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의를 벗은 세 남자가 무릎을 꿇고 마루를 깎고 있습니다. 왼쪽 창에서 들어온 빛이 그들의 등과 팔 위로 흘러내리고, 깎여 나온 나무 부스러기가 바닥에 흩어져 있습니다. 카유보트의 〈마루를 깎는 사람들〉(1875)은 여기까지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확대해 보면 두 가지가 달리 보입니다. 하나는 세 사람이 같은 일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과 조금 떨어진 자리에 물건이 둘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 귀스타브 카유보트, 〈마루를 깎는 사람들〉, 1875년, 캔버스에 유화, 세로 102 × 가로 146.5 cm(자료에 따라 147 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RF 2718. 세 사람의 손을 하나씩 견주어 보라. |
세 사람은 같은 일을 하고 있지 않다
먼저 세 사람의 손을 따로따로 봅니다. 멀리서 보면 같은 동작을 되풀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손 부분을 크게 키우면 쥐고 있는 것이 서로 다릅니다.
| 왼쪽 인물의 손. 덩어리에서 오른쪽으로 뻗은 얇고 밝은 날을 보라. |
왼쪽 인물은 한 손으로 검은 덩어리를 쥐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덩어리에서 얇고 밝은 날 하나가 바닥을 따라 오른쪽으로 길게 뻗어 나옵니다. 날의 바로 오른쪽에 갓 깎인 나무 부스러기가 쌓여 있습니다.
| 가운데 인물의 손. 덩어리의 윗면이 평평하고 날은 드러나지 않는다. |
가운데 인물도 한 손으로 쥐고 있는데 모양이 다릅니다. 윗면이 평평한 검은 덩어리이고, 왼쪽 인물에게서 보이던 날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부스러기는 이 덩어리의 왼쪽에 몰려 있습니다.
| 오른쪽 인물의 손. 혼자만 두 손을 모아 쥐고 있다. |
오른쪽 인물은 혼자만 두 손을 씁니다. 두 손을 나란히 모아 낮고 어두운 덩어리를 함께 감싸 쥐었고, 여기서도 날은 보이지 않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날이 드러난 것은 왼쪽 하나뿐이고, 두 손을 쓰는 것은 오른쪽 하나뿐입니다. 도구의 이름이 무엇인지, 저 손이 미는 중인지 당기는 중인지는 이 화면만으로는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세 사람이 같은 물건을 같은 방식으로 쥐고 있지 않다는 것은 확인됩니다.
이 사실이 왜 중요한가 하면, 화면이 한 가지 동작의 반복이 아니라 여러 공정이 동시에 돌아가는 작업장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작업장 한쪽에 물건이 둘 놓여 있습니다.
오른쪽 벽 앞의 병 하나와 잔 하나
화면 오른쪽 끝, 벽과 바닥이 만나는 자리를 봅니다. 짙은 유리로 된 병 한 병이 서 있습니다. 목이 길고 어깨가 완만히 흘러내리는 형태입니다. 병 안의 액체는 그 어깨선까지 차 있습니다. 그 곁에 유리잔이 하나 놓여 있고, 잔에는 붉은 액체가 테 가까이까지 담겨 있습니다.
| 병과 잔은 선반이나 탁자가 아니라 이미 깎아 놓은 밝은 마루 널 위에 직접 놓여 있다. |
눈여겨볼 것은 놓인 자리입니다. 선반도 탁자도 아닙니다. 이미 깎아서 밝아진 마루 널 위에 직접 놓여 있습니다. 작은 도판에서는 이 자리가 벽의 어두운 얼룩처럼 보이고, 크게 확대해야 병의 어깨선과 잔의 굽이 분명하게 나옵니다.
이 물건들은 일하는 세 사람과 같은 방 안에 있습니다. 도구가 아니고 재료도 아닙니다. 앞 절에서 본 대로 세 사람은 서로 다른 것을 쥐고 저마다의 공정을 하고 있는데, 그 한가운데에 술이 함께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이 병과 잔을 알아보고 나면 화면을 도는 순서가 달라집니다. 세 남자의 등에서 시작해 바닥을 훑고 오른쪽 벽에서 한 번 멈춰 보십시오. 그 자리에는 사람도 도구도 없습니다.
