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침볼도 그림 〈채소 기르는 사람〉, 뒤집으면 얼굴이 되는 초상화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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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주세페 아르침볼도(Giuseppe Arcimboldo, 1526 또는 1527~1593)
• 작품명: 정원사(L’Ortolano), 다른 이름 Scherzo di ortaggi(채소 장난)
• 제작: 1587~1590년경
• 재료: 패널에 유채
• 크기: 35.8 × 24.2cm
• 소장: 크레모나 시립 알라 폰초네 미술관(1842년 알라 폰초네 후작 유증)
• 비고: 위아래를 뒤집으면 채소 그릇이 사람 얼굴이 되는 가역 회화

이 그림에는 위아래가 없습니다. 지금 보이는 방향에서는 검은 그릇에 양파와 무와 버섯이 담긴 정물이지만, 화면을 180도 돌리는 순간 그릇은 모자가 되고 채소들은 웃는 얼굴이 됩니다. 어느 쪽으로 걸어도 완성된 그림입니다.

같은 채소들이 두 번 다른 것으로 보이려면, 각각의 형태와 자리가 두 역할을 동시에 감당해야 합니다. 코가 될 뿌리채소, 입이 될 버섯 두 개, 눈이 될 벌어진 열매까지, 어떤 자리에 무엇을 놓았기에 이 전환이 성립하는지 하나씩 짚어 보겠습니다.

먼저 채소 그릇 하나를 봅니다

둥근 갈색 양파가 화면 한가운데를 차지합니다. 그 옆으로 흰 뿌리채소가 몇 개 누워 있고, 붉은 갓의 버섯 두 개가 겹쳐 놓여 있습니다. 뒤쪽 오른편에는 잎 꼭지가 다섯 개 보이는 흰 뿌리 한 묶음이 잎줄기를 위로 세운 채 나란히 모여 있고, 왼편 안쪽에는 가시가 돋친 밤송이 하나가 박혀 있습니다. 그 사이로 민들레와 치커리의 톱니 잎이 뻗어 오릅니다.

아르침볼도 정원사 채소가 담긴 검은 그릇으로 보이는 정물 방향

주세페 아르침볼도, 〈정원사〉, 1587~1590년경, 패널에 유채, 35.8 × 24.2cm, 크레모나 시립 알라 폰초네 미술관. 그릇 방향으로 놓은 화면입니다.

이 채소들을 받치는 것은 검은 금속 그릇입니다. 몸통에 흰 광택 한 줄기가 세로로 길게 지나가고, 그릇 아래에는 탁자 면과 옅은 그림자가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시장에서 막 사 온 채소를 그린 그림입니다.

뒤집으면 어디에 무엇이 놓이는가

가장 먼저 자리를 바꾸는 것은 그릇입니다. 바닥에 놓여 있던 검은 그릇이 위로 올라가 챙 넓은 모자가 되고, 아까 세로로 흐르던 광택은 모자에 떨어진 빛으로 바뀝니다. 그릇의 둥근 테두리가 이마와 모자가 만나는 선이 됩니다.

아르침볼도 정원사를 180도 뒤집었을 때 나타나는 사람 얼굴

같은 화면을 180도 돌린 방향. 그릇의 흰 광택이 그대로 모자의 반사광이 됩니다.

얼굴 한가운데에는 흰 뿌리채소가 비스듬히 돌출해 코가 됩니다. 코 아래에는 버섯 두 개가 위아래로 겹쳐 입술이 됩니다. 두 갓 사이가 살짝 벌어져 있어서 입이 웃는 모양으로 읽힙니다.

눈은 껍질이 벌어진 호두와 헤이즐넛이 맡고 있습니다. 벌어진 틈으로 보이는 어두운 알맹이가 눈동자처럼 보입니다. 뺨은 둥근 양파와 순무가 나눠 맡습니다. 정물 방향에서 밑동으로 보이던 부분이 뒤집히면 뺨의 둥근 부피로 바뀝니다.

