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icky

다비드의 나폴레옹의 대관식,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 선전화

  루브르 박물관에서 관람객의 발길을 가장 오래 붙잡는 거대한 작품이 있습니다. 압도적인 크기와 화려함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이 그림은, 단순한 기록화를 넘어 한 시대의 권력 구도를 치밀하게 엮어낸 '연출된 역사' 그 자체입니다. 바로 자크 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 1세와 조제핀 황후의 대관식>입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1세(Napoleon Bonaparte I, 1769-1821, 재위 1804-1814)는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의 혼란을 수습하고 1799년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1804년에는 국민투표에서 99.93%라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황제에 즉위했습니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거행된 대관식에는 교황 비오 7세가 참석하여 황제의 관을 씌워줄 예정이었죠.

  하지만 나폴레옹은 대관식장에서 교황의 손에 있던 관을 직접 받아 자신의 머리에 썼습니다. 이는 자신의 권력은 신에게 받은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이루어낸 것이며, 프랑스 황제의 지위는 교황보다 아래에 있지 않다는 것을 만천하에 과시하기 위한 행동이었습니다. 교황보다 우위에 있는 절대 권력을 보여준 것입니다. 현장에서 교황은 체면이 구겨짐과 동시에 들러리로 전락해버렸고, 그는 황망히 이후 행사를 지켜볼 뿐이었습니다.

 

<나폴레옹 1세와 조제핀 황후의 대관식>을 보여주는 이미지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1805-1807년, 621x979cm, 파리 루브르 박물관

 

  나폴레옹의 수석 화가였던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48-1825)는 황제의 요청에 따라 이 역사적인 순간을 기록화로 남겼습니다. 가로 약 10m, 세로 6m가 넘는 엄청난 크기의 이 작품은 오늘날 루브르 박물관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작품이 이토록 크게 제작된 것은 "크지 않으면 아름다울 수 없다"라는 나폴레옹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다비드는 1년여의 준비 기간 후 단 2년 만에 프랑스 회화사상 가장 크고 화려한 작품을 완성합니다. 그는 150여 명의 인물을 그려 넣으면서도 모든 시선이 나폴레옹에게 향하도록 하여 극적인 효과를 높였습니다.


 

나폴레옹의 대관식 습작 스캐치
나폴레온의 대관식 습작 스체치


  다비드는 1년 넘게 수많은 밑그림을 그리며 작품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그림은 나폴레옹이 자신에게 관을 씌우는 장면이 아니라, 황후 조제핀에게 관을 씌워주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사실 나폴레옹은 본인 스스로 관을 쓰는 모습으로 작품이 그려지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다비드가 이 모습을 스케치로 그려보니, 황제의 모습이 너무나 거만해 보여 훗날 황제뿐만 아니라 작품의 평가에도 문제가 될 것이 불 보듯 예상되었습니다. 이에 다비드의 설득으로 현재 장면으로 그림의 주제가 바뀐 것입니다.

  이는 나폴레옹 자신의 지시에 따른 것이기도 한데, 교황을 무시하는 듯한 오만한 모습 대신 황후에게 관을 수여하는 자비로운 황제의 이미지를 연출하기 위한 정치적 계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조제핀의 설득이 상당했다고 전해지는데요, 평소 사치와 허영심이 넘치던 조제핀 입장에서는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장면이 무척이나 기대되었던 것이지요.

  결과적으로 조제핀은 당시 서른한 살의 나이임에도 20대 초반의 청초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등장하고, 나폴레옹은 평소 불륜과 잦은 바람으로 문제를 일으켰던 콧대 높은 조제핀이 평생 자신에게 무릎을 꿇은 모습으로 남겨지게 되었으니 두 사람 모두 만족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교황 비오 7세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미지
교황 비오 7세(부분 확대)


  그림에는 교황이 등장하지만, 나폴레옹이 중앙을 차지하는 구도를 통해 세속 권력이 종교 권력 위에 있음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그림 속 교황 비오 7세는 무기력한 표정으로 앉아 있습니다. 원래 스케치에서는 교황이 팔을 무릎에 올리고 있었지만, 나폴레옹의 지시로 마지못해 축복을 내리는 듯한 모습으로 수정되었습니다.

