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미국미술관(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에 세로로 긴 그림이 한 점 있습니다. 회색 하늘 아래 모래빛 길 위에 소녀가 혼자 서 있고, 묶지 않은 머리카락이 등 뒤로 길게 날립니다. 제목은 〈내가 두고 온 소녀〉입니다. 그런데 이 그림이 무엇을 그린 것인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정해지지 않았다는 말은 자료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읽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 읽기가 서로 달랐다는 뜻입니다. 화가가 죽은 이듬해인 1907년에 이 인물을 적어 둔 목록은 그를 암송하러 가는 어린 여학생이라 불렀습니다. 오늘 이 그림을 소장한 미술관은 남북전쟁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제목이 있습니다. 제목은 남북전쟁기 미군이 행진하며 부르던 노래의 이름입니다.
그림은 백오십 년이 넘도록 그대로인데 읽기는 그대로가 아니었습니다. 이 글은 서로 다른 세 읽기를 골라 차례로 따라가 보고, 그다음에 화면으로 돌아가 왜 어느 읽기도 다른 읽기를 이기지 못했는지를 봅니다.
• 제목: 〈내가 두고 온 소녀 The Girl I Left Behind Me〉
• 화가: 이스트먼 존슨(Eastman Johnson), 1824년 미국 메인주 러벨 출생 ~ 1906년 뉴욕 사망
• 연도 표기: 약 1872년. 미술관이 확정하지 않은 추정 연도입니다
• 재질: 캔버스에 유채
• 소장: 스미스소니언 미국미술관, 워싱턴. 현재 전시되고 있지 않습니다
• 도판: 미술관이 저작권 제한 없이 공개하고 있어 누구나 내려받아 확대해 볼 수 있습니다
| 이스트먼 존슨, 〈내가 두고 온 소녀〉, 약 1872년, 캔버스에 유채, 106.7 × 88.7 cm이다. 스미스소니언 미국미술관 소장, 1986.79. 화면에 있는 사람은 그녀 하나뿐이다. 발밑의 모래빛 길이 오른쪽 아래에서 어떻게 끝나는지를 먼저 보라. |
군가에서 온 제목
제목을 붙인 사람은 화가 자신입니다. 미술관이 그렇게 명시합니다. 다만 그 판단의 근거가 무엇인지, 화가의 편지인지 전시 출품 기록인지는 미술관이 밝히지 않습니다.
근거의 후보가 될 만한 것이 액자 뒷면에 있습니다. 이 화가의 작품 전체를 조사해 정리한 전작 목록이 이 그림의 액자 뒤에 붙은 표기와 쪽지를 하나하나 적어 두었는데, 그 왼쪽 위에 손글씨로 이 그림의 제목이 적혀 있습니다. 같은 뒷면의 다른 쪽지에는 제목과 함께 화가의 이름과 뉴욕 주소가 역시 손으로 적혀 있고, 전작 목록은 그것이 존슨의 글씨일 수도 있다고만 씁니다. 가장자리가 찢겨 읽을 수 없는 자리가 있다는 단서도 함께 답니다.
그러니 확인되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액자 뒷면에 그 제목이 손으로 적혀 있다는 것과, 그것을 화가가 썼다는 것은 다른 말입니다. 누가 언제 적었는지를 확정해 주는 기록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미술관의 명시도 미술관이 자기 기록으로 확인해 둔 사실이고, 우리가 화가의 육성으로 되짚을 수 있는 사실은 아닙니다.
제목이 가리키는 노래는 되짚을 수 있습니다. 1840년 더블린에서 나온 책, 아일랜드의 옛 노래 선율을 모아 피아노용으로 엮은 모음집의 색인에 그 대응이 인쇄되어 있습니다. 아일랜드에서 쓰는 말인 게일어로 된 곡 〈안 스팔핀 파나흐 An spailpin fanach〉 옆에, 번역을 적는 칸에서 〈내가 두고 온 소녀〉를 대응시켜 놓은 한 줄입니다. 다만 게일어 제목의 뜻은 떠도는 날품팔이 일꾼이므로, 두 제목은 직역 관계가 아닙니다. 두 가사 중 어느 쪽이 먼저였는지까지도 그 책은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1840년은 그 대응이 인쇄되어 남은 해이지 그 제목이 생긴 해가 아닙니다. 이 책 자체가 이미 불리고 있던 옛 노래를 모아 묶은 것이어서, 그 제목이 언제부터 쓰였는지까지는 여기서 확인되지 않습니다.
