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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르 브뤼헐의 염세가, 세상을 등진 위선자를 향한 날카로운 풍자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노인이 검은 망토를 두르고 걸어갑니다.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숙인 모습은 기도하는 사람처럼 경건해 보입니다. 그런데 그 뒤에서 작고 기괴한 인물이 노인의 돈주머니를 슬쩍 훔치고 있습니다. 노인은 눈치채지 못합니다. 피터르 브뤼헐(대)이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568년에 그린 〈염세가(The Misanthrope)〉는 세상에 등을 돌리려는 사람조차 그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한 장면에 눌러 담은 그림입니다.

작품 한눈에 보기
• 작품명: 염세가(De Misantroop / The Misanthrope)
• 작가: 피터르 브뤼헐(대)(Pieter Bruegel the Elder, 1525년경~1569)
• 제작: 1568년
• 재료 및 기법: 캔버스에 아교 템페라(글루템페라, 튀클랭)
• 크기: 지름 약 86cm의 원형화, 사각 액자
• 소장: 카포디몬테 미술관(Museo di Capodimonte), 이탈리아 나폴리

브뤼헐이 살았던 시대, 왜 만년에 풍자화를 그렸는가

피터르 브뤼헐(대)은 브라반트 공국에서 활동한 화가로, 북유럽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인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1551년 안트베르펀의 화가 조합에 가입했고, 이후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여행하며 견문을 넓혔습니다. 농민의 삶을 사실적으로 담은 풍속화로 널리 알려졌지만, 만년에는 사회를 향한 풍자와 알레고리가 짙게 밴 그림을 여러 점 남겼습니다.

이 변화에는 시대적 배경이 있습니다. 1567년 스페인의 알바 공작이 저지대 국가에 부임해 '피의 평의회'로 불리는 트루블스 평의회를 세우고 신교도와 반체제 인사를 가혹하게 탄압했습니다. 종교적 박해를 피해 고향을 등지고 떠난 사람이 이 시기에만 수만 명에 달했다고 전해집니다. 〈염세가〉를 세상과 인간에 대한 절망을 담은 그림으로 읽는 해석이 널리 받아들여지지만, 이 시기 저지대를 떠나던 이주민들의 처지를 비유한 그림으로 보는 연구자들도 있습니다.

검은 망토를 입은 흰 수염의 노인이 두 손을 모은 채 걷고 있고, 그 뒤에서 구체 속에 갇힌 인물이 노인의 돈주머니를 훔치고 있다
피터르 브뤼헐(대), 〈염세가〉, 1568년, 캔버스에 아교 템페라, 지름 약 86cm, 카포디몬테 미술관

화면을 따라가면, 기도하는 자세와 훔치는 손

화면 중앙, 검은 망토를 입은 노인의 굽은 등에서 시선이 시작됩니다.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 자세는 기도하는 신자의 자세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시선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노인의 발 바로 앞에 날카로운 쇠못이 사방으로 뻗은 마름쇠(caltrop)가 놓여 있습니다. 깊은 생각에 잠긴 노인은 이 위험을 전혀 보지 못합니다.

다시 시선을 노인의 등 뒤로 옮기면, 투명한 구체 안에 갇힌 작고 기괴한 인물이 보입니다. 이 인물은 노인의 망토 밖으로 삐져나온 하트 모양의 두툼한 돈주머니에 손을 대고 있습니다. 심장을 닮은 돈주머니의 형태는 노인의 마음이 실제로는 재물에 가 있음을 보여주는 장치이고, 그 마음을 훔치는 손이 화면 안에서 이미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 도둑을 가둔 구체에는 작은 십자가가 달려 있는데, 신앙의 이름을 두르고도 기만이 벌어지는 세계 전체를 압축한 상징으로 읽힙니다. 노인의 발 앞에 놓인 마름쇠 역시 당대에 널리 읽히던 세바스티안 브란트의 풍자시 「바보들의 배(Narrenschiff)」에서 어리석은 자에게 내려지는 벌로 등장하는 가시와 같은 계열의 도상으로 보는 해석이 있습니다.

화면 뒤편 언덕에는 대조적인 인물이 하나 더 있습니다. 양치기가 양 떼를 돌보며 묵묵히 자기 일을 하고 있습니다. 경건해 보이지만 위선적인 노인과, 화려해 보이지 않지만 성실한 양치기. 브뤼헐은 이 둘을 한 화면에 나란히 두어 누가 진짜 신앙인의 모습에 가까운지를 은근히 묻습니다.

