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메릿 체이스 〈어린 고아〉, 초상화인데 얼굴이 화면의 중심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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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벽 앞에 붉은 의자가 놓여 있고, 검은 옷을 입은 젊은 여자가 그 의자에 몸을 흘려 기대고 있습니다. 화면에서 살빛이 드러나는 곳은 세 군데뿐입니다. 얼굴 하나와 손 둘입니다. 제목은 〈어린 고아〉입니다.

제목을 먼저 읽고 그림을 보면 얼굴부터 찾아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 얼굴은 오른쪽 위 구석에 붙어 있고, 얼굴 폭은 화면 폭의 10분의 1이 채 되지 않습니다. 표정도 거의 없습니다. 이 글이 묻는 것은 그래서 하나입니다. 초상화인데 왜 얼굴이 화면의 중심이 아닌가. 답을 먼저 적자면 이렇습니다. 화면에서 가장 밝은 곳도, 물감이 겹겹이 얹혀 표면이 솟아 보이는 곳도 얼굴이 아니라 손에 쥔 흰 천 조각입니다. 도판을 확대하면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일입니다.

붉은 방 안의 검은 형태

먼저 화면 전체를 봅니다. 그림은 거의 정사각형이고 세로가 조금 더 깁니다. 위아래로 반을 가르면 위쪽 절반은 붉은 벽이고 아래쪽 절반은 붉은 의자입니다. 붉은색이 화면의 대부분을 덮습니다.

붉은 벽 앞의 붉은 안락의자에 검은 옷을 입은 젊은 여자가 몸을 뒤로 흘려 기댄 채 머리를 등받이에 대고 화면 밖을 보고 있으며, 팔걸이 위에 놓인 두 손 가운데 위쪽 손이 흰 천 조각을 쥐고 있는 유화
윌리엄 메릿 체이스, 〈어린 고아(The Young Orphan)〉, 늦어도 1884년, 캔버스에 유채, 111.8 × 106.7 cm, 뉴욕 국립디자인아카데미 소장, 221-P. 화면 위 절반은 붉은 벽, 아래 절반은 붉은 의자다. 그 위로 검은 옷이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대각선 하나를 긋는다. 팔걸이 위의 흰 천 조각이 화면에서 가장 밝다.

두 붉은색은 아주 조금 다릅니다. 벽 쪽이 더 어둡고 갈색을 띠며, 의자 쪽이 더 밝고 주황에 가깝습니다. 차이가 작아서 둘 사이의 경계가 또렷하지 않은 구간이 생기고, 그 구간에서는 벽과 의자가 한 덩어리 붉은 면으로 번집니다.

그 붉은 면 위에 검은 형태 하나가 얹힙니다. 머리는 오른쪽 위 모서리 가까이에 있고 치맛자락은 왼쪽 아래 모서리를 넘어 잘립니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대각선 하나입니다. 이 검은 옷에는 세부가 하나도 없습니다. 옷깃도, 단추도, 소맷부리도, 주름 장식도 없습니다. 명도가 평평한 검은 덩어리 하나입니다.

그러니 몸을 만드는 것은 실루엣뿐입니다. 어깨의 곡선, 팔꿈치의 각, 허리의 들어간 자리, 무릎의 둥근 자리가 붉은 바탕을 잘라내면서 사람의 모양이 됩니다. 검정 안쪽에서 무언가가 보이는 곳은 두 군데뿐입니다. 팔꿈치 안쪽에 회청색 붓질이 몇 개 지나가 주름을 암시하고, 치마 아랫부분에서 검정이 조금 푸르게 풀리면서 바닥 그림자와 경계가 사라집니다.

벽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림자도, 몰딩도, 창도, 가구도 없습니다. 다른 색이 들어오는 곳은 화면 맨 아래 가장자리뿐입니다. 올리브빛 황갈색 가로 띠 하나와 어두운 녹흑색 덩어리 하나가 거기 있습니다. 옷은 목까지 올라오고 소매는 손목까지 내려옵니다. 그래서 살이 보이는 곳이 얼굴과 두 손, 세 군데로 줄어듭니다.

초상화에서 흔히 기대하는 것들이 여기에는 없습니다. 옷감의 질감, 방 안의 물건, 앉은 사람의 처지를 알려 주는 소품 같은 것들입니다. 남은 것은 붉은 면 둘, 검은 형태 하나, 살빛 세 점입니다.

