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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루소의 '자화상', "'일요화가'에서 거장으로" — Art is long

앙리 루소의 '자화상', "'일요화가'에서 거장으로"

  화가로서의 위상이나 자부심을  표현한 작품은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순수하고 확실한 자부심을 보여준 작품은 앙리 루소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앙리 루소(Henri Rousseau, 1844-1910)는 가난했기 때문에 파리시 세관원으로 일하며 생계를 꾸려야 했습니다. 주말에만 틈틈이 그림을 그렸기에 사람들은 그를 '일요화가'라고 불렀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그저 아마추어 화가였지만, 루소 자신은 스스로를 위대한 화가라고 확신했습니다. 독학으로 미술을 배운 그는 49세에 비로소 전업 화가가 되었고, 죽기 몇 년 전에야 명성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삶은 불행의 연속이었습니다. 첫 아내와 낳은 일곱 아이 중 여섯이 어릴 때 죽었고, 아내마저 세상을 떠났으며, 두 번째 아내 역시 암으로 사망했습니다. 평생 경제적으로 어려웠으나, 화가로서의 자부심만은 누구보다 가득했습니다.

 

앙리 루소의 <자화상>이란 작품을 보여주는 이미지
<나, 자신: 풍경-초상화> 1890년, 캔버스에 유채, 146x113cm, 프라하 국립미술관

  루소가 46세 때 그린 이 작품의 원제는 <나, 자신: 풍경-초상화>입니다. 제목처럼 이 그림은 화가로서의 자부심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검은 정장에 베레모를 쓴 그는 손에 붓과 팔레트를 들고 서 있습니다. 누가 봐도 영락없는 화가입니다. 팔레트에는 먼저 세상을 떠난 두 아내의 이름, 클레망스와 조제핀을 적어 넣어 그들을 기렸습니다.

 

  배경에는 센 강 다리, 열기구, 만국기를 단 배, 그리고 막 완공된 에펠탑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는 1889년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열린 파리 만국박람회의 상징들로, 과학 기술의 진보로 빛나는 새로운 시대를 표현합니다.

 

  하늘의 구름은 프랑스 국기의 삼색(청, 백, 적)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렇게 그려진 배경은 세계의 중심 국가인 프랑스의 위용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루소는 비례를 완전히 무시하고, 그림의 3분의 2 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자신을 거대하게 그렸습니다. 이를 통해 루소는 자신이 세계의 중심지 파리의 화가이며, 프랑스를 넘어 세계적인 예술가가 될 것이라는 당찬 포부를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두 발 부분을 자세히 보면, 원래 그렸던 위치가 어색했는지 지우고 덧칠한 흔적을 볼 수 있어 순수한 매력을 더합니다.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가정적으로 불행했으며 세상으로부터 아마추어 화가로 취급받던 시절에도, 자신이 위대한 화가라는 확고한 자긍심을 가졌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을 증명하듯, 루소는 60세부터 화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1910년 파리 앙데팡당 전(Salon des Indépendants)에 출품한 정글 그림은 동료 화가들과 평론가들에게 최고의 찬사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성공은 오래가지 못했고, 그해 가을 그는 6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 살아생전 알아주는 이가 드물었던 예술가였기에, 그의 장례식에는 단 7명만이 참석했을 정도로 소박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예술은 사후에 더욱 빛을 발했습니다. 그를 존경했던 피카소와 같은 입체파 화가들은 그의 원시적이면서도 평면적인 화법에서 큰 영감을 얻었습니다. 그의 몽환적인 정글 시리즈는 초현실주의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아도 위대한 예술가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 그의 삶은 수많은 후대 예술가들에게, 그리고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감을 잃지 말아야 할 우리 모두에게 큰 용기와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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