아래쪽에 적힌 글귀, 세상을 등진다는 말의 모순

화면 아래쪽에는 플랑드르어로 짧은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Om dat de werelt is soe on getru,
Daer om gha ic in den ru"

"세상이 이토록 믿을 수 없기에, 나는 상복을 입고 애도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그림 속에서 곧바로 뒤집힙니다. 노인은 세상을 등지겠다고 선언하며 상복을 입었지만, 그 몸에는 여전히 두툼한 돈주머니가 매달려 있고 도둑은 이미 그것을 노리고 있습니다. 세상과 거리를 두겠다는 마음가짐만으로는, 세상이 지닌 위험과 유혹으로부터 실제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화면 자체가 보여주는 셈입니다.

캔버스 위의 아교 템페라, 브뤼헐 회화에서 드문 기법

〈염세가〉는 브뤼헐의 다른 대표작들과 재료부터 다릅니다. 대부분의 유화가 목판에 그려진 것과 달리, 이 작품은 캔버스에 아교 템페라(glue-tempera)로 그려졌습니다. 안료를 물에 녹인 아교와 섞어 얇고 투명하게 칠하는 기법으로, 튀클랭(tüchlein)이라고도 부릅니다. 물감층이 얇아 캔버스의 결이 그대로 비치고, 색이 옅고 창백해 화면 전체에 조금은 스산한 인상을 만듭니다. 브뤼헐이 이 기법으로 그린 그림은 손에 꼽을 만큼 드문데, 공교롭게도 같은 해에 완성한 〈장님을 이끄는 장님〉이 지금 이 그림과 나란히 같은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두 그림 모두 삶의 끝자락에서 인간의 어리석음과 위태로움을 다룬다는 점에서, 재료와 주제 모두에서 형제 같은 작품입니다.

불태운 그림과 아들의 모작, 어디까지가 근거인가

브뤼헐이 세상을 떠나기 전 풍자적인 그림 여러 점을 불태우게 했다는 이야기가 널리 전해집니다. 자신의 그림이 가족에게 정치적 화를 입힐까 염려했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의 뿌리는 브뤼헐이 죽고 35년이 지난 1604년, 화가이자 전기 작가 카럴 판 만더르가 쓴 「화가들의 책(Schilder-boeck)」입니다. 판 만더르는 브뤼헐이 아내에게 일부 드로잉을 없애라고 지시했다고 적었습니다. 다만 이 이야기를 뒷받침할 동시대 기록은 남아 있지 않고, 정작 불태워졌다는 그림들도 남아 있지 않아 진위를 따로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같은 판 만더르의 책에는 브뤼헐이 농민으로 변장하고 잔치에 몰래 끼어들었다는 일화도 실려 있는데, 이 이야기는 후대 미술사가들에 의해 근거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 왔습니다. 그림을 불태웠다는 이야기 역시 같은 저자, 같은 성격의 전언이라는 점을 감안하며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반면 이 그림에는 확실하게 확인되는 후일담도 있습니다. 브뤼헐의 장남 피터르 브뤼헐 2세가 아버지의 〈염세가〉를 본떠 그린 모작입니다. 1600년경에 그려진 이 작품은 원작보다 작은 30.2×30.2cm 크기이며, 구도가 원작과 조금 다릅니다. 지금은 콜롬비아 보고타의 카사 데 모네다 박물관(Museo Casa de Moneda)에 있으며, 콜롬비아 중앙은행 컬렉션에 속해 2023년 8월부터 전시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그린 원작의 무거운 침묵과, 아들이 다시 그리며 남긴 손길의 차이를 나란히 비교해 보는 것도 이 그림을 읽는 또 하나의 방법입니다.

피터르 브뤼헐 2세가 그린 염세가 모작, 원작보다 작은 원형 구도로 같은 장면을 담고 있다
피터르 브뤼헐 2세, 〈염세가〉 모작, 1600년경, 30.2×30.2cm, 카사 데 모네다 박물관(보고타)

세상을 등지려는 마음과, 그럼에도 세상의 셈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몸. 브뤼헐은 그 어긋남을 원 안에 눌러 담았고, 그 원은 지금도 나폴리의 벽에 걸려 관람객을 향해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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