아래쪽에서는 민들레와 치커리의 톱니 잎이 사방으로 퍼져 수염이자 옷깃이 됩니다. 정물 방향에서 그릇 뒤로 솟아오르던 흰 뿌리 묶음은, 뒤집히면 턱 아래로 늘어진 장식처럼 보입니다.

아르침볼도 그림, 그릇이 없었다면 얼굴도 없다

이 그림에서 결정적인 장치는 채소가 아니라 그릇입니다. 사람의 얼굴에서 윤곽을 잡아 주는 것은 이목구비가 아니라 머리의 외곽선인데, 채소만 쌓아 놓으면 그 외곽선이 생기지 않습니다. 아르침볼도는 그 자리에 단단한 검은 그릇을 놓았습니다.

그릇은 두 방향 모두에서 자기 역할을 합니다. 정물에서는 채소를 담는 그릇이고, 뒤집으면 얼굴을 완성하는 모자입니다. 색도 마찬가지입니다. 화면에서 유일하게 어두운 덩어리이기 때문에 뒤집었을 때 밝은 채소들과 분리되어 곧바로 모자로 읽힙니다.

이 배열이 한 번에 나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롬바르디아주 문화유산 카탈로그에 실린 이 그림의 조사 기록에 따르면, 마리오 라차리가 찍은 반사적외선 사진에서 그릇과 채소를 지금과 다르게 놓은 앞선 구상이 드러났습니다. 물감 아래에 다른 배치가 먼저 있었다는 뜻입니다. 같은 조사는 그릇에 보이는 표식을 「Arcimboldus」라는 서명으로 보던 예전 추정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정리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바꿨는지까지는 기록이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보는 두 얼굴의 자리가 처음 붓을 댄 자리 그대로는 아니었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제 생각에는 이 고쳐 그린 흔적이, 코가 될 뿌리의 길이와 각도, 입이 될 버섯 두 개의 겹침, 눈이 될 벌어진 열매처럼 얼굴에 필요한 자리를 맞춰 가며 배치를 고쳤을 가능성을 떠올리게 합니다. 다만 그렇게 했다고 직접 말해 주는 기록은 없습니다.

채소 정원사, 어느 쪽도 뒤집힌 그림이 아니다

이 작품은 크레모나의 시립 알라 폰초네 미술관에 있습니다. 1842년 주세페 시지스몬도 알라 폰초네 후작이 유증한 소장품으로 들어왔고, 미술관의 이름도 그에게서 왔습니다. 미술관은 이 그림을 「여러 채소를 가득 담은 그릇인데, 180도 돌리면 서민풍의 통통하고 기묘한 큰 얼굴로 바뀐다」고 소개합니다.

이 그림에는 원래의 위아래가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두 방향 가운데 어느 쪽도 뒤집힌 상태가 아니며, 어느 방향으로 걸어도 완성된 그림입니다.

구름에서 동물을, 벽의 얼룩에서 사람 얼굴을 보는 것처럼 무늬나 사물에서 저절로 얼굴을 읽어 내는 현상을 파레이돌리아라고 부릅니다. 이 그림은 그런 우연한 착시와 다릅니다. 두 방향 모두에서 그릇과 채소가 제 역할을 하도록 자리가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크레모나 미술관은 이 작은 판을 아르침볼도의 「가역 이미지(immagini reversibili)」를 보여 주는 가장 중요한 예 가운데 하나로 소개합니다. 크레모나 지역 신문 크레모나세라의 2026년 9월 보도에 따르면, 미술관은 이 그림을 아래에 거울을 둔 유리 진열장에 넣어 관람객이 그림을 돌리지 않고도 얼굴을 함께 볼 수 있게 전시해 왔습니다. 같은 보도는 휴머니타스 대학의 안드레아 라기 교수 연구팀이 이 그림을 광자계수 CT로 촬영했고, 파비아 대학이 이어지는 분석에 참여한다고 전합니다. 그 결과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그림을 보려면 크레모나가 아니라 만토바로 가야 합니다. 2026년 9월 26일부터 2027년 1월 10일까지 만토바 팔라초 테의 전시 〈자연을 발명하다: 레오나르도, 아르침볼도, 카라바조〉에 나가 있습니다.