체이스가 실제로 쓰던 방은 이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화실을 그린 그림을 여러 점 남겼습니다.

액자에 든 그림과 놋 램프와 석고상과 도자기가 벽과 선반을 가득 채운 화실 안에 흰옷을 입은 여자가 푸른 안락의자에 앉아 종이를 들고 있고 바닥에는 큰 깔개와 검은 개가 있는 유화
윌리엄 메릿 체이스, 〈10번가 화실(The Tenth Street Studio)〉, 1880년, 캔버스에 유채, 세인트루이스 미술관(Saint Louis Art Museum) 소장, 48:1933. 액자에 든 그림, 놋 램프, 석고상, 붉은 휘장, 깔개, 검은 개가 벽과 바닥을 빈틈없이 채운다. 〈어린 고아〉의 벽에는 이 가운데 아무것도 없다.

두 화면을 나란히 놓으면 〈어린 고아〉의 빈 벽이 다르게 보입니다. 물건이 없는 방을 그린 것이 아니라, 물건을 그리지 않은 화면입니다.

팔걸이 위에 놓인 손이 쥔 흰 천 조각을 확대한 화면, 흰색과 회청색 붓 자국이 여러 겹 뭉쳐 솟아 있고 그 둘레의 살빛과 검은 옷과 붉은 천은 얇고 평평하게 칠해져 캔버스 올의 격자가 비친다
윌리엄 메릿 체이스, 〈어린 고아〉 부분, 팔걸이 위의 흰 천. 흰색과 회청색이 여러 겹 덧발려 붓 자국이 뭉쳐 있고, 바로 옆의 살빛과 검은 옷은 얇고 평평하다. 붉은 바탕에는 캔버스 올의 격자가 그대로 비친다.

가장 밝은 곳

이제 팔걸이 위를 봅니다. 두 손이 겹치지 않고 위아래로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위쪽 손은 손가락을 살짝 오므려 흰 천 조각 하나를 쥐고 있습니다. 화면에서 가장 밝은 점이 바로 이 천입니다.

그 자리는 물감의 상태가 다릅니다. 흰색과 회청색이 여러 번 덧발려 있고 붓 자국이 뭉쳐 있어서, 얇고 평평하게 칠해진 주변에 비해 표면이 솟아 보입니다. 물감층이 실제로 얼마나 두꺼운지는 실물 앞에서 비스듬히 봐야 갈릴 문제이고, 도판에서는 촬영 조명이 만든 반사를 걷어낼 수 없습니다. 그러니 여기서 확인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그 자리의 표면이 솟아 보인다는 것, 그리고 그 자리가 화면에서 가장 밝다는 것입니다.

얼굴은 그렇지 않습니다. 살빛은 크림빛 분홍이고 아주 얇게 칠해져 있습니다. 목이 화면 오른쪽으로 꺾여 머리와 어깨선이 거의 45도를 이루고, 턱은 조금 들려 있습니다. 눈은 화면 밖을 향하되 정면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오른쪽 아래를 스치는 방향입니다. 고개는 그대로 두고 눈만 돌린 형태여서 눈동자가 눈구석 쪽으로 몰려 있습니다. 입은 작고 다물려 있고 입꼬리는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았습니다. 아랫입술에 분홍 한 점이 찍혀 있을 뿐입니다.

이것을 대충 그렸다고 읽으면 화면을 잘못 보는 것입니다. 눈꺼풀의 두께, 콧등에서 콧방울로 넘어가는 면, 뺨과 턱의 경계는 모두 마감되어 있습니다. 얼굴은 덜 그려진 것이 아니라 덜 밝은 것입니다.

초상화에서 밝기는 대개 얼굴 몫입니다. 보는 사람의 눈을 거기로 데려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그림은 그 몫을 손에 있는 천 조각으로 옮겼습니다. 이 한 가지가 이 화면의 나머지를 설명합니다. 얼굴이 작고 구석에 있는 것, 옷에 세부가 없는 것, 벽에 아무것도 없는 것이 모두 같은 방향입니다.