 

. 화면 중앙 귀빈석에 위엄있게 앉아 있는 중년 여성은 나폴레옹의 어머니 레티치아는 대관식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나폴레옹의 형제 루시앙과 제롬이 나폴레옹이 반대하는 결혼을 하는 바람에 눈 밖에 나서 대관식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자, 이에 대한 분풀이로 모친은 다른 자식들을 만나러 로마로 떠나버렸습니다. 하지만 황제가의 분란을 원치 않았던 나폴레옹과 다비드는 보나파르트 가문의 정통성을 과시하기 위해 어머니를 가장 중요한 자리에 그려 넣도록 했습니다.

 

귀빈석 중앙에 앉아 있는 나폴레옹의 어머니를 보여주는 이미지
귀빈석 중앙에 앉아 있는 나폴레옹의 어머니(부분 확대)

 

나폴레옹의 형제와 자매들을 보여주는 이미지
나폴레옹의 형제자매들(부분 확대)


그림 속에 검은 옷을 입고 손에는 크로키 화첩을 들고 있는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의 모습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의 모습 부분 확대


  또한 2층 발코니석에서는 이 장면을 열심히 스케치하는 다비드 본인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중요한 역사적 순간에 자신이 함께하고 있음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여지네요. 


  그렇다면 완성된 그림을 본 나폴레옹의 반응은 어떠했을까요? 1808년 1월, 다비드의 작업실에 찾아와 처음 작품을 마주한 나폴레옹은 1시간가량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말없이 그림을 감상한 후, "훌륭하군, 다비드. 정말 훌륭해. 이건 작품이 아닙니다. 사람이 작품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며 모자를 벗어 화가에게 깊은 경의를 표했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이 이토록 극찬했던 것은 거대한 사이즈도 그러했지만, 마치 3년 전 대관식 현장으로 돌아간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다비드는 실제로 이 작품을 그려나가면서 대관식의 주요 장면들을 스케치하고, 대관식에 참여한 200여 명의 인물을 자신의 작업실로 불러 초상화에 가까운 묘사를 이어갔습니다. 또한 그들이 대관식 당시에 입었던 의복과 장신구까지 건네받아 완벽하게 재현했으니 나폴레옹이 그토록 놀란 것은 당연했을지도 모릅니다.


  이후 다비드는 이 작품이 루브르 박물관에 정식으로 공개되었을 때, 작품 건너편에 커다란 거울을 설치해서 작품을 관람하는 사람들이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연출까지 기획하지요. 


  이 작품으로 다비드는 황실 수석 화가로서의 지위를 굳혔고, 이후 프랑스 예술계는 그의 신고전주의가 중심이 되어 발전하게 됩니다. 작품 완성 직후 황제에게 두 번째 레지옹 도뇌르 훈장도 받았고, 교황 비오 7세는 파리에 머무는 동안 다비드에게 초상화를 의뢰하지요. 교황의 초상화를 그린다는 것은 너무도 영광스러운 일이었고, 교황에게 축성까지 받은 다비드는 이제 라파엘로, 티치아노, 벨라스케스와 더불어 교황의 초상화를 그린 위대한 거장으로 남게 됩니다.


  하지만 일부 비평가들은 이 작품이 압도적인 크기에 비해 감동은 떨어진다고 평하기도 합니다. 철저하게 계산된 구도와 모든 인물이 나폴레옹만을 바라보는 연출이 생동감을 떨어뜨린다는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이는 나폴레옹의 절대 권력을 너무나도 잘 보여주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은 나폴레옹 시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걸작이자 신고전주의 양식의 정점으로, 오늘날까지 루브르 박물관에서 가장 주목 받는 작품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댓글 없음

문의하기 양식

이름

이메일 *

메시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