그 선율이 미국에서 무엇이 되었는지는 악보 실물이 알려 줍니다. 스미스소니언 국립미국사박물관(National Museum of American History)이 소장한 1861년 뉴욕 인쇄 악보입니다. 남북전쟁이 막 시작되던 해에 나온 판본이고, 표지는 이 노래를 변주가 붙은 인기 아일랜드 선율이라고 적어 두었습니다. 박물관의 기록은 이 노래가 19세기 내내 행진곡으로 자주 쓰였으며 남부연합과 북부연방이 서로 다른 판본을 가지고 있었다고 덧붙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표지에 실린 그림입니다. 전쟁터로 행진해 나가며 자기 여자에게 손을 흔드는 군인, 그리고 그에게 손을 흔드는 여자. 이 그림이 제목의 구조를 그대로 보여 줍니다. 노래에서 말하는 나는 떠나는 군인이고, 두고 온 소녀는 남겨지는 쪽입니다. 이 기술은 박물관 소장품 페이지에 공개된 악보 이미지를 직접 보고 적은 것입니다.
같은 노래를 미술관이 무엇이라 부르는지는 문서마다 다릅니다. 갤러리 라벨은 아일랜드 발라드라 쓰고, 2012년 전시 라벨은 연대가, 곧 부대의 노래라고 씁니다. 두 문장 모두 같은 미술관이 낸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둘은 서로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같은 곡의 두 쓰임입니다. 하나는 그 선율이 어디서 왔는가를 말하고, 다른 하나는 그것이 군대에서 무엇이 되었는가를 말합니다. 1840년 더블린 색인과 1861년 뉴욕 악보가 그 경로를 그대로 보여 줍니다.
제목이 그림에 무엇을 하는가를 놓고 보면 존슨의 선택이 어느 쪽인지가 드러납니다. 같은 시기 제임스 휘슬러는 자기 그림에 배열이니 야상곡이니 하는 음악 용어를 붙여 이야기를 걷어내려 했습니다. 존슨은 반대로 했습니다. 모두가 아는 노래의 제목을 가져다 붙여 그림 앞에 이야기 하나를 통째로 세워 둔 것입니다.
1907년의 도록, 여학생
그런데 그림이 화가의 손을 떠나던 자리에서 나온 기술은 그 이야기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존슨은 1906년 뉴욕에서 죽었고, 이듬해 그의 유작을 파는 목록이 만들어졌습니다. 그 목록은 이 인물을 암송하러 가는 어린 여학생이라고 적었습니다.
이 한 줄은 미술관이 자기 해설에 옮겨 적은 것입니다. 다만 도록 원본은 지금도 남아 있고 디지털로 공개돼 있습니다. 그 144번 항목은 화면을 꽤 자세히 적었습니다. 여학생과 책만이 아니라 바다 위로 난 모랫길, 거친 물결, 강풍, 폭풍 구름, 그리고 서명과 크기까지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도록은 화면에 무엇이 있는지를 못 본 것이 아닙니다. 바람과 파도와 폭풍 구름을 다 적어 놓고도, 그 한가운데 선 인물만은 암송하러 가는 어린 여학생으로 읽었습니다.
제목을 몰라서 그렇게 읽은 것도 아닙니다. 그 144번 항목이 이 그림에 붙여 놓은 제목이 바로 〈내가 두고 온 소녀〉입니다. 목록을 적은 사람은 제목을 알고 있었고, 알고도 화면의 책을 근거로 여학생이라고 적었습니다.
