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에드가 드가(Edgar Degas, 1834~1917)
• 작품명: 머리 빗기(Combing the Hair / La Coiffure)
• 제작: 1896년경
• 재료: 캔버스에 유채
• 크기: 114.3 × 146.7cm
• 소장: 런던 내셔널 갤러리
• 비고: 드가 사후 화가 앙리 마티스가 소장, 1937년 내셔널 갤러리 소장
화면을 채우는 것은 짙은 주황빛 빨강과 팽팽하게 당겨진 손입니다. 한 여성은 의자에서 몸을 뒤로 젖힌 채 한 손으로 자기 머리 위쪽을 누르고 있고, 그 뒤에 선 다른 여성이 빗을 들어 긴 머리카락을 아래로 당깁니다. 에드가 드가의 〈머리 빗기〉(1896년경)에서 이 장면의 긴장은 얼굴보다 손과 목과 머리카락에서 먼저 옵니다.
드가 머리 빗기 해설, 얼굴보다 손이 먼저 보인다
에드가 드가, 〈머리 빗기〉, 1896년경, 캔버스에 유채(배접하지 않음), 114.3 × 146.7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NG4865. 사진 Quant8 · CC BY-SA 4.0
앉은 여성의 얼굴은 세밀하게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내셔널 갤러리는 드가가 이 얼굴의 마지막 세부를 빠르고 굵은 검은 선으로 더했다고 설명합니다. 대신 눈길을 붙잡는 것은 두 손입니다. 한 손은 손가락을 세워 자기 머리 위쪽을 붙잡고 있고, 다른 손은 가슴 앞에 떠 있습니다. 머리가 당겨질 때 몸이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순간의 손 모양으로 볼 수도 있고, 흔들리는 머리를 붙드는 동작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서 있는 여성의 손에도 힘이 들어가 있습니다. 빗을 쥔 손이 머리카락 사이로 파고들어 아래로 당기고, 다른 손은 머리카락 다발을 붙잡고 있습니다. 내셔널 갤러리의 오디오 해설은 앉은 여성이 의자에서 45도쯤 뒤로 젖혀져 있어 머리가 하녀의 허리 높이에 온다고 설명합니다. 미술관은 이 그림의 뼈대를 하녀의 머리와 팔에서 시작해 여주인의 몸을 따라 내려가는 강한 대각선으로 봅니다. 한쪽은 당기고 한쪽은 당겨지는 두 몸이 머리카락 한 줄로 이어져 있습니다.
드가는 이 긴장을 표정이 아니라 몸으로 옮겼습니다. 뒤로 젖힌 목, 세워 잡은 손가락, 팽팽한 머리카락이 표정을 대신합니다.
머리빗기, 붉은색 하나로 채운 화면
이 그림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색입니다. 배경의 벽, 앉은 여성의 옷, 머리카락까지 모두 짙은 주황빛 빨강 한 계열로 처리되어 있습니다. 서 있는 여성의 분홍빛 블라우스와 흰 앞치마만이 이 붉은 화면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붓질을 보면 색을 고르게 칠하지 않았습니다. 내셔널 갤러리는 드가가 대담한 붓질로 구도를 잡고, 크림색 흰 바탕 위에 타오르는 듯한 주황빛 빨강의 변주로 색을 거의 제한했으며, 그 바탕이 캔버스 왼쪽에 아직 보인다고 설명합니다. 아래에서 비치는 밝은 층과 위에 얹은 붉은 층이 함께 보이는 까닭입니다.
앉은 여성의 머리카락은 배경의 붉은색과 거의 구분되지 않습니다. 머리카락이 어디서 끝나고 벽이 어디서 시작하는지 윤곽선으로 나뉘지 않고, 붓의 방향과 색의 농도 차이로만 겨우 구분됩니다. 인물과 배경이 같은 색 속에 함께 녹아 있는 셈입니다.
드가 머리 빗기가 그려진 자리
화면 오른쪽 앞에는 흰 탁자 모서리가 비스듬히 들어와 있습니다. 내셔널 갤러리의 오디오 해설은 그 위의 솔과 손거울이 금잔화 같은 주황빛으로 눈이 쉬어 가는 자리를 만든다고 설명합니다. 두 여성의 당기고 당겨지는 동작과 달리 이 탁자 위는 조용합니다.
내셔널 갤러리는 앉은 여성이 임신했을 수도 있다고 보고, 서 있는 여성은 하녀 제복을 입었다고 설명합니다. 하녀는 소매가 크게 부푼 분홍 블라우스에 흰 앞치마 차림이고, 앞치마는 탁자에 일부 가려져 있습니다. 미술관에 따르면 드가는 예비 드로잉에서 자기 집 하녀 조에 클로지에를 모델로 썼을 수 있지만, 그림 속 하녀는 여주인과 마찬가지로 전문 모델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내셔널 갤러리에 따르면 머리를 빗거나 남이 빗겨 주는 여성은 드가의 작품에 자주 나오는 장면이고, 이 그림은 아직 옷을 다 입지 않은 여주인을 하녀가 빗겨 주는 사적인 몸단장의 순간입니다.
