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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메르의 우유 따르는 여인, 일상을 성스럽게 만든 걸작

베르메르의 여러 그림 가운데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와 함께 가장 널리 사랑받는 작품이 〈우유 따르는 여인〉입니다. 화면에는 특별할 것 없는 부엌 풍경 하나가 있을 뿐입니다. 한 여인이 그릇에 우유를 따르고 있고, 식탁 위에는 빵과 바구니가 놓여 있습니다. 이 단순한 장면이 어떻게 4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걸작으로 남아 있는지, 그 답은 화면 안의 색과 빛, 그리고 2022년 엑스선 조사로 새롭게 드러난 붓질의 흔적 속에 있습니다.

작품 한눈에 보기
• 작품명: 우유 따르는 여인(Het Melkmeisje / The Milkmaid)
• 작가: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1632~1675)
• 제작: 1657~1660년경(레이크스미술관은 1660년경으로 소개)
• 재료: 캔버스에 유채
• 크기: 45.5×41cm
• 소장: 암스테르담 레이크스미술관(Rijksmuseum)
<우유를 따르는 여인>이란 작품을 보여주는 이미지
〈우유 따르는 여인〉 1657~1660년경, 45.5×41cm, 암스테르담 레이크스미술관

화면 속에서 무엇이 보이는가

화면 왼쪽에는 창문이 나 있고, 그 빛이 여인의 이마와 어깨, 걷어 올린 팔뚝 위로 비스듬히 떨어집니다. 여인은 왼손으로 우유가 담긴 주전자를 받치고 오른손으로 그 기울기를 조절하며, 가는 우유 줄기가 허공에 걸린 채 그릇으로 떨어지는 그 짧은 순간을 붙잡고 있습니다. 식탁 위에는 빵 바구니와 부서진 빵 조각들, 짙은 색 도자기 주전자가 놓여 있습니다.

여인의 팔뚝을 보면 걷어 올린 소매 아래로 하얀 속살과 그 아래 구릿빛으로 그을린 손목이 함께 드러납니다. 이 대비는 그녀가 실내보다 바깥에서 몸을 쓰는 시간이 더 많은 하녀임을 짐작하게 합니다. 화면에는 이 여인 외에 다른 인물이 없고, 방 안은 텅 비어 있습니다. 그 고요함 속에서 여인의 시선과 손끝은 오직 우유를 따르는 동작 하나에 모여 있습니다. 베르메르는 이 텅 빈 공간과 단 하나의 동작에 집중된 구도로, 보는 사람의 시선 역시 자연스럽게 그 손끝, 곧 우유가 떨어지는 지점으로 이끌고 갑니다.

하녀를 고귀하게 만든 색, 울트라마린과 납주석황

여인의 상의는 노란빛으로, 앞치마는 짙은 파란빛으로 칠해져 있고, 그 아래로 드러난 치마는 붉은빛을 띱니다. 이 두 색은 당시 화가들이 쉽게 손댈 수 있는 재료가 아니었습니다. 파란빛을 내는 안료인 천연 울트라마린은 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채굴되는 청금석을 갈아 만드는데, 채굴과 정제 과정이 까다로워 무게당 값이 금보다 비쌀 때가 많았습니다. 노란 상의에 쓰인 납주석황 역시 정제에 손이 많이 가는 값비싼 안료였습니다. 베르메르는 이 값비싼 파란색을 아끼지 않고, 흰 벽에 가려 잘 드러나지도 않을 부분까지 겹겹이 덧발랐습니다.

당시 화가들은 이 비싼 파란색을 아무 자리에나 쓰지 않았습니다. 성화에서 성모 마리아의 옷을 그릴 때처럼, 신성함을 드러내야 하는 자리에만 아껴서 사용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베르메르가 이 색을 부엌에서 일하는 하녀의 치마에 두른 것은, 성모의 옷에만 허락되던 무게를 평범한 노동의 순간에 실어 준 것으로 읽힙니다.

<우유를 따르는 여인>의 윗 부분을 확대하여 보여주는 이미지
〈우유 따르는 여인〉 상단부 확대

빵 부스러기까지, 극사실 묘사와 카메라 옵스큐라 논쟁

식탁 위 빵의 표면에는 작은 빛의 알갱이들이 점점이 흩뿌려져 있어, 딱딱하게 마른 빵 껍질의 질감이 손으로 만지듯 다가옵니다. 물병 주둥이에서 그릇으로 떨어지는 우유는 가늘게 끊어지는 줄기로 표현되어 있고, 벽에는 못이 박혔던 자리와 회벽이 떨어져 나간 흔적, 창유리에 간 금까지 보입니다. 이런 세부는 실제 부엌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인상을 만듭니다.

이렇게 정밀한 빛의 표현 때문에, 베르메르가 카메라 옵스큐라라는 광학 장치를 사용했으리라는 추측이 100년 넘게 이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 장치를 직접 언급한 기록은 없고, 그의 유품 목록에도 카메라 옵스큐라나 그 부품은 들어 있지 않습니다. 밑그림이나 예비 스케치 역시 발견된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다수의 연구자는 그가 이 장치를 어떤 방식으로든 활용했으리라는 쪽에 무게를 둡니다. 다만 그가 이 장치에 얼마나 의존했는지, 그것이 그의 화풍에 정확히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여전히 의견이 갈립니다.

