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세잔 '카드놀이하는 사람들(The Card Players) 분석
세잔의 명작 <카드놀이하는 사람들 The Card Players>을 통해 현대 미술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살펴봅니다. 단순한 구도와 정지된 시간 속에서 표현된 이 작품은 피카소와 마티스, 그리고 추상 미술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카드놀이하는 사람들을 한 문단으로
카드놀이하는 사람들은 폴 세잔이 1890년대에 같은 주제로 그린 유화 다섯 점의 연작이며, 네 점은 반즈 재단,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코톨드, 오르세 미술관이 소장하고 한 점은 2011년 카타르로 넘어가 개인 소장으로 남아 있습니다. 다섯 점을 크기순으로 늘어놓으면 가로 181.9cm에서 56.5cm까지 줄어드는데, 이 축소가 곧 이 연작에서 벌어진 일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폴 세잔: 시대를 앞서간 고독한 화가
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은 프랑스 엑상프로방스의 부유한 은행가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의 반대로 법학을 공부해야 했지만, 파리에서 인상파 화가들과 교류하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하지만 당시 혁신적이었던 인상파 화가들조차 세잔의 독특한 표현 방식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세잔은 50대 중반까지도 크게 주목받지 못한 채 '실패한 화가'라는 자괴감 속에 살아갔습니다. 그러던 1890~1895년, 그는 고향 프로방스의 농부들을 모델로 카드놀이를 주제로 한 작품 다섯 점을 그리게 됩니다. 이는 그가 존경했던 17세기 프랑스의 르냉 형제(Le Nain brothers)와 같은 장르화가들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것입니다.
다섯 점의 <카드놀이하는 사람들> 연작
<카드놀이하는 사람들> 연작 중 4점은 각각 미국의 반즈 재단,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영국의 코톨드 미술관,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에 있고, 나머지 한 점은 개인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2011년, 개인이 소장하고 있던 버전이 카타르 왕가에 당시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인 2억 5,900만 달러(당시 환율 약 2,900억 원)에 팔리며 세상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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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0~1892년, 반즈 재단, 미국 필라델피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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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0~1892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미국 뉴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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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2~1895년, 코톨드 미술관, 영국 런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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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2~1893년, 개인 소장 (카타르 왕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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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4~1895년, 47.5x57cm, 오르세 미술관, 프랑스 파리 |
소장 기록으로 본 다섯 점
각 소장 기관이 공개한 기록을 모으면 연작의 윤곽이 분명해집니다.
다섯 점의 소장 기록
- 반즈 재단 (필라델피아): 1890~1892년 · 캔버스에 유채 · 135.3 x 181.9cm · 소장 번호 BF564 · 연작 중 가장 크고 야심적인 작품으로 소개됩니다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1890~1892년 · 캔버스에 유채 · 65.4 x 81.9cm · 소장 번호 61.101.1 · 스티븐 C. 클라크의 1960년 유증
- 코톨드 (런던): 약 1892~1896년 · 캔버스에 유채 · 60 x 73cm · 소장 번호 P.1932.SC.57 · 새뮤얼 코톨드가 1929년 3월 구입해 1932년 기증
- 오르세 미술관 (파리): 1893~1896년 · 캔버스에 유채 · 47 x 56.5cm · 이자크 드 카몽도 백작의 1911년 유증
- 개인 소장 (카타르): 2011년 비공개 거래로 이전 · 제원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연작의 마지막으로 꼽히는 오르세본의 크기는 47 x 56.5cm입니다. 이자크 드 카몽도 백작이 1911년에 유증하면서 함께 남은 소장 기록의 값이고, 이 글에서는 이 수치를 확정값으로 씁니다. A2 용지 한 장과 비슷한 크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본문의 캡션에는 47.5 x 57cm로 적혀 있습니다. 이 수치가 어디서 나온 것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소장 기록의 값과 다르므로 확정된 치수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처음 그린 두 점은 여러 명의 인물과 배경이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지만, 연작이 진행될수록 불필요한 요소는 과감히 생략됩니다. 마침내 마지막 세 작품에서는 오직 두 명의 인물만이 남아, 본질적인 것에만 집중하는 구성으로 발전합니다. 그중에서도 마지막 작품으로 여겨지는 오르세 미술관 소장 버전이 가장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생략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연작이 진행되면서 요소가 줄었다는 설명은 크기 변화로도 확인됩니다. 가장 이른 반즈본의 가로는 181.9cm이고, 메트로폴리탄본은 81.9cm, 코톨드본은 73cm, 오르세본은 56.5cm입니다. 인물 수가 줄어드는 순서와 화폭이 작아지는 순서가 나란히 갑니다.