아르침볼도, 세 황제를 섬긴 25년

아르침볼도는 밀라노의 화가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이탈리아 인명사전 트레카니에 따르면 그는 1549년부터 1558년까지 밀라노 대성당에서 화가였던 아버지 비아조와 함께, 또 혼자서도 스테인드글라스 도안 같은 일을 했습니다. 1558년에는 코모 대성당의 태피스트리 〈성모의 죽음〉 밑그림을 구상해 1560년에 넘겼고, 이 태피스트리는 1561년부터 이듬해까지 플랑드르 출신 직조공 요하네스 카르허가 짰습니다. 작은 색유리 조각을 납선으로 이어 붙이거나 색실을 한 올씩 엮어 하나의 형상을 만드는 이 매체들의 방식은, 채소 하나하나를 짜 맞춰 얼굴을 만드는 이 그림의 구성과 닮아 있습니다.

그는 1526년 또는 1527년 밀라노에서 태어났습니다. 1562년 합스부르크 궁정에 들어가 페르디난트 1세, 막시밀리안 2세, 루돌프 2세까지 세 황제를 섬겼습니다. 빈 미술사박물관은 그가 1562년부터 빈과 프라하에서 궁정화가로 일했다고 적고, 루돌프 2세가 1583년 궁정을 빈에서 프라하로 옮긴 뒤로는 프라하 궁정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1587년 황제의 허락을 받아 밀라노로 돌아왔습니다. 궁정에서 보낸 기간은 25년입니다. 〈정원사〉는 궁정에서가 아니라 밀라노로 돌아온 뒤에 그린 것으로 봅니다. 궁정화가의 본업은 황제와 왕실 가족의 초상을 위엄 있게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실제로 그린 것은 과일과 채소와 꽃과 책을 조합해 만든 얼굴이었습니다. 대표작인 사계 연작에서 봄은 꽃으로, 여름은 과일과 채소로, 가을은 수확물로, 겨울은 마른 나뭇가지와 껍질로 얼굴을 이룹니다. 계절이 바뀌면 얼굴을 이루는 재료도 바뀝니다.

이런 그림이 황제의 눈 밖에 나지 않은 것은 당시 궁정 문화의 취향과 관계가 있습니다. 16세기 궁정에서는 보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기교와 착상을 높이 평가했고, 진기한 물건과 그림을 모아 두는 방을 따로 두기도 했습니다. 크레모나 미술관은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합니다. 북유럽적 성격이 뚜렷한 이 그림이 연금술의 세계, 그리고 조반니 바티스타 델라 포르타의 식물관상학과 긴밀하게 이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델라 포르타는 식물이 자기와 모양이 닮은 신체 기관의 병을 고치는 성질을 지닌다고 보았습니다.

채소 기르는 사람인가, 정원의 신인가

이 그림의 인물이 누구인지는 확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채소를 기르는 사람, 곧 정원사로 보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읽기입니다. 제목도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다른 해석도 있습니다. 이탈리아 미술사가 마우리치오 칼베시는 이 얼굴을 정원을 지키는 신 프리아포스로 읽고, 그 근거로 코의 모양을 듭니다. 채소와 뿌리를 쌓아 만든 형상이 다산의 상징으로 읽힐 여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이 그림이 밭에서 나온 것들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림 앞에서 마지막으로 해 볼 일은 시선을 한 번 더 뒤집는 것입니다. 얼굴을 본 다음 다시 그릇 방향으로 돌아가면, 이번에는 양파가 그냥 양파로 보이지 않습니다. 뺨이었던 것이 다시 양파가 되는 그 순간이 이 작은 패널이 노린 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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