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성화묵상] 한스 홀바인의 '무덤 속 그리스도의 시신'
지금까지 고난주간 성화 묵상으로 소개해 드린 작품들과는 결이 다른 작품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십자가 처형 후 무덤에 안치된 예수님의 시신을 극도의 사실주의로 묘사한 한스 홀바인의 <무덤에 안치된 그리스도의 시신 The Body of the Dead Christ in the Tomb>입니다.
이 그림은 이 글을 쓰는 저조차도 고난주간 묵상 성화로 적합한지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죽은 예수님의 모습을 너무나 처참하게 묘사한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그림은 차마 마주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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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에 안치된 그리스도의 시신> 1521년, 30.5x200cm, 스위스 바젤 미술관 |
화가 홀바인(Hans Holbein the Younger, 1497-1543)은 왜 이런 작품을 그린 것일까요? 이 작품이 의뢰를 받아 제작된 것인지 명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습니다. 다만 홀바인의 후원자이자 친구였던 보니파시우스 아메르바흐가 이 작품을 소유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 그림의 가장 큰 특징은 그리스도의 시신을 극도로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으로 기독교 미술에서 예수의 죽음은 고통스럽지만 성스럽고 영광스러운 분위기로 묘사됩니다. 하지만 홀바인은 죽음의 비참함과 육체적 부패를 남김없이 드러냅니다. 일설에 따르면 홀바인이 라인강에서 건져 올린 익사체의 모습을 보고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할 정도로 충격적인 사실주의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시신은 생명력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차갑고 무기력한 모습입니다. 특히 퀭하게 뜬 눈과 벌어진 입은 죽음의 공포와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보여줍니다.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앙상하며, 피부는 창백함을 넘어 푸르스름하게 변해 있습니다. 손과 발의 못 자국과 창에 찔린 옆구리는 이미 거무스름하게 부패가 시작된 것처럼 보입니다. 이 모습은 죽은 지 적어도 이틀 이상 지나 부활 직전의 상태를 그린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의 시신은 평화로운 안식과는 거리가 먼, 죽음의 적나라한 모습 그 자체입니다. 어디에서도 부활의 희망을 찾아보기 어렵게 느껴집니다.
이 끔찍한 사실주의는 관람자에게 예수의 죽음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드는 불편함과 충격을 동시에 전달합니다. 가로 2m에 달하는 실물 크기는 관람객이 마치 실제 무덤 앞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홀바인은 이처럼 완전한 죽음의 현실을 보여줌으로써, 이 절망을 극복하는 부활이 더욱 위대하게 느껴지도록 의도했던 것일까요?
그림 상단에는 라틴어로 "IESVS NAZARENVS REX IVDAEORVM(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문구가 적혀있지만, 그림 속 시신에서는 왕으로서의 위엄이나 신성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어쩌면 홀바인은 이 끔찍한 시신을 통해 부활 신앙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 그림은 우리에게 "이런 절망적인 육신이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진정으로 믿습니까?"라고 묻는 것 같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당신의 답변은 무엇입니까?
하지만 홀바인은 절망 속에 작은 희망의 암시를 숨겨두었습니다. 예수님의 오른손을 자세히 보면, 가운데 손가락이 다른 손가락보다 길게 뻗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셋째 날'에 부활하실 것을 예고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마태 16:21)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마태 20:19)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누가 9:22)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누가 24:7)
1867년,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는 아내와 함께 스위스 바젤 미술관을 방문했다가 이 그림을 처음 보았습니다. 그는 20분 가까이 그림 앞을 떠나지 못했고, 아내는 남편이 평소 앓던 간질 발작을 일으킬까 봐 걱정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 그림이 준 충격은 그의 소설 <백치>에서 "이 그림은 누구든 신앙을 잃게 만들 수 있다"는 구절로 여러 번 언급될 정도로 강렬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이 그림을 통해 부활을 더욱 확신하는 신앙의 충격을 경험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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