이 축소가 왜 중요한지는 반즈본의 성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반즈본은 가로가 거의 1.8m로, 역사화나 신화화처럼 큰 이야기를 담는 그림에나 쓰이던 규모입니다. 농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을 그 규모로 그렸다는 것은 소재를 격상시키는 선택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잔은 그 방향으로 더 나아가지 않고 반대로 갔습니다. 화면을 줄이고 인물을 덜어내면서, 큰 규모가 만들어 주던 무게를 화면 안의 구조로 대신하게 했습니다. 마지막 오르세본은 가장 작은데도 가장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데, 그 평가의 근거가 바로 이 대체에 있습니다. 크기로 얻던 것을 구성으로 얻어냈다는 뜻입니다.
2011년 거래, 어디까지가 확인된 사실인가
2011년의 매각은 확인된 부분과 확인되지 않은 부분이 뚜렷하게 갈립니다. 확인된 것은 그리스 선주 조지 엠비리코스가 소장하던 작품이 카타르 쪽으로 넘어갔다는 사실입니다. 엠비리코스는 그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것은 금액입니다. 이 거래는 비공개로 이루어졌고 관계자들이 비밀 유지 계약에 서명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발표된 금액은 없습니다. 보도로 전해진 수치는 2억 5,000만 달러 이상이며 매체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본문에 적은 2억 5,900만 달러도 그런 보도 수치 가운데 하나입니다.
금액을 확정할 수 없다는 점이 이 이야기의 가치를 떨어뜨리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확인할 수 있는 쪽이 더 흥미롭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그림이 팔리지 않아 실패한 화가라고 여겼던 사람의 작품이, 한 세기 뒤에 금액을 밝힐 수 없을 만큼의 거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 정물화' 분석
그림 속 두 남자는 오직 손에 들린 카드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배경은 거친 붓 터치로 여러 색이 겹쳐져 있어 창문인지 벽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추상화되었습니다. 세잔은 사물의 본질, 즉 기본적인 형태와 구조를 드러내기 위해 세부 묘사를 과감히 생략했습니다.
화면은 테이블 중앙의 와인병을 기준으로 대칭 구도를 이룹니다. 마주 앉은 두 남자의 굽은 등과 팔, 테이블이 만들어내는 안정적인 구조 속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흐릅니다. 그들은 마치 인생의 가장 중요한 승부를 앞둔 듯 진지하고 비장하기까지 합니다. 와인병 마개가 닫혀 있고 판돈도 없는 것으로 보아, 이들은 돈이 아닌 명예나 자존심을 건 승부를 벌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모델은 누구였나
화면 속 두 남자는 직업 모델이 아닙니다. 세잔 아버지의 엑상프로방스 영지에서 일하던 농장 노동자들이 자세를 잡아 주었습니다. 세잔은 1890년대의 상당 기간을 이 영지에서 지내며 주변 풍경과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그렸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다시 보면 인물의 자세가 다르게 읽힙니다. 두 사람의 굽은 등과 두꺼운 손, 그리고 몸에 익은 듯 무심한 카드 쥐는 방식은 화가가 연출한 포즈라기보다 그 사람들이 원래 앉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표정이 극적이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로 설명됩니다.
인간 정물화라는 평이 나온 자리도 여기입니다. 정물화의 사물이 그렇듯, 이 인물들은 화가를 향해 무언가를 연기하지 않습니다. 그저 거기에 놓여 형태와 무게를 가질 뿐입니다. 사람을 사물처럼 다룬다는 말은 인간성을 지웠다는 뜻이 아니라, 극적 연출 없이 형태 자체로 화면을 지탱하게 했다는 뜻입니다. 인상주의와 후기인상주의의 갈림길이 어디였는지도 이 지점에서 드러납니다.
그가 본 르냉 형제의 그림
본문에서 영감의 출처로 든 르냉 형제는 막연한 계보가 아닙니다. 세잔의 고향 엑상프로방스의 그라네 미술관에는 르냉 형제에게 귀속된 카드놀이 그림이 걸려 있었고, 세잔은 젊은 시절 그 그림을 실제로 보았습니다. 참고한 대상이 어느 도시의 어느 벽에 있었는지까지 확인되는 드문 경우입니다.
다만 두 그림이 같은 것을 그린 것은 아닙니다. 17세기의 그림에서 카드놀이는 인물들 사이의 관계와 표정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장치였습니다. 반면 세잔의 화면에서 인물들은 서로를 보지 않고 표정도 거의 움직이지 않으며, 탁자 위의 술병은 열리지 않은 채로 놓여 있습니다. 이야기가 일어날 조건을 하나씩 제거한 셈입니다.
