의 작성 과정에서 열람·참조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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