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 〈포목상 조합의 이사들〉(직물조합 이사들) 해석, 그들은 정말 우리를 쳐다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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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 렘브란트 하르먼스존 판 레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
• 작품명: 직물조합 이사들(De Staalmeesters)
• 제작: 1662년
• 재료: 캔버스에 유채
• 크기: 191.5 × 279cm
• 소장: 암스테르담시 소유, 1808년부터 라익스미술관에 대여(SK-C-6)
• 비고: 암스테르담 직물조합 회관(스탈호프)의 이사들 회의실에 걸렸던 그림

렘브란트의 〈직물조합 이사들〉(1662) 앞에 서면 검은 모자를 쓴 남자들이 일제히 이쪽을 보는 것 같습니다. 라익스미술관은 이 그림을 두고 「그들은 우리를 똑바로 본다. 마치 우리가 방금 문을 열고 회의를 방해한 것처럼」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 인상 자체를 19세기에 생긴 전설로 보는 연구자들도 있습니다. 이 글은 그 두 읽기를 그림 속 증거와 함께 봅니다.

포목상 조합의 이사들, 한 사람만 앉지 않았다

렘브란트 직물조합 이사들 1662년 여섯 남자가 탁자에 둘러앉은 집단 초상화
렘브란트 하르먼스존 판 레인, 〈직물조합 이사들〉, 1662년, 캔버스에 유채, 191.5 × 279cm, 암스테르담시 소유·라익스미술관 대여, SK-C-6. 왼쪽부터 판 로엔, 얀스(선 사람), 판 도이엔뷔르흐, 하인 벨(뒤), 판 데어 마이, 더 네버.

화면 속 인물은 여섯입니다. 라익스미술관의 설명에 따르면 왼쪽부터 야코프 판 로엔, 폴케르트 얀스, 의장 빌럼 판 도이엔뷔르흐, 뒤쪽에 선 하인 프란스 헨드릭스 벨, 아르나우트 판 데어 마이, 요험 더 네버입니다. 이 이름들은 1896년 얀 식스가 처음 잠정적으로 밝혔고, 1957년 역사학자 이사벨라 판 에이헌이 확인했습니다.

다섯 이사 가운데 왼쪽에서 두 번째인 폴케르트 얀스만 의자에서 몸이 떠 있습니다. 한 손을 아래로 짚고 상체를 앞으로 기울인 자세입니다. 이 사람이 일어서는 중인지 앉는 중인지는 해석이 갈립니다. 많은 해설이 일어서는 순간으로 보지만, 라익스미술관은 「한 사람은 막 앉는 중」이라고 쓰고, 미술사학자 빈스톡은 일어서는 것으로 보는 해석이 틀렸을 것이라고 봅니다. 확실한 것은 이 한 사람의 자세가 다른 이들의 고정된 자세와 어긋나 화면에 움직임을 만든다는 점입니다.

직물조합 이사들, 아래에서 올려다본 탁자

그림은 가로 2.8미터, 세로 1.9미터가 넘는 큰 화면입니다. 렘브란트하위스 미술관의 교육 자료가 짚듯이 탁자는 조금 아래에서 올려다본 모습으로 그려져 있어, 탁자 윗면은 거의 보이지 않고 붉은 양탄자가 앞쪽으로 늘어집니다. 다섯 이사의 검은 모자와 흰 옷깃이 거의 한 줄로 늘어선 것도 이 낮은 시점 때문입니다. 이렇게 아래에서 올려다보게 만든 구도가 인물들을 더 크고 무게 있게 보이게 한다고 보는 연구자들이 있습니다.

빈스톡은 이 낮은 시점이 그림이 걸릴 스탈호프 이사실의 벽 배치에 맞춘 것이었으리라고 봅니다. 1880년 라익스미술관 도록도 시점이 탁자 윗면보다 낮게 잡혀 있어 이 그림이 꽤 높은 자리에 걸리도록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고 적었습니다. 일찍이 몇몇 연구자는 이 원근 구성을 근거로 그림이 이사실 벽난로 위에 걸리도록 그려졌다고 보았고, 당시 암스테르담의 조합 회관에서는 단체 초상을 벽난로 위 높은 곳에 거는 일이 흔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그림이 그 방의 어느 높이, 어느 자리에 걸렸는지를 확인해 주는 기록은 이번에 찾지 못했습니다.

포목상 조합의 이사들, 모자가 다른 여섯 번째 사람

화면 뒤쪽 가운데, 이사들보다 조금 높고 깊은 자리에 하인 프란스 헨드릭스 벨이 서 있습니다. 렘브란트하위스의 설명대로 다섯 이사가 모두 챙 넓은 검은 모자를 쓴 것과 달리 이 사람만 그런 모자를 쓰지 않았습니다. 라익스미술관은 그가 챙 넓은 모자 대신 머리에 딱 붙는 작은 모자를 쓰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사와 하인의 차이가 모자 하나로 드러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렘브란트가 자리를 정하는 데 가장 애를 먹은 인물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빈스톡은 X선 사진과 다른 조사 자료를 읽어, 벨이 처음에는 더 네버 뒤에, 다음에는 더 오른쪽에, 또 오른쪽 가장자리 낮은 곳에 그려졌다가 마지막에 지금의 가운데 뒤로 옮겨졌다고 판독합니다. 빈스톡은 또 다른 이들과 달리 벨이 눈을 내리깔고 있다고 봅니다.