왜 그렇게 읽었는지는 화면에 있습니다. 그녀가 두 팔로 가슴에 끌어안은 것은 책입니다. 편지도 손수건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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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슨, 〈내가 두고 온 소녀〉 부분이다. 뒤쪽 책은 책장이 부채처럼 벌어져 있고 그 앞을 연한 색 표지의 책 한 권이 덮는다. 아래쪽 손목을 가로지르는 가느다란 밝은 띠는 팔찌다. 목의 흰 칼라 아래로 내려오는 청록 끈도 같은 자리에 나타난다. |
책은 둘 이상입니다. 뒤쪽 책은 책장이 부채처럼 벌어져 있고, 그 앞을 연한 색 표지의 책 한 권이 덮고 있습니다. 위쪽 손이 앞표지 위로 손가락을 감아 쥐고 아래쪽 손이 밑에서 받칩니다. 아래쪽 손목에는 가느다란 밝은 띠가 지나갑니다. 팔찌입니다.
책을 안고 길을 가는 소녀. 이것만 놓고 보면 등굣길이라는 기술은 무리가 아닙니다. 다만 그 기술은 제목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제목을 알고 있으면서도 제목이 아니라 화면을 따라 읽은 결과가 그 문장입니다. 화가가 죽은 이듬해, 그의 손에 남아 있던 이 그림에 붙은 설명이 그랬습니다.
오늘의 미술관, 전쟁
오늘 이 그림을 소장한 미술관은 제목 쪽으로 돌아갑니다. 갤러리 라벨은 제목이 남북전쟁 동안 북군과 남군 양쪽에서 인기 있던 노래를 끌어온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화가가 이 소녀가 남편의 귀환을 기다리는 것 이상의 무엇을 하고 있을 가능성을 연다고 씁니다. 그리고 곧바로 묻습니다. 존슨이 가리키는 것은 그녀의 사생활인가 아니면 나라인가.
이 문장에서 눈여겨볼 것은 어미입니다. 미술관은 단정하지 않습니다. 가능성을 연다고 쓰고, 암시한다고 쓰고, 묻습니다. 미술관장이 남긴 해설 영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마도 이 그림 역시 남북전쟁을 가리키는 것일 수 있다고 말하고, 저 먼 구름이 아래 들판에서 소총과 대포가 뿜는 연기일 수 있을까 묻고, 저 멀리 있는 울타리가 사실은 보초선인가 묻습니다. 셋 다 물음표로 끝납니다.
전쟁과 화가 사이에 접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해설에 따르면 존슨은 전쟁 초기에 조지 매클렐런 장군의 북군을 따라다녔고, 1862년 3월 2일 매클렐런군이 머내서스로 진군하던 때 센터빌 부근에서 한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을 바탕으로 자유를 향해 말을 달리는 흑인 가족을 그렸습니다. 약 1862년, 전쟁이 한창이던 때입니다. 다만 이것은 미술관이 정리해 둔 서술이고, 그 바탕이 된 존슨 자신의 기록까지는 공개돼 있지 않습니다.
미술관이 여학생이라는 읽기를 뒤집을 때 드는 것은 여럿입니다. 화가가 붙인 제목, 그 앞에서 끊기는 길, 쪼갠 통나무 울타리, 그녀를 둘러싼 안개, 그리고 남북전쟁기에 불린 그 노래가 함께 놓입니다. 그중 가장 구체적인 세부가 반지입니다. 관장 해설은 책을 그러쥔 손에 결혼반지가 끼워져 있다고 적고, 갤러리 라벨은 빛에 반짝이는 그녀의 결혼반지가 결합에 대한 헌신을 말한다고 적습니다. 그 반지가 결혼반지라면 1907년의 어린 여학생이라는 기술과 맞부딪힙니다.
그런데 미술관이 공개한 가장 큰 도판에서 그 손을 찾아 확대해 보면, 반지의 띠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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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슨, 〈내가 두고 온 소녀〉 부분을 약 6배로 확대한 것이다. 미술관이 결혼반지가 있다고 적은 자리다. 손가락은 그림자 몇 줄로만 나뉘고, 확인되는 것은 아래쪽 손가락 위의 작은 밝은 점 하나뿐이다. 흐린 것은 확대 때문이며 원본 도판의 해상도는 이보다 높지 않다. |
이것을 미술관이 틀렸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미술관은 그림 실물을 앞에 두고 볼 수 있고, 육안으로 잡히지 않는 것을 보는 조사 수단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촬영본이고, 촬영본은 원화가 가진 것을 전부 옮기지 못합니다. 여기서 확인되는 것은 공개된 도판만으로는 미술관이 말하는 그 고리를 독자가 스스로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까지입니다. 어느 쪽인지는 공개된 자료에서 결정되지 않습니다. 미술관이 반지를 적시할 때 드는 것은 실물을 앞에 두고 본 관찰과 그것을 옮긴 라벨이고, 그 관찰을 확인해 줄 기술 조사 보고서는 이 그림에 대해 공개된 것이 없습니다.
