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식물원의 온실에 들어가면 유리 천장 아래로 커다란 잎들이 겹쳐 있습니다. 한 중년 남자가 그 앞에 오래 서 있곤 했습니다. 그는 잎사귀 하나하나의 생김새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옆 건물의 박제 동물을 살피고 백화점에서 나온 삽화집을 뒤졌습니다. 그러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 사자와 호랑이와 원숭이가 사는 밀림을 그렸습니다.
앙리 루소는 프랑스를 떠난 적이 없습니다. 그가 평생 그린 정글은 전부 파리 안에서 조립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들은 실제 정글을 그린 어떤 그림보다도 정글처럼 보입니다. 이 이상한 사실이 그를 미술사에 남겼습니다.
• 한 줄 정의: 독학으로 그림을 시작해 상상 속 밀림을 화면으로 만들어 낸 화가
• 본명: 앙리 쥘리앵 펠릭스 루소(Henri Julien Félix Rousseau) · 별명 르 두아니에
• 생몰: 1844년 5월 21일 마옌 라발 출생 ~ 1910년 9월 2일 파리 사망(향년 66세)
• 국적·활동지: 프랑스. 라발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활동. 국외에 나간 기록 없음
• 활동 분야: 유화. 그 밖에 바이올린 연주와 희곡 집필
• 대표작: 열대 폭풍우 속의 호랑이, 잠자는 집시, 뱀을 부리는 여자, 꿈, 전쟁
통행세 징수원 루소 씨
먼저 별명부터 바로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를 부르는 르 두아니에는 흔히 「세관원」으로 옮겨집니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한 일은 국경의 세관이 아니라 파리 시로 들어오는 물자에 통행세를 매기는 시청 소속 사무였습니다. 도시 경계의 초소에서 짐수레를 검사하고 세금을 걷는 자리였고, 직급도 높지 않았습니다. 별명은 작가 알프레드 자리가 붙여 퍼진 별명입니다.
그의 출발은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라발의 함석장이 집안에서 태어났고, 학교 성적은 특별하지 않았습니다. 젊은 시절 근무하던 법률 사무소에서 사소한 절도에 연루되어 짧게 복역한 일도 있습니다. 그 뒤 군에 입대했고, 제대한 뒤 파리로 올라와 1871년부터 통행세 사무소에서 일합니다.
여기서 유명한 이야기 하나를 검토해야 합니다. 그가 프랑스군의 멕시코 원정에 참가했고 거기서 열대 식물을 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자신이 그렇게 말했다고 전해지고, 오랫동안 그의 정글 그림을 설명하는 근거로 쓰였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그가 속했던 부대가 멕시코와 관련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의 복무 시기와 원정 시기를 맞춰 보면 그가 실제로 건너갔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오래 제기되어 왔습니다. 오늘날 대체로는 본인이 지어냈거나 부대의 경력을 자기 경력처럼 이야기한 것으로 봅니다. 이 글에서도 그렇게 다룹니다. 그리고 이 편이 훨씬 흥미롭습니다. 그는 본 것을 그린 것이 아니라 보지 않은 것을 그렸기 때문입니다.
그림은 마흔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정식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은 없습니다. 1893년, 마흔아홉에 그는 사무소를 그만두고 연금으로 생활하며 그림에만 매달립니다.
| 앙리 루소, 〈나 자신, 초상=풍경〉, 1890년. 인물과 풍경이 같은 화면에서 각자 제 크기를 주장합니다. 팔레트에 이름이 적혀 있다. |
가 본 적 없는 정글
그의 첫 정글 그림은 1891년의 〈열대 폭풍우 속의 호랑이〉입니다. 부제가 붙어 있는데 「놀랐다!」라는 뜻입니다. 번개가 치는 밀림에서 호랑이가 몸을 낮추고 있고, 화면 전체를 비스듬한 빗줄기가 덮습니다.
| 앙리 루소, 〈열대 폭풍우 속의 호랑이〉, 1891년. 잎이 겹겹이 쌓여 뒤로 물러나지 않고 벽처럼 서 있다. 빗줄기는 화면 위에 그은 선이다. |
이 정글이 어디서 왔는지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습니다.