바닥이 둘로 갈린다
이제 바닥을 봅니다. 이 화면에서 바닥은 하나가 아니라 둘입니다.
왼쪽과 앞쪽, 그러니까 우리에게 가까운 절반은 이미 깎여서 매끄럽고 밝습니다. 오른쪽과 안쪽은 아직 골이 파인 상태여서 세로 줄무늬로 남아 있습니다. 두 면의 경계가 화면을 비스듬히 가릅니다. 나무 부스러기는 그 경계 부근과 세 사람의 주변에 흩어져 있습니다.
바닥 위에는 도구도 놓여 있습니다. 오른쪽 인물의 왼편에 나무 자루가 달린 망치가 하나 있습니다. 머리는 어둡고 자루는 밝아서, 마루 결과 45도로 어긋난 채 눈에 걸립니다. 화면 왼쪽 아래 모서리에서는 금속 도구 하나가 잘린 채 들어와 있습니다.
세 사람의 고개도 서로 다릅니다. 왼쪽 인물만 고개를 들어 동료 쪽으로 돌리고 있어서 이마와 코, 턱선이 보입니다. 가운데와 오른쪽 인물은 계속 숙이고 있고, 오른쪽 인물은 정수리와 귀가 보이는 각도입니다.
바닥에서 마지막으로 볼 것은 화가의 이름입니다.
| 서명은 화면 가장자리가 아니라 지금 깎고 있는 마루 표면 위에 적혀 있다. |
오른쪽 아래, 「G. Caillebotte」와 「1875」가 두 줄로 적혀 있습니다. 벽도 아니고 여백도 아니고, 지금 깎고 있는 그 마루 표면 위입니다.
카유보트는 왜 위에서 내려다보는가
카유보트는 인물의 눈높이가 아니라 위에서 비스듬히 내려다보는 시점을 골랐습니다. 이 결정 하나가 화면 전체의 성격을 정합니다.
마루 선들이 화면 오른쪽 위를 향해 빠르게 모입니다. 그 방향으로 세 사람이 점점 작아지며 놓입니다. 같은 자세를 한 몸이 서로 다른 거리에 배치되면서 화면에 리듬이 생깁니다.
내려다보았기 때문에 바닥이 화면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고, 몸은 그 표면 위에 눌린 것처럼 놓입니다.
빛이 여기에 더해집니다. 왼쪽 창에서 비스듬히 들어온 빛이 세 사람의 등과 팔만 골라 밝힙니다. 내려다보느라 납작해진 화면에 그 빛이 다시 두께를 돌려줍니다.
창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가
빛이 들어오는 창을 봅니다. 창은 화면 왼쪽 위에 있습니다. 크고, 아래쪽에 연철 난간이 달려 있습니다.
| 난간 너머를 보라. 건물도 하늘도 그려져 있지 않다. |
난간의 소용돌이 무늬가 보이고 그 가운데 늘어진 장식이 하나 달려 있습니다. 위쪽 가로대를 따라서는 작은 타원 고리가 줄지어 있습니다.
그런데 창 너머에는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습니다. 확대해 보면 흰빛에 가까운 밝은 면과 옅은 회보라 얼룩뿐입니다. 건물도 하늘도 사람도 식별되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그 빛 위에 실루엣으로 걸린 난간의 곡선뿐입니다.
방 안은 이렇게 촘촘하게 그려 놓고, 창밖은 빛으로만 남겨 둔 화면입니다. 난간의 형태는 이 건물이 어느 시기의 것인지를 알려 줍니다. 화면이 말해 주는 것은 거기까지입니다.
살롱이 거부한 마루를 깎는 사람들
1875년 카유보트는 이 작품을 파리 살롱에 냈고 낙선했습니다. 당시 살롱의 장르 위계에서 이런 그림이 놓일 자리는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역사화와 종교화와 신화화가 위에 있었고 풍속화와 실내 장면은 아래에 있었습니다. 실내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대형 캔버스에 담은 그림이었습니다.
노동을 그린 그림 자체가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쿠르베도 밀레도 일하는 사람을 큰 화면에 담았습니다. 다만 그 인물들은 들판이나 자연 속에 있었습니다. 카유보트가 다른 것은 실내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그만한 크기로 세웠다는 점입니다.