팔걸이 위에 손등을 위로 하고 펼쳐진 아래쪽 손을 확대한 화면, 손가락 네 개가 앞 모서리를 넘어 그늘 속으로 늘어져 있고 손톱과 마디 주름은 그려지지 않았으며 손등의 살빛 위로 캔버스 올의 격자가 지나간다
윌리엄 메릿 체이스, 〈어린 고아〉 부분, 아래쪽 손. 손가락 넷이 팔걸이 앞 모서리를 넘어 그늘 속으로 늘어졌고 손톱과 마디 주름은 그리지 않았다. 손등의 살빛 위로 캔버스 올의 격자가 그대로 지나간다.

힘이 빠진 손

아래쪽 손을 봅니다. 손등을 위로 하고 팔걸이 위에 펼쳐져 있는데, 손가락 네 개가 팔걸이 앞 모서리 밖으로 넘어가 아래로 늘어졌습니다. 무엇을 짚거나 쥐고 있지 않고, 힘이 들어간 자리도 없습니다. 손톱과 마디 주름은 그리지 않았습니다. 손등 위로는 캔버스 올의 격자가 그대로 지나갑니다.

자세 전체가 같은 상태입니다. 그는 의자에 바르게 앉아 있지 않습니다. 엉덩이가 앞으로 밀려 나오고 상반신이 뒤로 눕듯 기울어, 앉았다기보다 반쯤 누운 쪽에 가깝습니다. 머리는 등받이 위쪽 모서리에 뺨을 대듯 얹혀 있습니다. 두 팔은 모두 팔걸이 위에 있습니다. 다리는 보이지 않습니다. 검은 치마가 무릎 아래를 통째로 덮고 화면 왼쪽 아래로 흘러 바닥에 닿습니다. 발은 화면 안에 없습니다.

머리카락은 묶지 않고 풀어져 어깨와 등받이 위로 넓게 퍼집니다. 올리브빛 갈색에서 황토와 금빛까지 색이 오갑니다. 개별 머리카락을 그리지 않고 마른 붓으로 쓸어 덩어리를 만든 다음, 가장자리에서 몇 가닥만 붉은 바탕 위로 긁어냈습니다.

이 자세를 피로나 체념으로 읽고 싶어집니다. 다만 화가의 화실에서 오랫동안 같은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 모델의 몸이기도 하니, 화면 하나로 마음의 상태까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화면에서 확인되는 것은 몸이 의자에 맡겨져 있고 손가락에 힘이 없다는 데까지입니다.

그런데 화면 구성으로 보면 이 늘어진 손가락이 하는 일이 분명합니다. 팔걸이의 앞 모서리는 화면에서 가장 단단한 직선 가운데 하나입니다. 손가락 네 개가 그 선을 넘어가면서 선이 끊깁니다. 검은 대각선이 화면 왼쪽 아래로 빠져나가는 흐름에, 이 작은 살빛 넷이 한 번 더 아래쪽 방향을 얹습니다.

등받이에 뺨을 대듯 얹힌 얼굴을 확대한 화면, 이마와 뺨의 얇은 살빛 위로 캔버스 올의 격자가 비치고 뒤쪽 붉은 벽에서 그 격자가 더 또렷하며 아랫입술에 분홍 한 점이 찍혀 있다
윌리엄 메릿 체이스, 〈어린 고아〉 부분, 얼굴. 이마와 뺨의 살빛 위로도 캔버스 올의 격자가 보이고, 뒤쪽 붉은 벽에서 가장 또렷하다. 살빛은 얇게 칠해졌고 아랫입술에 분홍 한 점이 찍혀 있다.

칠 너머로 드러난 올

도판을 충분히 확대하면 화면 거의 전역에서 캔버스 올의 격자가 보입니다. 붉은 벽에서 가장 또렷하고, 얼굴의 이마와 뺨에도, 손등의 살빛에도 같은 격자가 지나갑니다. 색이 칠해져 있는데 그 아래 천의 짜임이 함께 보이는 상태입니다.