앵그르의 목욕탕과 일본 판화
머리를 빗는 여인은 오래된 주제입니다. 내셔널 갤러리는 이 그림의 더 직접적인 전례로 앵그르의 〈터키탕〉(1862~1863, 루브르)을 듭니다. 그 그림에는 옆모습으로 앉은 여인의 머리를 뒤에 선 다른 여인이 땋아 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미술관은 또 드가가 이 주제를 고른 데에는 그가 수집하던 일본 목판화에 대한 관심이 일부 반영되어 있다고 봅니다.
드가는 1834년 파리의 부유한 은행가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내셔널 갤러리는 그가 개인 수입이 있어 구매자의 비위를 맞출 필요 없이 자기 길을 갈 수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1874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동생 르네가 진 큰 빚이 드러나자, 드가는 재산을 팔아 그 빚을 갚았고 이때부터 작품 판매에 더 기대게 되었다고 전합니다. 발레 그림은 잘 팔려서 그 시기 그에게 필요한 수입이 되어 주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따르면 그는 발레를 주제로 약 1,500점을 남겼습니다.
드가는 발레리나로 널리 알려졌지만, 머리 빗는 여자, 목욕하는 여자, 다림질하는 세탁부처럼 무대 밖의 사적인 일상도 꾸준히 그렸습니다. 내셔널 갤러리는 이 그림을 그가 이 주제를 다룬 작품 가운데 가장 대담한 것 중 하나로 꼽습니다. 〈머리 빗기〉는 앵그르가 매끈한 살결로 그린 장면을 거친 붓과 한 가지 색으로 다시 세운 셈입니다.
드가는 인상주의 화가들과 함께 전시했지만, 동료들이 즐기던 야외 풍경화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극장과 카페, 실내의 인물을 주로 그렸습니다. 여성을 몸단장 같은 가장 사적인 순간에 그렸다는 이유로 드가가 여성을 혐오했다는 말은 당대에 이미 흔했다고 화상 앙브루아즈 볼라르는 회고합니다. 반면 친구였던 비평가 폴 라퐁은 그의 시선이 냉정하되 증오와는 거리가 멀다고 반박했습니다. 또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에 따르면 드가는 동료 화가 메리 커샛의 작품을 100점 가까이 모았는데, 동시대 화가 가운데 가장 많은 수였습니다.
드가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볼라르가 왜 결혼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는 그림을 끝낼 때마다 아내가 ‘예쁘네요’ 하고 말할까 봐 평생 괴로웠을 것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볼라르는 그가 두려움이 섞인 수줍음 때문에 여성과 거리를 두었다고 회고했고, 모델과도 사적인 관계를 맺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빠른 검은 선과 넓힌 캔버스
이 그림에서 형태를 붙잡는 것은 색보다 선입니다. 내셔널 갤러리는 드가가 색을 다루는 솜씨가 뛰어났지만 여전히 소묘가 먼저였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목탄이 섞인 검은 물감으로 빠르고 굵게 구도를 그려 넣고, 마지막 세부도 같은 선으로 더했습니다. 붉은색이 넓은 면을 만들고, 검은 선이 몸의 방향을 붙잡습니다.
이 캔버스에는 드가가 손을 놓지 않았다는 흔적도 있습니다. 내셔널 갤러리에 따르면 그는 이 그림을 더 큰 틀(스트레처)로 옮겨 화면을 넓혔고, 그래서 아마 더 작업할 생각이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그림은 끝내 그의 화실에 남았습니다. 그가 왜 더 나아가지 않았는지는 기록이 말하지 않습니다.
드가 사후에 머리빗기를 산 화가
이 그림은 드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의 화실에 있었습니다. 1918년 드가의 첫 아틀리에 경매에서 코펜하겐의 수집가와 화상들이 사들였고, 1921년 2월 파리의 화랑을 거쳐 앙리 마티스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그림은 1936년 무렵 아들인 화상 피에르 마티스에게 넘어갔고, 1937년 런던 내셔널 갤러리가 내핑 기금으로 사들였습니다.
지금 이 그림은 내셔널 갤러리 45번 방에 있습니다. 그림 앞에 서면 먼저 오른쪽 위 하녀의 팔에서 빗과 머리카락을 따라 앉은 여성의 젖혀진 몸까지 대각선을 한 번 따라가 보십시오. 그다음 왼쪽 가장자리에서 붉은 물감 아래 드러난 크림색 바탕을 찾고, 마지막으로 오른쪽 앞 탁자 위의 솔과 손거울에서 눈을 쉬게 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