이듬해 카유보트는 낙선 직후 가까워진 모네와 르누아르와 드가의 그룹에 합류합니다. 화상 뒤랑뤼엘의 갤러리에서 열린 제2회 인상파 전시회에 이 주제의 그림을 냈고, 그룹의 일원으로 등장한 자리였습니다.
에밀 졸라가 1876년 파리에서 보낸 글에 이 전시가 나옵니다. 그는 카유보트가 〈마루를 깎는 사람들〉과 〈창가의 청년〉을 냈고 도드라짐이 놀랍다고 적은 뒤, 곧바로 이렇게 이었습니다. 「아주 반예술적인 그림, 유리처럼 맑은 그림, 정확함 때문에 부르주아적인 그림이다.」 그리고 한 문장을 더 붙였습니다. 「현실을 사진처럼 옮긴 것은 예술적 재능의 독창적인 각인으로 고양되지 않으면 딱한 것이다.」
졸라가 겨눈 것은 정확성 자체가 아니라 정확성만 남은 상태였습니다. 도드라짐이 놀랍다고 적으면서도 그것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한 셈입니다.
루이 에노는 다른 곳을 봤습니다. 후대 연구서가 옮긴 그의 말에 따르면, 그는 주제가 저속하다고 하면서도 화가가 거기에 끌릴 만한 것은 이해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루를 깎는 이들의 팔이 너무 가늘고 가슴이 너무 좁다고 적었습니다. 그림의 태도가 아니라 그려진 몸을 지적한 것입니다.
한 사람은 예술성을, 다른 한 사람은 인체와 주제를 문제 삼았습니다. 정확함을 이 그림의 미덕으로 적은 말은 이 두 기록 어디에도 없습니다.
두 번째 판본과 오르세
카유보트는 이 주제를 한 번만 그리지 않았습니다. 오르세에 있는 1875년 버전 말고 80 × 100cm 크기의 다른 버전이 있고, 개인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제작 시기는 1876년으로 봅니다. 1876년 전시에 걸린 것이 둘 가운데 어느 쪽인지도 자료마다 다르게 적혀 있어 확정되지 않습니다.
| 귀스타브 카유보트, 〈마루를 깎는 사람들〉 두 번째 버전, 80 × 100cm, 개인 소장. 인물이 둘로 줄어든 것을 위 그림과 견주어 보라. |
두 화면을 나란히 놓으면 무엇이 달라졌는지가 보입니다. 오르세의 것은 세 사람이 방 안쪽까지 펼쳐지고 바닥의 소실점이 강하게 작동합니다. 다른 버전은 인물이 둘로 줄었습니다. 두 사람은 화면 위쪽에 놓이고, 앞쪽에는 이미 깎여 매끄러워진 마루가 넓게 남습니다.
오르세의 것이 세 사람의 서로 다른 손으로 화면을 채운다면, 이쪽은 빈 바닥이 화면의 아래 절반을 차지합니다. 두 화면이 함께 남아 있다는 사실은, 그가 같은 재료를 놓고 구도를 시험했다는 것으로 읽힙니다.
크기가 다른 판본이 둘 남아 어느 쪽이 전시에 걸렸는지가 정해지지 않은 경우는 이 시기에 또 있습니다. 르누아르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를 다룬 글에서 그 사정을 정리했습니다.
이 그림이 오르세까지 온 경위에는 한 가지 흔한 오해가 있습니다. 카유보트는 1894년에 세상을 떠나며 자신이 모은 동료들의 그림을 국가에 유증했습니다. 68점으로 전해지고, 국가는 그 가운데 38점을 받았습니다. 남은 그림들은 1904년과 1908년에 다시 제안됐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마루를 깎는 사람들〉은 그 유증 목록에 없습니다.
이 그림은 카유보트 자신의 작품이어서, 유족과 유언집행인 르누아르를 통해 1894년 따로 기증됐고 1896년 뤽상부르 미술관에 들어갔습니다. 이후 루브르를 거쳐 1986년 오르세로 옮겨졌습니다.
그림 앞으로 돌아갑니다. 다음에 이 그림을 보게 되면 세 사람의 손부터 하나씩 견주어 보시기 바랍니다. 쥐고 있는 것이 서로 다릅니다. 그리고 그 손들에서 조금 떨어진 오른쪽 벽 앞, 이미 깎아 놓은 밝은 널 위에 병 하나와 가득 채워진 잔이 놓여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