이것을 두고 칠이 얇아서 그렇다고 원인을 정하고 싶어지지만, 그렇게 쓰려면 물감층의 두께를 재어 본 조사 기록이 있어야 합니다. 화면만으로 갈라지지 않는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칠이 얇은 것인지, 캔버스 자체가 유난히 거친 것인지입니다. 확인되는 것은 칠 너머로 올이 드러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1884년의 문장 하나가 걸립니다. 그해 5월 뉴욕에서 나온 잡지 아트 유니언(The Art Union)이 미국화가협회(Society of American Artists) 연례전을 다루면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체이스의 작품으로 붉은 벨벳 의자에 앉은 젊은 여성의 초상이 있는데 배경도 붉다, 이 그림은 매우 거친 캔버스에 그려져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보면 태피스트리 같은 효과가 난다, 인물의 자세가 보기 좋고 의자의 벨벳 질감이 잘 살아 있다. 태피스트리는 색실로 짜서 무늬를 낸 벽걸이 천입니다.

이 문장에는 제목도 번호도 붙어 있지 않습니다. 같은 전시에 체이스는 여섯 점을 냈으니, 이 문장이 〈어린 고아〉를 두고 한 말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붉은 벨벳 의자, 붉은 배경, 앉은 젊은 여성, 거친 캔버스라는 네 가지가 이 그림에 그대로 들어맞습니다. 그리고 그 거친 캔버스라는 표현이 오늘 우리가 도판에서 보는 격자와 같은 것을 가리킨다면, 지금 보이는 올 자국은 이 그림이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부터 있던 것이 됩니다.

보존 처리 문제도 여기서 함께 정리됩니다. 국립디자인아카데미(National Academy of Design)가 소장품 자료에 올린 이 작품의 촬영본은 파일 이름에 처리 후라는 표시가 붙어 있습니다. 이 그림이 보존 처리를 거쳤다는 뜻입니다. 처리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는 공개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습니다. 다만 1884년에 이미 체이스의 그림 하나를 두고 매우 거친 캔버스라는 말이 나왔으니, 지금 보이는 올 자국을 보존 처리가 만들어 낸 것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올이 드러나면 화면이 창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붉은 벽은 방 안의 공기가 아니라 붉게 칠해진 천이 됩니다. 1884년의 그 글이 태피스트리를 떠올린 것도 그래서일 것입니다. 벽에 아무것도 없는 것, 옷에 세부가 없는 것, 그리고 화면 전체에 천의 짜임이 비치는 것이 함께 작동합니다. 이 그림은 방 안을 들여다보게 하는 대신 칠해진 면을 보게 합니다.

이름이 흔들린 그림

이 그림의 이름은 한 번도 하나였던 적이 없습니다. 소장 기관의 현행 표기는 〈The Young Orphan〉, 곧 〈어린 고아〉입니다. 그런데 같은 기관의 해설은 화가가 1884년 벨기에의 레 뱅(Les Vingt) 전시에 이 그림을 낼 때 제목을 〈At Her Ease〉로 바꿨다고 적습니다. 레 뱅은 브뤼셀에서 해마다 열린 전시입니다. 같은 해 도록에는 로댕과 휘슬러와 앙소르의 이름도 함께 올라 있습니다. 우리말로 옮기면 편안한 자세로쯤 되는 제목입니다. 사회적으로 도발적인 제목 대신 중립적인 제목을 골랐다는 것이 기관의 설명입니다.

그런데 1884년 브뤼셀에서 인쇄된 레 뱅 도록 원본을 열어 보면 다른 것이 있습니다. 체이스 항목에는 그의 이름과 주소가 인쇄되어 있고, 출품작은 한 점이며, 그 제목은 그냥 Portrait, 곧 초상입니다. At Her Ease라는 제목은 그 도록에 없습니다. 1884년부터 1893년까지 레 뱅 도록 어느 권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이것을 기관이 틀렸다는 뜻으로 읽을 수는 없습니다. 기관은 편지나 보험 서류, 또는 한 화가의 전 작품을 정리한 목록인 카탈로그 레조네 같은 다른 자료를 근거로 삼았을 수 있고, 그 근거가 무엇인지는 공개된 자료에 나오지 않습니다. 반대로 도록에 그 제목이 없다는 사실이 비공식적인 개명이 없었다는 증거가 되지도 않습니다. 확인되는 것은 도록이 인쇄한 제목이 Portrait라는 것까지입니다.

이름은 뉴욕에서도 흔들렸습니다. 같은 1884년의 다른 잡지는 이 그림을 his Orphan, 곧 그의 〈고아〉라고 불렀습니다. 〈The Young Orphan〉이라는 완전한 형태가 그때 통용되고 있었는지는 이 문장만으로 알 수 없습니다.