큐피드 타일과 발난로에 숨은 또 다른 이야기

바닥과 벽이 만나는 자리에는 작은 델프트 타일이 붙어 있고, 그 위에는 활을 쏘려는 큐피드가 그려져 있습니다. 타일 바로 옆에는 나무 상자 안에 뜨거운 숯을 담아 발을 데우는 도구인 발난로가 놓여 있습니다.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에서 발난로는 치마 속에 넣어 몸 전체를 데운다는 특성 때문에 여성의 애정이나 욕망을 가리키는 장치로 자주 쓰였습니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서 네덜란드·플랑드르 회화를 담당했던 큐레이터 월터 리트케(1945~2015)는, 큐피드 타일과 발난로를 나란히 배치한 이 구도가 노동뿐 아니라 사랑과 그리움 또한 이 여인이 짊어진 짐이라는 것을 암시한다고 읽었습니다. 다만 이 해석에 반박하는 시선도 있습니다. 그림 속 여인의 차분하고 집중된 태도가 오히려 무언가에 짓눌린 사람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는 지적입니다. 벽 아래 조용히 놓인 두 개의 작은 사물이,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노동의 엄숙함 옆에서 다른 결의 이야기를 속삭이고 있다는 점만은 두 해석 모두가 공유합니다.

<우유를 따르는 여인>의 아래 부분을 확대하여 보여주는 이미지
〈우유 따르는 여인〉 하단부 확대

2022년 엑스선 조사가 캔버스 밑에서 찾아낸 것

2022년 가을, 레이크스미술관은 이듬해 열릴 대규모 베르메르 회고전을 준비하며 이 그림을 매크로 엑스선 형광분석과 반사영상분광법, 단파적외선 촬영으로 다시 조사했습니다. 이 기술들은 앞서 렘브란트의 〈야경〉을 조사한 '나이트워치 작전'에 쓰였던 것과 같은 장비입니다.

조사 결과, 여인의 왼팔 아래에서 두껍고 거친 검은 밑선이 드러났습니다. 이는 베르메르가 세부를 다듬기 전, 먼저 명암만으로 장면 전체를 빠르게 잡아 나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동안 짐작해 온 것처럼 처음부터 극도로 정밀하게 작업한 것이 아니라, 거친 밑그림 위에 정교함을 쌓아 올린 순서였던 셈입니다.

더 흥미로운 발견은 따로 있습니다. 여인의 머리 뒤쪽 벽면에는 고리가 달린 나무 선반과 그 위에 걸린 여러 개의 물병을 그리려 한 흔적이 남아 있는데, 베르메르는 이 부분을 끝내 완성하지 않고 지워 버렸습니다. 화면 오른쪽 아래에도 지금 보이는 발난로와는 다른, 아기를 데우거나 기저귀를 말릴 때 쓰던 버드나무 바구니 하나가 있었지만 이 역시 덧칠로 지워졌습니다. 이 물건들은 베르메르 자신의 유품 목록과 레이크스미술관이 소장한 17세기 오르트만 인형의 집에도 함께 등장하는, 당시 네덜란드 가정에 실제로 있던 물건들입니다. 무엇을 그림에 넣고 무엇을 뺄지 계속 고민했던 베르메르의 손길이, 350년 만에 처음으로 드러난 셈입니다.

200년 동안 잊혔던 화가는 어떻게 돌아왔는가

베르메르는 마흔셋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뒤 곧바로 잊혔습니다. 그가 죽고 150년 넘게 지나도록 그의 이름은 미술사 책 어디에도 제대로 실리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그의 것으로 확정된 그림은 34점 안팎에 불과하고, 그마저 서명이나 제작 연도가 남아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 진위를 가리기 쉽지 않습니다.

그를 다시 세상에 불러낸 사람은 프랑스의 비평가 테오필 토레였습니다. 그는 1842년 헤이그의 마우리츠하이스에서 베르메르의 〈델프트 풍경〉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고, 이후 정치적인 이유로 프랑스를 떠나 벨기에와 네덜란드에 머무는 동안 이 화가를 추적하기 시작했습니다. 1855년부터는 '빌럼 뷔르거'라는 필명을 썼고, 1866년에는 「미술 잡지(Gazette des Beaux-Arts)」에 베르메르의 작품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목록을 실었습니다. 이 목록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베르메르 연구의 출발점입니다. 토레는 그를 '델프트의 스핑크스'라 불렀는데, 남은 기록이 적어 생애 대부분이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토레가 150년의 침묵을 깨고 이 화가의 이름을 되찾아 준 뒤에도, 그림은 여전히 새로운 것을 내어주고 있습니다. 2022년의 엑스선 조사가 캔버스 밑에서 찾아낸 지워진 물병 선반과 버드나무 바구니처럼, 우유 줄기가 그릇으로 떨어지는 그 짧은 순간에는 아직 다 밝혀지지 않은 이야기가 남아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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