지형도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미술관은 그녀가 곶 위에 서 있다고 쓰고, 관장 해설은 높은 자리에서 배의 이물에 선 인물처럼 비바람과 맞선다고 씁니다. 그런데 화면 안에서는 그 지형의 높이도 가장자리도 그림 밖으로 잘려 있습니다. 땅은 완만하게 꺼지다가 안개 띠로 사라질 뿐이어서, 도판만으로는 여기가 어떤 지형인지를 따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림이 잘라 낸 자리 너머까지 부정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화면에 없다는 것과 그곳에 없다는 것은 다른 말입니다.
그래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하나를 더 보겠습니다. 울타리입니다. 미술관은 쪼갠 통나무를 엇물려 쌓은 울타리가 그녀 아래의 풍경을 가른다고 쓰고, 관장은 저것이 보초선인가 묻습니다. 보통 밝기의 도판에서는 오른쪽 중간거리가 거의 어둠이라 그런 것이 있다는 말 자체가 의심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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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슨, 〈내가 두고 온 소녀〉의 화면 오른쪽 중간거리다. 위는 도판 그대로이고, 아래는 같은 자리의 밝기와 대비를 올린 것이다. 말뚝과 비스듬한 가로대가 줄지어 이어지고, 그 오른쪽 아래에 두 번째 더 희미한 줄이 하나 더 있다. 아래쪽은 형태를 확인하려고 손댄 것이니 색이나 명암을 판단하는 데 쓸 것이 아니다. |
밝기를 올리면 울타리는 분명히 거기 있습니다. 말뚝과 비스듬한 가로대가 줄지어 이어지고, 그보다 오른쪽 아래에 두 번째 줄이 하나 더 있습니다. 어둠에 잠겨 있어 인쇄 도판에서 놓치기 쉬울 뿐입니다. 여기서는 미술관 말이 맞습니다. 도판을 확대해 본 눈이 기관 기술을 늘 이기지는 않습니다.
화면이 말하지 않는 것
세 읽기를 나란히 놓으면 어느 쪽도 다른 쪽을 끝내지 못했습니다. 이 절은 그 이유를 화면에서 찾습니다. 아래의 관찰은 하나하나가 무엇을 보여 주는 관찰인 동시에, 무엇을 알 수 없게 만드는 관찰입니다.
첫째, 어디로 가는지가 화면에 없습니다. 그녀가 딛고 선 모래빛 길은 화면 왼쪽 아래에서 들어와 가로로 넓어졌다가 오른쪽 아래에서 끝나고 풀로 바뀝니다. 길 가장자리에 난간도 담도 돌도 없습니다. 미술관 라벨도 같은 것을 짚습니다. 그 앞의 길은 끊기고, 그래서 그녀는 왔던 길을 되짚거나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적지가 그려져 있지 않으니, 그녀가 어디를 향하는지는 화면이 대답하지 않습니다.
둘째, 누가 있었는지도 없습니다. 화면에 있는 사람은 그녀 하나입니다. 다른 인물도, 동물도, 건물도, 나무도, 배도 없습니다. 길 뒤로 어두운 둔덕이 지나가고 그 너머는 갈색 평지가 완만히 꺼지며 안개 띠로 사라집니다. 하늘과 땅이 만나는 선조차 또렷하지 않습니다. 공개된 도판에서는 물이라고 알아볼 수 있는 수면도 해안선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1907년에 그 목록을 적은 사람은 같은 자리를 바다라고, 그리고 거친 물결이라고 읽었습니다. 배경이 얼마나 모호한지를 그 한 줄이 그대로 보여 줍니다. 떠난 사람이 있었다면 그 흔적도, 그가 간 방향도 화면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셋째, 남겨지는 쪽으로 불리는 사람이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이것이 이 그림에서 가장 이상한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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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슨, 〈내가 두고 온 소녀〉 부분이다. 왼쪽 부츠는 바닥에 평평히 놓이고, 오른쪽 부츠는 뒤꿈치가 들린 채 발끝이 땅을 누른다. 두 발이 이루는 각과, 밑단과 부츠 사이에 각지게 발린 흰 스타킹을 보라. |
앞발은 앞으로 내디뎌 뒤꿈치가 들리고 발끝이 땅을 누르고 있습니다. 뒷발은 바닥에 평평히 놓였고 발끝이 왼쪽 아래를 향합니다. 두 발이 이루는 각이 거의 직각입니다. 관장 해설도 발이 정확히 직각으로 놓였다고 같은 자리를 짚습니다.