같은 해에 체이스에게는 제목에 고아원이 들어가는 그림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하를럼 고아원의 정원(Garden of the Orphanage, Haarlem, Holland)〉입니다. 1884년의 잡지 두 곳이 이 제목을 따로 적었습니다. 두 그림은 서로 다른 그림입니다.

브뤼셀 도록은 이름 말고 다른 것도 알려 줍니다. 체이스 항목에 인쇄된 주소는 웨스트 10번가 51번지, 뉴욕입니다. 10번가 스튜디오 빌딩(Tenth Street Studio Building)의 번지입니다. 국립디자인아카데미의 해설은 체이스가 아마도 그 건물 옆, 서 10번가 67번지에 있던 개신교 반고아원(Protestant Half Orphan Asylum)에서 모델을 구했을 것이라고 적습니다. 반고아원은 고아원과 다른 이름입니다. 부모 가운데 한쪽을 잃은 아이를 받는 곳을 그렇게 불렀습니다. 두 번지는 열여섯 차이입니다. 1884년에 그가 그 거리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은 벨기에에서 인쇄된 문서로 따로 확인되는 셈입니다.

다만 기관의 문장에서 눈여겨볼 단어는 아마도입니다. 기관 자신이 단정하지 않습니다. 모델의 이름도, 나이도, 직업 모델이었는지도 밝힌 자료는 나오지 않습니다. 1884년의 잡지는 그를 젊은 여성이라고만 부르고 고아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 그림 앞에서 그가 실제로 고아였다고 말할 근거는 아직 없습니다.

이름이 여럿인 그림이지만, 그 이름들 가운데 어느 것도 화면 안에서 확인되지는 않습니다. 고아원도, 사연도, 그것을 알려 줄 물건도 화면에 없습니다.

그림을 그림으로 보게 만든 화가

소장 기관의 해설은 이 그림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체이스는 인물의 성격과 처지에서 주의를 돌려, 반대로 보는 사람이 그림을 그림으로 보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같은 기관이 쓴 체이스 전기는 더 분명합니다. 그는 심리의 깊이를 파고드는 화가가 결코 아니었고 순전히 형식의 문제에 집중했다고 적습니다. 같은 전기가 인용한 20세기 초 미국 미술사가 새뮤얼 아이샴의 말은 더 날이 서 있습니다. 체이스는 앉은 사람의 인격에 놋냄비나 케너벡 연어를 대하는 것 이상으로 애착을 갖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같은 전기에는 기법에 관한 문장도 있습니다. 손쉬워 보이는 그의 기교는 확실한 물감 운용, 지나치게 세밀한 밑그림을 피하는 것, 그리고 명도 관계에 대한 끊임없는 주의로 가능했다는 설명입니다. 마지막 항목이 이 그림에서 눈으로 확인됩니다. 밑그림에 해당하는 세부가 옷에서 사라졌고, 남은 것은 어디가 밝고 어디가 어두운가 하는 관계입니다. 그리고 그 관계의 꼭대기가 얼굴이 아니라 흰 천에 있습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고 싶어집니다. 체이스가 사연을 일부러 지웠고 그것이 그의 의도였다고 쓰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이 그림을 두고 남긴 말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위의 문장들은 모두 그를 형식의 화가로 읽는 독법이지, 이 작품에서의 의도를 확정해 주는 기록이 아닙니다. 말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화면에 사연이 없다는 것, 그리고 당대와 후대가 그를 그렇게 읽어 왔다는 것입니다.

기관 해설은 비교 대상도 직접 지목합니다. 구성과 양식에서 이 작품이 휘슬러의 〈회색과 검정의 배열 1번(Arrangement in Grey and Black No. 1)〉, 곧 화가의 어머니를 그린 초상에 빚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회색 벽 앞에서 검은 옷을 입은 노년의 여자가 옆모습으로 곧게 앉아 두 손을 무릎에 모으고 있고, 왼쪽에는 무늬가 있는 어두운 커튼이, 벽에는 액자에 든 판화 한 점이 걸린 유화
제임스 휘슬러, 〈회색과 검정의 배열 1번(Arrangement in Grey and Black No. 1)〉, 1871년, 캔버스에 유채, 144.3 × 162.4 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RF 699. 인물은 옆모습으로 곧게 앉아 있고, 벽의 굽도리선과 액자의 네 변과 커튼의 수직선이 화면을 가로세로로 나눈다. 두 손에 쥔 흰 손수건이 검은 옷 위에서 밝게 떠오른다.