- 파리 식물원의 온실 · 열대 식물을 실물로 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는 이곳에 자주 갔다고 전해집니다.
- 자연사박물관의 박제 · 밀림은 본 적이 없었고, 맹수는 파리 식물원 동물원의 살아 있는 짐승과 박물관의 박제로 보았습니다.
- 삽화집과 사진 · 백화점에서 발행한 동물 도판집 같은 인쇄물이 원천으로 지목됩니다.
재료가 이렇다 보니 그의 밀림에는 실제 생태계와 맞지 않는 조합이 자주 나타납니다. 아프리카 동물과 아시아 동물이 한 화면에 있고, 식물의 크기 비례가 현실과 다릅니다. 잎사귀는 화분에서 자란 관엽식물을 몇 배로 키워 놓은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 「틀림」이 그림을 망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그의 정글이 실제 밀림보다 더 밀림처럼 느껴지는 이유를 항목으로 나누면 이렇습니다.
- 잎이 겹겹이 쌓여 화면을 채웁니다. 원근이 뒤로 물러나는 대신 앞뒤가 눌려 붙어 벽처럼 됩니다. 보는 사람은 밀림 앞이 아니라 밀림 안에 서게 됩니다.
- 잎마다 윤곽이 또렷합니다. 흐릿한 부분이 없어서 눈이 쉴 곳이 없습니다. 밀림에서 느끼는 시각적 과부하가 그대로 재현됩니다.
- 초록의 층이 많습니다. 그가 정글 그림에 쓴 초록의 종류는 수십 가지로 헤아려집니다.
- 동물이 잎 사이에서 문득 나타납니다. 처음에는 안 보이다가 나중에 발견되는 배치입니다.
1897년의 〈잠자는 집시〉는 정글이 아니라 사막입니다. 만돌린과 물병을 옆에 두고 한 여자가 누워 있고, 사자가 다가와 냄새를 맡습니다. 달이 떠 있고 그림자는 거의 없습니다. 이 그림에서 사자는 여자를 해치려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고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로 정지해 있습니다. 뒷날 초현실주의자들이 이 그림에 열광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루소는 이 그림을 고향 라발 시에 사 달라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시는 사지 않았습니다.
| 앙리 루소, 〈잠자는 집시〉, 1897년, 뉴욕 현대미술관. 사자가 해치려는 것도 지키는 것도 아닌 상태로 멈춰 있다. 그림자가 거의 없다. |
그는 왜 살롱을 원했나
여기서 이 글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대목이 나옵니다. 루소는 오늘날 소박파라는 이름으로 분류됩니다. 정식 훈련을 받지 않은 화가들을 묶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 때문에 그는 흔히 「규칙을 몰라서 자유로웠던 사람」, 「천진한 아마추어」로 소개됩니다.
그런데 그 자신은 조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카데미 회화를 존경했습니다. 당대의 대가로 이름 높던 화가들의 이름을 입에 올렸고, 그들처럼 그리고 싶어 했습니다. 정식 살롱에 들어가고 싶어 했고, 훈장과 공식적 인정을 원했습니다. 자신이 사실적인 화가라고 믿었습니다. 그가 남긴 말 가운데 자기 그림의 정확함을 자부하는 대목이 여럿 전합니다.
그가 출품한 곳은 심사가 없는 앵데팡당전이었습니다. 1886년부터 거의 해마다 냈습니다. 심사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걸 수 있다는 뜻이었고, 그래서 그의 그림은 매년 전시장에 걸렸습니다. 그리고 매년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신문 비평은 그의 인체 비례와 원근을 조롱했고, 관람객들은 그의 그림 앞에서 웃었다고 전해집니다.
