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에는 예수님의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빼놓을 수 없기에, 두 번째 성화 묵상으로 이탈리아 화가 기를란다요의 〈최후의 만찬〉을 소개합니다.
르네상스 화가 도메니코 기를란다요(Domenico Ghirlandaio)는 1448년 또는 1449년에 피렌체에서 태어나 1494년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15세기 후반 피렌체에서 손꼽히는 큰 공방을 꾸린 화가였고, 열세 살의 미켈란젤로가 들어가 그림을 배운 곳도 바로 이 공방이었습니다.
기를란다요가 그린 〈최후의 만찬〉 벽화 가운데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세 점입니다. 1476년 피렌체 근교 파시냐노 수도원의 벽화, 1480년 오니산티 수도원 식당의 벽화, 그리고 산 마르코 수도원의 작은 식당에 남은 벽화입니다. 이번에 묵상할 작품은 산 마르코 수도원의 벽화입니다. 같은 화가가 같은 장면을 몇 해 사이에 거듭 그렸기 때문에 무엇을 그대로 두고 무엇을 바꾸었는지 견주어 볼 수 있고, 식탁 둘레에 놓인 사물과 새, 동물이 많아 하나씩 찾아가며 묵상하기에 좋은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수도원 식당 벽에 그린 최후의 만찬
|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최후의 만찬〉, 1480년, 프레스코, 약 400×810cm, 피렌체 오니산티 수도원 식당. 오른쪽 벽 창턱에 공작이 앉아 있고, 유다는 홀로 식탁 이쪽에 등을 보이고 앉아 있다. |
수도원 식당은 수도사들이 날마다 모여 식사하던 곳입니다. 피렌체의 여러 수도원은 그 식당 한쪽 벽에 예수님과 제자들의 마지막 만찬을 그려 두었습니다. 수도사들이 식탁에 앉을 때마다 벽 위의 식탁을 마주 보며 그날 밤의 일을 떠올리게 하려 했다고 보는 해석도 있습니다. 기를란다요보다 한 세대 앞서 1445년에서 1450년 사이에 안드레아 델 카스타뇨가 산타폴로니아 수도원 식당에 그린 벽화가 이 전통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위의 오니산티 벽화를 보면 기를란다요가 이 전통을 어떻게 이어받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열한 제자가 벽과 나란한 긴 식탁 뒤에 한 줄로 앉고, 유다만 식탁 이쪽에 따로 앉습니다. 이 배치는 기를란다요가 처음 생각해 낸 것이 아니라 카스타뇨의 벽화에서 이미 볼 수 있는 피렌체 식당 벽화의 틀입니다. 오니산티 벽화를 기록한 이탈리아 국가 문화재 목록은 이 그림의 바탕에 카스타뇨의 벽화가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 같은 목록에 따르면 유다의 발 옆에는 1480년을 뜻하는 로마 숫자가 적혀 있어 제작 연도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식당 벽화를 그리던 화가들의 식탁 이야기도 하나 전해집니다. 16세기의 화가이자 전기 작가 조르조 바사리에 따르면, 기를란다요 형제가 파시냐노 수도원에서 일할 때 음식 대접이 형편없자 동생 다비드가 음식을 나르던 수사에게 국을 엎어 끼얹고 빵을 집어 던져 맞혔다고 합니다. 수십 년 뒤에 기록된 일화라 그대로 믿기는 어렵지만, 수도원 식탁이 화가들에게도 가까운 현실이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산 마르코 수도원의 작은 식당
|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와 공방, 〈최후의 만찬〉, 1480년대, 프레스코, 약 400×800cm, 피렌체 산 마르코 미술관(옛 산 마르코 수도원) 작은 식당. 실제 방의 흰 천장 아치 두 개가 그림 속 반원 두 개 위에 그대로 맞물려, 그림 속 방이 실제 식당에 이어진 것처럼 보인다. |
산 마르코 수도원은 프라 안젤리코의 벽화로 잘 알려진 피렌체의 도미니코회 수도원으로, 지금은 미술관이 되었습니다. 바사리는 이 수도원의 손님 숙소에 기를란다요가 공들여 그린 〈최후의 만찬〉이 있다고 적었습니다. 그 벽화가 지금 손님 숙소 쪽 작은 식당에 남아 있는 이 그림입니다. 기를란다요는 오니산티에서처럼 실제 방의 천장과 창을 벽 안쪽으로 이어 그려, 식사하는 사람들이 앉은 식당과 예수님이 앉은 식당이 한 공간처럼 보이게 했습니다.