두 화면을 나란히 놓으면 겹치는 것이 바로 보입니다. 검은 옷이 세부 없는 한 덩어리로 칠해져 실루엣만 남은 것, 배경이 사물의 설명을 거의 하지 않는 것, 그리고 검은 옷 위에서 손 근처의 흰 천이 가장 밝은 점이 되는 것입니다. 휘슬러의 어머니도 손에 흰 손수건을 쥐고 있습니다.

그러나 화면을 짜는 방식에서 두 그림은 갈라집니다. 휘슬러는 인물을 옆모습으로 곧게 앉히고, 벽의 굽도리선과 액자의 네 변과 커튼의 수직선으로 화면을 가로세로의 격자로 나눕니다. 발밑에는 발판을 놓아 수평선을 하나 더 얹었습니다. 체이스는 그 반대로 했습니다. 인물을 대각선 하나로 눕히고, 화면을 나누는 직선을 거의 두지 않았습니다. 팔걸이 앞 모서리 하나와 화면 맨 아래의 가느다란 띠가 전부입니다. 그래서 휘슬러의 화면은 칸으로 읽히고 체이스의 화면은 한 덩어리 붉은 면으로 읽힙니다. 기관이 말한 빚은 인물을 다루는 방식에서 확인되고, 화면을 짜는 방식에서는 두 사람이 갈라진다고 보는 편이 도판에 맞습니다. 휘슬러가 그림에서 이야기를 걷어내려다 어떤 일까지 겪었는지는 그의 생애를 다룬 글에서 따로 읽을 수 있습니다.

체이스의 검정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두고는 여러 이름이 오갑니다. 지금 확인된 자료에서 말하면, 국립디자인아카데미가 그의 뮌헨 시절 영향으로 드는 이름은 독일 화가 빌헬름 라이블(Wilhelm Leibl)입니다. 그리고 라이블의 대담하고 거침없는 어법이 쿠르베와 프란스 할스에게서 왔다고 적습니다. 같은 전기는 체이스와 그의 친구 로버트 블룸이 일본 미술과 스페인 미술에 함께 관심을 가졌다는 것까지만 적어 둡니다.

같은 전시의 혹평

여기까지 모은 문장들은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반대편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이 그림이 걸린 자리부터 기록이 갈립니다. 이 그림은 1884년에 뉴욕과 브뤼셀 두 곳에 걸렸는데, 어느 쪽이 먼저였는지는 자료가 엇갈립니다. 국립디자인아카데미의 해설은 브뤼셀 출품을 그해 6월로 적고, 뉴욕 전시는 5월에 열렸습니다. 그 해설대로라면 뉴욕이 먼저입니다. 다만 레 뱅의 첫 전시가 그해 2월에 열렸다고 적는 자료도 있습니다. 이 글이 도록 원본에서 확인한 것은 체이스가 그 전시에 한 점을 냈고 그 제목이 〈Portrait〉였다는 것까지입니다. 그 뉴욕 전시를 두고 국립디자인아카데미의 해설은 1884년 봄에 열린 미국화가협회 제8회 연례전이라고 적습니다. 그런데 1884년에 나온 두 잡지는 각각 독립적으로 그 전시를 제7회라고 적었습니다. 아트 유니언은 5월 24일 리셉션으로 열려 6월 21일까지 이어진다고 했고, 데커레이터 앤드 퍼니셔(The Decorator and Furnisher)는 5월 26일에 열려 6월 21일에 닫았다고 했습니다. 걸린 그림 수도 89점과 88점으로 조금 다릅니다. 두 잡지가 서로 다른 것은 하루와 한 점이고, 기관 해설과 두 잡지가 다른 것은 회차와 계절입니다.