여기서 멈추어야 합니다. 이 자세가 곧 걷는 중이라는 증거는 아닙니다. 화가 앞에서 취하게 한 자세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인지 말해 주는 기록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화면이 확정해 주는 것은 두 발의 각도까지입니다. 그 각도는 실제로 걷고 있었음을 증명하지 못하지만, 완전히 안정된 정지 자세와는 다른 인상을 만듭니다. 제목이 남겨지는 쪽이라 부르는 사람이 화면에서는 앞으로 나아가는 형태로 서 있다는 것, 이 정도까지가 그림이 내주는 전부입니다.
넷째, 시선이 어디에 닿는지 알 수 없습니다. 얼굴은 완전한 옆모습이고 보는 사람의 오른쪽을 향합니다. 머리 바로 뒤를 지나는 하늘의 밝은 띠가 옆얼굴 윤곽을 또렷하게 잘라냅니다. 관장 해설이 카메오 같다고 부른 것이 이 효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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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슨, 〈내가 두고 온 소녀〉 부분이다. 머리카락 끝이 하늘 속으로 녹아 윤곽이 끊기는 자리와, 눈이 눈썹과 속눈썹 선과 눈두덩의 그늘로만 표시된 자리를 보라. |
얼굴을 크게 확대하면 눈에서 확인되는 것이 적습니다. 눈동자도, 눈에 맺히는 빛도 그려져 있지 않습니다. 눈썹과 속눈썹 선, 그리고 눈두덩의 그늘로만 표시되어 있습니다. 얼굴이 향한 쪽은 분명하지만 시선이 무엇에 맞추어져 있는지는 공개된 도판에서 확인되지 않습니다. 머리카락도 비슷합니다. 왼쪽으로 길게 뻗다가 끝이 회색 하늘 속으로 녹아 윤곽이 끊깁니다.
다섯째, 바람에 날리는 것과 흘러내리는 것이 함께 있습니다. 머리카락과 검은 외투의 큰 덩어리는 등 뒤 왼쪽으로 부풀어 오릅니다. 반면 외투 안감인 선명한 주홍 천은 오른쪽 아래로, 두 다리 사이를 지나 거의 땅에 닿을 만큼 길게 흘러내립니다. 이것을 바람 방향이 어긋난다고 읽을 수는 없습니다. 무거운 천이 중력과 옷의 접힘을 따라 떨어진 결과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확인되는 것은 한 화면 안에서 위로 부푸는 덩어리와 아래로 떨어지는 덩어리가 나란히 그려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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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슨, 〈내가 두고 온 소녀〉 부분이다. 모자는 머리에 있지 않고 꼬인 끈에 매달려 등 뒤에 걸려 있다. 오른쪽 하늘에서 칠 너머로 캔버스 올이 드러나는 자리도 눈여겨볼 곳이다. |
여섯째, 모자가 머리에 없습니다. 챙 넓고 짙은 모자는 꼬인 끈에 매달려 그녀의 등 뒤에 걸려 있습니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각도라 납작한 원형 크라운과 챙이 겹쳐진 원 두 개로 보입니다. 끈은 외투 위를 가로질러 지나가고, 모자 아래로 주홍 안감이 흘러나옵니다. 머리카락도 묶지 않았습니다. 모자를 쓰고 나섰다가 벗은 것인지 처음부터 손에 들고 나온 것인지는 화면이 말하지 않습니다. 확인되는 것은 이 사람이 지금 머리에 아무것도 쓰고 있지 않다는 것뿐입니다.