그러니 여기서 이어받은 것은 주제이지 방식이 아닙니다. 같은 소재를 골라 놓고 정반대로 다뤘고, 그 차이가 이 연작을 근대 회화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그림이 그려진 아버지의 영지 자스 드 부팡은 지금도 엑상프로방스 외곽에 남아 있습니다.
흩어진 연작이 한자리에 모인 적이 있다
다섯 점이 네 나라에 흩어져 있으니 나란히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이 연작만을 주제로 삼은 전시가 실제로 열린 적이 있습니다. 2010년부터 2011년까지 런던 코톨드에서, 이어 2011년에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카드놀이하는 사람들을 제목으로 내건 전시가 이어졌고, 오르세본은 두 전시에 모두 출품되었습니다.
같은 주제를 여러 번 다시 그린 화가의 작업을 이해하는 데는 이런 전시가 결정적입니다. 한 점만 보면 이것이 완성된 하나의 그림으로 보이지만, 여러 점을 순서대로 놓고 보면 각각이 다음 그림을 위한 실험이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앞 절에서 본 크기의 축소도 한 점씩 볼 때는 보이지 않고 나란히 놓아야 보입니다.
그림이 지나온 손들
코톨드본의 이력은 비교적 자세히 남아 있습니다. 베를린의 화상 파울 카시러를 거쳐 베를린의 율리우스 엘리아스, 오슬로의 J B 스탕, 다시 베를린의 알프레트 골트를 지나 1929년 3월에 새뮤얼 코톨드가 사들였고, 1932년에 기증되어 지금의 자리에 왔습니다.
다른 두 점의 경로도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오르세본은 이자크 드 카몽도 백작이 1911년에 유증한 것이고, 메트로폴리탄본은 스티븐 C. 클라크가 1960년에 유증한 것입니다. 세 점 모두 미술관이 직접 사들인 것이 아니라 개인 수집가의 손을 거쳐 들어왔습니다.
이 경로를 따라가면 앞서 본 2011년 거래도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같은 계열의 마지막 장면으로 보입니다. 팔리지 않던 그림이 수집가들 사이를 돌다가 하나씩 공공 소장품이 되었고, 아직 개인의 손에 있던 마지막 한 점이 가장 늦게, 가장 비싼 값에 움직였습니다.
후대에 끼친 영향
이 작품을 통해 후대 화가들은 수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입체주의 화가들은 인물과 사물을 기본적인 기하학적 형태로 환원시킨 세잔의 방식에서 새로운 조형 언어의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야수주의 화가들은 사물의 고유색에서 벗어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색채를 자유롭게 사용한 것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또한 사물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해 세부 묘사를 생략하고 형태를 단순화한 것은 추상 미술의 탄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 결과 이 연작은 피카소의 입체주의와 마티스의 야수주의가 탄생하는 배경이 되었고, 현대 미술의 핵심인 추상 미술의 문을 열었습니다.
세잔의 <카드놀이하는 사람들>은 '인간 정물화'라는 평을 받으며, 이후 <사과와 오렌지>, <목욕하는 사람들> 등 그의 말년 걸작들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혁신적인 시도를 통해 세잔은 '현대 미술의 아버지'라는 위대한 칭호를 얻게 되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카드놀이하는 사람들은 몇 점이고 어디에 있나요?
모두 다섯 점이며 반즈 재단,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코톨드, 오르세 미술관이 각각 한 점씩 소장하고 나머지 한 점은 2011년 카타르로 넘어가 개인 소장으로 남아 있습니다.
Q. 다섯 점의 크기는 어떻게 다른가요?
가장 큰 반즈본이 135.3 x 181.9cm이고, 메트로폴리탄본 65.4 x 81.9cm, 코톨드본 60 x 73cm, 오르세본 47 x 56.5cm 순으로 작아집니다. 인물이 줄어드는 순서와 화폭이 작아지는 순서가 나란히 갑니다.
Q. 2011년 거래 금액은 정확히 얼마인가요?
공식적으로 발표된 적이 없습니다. 비공개 거래였고 관계자들이 비밀 유지 계약에 서명했으며, 보도로 전해진 금액은 2억 5,000만 달러 이상으로 매체마다 다릅니다.
Q. 그림 속 두 남자는 누구인가요?
세잔 아버지의 엑상프로방스 영지에서 일하던 농장 노동자들입니다. 직업 모델이 아니라 화가가 그 시기 가까이에서 보던 사람들이 자세를 잡아 주었습니다.
Q. 어느 버전이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평가받나요?
연작의 마지막으로 여겨지는 오르세 미술관 소장본입니다. 다섯 점 중 가장 작지만 인물을 둘로 줄이고 배경을 덜어내 화면 구조만으로 긴장을 유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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