그 전시평 가운데 하나가 아트 아마추어(The Art Amateur) 1884년 7월호에 실렸습니다. 필자는 미국화가협회가 올해 뉴욕 대중이 지금껏 구경한 것 중 가장 대단한 사기꾼 전시를 열어 이름을 떨쳤다고 시작합니다. 체이스에 대해서는 이렇게 적습니다. 윌리엄 M. 체이스의 출품작 전반은 대가의 자질을 어느 모로도 보여주지 않는다, 새로운 것이 없고 어떤 세련된 구경거리에서나 볼 수 있는 것 이상의 영감도 없다, 적어도 눈에 띄는 어릿광대짓은 용서할 수 없다, 체이스의 출품작 가운데 〈정물〉의 대구 한 마리만이 평범함을 넘는다. 그리고 문장 하나를 더 붙입니다. 그의 손은 무겁고 동시에 부정확하다.

이 글이 이 그림 한 점을 지목한 것은 아닙니다. 체이스가 그 전시에 낸 여섯 점 전체를 두고 한 말입니다. 그리고 같은 기사가 체이스 숭배자들이 출품자 다수를 차지한다고 적은 것을 보면, 이 목소리가 그 전시장에서 다수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세 번째 목소리는 그 사이에 있습니다. 데커레이터 앤드 퍼니셔는 체이스가 여섯 점을 냈고 거기에 예전의 영리한 세부 묘사 솜씨가 군데군데 있었다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낙선작을 옹호하는 대목에서 체이스의 〈고아원의 정원〉이나 〈고아〉 같은 작품이 가진 영리한 색 대비와 혼합을 기준으로 들었습니다. 같은 붓질이 한 사람에게는 영리한 색 대비였고 다른 사람에게는 어릿광대짓이었습니다.

이 대립은 취향의 문제로만 보이지 않습니다. 세부를 지우고 명도 관계만 남기는 방식은, 그것을 기교로 보는 눈에는 절제로 읽히고 그렇게 보지 않는 눈에는 솜씨의 부재로 읽힙니다. 무거운 손과 절제된 손은 화면에서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1884년 뉴욕에는 그 두 눈이 다 있었고, 형식에 집중한 화가라는 오늘의 평가는 그 가운데 한쪽이 이어진 결과입니다.

이 그림으로 아카데미에 들어갔다

이 그림이 지금 있는 곳은 뉴욕의 국립디자인아카데미입니다. 이 기관의 소장품은 조금 특이한 방식으로 모였습니다. 기관 스스로 밝히기를, 8,000점 가까운 소장품은 1825년 이래 정회원으로 선출된 2,400명이 넘는 작가와 건축가가 기증한 디플로마 작품으로 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정회원이 되면 작품을 한 점 내는 것입니다.

체이스는 1888년에 준회원, 1890년에 정회원이 되었습니다. 이 그림의 취득 기록은 작가 기증이며, 1890년 11월 24일 정회원 디플로마 제출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선출된 해와 제출일이 맞물립니다.

여기서 날짜 둘을 나란히 놓게 됩니다. 이 그림이 1884년 전시에 걸렸다는 것은 당대의 잡지로 확인되고, 아카데미에 낸 것은 1890년입니다. 여섯 해가 비어 있습니다. 같은 아카데미가 소장한 체이스의 다른 작품 해설에는, 그가 1888년 4월에 준회원으로 뽑히고 그해 9월에야 동료의 디플로마 초상을 그렸다는 사례가 적혀 있습니다. 선출 뒤에 새로 그려 내는 방식입니다. 이 그림은 그와 다릅니다. 이미 있던 그림을 낸 것입니다.

그 다음을 말하고 싶어집니다. 그가 자기를 대표할 그림으로 이것을 골랐다는 식입니다. 그러나 누가 어떤 절차로 이 그림을 정했는지는 기록이 확인되지 않습니다. 화가가 골랐는지, 아카데미가 받아들인 것인지조차 갈리지 않습니다. 확인되는 것은 이 그림이 그 제출작이라는 사실까지입니다.

제작연도도 같은 방식으로 갈립니다. 아카데미 자신의 목록 카드에는 제작연도가 비어 있고, 같은 기관이 외부에 제공한 메타데이터에는 1884년으로 적혀 있습니다. 1884년 전시 출품은 당대 자료로 확정되므로, 이 그림은 늦어도 1884년에 완성되어 있었습니다.

가르친 사람

이 그림이 걸린 1884년에 체이스는 이미 여러 해째 학생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뉴욕의 아트 스튜던츠 리그(Art Students League)에서 1878년부터 가르쳤고, 브루클린 미술학교와 펜실베이니아 미술아카데미(Pennsylvania Academy of the Fine Arts)를 거쳐 1896년에는 자기 이름을 붙인 학교를 열었습니다.