일곱째, 언제 그린 것인지도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미술관 표기는 약 1872년입니다. 확정 연도가 아니라 추정입니다. 화면 오른쪽 아래 길 위에 어두운 필기체로 남은 서명에도 연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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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슨, 〈내가 두고 온 소녀〉 부분이다. 오른쪽 아래 길 위에 어두운 필기체로 서명이 있고, 그 옆에 연도가 없다. |
화가가 직접 붙였다는 제목이 있고, 그 제목이 어느 노래에서 왔는지도 밝혀져 있는데, 정작 이 그림이 어느 해에 그려졌는지는 대략으로만 적힙니다. 전쟁과 연결해 읽든 여학생으로 읽든, 그 읽기를 연도에 못 박아 고정할 방법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끝내 그의 손에 남은 그림
화면 바깥에 사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존슨은 이 큰 그림을 1875년 시카고와 1876년 브루클린의 전시에 내보냈습니다. 그리고 1875년 시카고 전시의 기록에는 이 그림 이름 옆에 값이 적혀 있습니다. 1,500입니다.
이 숫자는 혼자 서 있지 않습니다. 같은 전시에 나온 그의 다른 그림 가운데에는 소장자의 이름이 적히고 값 칸이 비어 있는 것이 있습니다. 빌려 와서 건 그림입니다. 이듬해 출품작 둘에는 판매하지 않는다는 표기가 아예 붙어 있습니다. 그러니 값이 붙었다는 것은 팔려고 내놓았다는 뜻입니다. 이 그림에는 값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1906년 그가 죽을 때, 이 그림은 다른 몇몇 중요한 작품들과 함께 여전히 그의 손에 있었습니다.
확인되는 것은 이 둘입니다. 1875년에 값이 붙어 걸렸다는 것, 그리고 1906년에 그의 재산 목록에 있었다는 것. 그 사이에 한 번 팔렸다가 되돌아왔을 가능성을 지워 줄 자료는 없습니다. 그러니 팔리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값을 붙여 내놓은 그림이 삼십 년 뒤에 다시 그의 것으로 헤아려졌다는 사실은 남습니다.
그보다 앞선 1867년, 당시 미국 미술비평의 정본이었던 헨리 터커먼(Henry Tuckerman)의 화가 열전은 존슨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그의 그림은 수요가 끊이지 않아 이젤을 떠나기 전에 팔리며, 미국의 모든 수집가가 그것을 찾고 귀히 여긴다는 것입니다.
두 기록을 나란히 놓습니다. 이젤을 떠나기 전에 팔린다고 쓰인 화가가, 이 큰 그림에는 값을 붙여 두 도시의 전시에 내보내고도 죽을 때 그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를 인과로 이을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두 기록이 같은 화가를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은 남습니다.
이 그림은 1907년의 유작 매각에 출품됐습니다. 오늘 이 그림이 있는 미술관은 그것을 기증받은 것이 아니라 1986년에 사들였습니다. 그 사이 소장자의 기록은 이어지지 않습니다. 1907년 뒤로 한동안 끊겼다가 1980년의 한 경매에서 다시 나타납니다.
이스트먼 존슨이라는 화가
이스트먼 존슨은 1824년 미국 메인주 러벨에서 태어났습니다. 미술관 약력에 따르면 그는 메인주 의회 의원들과 연방 상원의원들을 그리면서 초상화가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공직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그의 출발점이었다는 뜻입니다.
정식 수련은 유럽에서 받았습니다. 독일 뒤셀도르프의 왕립미술아카데미, 그리고 역사화가 에마누엘 로이체(Emanuel Leutze) 밑에서 시작했고, 이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4년을 보냈습니다. 그 사이 네덜란드 빌럼 3세의 궁정화가 임명 제안을 받았고, 1855년 파리에서 토마 쿠튀르(Thomas Couture)에게 몇 달 배웠습니다.
