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콜리어 '고디바' "백마 탄 고다이바 부인의 나체, 전설과 진실 사이"
11세기 영국, 벌거벗은 채 백마를 탄 여인의 이야기가 단순한 전설일까요, 아니면 은밀한 욕망과 숭고한 희생이 뒤섞인 인간 본성의 거울일까요?"
잊혀지지 않는 전설의 시작: 벌거벗은 고다이바 부인
한 폭의 그림 속,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알몸으로 백마를 타고 마을을 조용히 지나가고 있습니다.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인 채 애써 긴 머리카락으로 몸을 가려보려 하지만 역부족입니다. 11세기 영국 코번트리의 영주 레오프릭 백작의 아내, 고귀한 신분의 고다이바 부인입니다. 왜 그녀는 대낮에 이토록 치욕적인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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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dy Godiva, 1898년,142.2×182.9cm, 허버트 미술관 & 박물관 (Herbert Art Gallery & Museum) |
이야기는 남편 레오프릭 백작의 가혹한 세금 징수에서 시작됩니다. 백성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었던 고다이바 부인은 남편에게 세금 감면을 간청합니다. 반복되는 아내의 청에 지친 백작은 그녀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맨몸으로 말을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오면 청을 들어주겠다고 조롱하듯 제안합니다. 품위를 목숨보다 중하게 여기는 귀부인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죠.
그러나 고다이바 부인은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이 치욕적인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부인의 숭고한 희생정신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으로, 그녀가 마을을 지나는 동안 모두 집 안에 머물며 창문을 닫고 그 모습을 보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약속을 지킨 것은 아니었습니다. 재단사 톰은 아름답다고 소문난 부인의 알몸이 너무 보고 싶어 그만 약속을 어기고 말았죠.
몰래 고다이바 부인의 몸을 훔쳐본 톰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전설은 그가 장님이 되거나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고 전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부인의 숭고한 행위를 성적 호기심으로 더럽힌 죄로 신의 저주를 받아 그리되었다고 믿었고, 아무도 그를 동정하지 않았습니다. 고다이바 부인에 대한 전설은 13세기에 처음 기록된 이래 18세기까지 다양한 버전으로 각색되어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시대적 논란과 시선: '외설'과 '숭고함' 사이의 줄타기
존 콜리어의 "고다이바"가 공개되었을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는 엄격한 도덕적 기준이 지배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찬사받았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에는 '외설'과 '숭고함' 사이를 오가는 미묘한 줄타기가 숨어 있습니다.
* 누드의 역설적 정당화 : 콜리어는 나체 묘사라는 도발적인 주제를 '백성을 위한 고귀한 희생'이라는 서사적 맥락 속에 놓았습니다. 고다이바의 누드는 단순한 외설이 아닌, 순결한 나체로 포장되어 숭고한 행위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몸을 거의 모두 덮는 긴 머리카락은 이러한 순결성을 강조하며 빅토리아 시대의 엄격한 시선을 피해갈 수 있는 장치였습니다.
* 피핑 톰(Peeping Tom)과 관람객의 이중성 : '피핑 톰' 전설은 단순히 이야기 속 에피소드를 넘어, 그림을 보는 관람객의 심리를 건드립니다. 관람객은 고다이바의 고뇌와 희생에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그녀의 나체를 '훔쳐보는' 입장에 놓이는 아이러니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는 그림 감상을 단순한 시각적 즐거움이 아닌, 도덕적 딜레마로 이끌며 '보는 행위'의 윤리적 측면을 고민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고다이바의 숭고함에 감동하지만, 그녀의 가장 취약한 순간을 '보는' 데서 오는 미묘한 불편함 혹은 은밀한 흥미로움을 부정할 수 있을까요?
존 콜리어(John Collier, 1850~1934)는 관능적이고 매혹적인 누드화에 뛰어났던 초상화가이자 빅토리아 시대 영국 미술의 한 축을 담당했습니다. 콜리어는 당대 가장 뛰어난 초상화가 중 한 명으로, 영국의 왕족과 귀족뿐 아니라 대법관, 정치인, 교수, 학자 등 저명한 인사들을 그렸습니다. 유명 과학자 찰스 다윈의 말년 초상화 또한 그의 작품입니다. 수많은 명사의 초상화를 남겼지만, 그중에서도 고다이바 부인을 그린 이 그림이 가장 널리 알려지고 사랑받는 작품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림 속으로 : 고다이바의 시선과 백마의 상징성
콜리어의 "고다이바"는 낭만적 히로인으로서의 부인을 이상화하여 묘사합니다. 선명한 붉은색 고급 천이 덮인 흰 말 위, 암적색 자수로 화려하게 장식된 안장에 앉아 있는 늘씬하고 관능적인 고다이바 부인의 알몸이 관람자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 고다이바의 시선 : 조용히 고개를 숙인 그녀의 얼굴에서는 벌거벗었음에도 불구하고 굴욕감이 아니라 고귀하고 결연한 의지가 엿보입니다. 콜리어는 고다이바의 얼굴 표정과 시선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녀의 시선은 단순한 부끄러움이 아니라, 정면을 응시하는 단호함과 동시에 깊은 고뇌와 슬픔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그녀의 행위가 얼마나 큰 용기와 정신적 부담을 요구했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단서입니다. 이 복합적인 시선은 관람객에게 직접 말을 거는 듯한 강렬한 인상을 주며, 관람객을 그림 속 서사에 깊이 몰입하게 만듭니다.