여름에는 1891년부터 열두 해 동안 쉬니콕(Shinnecock) 여름 미술학교를 열었는데, 필립스 컬렉션(The Phillips Collection)은 이 학교를 미국에서 가장 큰 야외 미술학교라고 적습니다. 그가 가르친 기간은 삼십 년이 넘습니다.

그 교실을 거친 이름 가운데에는 마스던 하틀리, 에드워드 호퍼, 조지아 오키프, 조지프 스텔라가 있습니다. 미국 화가 케니언 콕스는 1922년에 이렇게 썼습니다. 교사로서 그는 아마 다른 어떤 화가가 해낸 것보다 미국 회화에 더 넓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체이스가 학생들에게 한 말도 전합니다. 물감을 가지고 놀아라, 그것을 즐거워하라, 일하면서 노래하라. 이 말이 언제 어느 자리에서 나온 것인지까지는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물감을 가지고 논다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이 그림의 팔걸이 위에서 보입니다. 화면의 나머지를 얇고 평평하게 두고, 손안의 천 조각 하나에만 흰색과 회청색을 여러 겹 얹어 그 자리만 솟게 만드는 일입니다.

지금 보는 법

이 그림은 뉴욕의 국립디자인아카데미에 있습니다. 도판은 고해상으로 공개되어 있으니 화면에서 확대해 보면 됩니다. 볼 자리를 순서대로 적어 둡니다.

붉은 벽의 왼쪽 위를 확대한 화면, 연둣빛이 도는 옅은 노랑으로 가늘고 빠르게 쓴 필기체 서명이 붉은 바탕 위에 덧칠되어 있고 그 오른쪽 아래에 크림빛 살구색 타원 자국이 하나 있다
윌리엄 메릿 체이스, 〈어린 고아〉 부분, 왼쪽 위. 서명은 연둣빛이 도는 옅은 노랑으로 붉은 바탕 위에 덧칠돼 있다. 그 오른쪽 아래의 크림빛 살구색 타원 자국을 함께 보라.
  • 팔걸이 위의 흰 천. 화면에서 가장 밝은 점이고, 흰색과 회청색이 여러 겹 얹혀 표면이 솟아 보이는 자리입니다.
  • 아래쪽 손. 손가락 네 개가 팔걸이 앞 모서리를 넘어 늘어졌고, 손등의 살빛 위로 캔버스 올의 격자가 그대로 지나갑니다.
  • 붉은 벽의 아무 곳이나. 칠 너머로 천의 짜임이 보입니다. 얼굴의 이마와 뺨에서도 같은 격자를 찾을 수 있습니다.
  • 왼쪽 위의 서명. 연둣빛이 도는 옅은 노랑으로 가늘고 빠르게 쓴 필기체이고, 붉은 바탕 위에 덧칠되어 있습니다.
  • 그 서명의 오른쪽 아래. 크림빛 살구색 타원 자국이 하나 있습니다. 가로로 누운 달걀 모양이고 불투명하며 주변 벽의 붉은색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기관이 공개한 촬영본에도 같은 자리에 같은 것이 있으니 실물 화면에 있는 것입니다. 무엇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 의자 등받이의 오른쪽 가장자리. 짧고 끊어진 붓질이 세로로 겹쳐 주름 잡힌 천처럼 보입니다. 화면에서 붓자국이 가장 거친 자리입니다.
  • 화면 왼쪽 아래. 돌려 깎아 마디를 낸 나무 다리 하나가 보이고, 그 옆에서 검은 치마가 바닥 그림자와 섞여 경계가 사라집니다.

초상화는 대개 얼굴에 가장 밝은 것을 줍니다. 이 그림은 그것을 손안의 천 조각에 주었습니다. 그 한 가지를 확인하고 나면 나머지 화면이 다르게 보입니다. 붉은 벽은 방이 아니라 칠해진 면이 되고, 검은 옷은 사람이 아니라 형태가 되며, 제목이 불러오는 사연은 화면 어디에도 자리를 얻지 못합니다. 이 그림 앞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사연이 아니라 배치입니다. 무엇이 밝고 무엇이 어두운지, 어디에 물감이 쌓였고 어디가 비어 있는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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