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는 보통 그림의 가장자리에 이름을 씁니다. 캔버스 구석의 빈 자리나 화면 아래쪽 여백입니다. 그런데 에두아르 마네는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1882)에서 자기 이름을 다른 곳에 적었습니다. 화면 안에 진열된 술병의 라벨 위입니다.
이 그림은 마네가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 병을 앓는 동안 완성해 그해 살롱에 낸 마지막 대작입니다. 화려한 파리의 밤을 그린 풍속화처럼 보이지만 화면 곳곳이 관람자의 예상과 어긋납니다. 어긋나는 자리를 하나씩 짚어 보겠습니다.
• 작품명: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A Bar at the Folies-Bergère / Un Bar aux Folies-Bergère)
• 작가: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1832~1883)
• 제작: 1882년
• 재료: 캔버스에 유채
• 크기: 96×130cm
• 소장: 런던 코톨드 갤러리(1926년 새뮤얼 코톨드가 매입, 1934년 기증)
화가의 이름이 술병 라벨 위에 있다
화면 왼쪽 아래 끝을 봅니다. 붉은 액체가 든 병 하나가 앞줄 맨 왼쪽에 서 있습니다. 병목이 아니라 몸통에 흰 라벨이 붙어 있고, 그 라벨 아래쪽에 글자 두 줄이 있습니다. 위가 「Manet」, 아래가 「1882」입니다.
| 에두아르 마네,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 1882년, 캔버스에 유채, 96 × 130cm, 런던 코톨드 갤러리. 화면 왼쪽 아래 끝, 붉은 액체가 든 병의 흰 라벨을 보라. |
글자의 생김새가 중요합니다. 마네는 이 이름을 라벨의 인쇄 문자처럼 앉혀 놓았습니다. 획이 라벨의 곡면을 따라 살짝 휘고, 크기도 라벨 안에 들어맞습니다. 멀리서 보면 상표의 일부로 지나치기 쉽고, 가까이 보면 화가의 서명입니다.
그 오른쪽으로는 짙은 초록빛 갈색 병이 하나 서 있고, 그 뒤로 목을 금박 포일로 감싼 샴페인 병 넷이 두 쌍으로 늘어서 있습니다. 서명이 얹힌 병은 그 무리의 맨 앞, 맨 왼쪽입니다.
이 자리를 두고 파는 것과 그리는 것을 겹쳐 놓았다고 읽는 해석이 있습니다. 그렇게 읽을 여지는 있습니다. 다만 화면 구석의 빈 자리를 처리한 것일 수도 있고, 화면 안 사물에 이름을 얹는 당대의 흔한 방식일 수도 있습니다. 마네가 왜 그 자리를 골랐는지 밝힌 기록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여기서 확정할 수 있는 것은 위치와 생김새까지입니다. 화가의 이름이 화면 안 상품 위에 놓여 있습니다. 그 사실 하나에 한해서는 이 그림이 물건을 파는 자리를 그렸다는 것과 어긋나지 않습니다. 이 서명을 어떻게 읽든, 아래에서 볼 것들은 그대로 남습니다.
거울의 어긋남은 실수인가 선택인가
바텐더 쉬종의 등 뒤에 보이는 것은 실제 공간이 아니라 거대한 거울입니다. 여기서 오래 논쟁된 어긋남이 나옵니다.
우리가 쉬종을 정면에서 본다면 거울 속 그녀의 뒷모습은 그녀 자신에게 가려져야 합니다. 그런데 화면에서 뒷모습은 오른쪽으로 멀찌감치 비켜나 있습니다. 게다가 정면의 그녀는 화면 밖을 보고 있는데, 거울 속의 그녀는 중절모를 쓴 남성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한쪽은 이 어긋남을 마네가 고른 장치로 봅니다. 근거는 캔버스 자체에 있습니다. X선 조사에서 마네는 쉬종의 두 손을 배 앞에서 교차시킨 자세로 먼저 그렸다가 덮었습니다. 거울 속 반사의 머리 위치도 오른쪽으로 두 번 옮긴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조사 기록에는 연도가 없고 20세기 후반이라는 시기만 적혀 있습니다.
다른 한쪽은 어긋남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2000년에 이 장면의 무대를 실제로 지어 놓고 사진을 찍은 실험이 있었습니다. 관람자가 정면이 아니라 오른쪽으로 비껴선 자리에 있다고 보면 화면이 광학적으로 맞아떨어졌습니다. 이 시점에서 남성은 쉬종 앞이 아니라 시야 바깥 왼쪽에 서 있고, 그녀를 보고 있지도 않습니다. 이 실험은 이듬해 박사학위 논문으로 정리됐습니다.