이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이렇습니다. 그의 화면이 새로웠던 것은 그가 새로움을 추구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정확하게 그리려 했고, 그 목표에 자기 방식으로 도달하려다 전혀 다른 곳에 도착했습니다. 원근법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배우지 못한 것이고, 색을 대담하게 쓴 것이 아니라 자기가 본 대로 칠한 것입니다. 그 간극에서 나온 화면이 20세기 화가들에게는 배워서 없앨 수 없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 앙리 루소, 〈전쟁〉, 1894년 무렵. 그의 그림 가운데 가장 어두운 축에 드는 화면이다. |
젊은 화가들이 그를 발견하다
1900년대 들어 상황이 조금 달라집니다. 젊은 화가들이 그의 그림을 진지하게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카데미의 훈련이 만들어 낸 매끄러움에서 벗어나려던 세대에게, 루소의 화면은 훈련 이전의 눈처럼 보였습니다.
1908년, 파블로 피카소가 몽마르트르의 작업실 건물 바토라부아르에서 루소를 위한 만찬을 엽니다. 피카소가 헌 가게에서 우연히 손에 넣은 루소의 그림 한 점(여인의 초상)이 계기였다고 전해집니다. 시인 아폴리네르를 비롯한 이들이 모였고, 루소는 그 자리에서 바이올린을 켰습니다.
| 앙리 루소, 〈여인의 초상〉, 1895년 무렵. 피카소가 헌 가게에서 손에 넣었다고 전해지는 그림이 이 계열이다. |
이 만찬의 성격을 두고는 해석이 갈립니다. 순수한 경의였다는 쪽도 있고, 젊은 예술가들의 짓궂은 놀이가 섞여 있었다는 쪽도 있습니다. 아마 둘 다였을 것입니다. 다만 그날 루소가 피카소에게 했다고 전해지는 말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 둘이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화가이며, 당신은 이집트 양식에서 나는 현대 양식에서 그렇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자리에 대한 그의 자부심이 어느 정도였는지 보여 주는 말입니다.
같은 시기 마티스를 비롯한 화가들도 형태를 단순화하고 색을 평면으로 눕히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루소가 그들과 다른 점은 그것이 선택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 앙리 루소, 〈시인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 1909년. 인물의 비례와 배치가 기념사진처럼 정면으로 고정돼 있다. |
마지막 그림과 초라한 무덤
말년의 그는 여전히 가난했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아이들에게 그림과 음악을 가르치고, 연금으로 생활했습니다. 1907년에는 지인의 부탁을 받고 은행 사기에 이용당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무슨 일에 연루되었는지 잘 몰랐던 것으로 보이며, 재판에서도 그 순진함이 참작되었습니다.
1910년, 그는 마지막 대작 〈꿈〉을 앵데팡당전에 냅니다. 밀림 한가운데 벨벳 소파가 놓여 있고 그 위에 벌거벗은 여자가 누워 있습니다. 소파는 실내의 물건이고 밀림은 실외입니다. 있을 수 없는 조합인데, 그림 안에서는 그것이 아무렇지 않습니다. 어두운 잎 사이로 사자 두 마리의 눈이 보이고, 피리를 부는 인물이 서 있습니다.
| 앙리 루소, 〈꿈〉, 1910년, 뉴욕 현대미술관. 실내 가구와 실외 밀림이 한 화면에 있는데 그림 안에서는 어긋나 보이지 않는다. |
루소는 이 그림에 시를 곁들여 설명했습니다. 소파 위의 여인이 잠들어 좋은 꿈을 꾸는 중이며 피리 소리를 듣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는 이 화면을 초현실로 만들 생각이 없었습니다. 꿈이라는 설명을 붙여 앞뒤를 맞춘 것입니다.
그해 여름 그는 다리의 상처가 덧나 감염이 퍼졌고, 9월 2일 병원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예순여섯이었습니다. 장례에 참석한 사람은 소수였고, 그는 처음에 가난한 이들의 묘지에 묻혔습니다.