이 경로를 당대에 적어 둔 사람이 앞 절의 터커먼입니다. 그의 기록에 따르면 존슨은 뒤셀도르프에서 두 해를 머물러 드로잉의 숙련과 정확성은 크게 얻었지만 자기 고유의 발전을 밀어 준 것은 별로 배우지 못했다고 합니다. 헤이그는 그 반대였습니다. 왕실 소장품 한 점을 모사한다는 명목으로 몇 주만 머물 작정이었는데 4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배운 곳과 붙잡힌 곳이 달랐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뒤 뉴욕에서 초상화가이자 풍속화가로 자리를 잡았고, 매사추세츠주 낸터킷에 여름 작업실을 두고 삼십 년을 오갔습니다. 전쟁을 그린 것도 한 번이 아니었습니다. 터커먼은 1867년 시점에 이미 존슨의 전쟁 소재 작품 셋을 서술합니다. 앤티텀에서 부상으로 움직이지 못하게 된 소년 고수를 전우가 어깨에 태우고 함께 돌격에 뛰어드는 그림, 야전병원 간이침대에 누운 젊은 병사 곁에서 받아쓰기로 편지를 써 주는 젊은 여자를 그린 그림, 그리고 다리를 잃은 병사의 오두막에 앉아 그의 이야기를 받아 적는 연금 청구 대리인을 그린 그림입니다.
이 목록을 보면 미술관이 〈내가 두고 온 소녀〉를 전쟁 쪽으로 읽으려 하는 것이 무리한 시도는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집니다. 그는 실제로 전쟁을 그린 화가였고, 그것도 전투 자체만이 아니라 전쟁이 사람들의 일상에 남긴 자리를 반복해서 그렸습니다. 다만 그 사실이 이 그림 한 점을 전쟁화로 만들어 주지는 않습니다. 다른 그림에서 무엇을 그렸는가는 이 화면에 무엇이 그려져 있는가와 다른 질문입니다.
지금 보는 법
그림은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미국미술관에 있습니다. 지금은 전시되고 있지 않습니다. 대신 미술관이 이 그림의 도판을 저작권 제한 없이 공개하고 있어서, 누구든 내려받아 원하는 만큼 확대해 볼 수 있습니다. 미술관은 이 도판을 복제하고 수정하고 배포하는 데 자기들에게 연락할 필요가 없다고 명시해 두었습니다.
확대해 볼 자리를 넷만 고르면 이렇습니다. 첫째, 두 발이 이루는 각도. 둘째, 책을 그러쥔 위쪽 손, 곧 미술관이 결혼반지가 있다고 적은 자리. 셋째, 화면 오른쪽 중간거리를 밝게 보정했을 때 나타나는 울타리 두 줄. 넷째, 오른쪽 아래 길 위의 서명과 그 옆의 빈자리입니다.
이 네 자리를 다 보고 나면 세 읽기의 무게를 각자 재어 볼 수 있습니다. 재어 본 결과를 적어 두겠습니다. 1907년의 여학생 읽기는 화면의 책을 설명하지만 제목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제목을 붙인 사람이 화가 자신이라는 것이 미술관의 기록인 이상, 제목을 빼놓고 이 그림을 읽는 것은 화가가 직접 남긴 단서 하나를 버리는 일입니다. 반대로 오늘의 전쟁 읽기는 제목을 설명하지만 화면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이 화면에 있는 사람은 그녀 하나뿐이고, 군인도 부대도 무기도 없습니다. 관장이 던진 두 질문, 곧 저 구름이 포연인가와 저 울타리가 보초선인가에 대해 화면은 예도 아니오도 주지 않습니다. 구름은 구름으로도 보이고 울타리는 울타리로도 보입니다.
무게가 한쪽으로 기울지 않으므로 판정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판정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이 그림에 대해 무언가를 말해 줍니다. 목적지가 그려져 있지 않고, 떠난 사람의 흔적도 없고, 시선이 닿는 곳도 표시되지 않았고, 연도조차 대략으로만 적힌 그림입니다. 답을 화면에서 찾으려 하면 화면이 매번 되돌려보냅니다.
그래서 이 그림 앞에서 확인되는 것은 결국 읽는 쪽의 사정입니다. 1907년의 유작 매각 목록은 책을 안은 소녀를 보았습니다. 오늘의 미술관은 기다리는 사람을 봅니다. 그림은 그 백 년 남짓한 사이에 한 획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달라진 것은 그림이 아니라 그림 앞에 선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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