이 벽화가 언제 그려졌는지는 의견이 갈립니다. 이탈리아 국가 문화재 목록은 학자들의 견해를 두 갈래로 정리합니다. 우세한 견해는 이 그림을 오니산티 벽화의 구성을 되풀이한 말년의 작품으로 보고, 19세기 연구자 크로와 카발카셀레는 1486년 이후로 둡니다. 반대로 오니산티보다 먼저 그렸다고 보는 학자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1480년대라고만 적습니다. 그림을 누가 그렸는지도 단순하지 않습니다. 같은 목록은 공방의 손이 많이 들어갔고, 전체 구상은 기를란다요의 것이지만 그가 직접 붓을 든 부분은 몇몇 제자의 상반신 정도였을 수 있다는 견해를 소개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있습니다. 제자들의 표정은 무겁습니다.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마 26:23)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막 떨어진 뒤의 장면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 품 쪽으로 쓰러지듯 식탁에 엎드려 잠든 젊은이가 사랑받는 제자 요한입니다. 예수님은 왼손을 요한의 등에 얹고 오른손을 들어 올렸습니다. 예수님의 오른쪽, 그림을 보는 우리에게는 왼쪽에 앉은 흰 수염의 노인은 오른손에 칼을 쥐고 있어 수제자 베드로로 읽히는 자리입니다. 이 칼을 겟세마네 동산에서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칼로 벤 일(요 18:10)을 미리 보여 주는 표지로 보는 해석도 있습니다.
후광 없는 유다와 고양이
한 명의 제자만 식탁 맞은편에 홀로 앉아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식탁 뒤의 열한 제자와 예수님 머리에는 모두 금빛 후광이 있는데, 그에게만 후광이 없습니다. 바로 가룟 유다입니다. 유다는 등받이 없는 나무 의자에 앉아 예수님을 거의 정면으로 마주 보고 있습니다. 앞에서 보았듯 유다를 식탁 이쪽에 떼어 앉히는 것은 피렌체 식당 벽화의 전통이었고, 기를란다요는 여기에 후광의 유무를 더해 그가 누구인지 한눈에 알아보게 했습니다.
유다가 앉은 의자 오른쪽 바닥에는 회색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습니다. 고양이는 식탁이 아니라 고개를 돌려 그림 밖의 우리를 바라봅니다. 이 고양이를 두고는 읽기가 갈립니다. 배신자 곁에 앉혔으니 배신이나 악을 가리키는 상징으로 보는 해석도 있고, 고기 한 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식당 고양이를 그려 장면에 생활의 온기를 더한 것으로 보는 설명도 있습니다. 이탈리아 국가 문화재 목록은 이 벽화의 빵과 포도주, 소금, 체리, 장미와 백합을 상징 항목에 올렸지만 고양이는 동물 항목에만 적었습니다. 그림에서 고양이를 배신과 묶어 주는 것은 유다 곁이라는 자리 하나뿐이므로, 이 고양이를 배신의 표지라고 단정하기보다는 그렇게 읽힐 여지를 둔 배치라고 보는 편이 화면에 더 맞습니다.