몇 해 뒤 친구들이 그의 무덤을 옮기고 아폴리네르가 지은 시를 비석에 새깁니다. 조각가 브랑쿠시가 그 글자를 새겼다고 전해집니다. 살아서 조롱받던 화가의 묘비를 20세기 조각의 대표자가 새긴 셈입니다.
주요 작품
- 나 자신, 초상=풍경(1890) · 파리를 배경으로 팔레트를 든 자화상. 자기를 화가로 선언한 그림.
- 열대 폭풍우 속의 호랑이(1891) · 첫 정글 그림. 빗줄기가 화면 전체를 덮습니다.
- 전쟁(1894) · 검은 말을 탄 인물이 시체 위를 달리는 알레고리. 그의 그림 가운데 가장 어두운 축.
- 잠자는 집시(1897, 뉴욕 현대미술관) · 사막에 누운 여자와 사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정지.
- 뱀을 부리는 여자(1907) · 역광 속 검은 실루엣과 뱀.
- 꿈(1910, 뉴욕 현대미술관) · 밀림 속 소파. 그의 마지막 대작.
| 앙리 루소, 〈뱀을 부리는 여자〉, 1907년, 캔버스에 유채, 167 x 189.5 cm, 오르세 미술관. 인물이 형태가 아니라 검은 덩어리로만 그려져 있다. |
이 글의 도판은 모두 위키미디어 커먼즈의 퍼블릭 도메인 파일입니다. 캡션에 재질이나 치수, 소장품 번호가 없는 작품은 소장기관 기록을 확인하지 못해 적지 않았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루소는 정말 세관원이었습니까?
정확히는 파리 시의 통행세 징수 사무를 보던 하급 공무원이었습니다. 국경의 세관이 아니라 도시로 들어오는 물자에 세금을 매기는 자리였습니다. 「세관원」이라는 별명은 동료들이 붙인 애칭에 가깝습니다.
Q. 멕시코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는 사실입니까?
확인되지 않습니다. 본인이 그렇게 말했다고 전해지지만, 복무 시기와 원정 시기를 맞춰 보면 그가 실제로 건너갔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오래 있어 왔습니다. 오늘날 대체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봅니다.
Q. 그러면 정글은 어디서 보고 그렸습니까?
파리 식물원의 온실, 자연사박물관의 박제, 동물원, 그리고 삽화집과 인쇄물입니다. 실물 열대 식물과 인쇄된 동물 도판을 조합해 화면을 만들었습니다.
Q. 「소박파」라는 말은 칭찬입니까?
가치 판단이 섞인 말입니다.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화가를 가리키는 분류인데, 오랫동안 아마추어라는 뜻으로도 쓰였습니다. 루소 본인은 자신을 그렇게 규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정통 화가로 인정받기를 원했습니다.
Q. 그의 그림이 왜 20세기 화가들에게 중요했습니까?
아카데미의 훈련이 만들어 낸 매끄러움에서 벗어나려던 세대에게, 그의 화면은 그 훈련 이전의 시각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평면적인 색면, 눌린 원근, 또렷한 윤곽이 그들이 찾던 방향과 겹쳤습니다.
다시 온실 앞에서
파리 식물원의 유리 온실로 돌아갑니다. 한 중년 남자가 잎사귀를 오래 들여다봅니다. 그는 밀림을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가 가진 것은 화분에서 자란 잎 몇 장과 동물원의 짐승과 박제, 그리고 인쇄된 그림입니다.
그가 그 재료로 만든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밀림이었습니다. 실제 밀림보다 더 촘촘하고, 더 조용하고, 더 무서운 곳입니다. 본 것을 잘 옮기는 것만이 그림의 길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의 화면이 증명합니다. 살아서 그는 그것을 몰랐습니다. 자신이 정확하게 그리고 있다고 믿었으니까요. 그 믿음과 결과 사이의 거리가 그의 그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