* 백마의 상징 : 그림 속 백마는 고다이바의 순수함과 미덕을 상징합니다. 그녀는 폭정에 항거하고 정숙이라는 중세적 도덕에 담대하게 도전한 여성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화가는 그녀의 누드를 죄와 유혹의 상징이 아닌, 영웅성의 상징으로 묘사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벌거벗고 마을을 순회하는 에로틱한 성녀'라는 역설은, 화가가 과연 용기 있는 여성의 미덕만을 보여주려고 했는가에 대한 흥미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전설은 과연 어느 정도 진실일까?
고다이바 부인에 대한 매혹적인 스토리는 과연 실제 있었던 일일까요?
(진실 1)
고다이바 부인은 실제로 중세 시대에 존재했던 인물이며, 남편 레오프릭 백작 부부는 수도사들을 위해 베네딕트 수도원을 설립한 종교적이고 경건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고다이바 부인이 나체로 거리를 돌아다녔다는 당대의 기록은 없습니다.
(진실 2)
고다이바 이야기는 그녀 사후 약 100년 뒤, 수도사 로저 웬도버의 『역사의 꽃들』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 기록의 출처와 역사적 정확성은 의심스러워 실제 사건으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이 많습니다. 당시 수도원이 런던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했다는 점에서, 여행자들 사이에서 전해진 민담이 기록된 것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진실 3)
사료에 의하면 당시 코번트리 지역은 고다이바 부인의 소유였습니다. 즉, 레오프릭이 아닌 고다이바가 주민들에게 세금을 부과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므로, 백작이 아내에게 전라로 마을을 돌라고 요구했다는 이야기는 신빙성이 떨어집니다.
(진실 4)
전설에서는 레오프릭을 농민들을 착취한 냉혹한 영주로 묘사하지만, 많은 역사학자들은 그가 존경받는 지도자였다고 주장합니다.
(진실 5)
고다이바 이야기가 영국, 독일, 스칸디나비아 지역 일부에 존재했던 아주 오래된 이교도 전통에서 유래된 설화일 것이라고 추정하는 역사가들도 있습니다.
어쩌면 발가벗은 고다이바의 이야기는 중세 교회가 이교도 여신을 경건한 기독교 성녀로 입맛에 맞게 변형시키는 과정에서 나체, 말, 희생, 신앙심, 노블레스 오블리주 등의 개념들이 혼합되어 오늘날 우리가 아는 고다이바 전설이 탄생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발가벗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는 실제로 옷을 벗은 것이 아니라, 화려한 드레스와 값비싼 보석 장신구를 벗어버림으로써 신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용서를 빌었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중세 문화에서 부의 축적은 죄악이었기에, 부의 표식인 사치스러운 옷과 장신구를 벗는 것은 신에게 속죄하는 방법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 참회를 위해 소매 없는 흰옷을 입고 공공 행렬에 참가하는 풍습도 있었던 만큼, 세금을 징수해 부를 쌓은 것에 대해 회개한다는 뜻에서 소박한 흰옷을 입은 것이 후에 나체로 와전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현대에 살아 숨 쉬는 고다이바 : 초콜릿에서 페미니즘까지
고다이바 부인의 전설은 비록 역사적 진실과 거리가 있을지라도, 그 메시지의 강력함은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깊은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 코번트리의 영원한 상징 : 영국 코번트리에는 고다이바 부인의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 지금도 그녀를 기념하는 행사들이 열립니다. 17세기 이후, 해마다 여성들이 중세의 고다이바처럼 말을 타고 시내를 지나가는 퍼포먼스를 하는 전통은 그녀의 용기와 희생정신을 기리는 살아있는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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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코번트리 시내의 고다이바 청동상 |
* 명품 초콜릿 '고디바'의 탄생 : 1926년 벨기에에 설립된 세계적인 명품 초콜릿 회사 '고디바(Godiva)' 역시 이 고귀하고 희생정신이 뛰어난 부인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습니다. 회사의 로고도 말을 탄 알몸의 고다이바 부인을 형상화하여, 그녀의 우아함과 고결한 이미지를 브랜드에 투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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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디바 초콜릿 로고 이미지 |
마치며
사람들은 언제나 신화를 믿고 싶어 하고 감동을 원합니다. 존 콜리어의 "고다이바" 그림은 한 여인의 전설을 예술로 승화시키며, 희생과 용기, 그리고 인간 본연의 욕망과 사회적 시선이라는 복합적인 주제를 탐구하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이 그림은 단순한 누드화를 넘어, 전설의 진실과 예술가의 시선, 그리고 시대를 초월한 메시지까지 끊임없이 논의되고 재해석될 가치를 지닌 명작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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