창턱의 공작과 비둘기, 식탁 위의 체리
|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와 공방, 〈최후의 만찬〉 오른쪽 부분, 1480년대, 프레스코, 피렌체 산 마르코 미술관. 오른쪽 벽 창턱의 공작이 꼬리를 방 안쪽 벽으로 늘어뜨렸고, 파란 선 안에 작은 새들이 보인다. 아래 띠에는 라틴어 성경 구절의 뒷부분이 적혀 있다. |
그림 위쪽에는 반원 두 개가 있고, 그 안에 주황빛 열매가 달린 나무와 곧게 솟은 사이프러스, 종려나무가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습니다. 하늘에는 새들이 날고, 왼쪽 반원에서는 새 한 마리가 다른 새를 덮치는 듯한 모습도 보이는데, 이 장면의 뜻을 풀어 준 기관 해설은 찾지 못했습니다. 오른쪽 벽의 창턱에는 공작 한 마리가 앉아 긴 꼬리를 늘어뜨렸고, 그 아래로 작은 새 세 마리가 납니다. 눈을 왼쪽 벽으로 옮기면 맞은편 창턱에는 흰 비둘기 한 마리가 앉아 있습니다. 양쪽 벽 끝의 꽃병에는 각각 백합과 장미가 꽂혀 있습니다.
공작은 흔히 부활과 불멸의 상징으로 소개됩니다. 공작의 살은 죽어도 썩지 않는다는 옛 믿음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니산티 벽화를 기록한 국가 문화재 목록은 조금 다르게 풉니다. 그런 뜻은 아기 예수의 탄생 그림에서의 공작이고, 최후의 만찬에 그려진 공작은 꼬리에 박힌 백 개의 눈으로 모든 것을 보는 교회를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맞은편 왼쪽 벽의 비둘기는 성령을 뜻한다고 설명합니다. 이 풀이는 오니산티 벽화에 대한 것이지만, 산 마르코 벽화도 오른쪽 창에 공작을, 왼쪽 창에 비둘기를 똑같이 마주 앉혔으니 같은 짝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제 눈을 식탁으로 내려 봅니다. 하얀 식탁보 위에 둥근 빵과 붉은 포도주가 담긴 유리병과 잔, 칼이 놓여 있고, 자리마다 붉은 체리가 흩어져 있습니다. 빵과 포도주는 예수님이 이 만찬에서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고 하시며 나누신 자신의 몸과 피입니다(눅 22:19~20). 체리는 그 붉은 빛깔 때문에 그리스도의 피를 가리킨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두 아치가 만나는 흰 벽면, 예수님 머리 위쪽에는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의 모습이 흐릿하게 남아 있습니다. 식탁에 앉은 예수님 위에 다가올 십자가를 겹쳐 둔 것으로 보는 해석도 있습니다.
등받이 위의 라틴어 구절
제자들이 앉은 긴 의자의 등받이 위 띠에는 라틴어로 누가복음 22장 29~30절의 말씀이 적혀 있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라는 구절입니다. 오니산티 벽화의 같은 자리에는 이런 띠 글씨가 보이지 않습니다. 날마다 이 벽 앞에서 식사하던 사람들은 자기 식탁 위에서 예수님의 식탁을, 그리고 그 너머 하나님 나라의 식탁에 대한 약속을 함께 읽었을 것입니다.
〈최후의 만찬〉을 묘사한 여러 작품이 있지만, 기를란다요의 벽화는 식탁 둘레의 사물과 새 하나하나에 수난과 부활의 의미를 얹어 보여 주는 그림입니다. 그 가운데 어떤 것은 기록으로 뜻이 확인되고, 어떤 것은 지금도 해석이 갈립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이 벽 앞에서 식사하던 사람들은 유다와 같은 쪽, 식탁 이쪽에 앉아 있었습니다. 같은 고난주간 묵상으로 소개한 틴토레토의 〈세족식〉이 같은 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예수님을 보여 주었다면, 이 그림은 배신을 아시면서도 그 식탁에 모두를 앉히신 예수님을 보여 줍니다. 이 성화를 통해 성만찬의 의미를 깊이 되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