무게를 재 봅니다. 실수인가 선택인가라는 물음에 한해서는 실수 쪽이 약합니다. 재현 실험이 옳다면 애초에 틀린 것이 없고, X선이 옳다면 마네는 이 배치에 여러 번 손을 댔습니다. 어느 쪽이든 지금의 화면은 한 번에 정해진 것이 아니라 골라진 것입니다. 다만 마네가 그 선택으로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까지는 이 근거들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완성작에 앞서 그린 유채 스케치가 따로 남아 있습니다. 1881년에 그린 47×56cm 크기의 그림입니다. 2015년 경매 카탈로그는 두 그림의 차이를 이렇게 적습니다. 완성작에서 마네는 바텐더를 다시 크게 그려 화면 중앙에 정면으로 놓았습니다. 팔의 위치를 바꾸었고, 남성의 반사상은 화면 오른쪽 위로 옮겼습니다.
스케치 단계에서는 인물이 지금보다 오른쪽에 치우쳐 있었다는 뜻입니다. X선에서 확인된 반사의 이동은 스케치에서 완성작으로 넘어가며 실제로 밟은 변화와 겹칩니다.
바 위의 병과 오렌지
화면 아래쪽 대리석 바 위를 봅니다. 병과 과일이 독립된 정물화처럼 놓여 있습니다.
먼저 붉은 삼각형입니다. 화면 오른쪽 끝, 어두운 갈색 병의 몸통 정면에 타원 라벨이 붙어 있고 그 한가운데에 붉은 정삼각형이 선명합니다. 영국 바스 에일의 상표이고, 영국에서 처음 등록된 상표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파리의 유흥가에서 수입 맥주를 팔았다는 표시입니다.
같은 삼각형이 화면 왼쪽 끝에도 있다고 적는 자료들이 있습니다. 다만 이 도판을 확대해 보면 왼쪽 무리의 병들에서는 삼각형이 확인되지 않습니다. 왼쪽 끝의 병은 앞서 본 붉은 액체 병입니다. 위치는 자료마다 갈리는 값으로 남겨 둡니다.
오렌지 쪽으로 눈을 옮깁니다. 오렌지는 접시가 아니라 굽이 달린 그릇에 담겨 있습니다. 컷글라스여서 굽과 몸통에 각진 면이 촘촘하게 잡혀 있고, 빛을 받은 모서리들이 알갱이처럼 반짝입니다. 작은 도판에서 이 모서리들이 유리구슬로 보이기 쉽습니다.
오렌지는 당시 값비싼 수입 과일이었습니다. 그와 별개로, 마네가 매춘부로 읽히기를 의도한 여성 그림에 오렌지를 거듭 넣었다는 도상 연구가 있습니다. 이 그릇 하나로 그림 전체를 그렇게 읽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바 위에 놓인 것들이 전부 팔기 위해 진열된 물건이라는 점은 화면에서 그대로 보입니다.
| 바 위의 세부. 갈색 병 몸통의 붉은 삼각형과, 오렌지를 담은 그릇의 각진 면을 함께 보라. |
화면 왼쪽 위, 잘려 들어온 다리
이제 화면 왼쪽 맨 위 구석으로 눈을 옮깁니다. 밝은 다리 두 짝이 화면 위에서 잘린 채 매달려 있습니다. 발에는 발목까지 오는 초록 부츠를 신었고, 두 발은 검은 가로 봉 위에 얹혀 있습니다.
흔히 구두만 떠 있는 것으로 이야기되지만 실제로는 다리까지 보입니다. 그 오른쪽 아래로는 적갈색 사각 기둥이 서 있고, 기둥 앞에 흰 구형 전등이 크게 하나 그려져 있습니다. 샹들리에가 아니라 기둥과 전등입니다.
공중그네를 타는 곡예사의 다리입니다. 폴리 베르제르가 술만 파는 곳이 아니라 서커스와 발레와 오페레타가 함께 열리던 공간이었다는 표시입니다. 캔버스 밖으로 잘려 나간 이 구도는 화면이 어느 한순간을 잘라 온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머리 위에서는 곡예가 진행 중입니다. 그런데 쉬종의 얼굴에는 그에 대한 반응이 없습니다. 두 자리를 번갈아 보면 이 화면이 무엇을 나란히 놓았는지가 드러납니다.
한 화면이 동시에 보여 주는 것
마네는 파리라는 도시의 근대를 그리는 데 오래 매달렸습니다.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은 시골의 햇살과 자연의 변화를 좇았습니다. 그는 인공조명 아래 스쳐 지나가는 표정과 그 이면의 피로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이 작품에서 그 일을 하는 것은 거울입니다. 거울은 화려한 밤을 가득 비춥니다. 그 거울을 등지고 선 사람은 그 화려함에 물들지 않은 얼굴로 서 있습니다. 장치 하나로 두 가지가 한 화면에 들어왔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얼굴로 돌아옵니다. 붉어진 뺨과 지친 기색이 도는 눈매가 보입니다. 목에 감긴 검은 벨벳 끈과 가슴에 꽂힌 연분홍 꽃은 바 위의 물건들처럼 정교하게 놓여 있습니다.
그녀의 시선은 중절모를 쓴 남자도, 군중도 향하지 않습니다. 화면 밖으로 곧장 나옵니다. 그 시선의 끝에 서면, 처음에 본 병 라벨의 두 줄이 다시 떠오릅니다. 이름 하나와 얼굴 하나가 같은 화면 안에서 팔리는 것들 옆에 놓여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