직물조합 이사들, 붉은 양탄자와 견본책

탁자에는 페르시아풍의 붉은 양탄자가 덮여 있고, 렘브란트하위스는 이 양탄자를 물감을 아주 두껍게 올려 그렸다고 설명합니다. 렘브란트의 진짜 서명 「Rembrandt f. 1662」도 이 양탄자 위에 있습니다. 오른쪽 위 벽에 있는 「1661」 서명은 라익스미술관이 가짜로 판정한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암스테르담 직물조합의 스탈메이스터르, 곧 견본 검사관이었습니다. 이들은 일주일에 세 번 모여 암스테르담에서 거래되는 모직물을 검사했다고 전합니다. 검사를 마친 옷감에는 납 봉인을 달았는데, 봉인에는 「스탈」「한 배 반 스탈」「두 배 스탈」「큰 두 배 스탈」 같은 품질 표기가 찍혀 있었다고 합니다. 암스테르담 발굴에서는 이런 봉인이 실제로 여럿 나왔습니다. 렘브란트하위스의 설명에 따르면 이들은 갓 염색한 모직물의 품질과 색을 승인하는 일을 했고, 기준이 되는 올바른 색의 작은 천 조각을 「스탈(stalen)」이라고 불렀습니다. 탁자 위에 펼쳐진 책을 라익스미술관은 견본책으로 적습니다. 빈스톡은 이것을 회계장부로 보고, 이사들의 임기가 끝나는 1662년 4월 15일 직전의 마지막 장부였으리라고 추정합니다.

오른쪽 벽난로 위에는 불타는 봉화가 그려진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이것을 시민의 덕을 가리키는 봉화 탑 표지로 보는 학설과, 불타는 도시를 그린 덧없음의 표지로 보는 학설이 나뉩니다.

그들은 정말 우리를 쳐다보는가

네덜란드 미술사학자 헨리 판 데 발은 1956년 논문 「이사들과 그들의 전설」에서 이 그림을 방문객에게 방해받은 순간으로 읽는 해석 자체가 19세기에 생긴 전설이라고 보았습니다. 그 출발점은 1809년 아포스톨이 쓴 카탈로그의 「모두 누군가를 올려다보고 있다」는 문장이었고, 조합의 회의는 외부 청중을 받지 않았으므로 「방금 문을 연 방문객」이라는 설정은 시대착오라는 것입니다. 빈스톡도 렘브란트가 인물을 한 사람씩 그렸기 때문에 시선이 정확히 한 점에 모이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그림을 고친 흔적은 다른 쪽에서 이 문제를 비춥니다. 1949년부터 1955년까지 찍은 X선 필름 79장을 2014년에 디지털로 합성한 자료와 렘브란트 연구 데이터베이스의 설명에 따르면, 앉은 이사의 머리와 손은 세 번 자리를 옮겼고, 선 얀스는 처음에 지금보다 왼쪽에 있었습니다. 남아 있는 준비 드로잉과 비교하면 얀스는 처음에 더 정면을 향했고, 앉은 이사와 서로 마주 보고 있었습니다. 렘브란트가 인물들의 자세와 시선을 여러 번 고쳐 지금의 배치를 만든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가 왜 그렇게 고쳤는지, 관람자를 바라보게 하려는 의도였는지는 기록이 없습니다.

결국 이 그림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쳐다본다」는 인상은 화면이 만들어 내는 실제 효과이고, 「회의를 방해받은 순간」이라는 이야기는 그 효과에 붙은 오래된 해석입니다. 둘을 나눠 보면 이 그림은 한 장면의 순간 포착이라기보다, 여섯 사람을 한 화면에 앉히기 위해 렘브란트가 오래 고친 결과로 보입니다.

스탈호프에서 라익스미술관까지

이 그림은 이사들이 직접 주문했고, 암스테르담 스탈스트라트에 있던 조합 회관 스탈호프에 걸렸습니다. 1896년 이 인물들의 이름을 처음 밝힌 얀 식스에 따르면 스탈호프의 이사실에는 1559년부터 역대 이사들을 그린 단체 초상이 여섯 점 걸려 있었고, 지금 남은 것은 1599년 작과 렘브란트의 그림 두 점뿐입니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궁정보다 상인과 조합 같은 시민 단체가 그림을 많이 주문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합이나 자선 단체의 임원들을 한 화면에 그리는 단체 초상은 네덜란드에서 특히 발달한 장르로 꼽힙니다. 라익스미술관은 1650년대 재정 파탄 이후 암스테르담 상류층이 예전만큼 렘브란트를 찾지 않았지만 그는 여전히 주문을 받았다고 적습니다. 렘브란트하위스의 교육 자료는 이사들이 그림에 만족해 값을 치렀으나, 렘브란트는 그 무렵 다시 돈 문제에 몰려 아내 사스키아가 묻힌 묘자리까지 팔아야 했다고 전합니다. 1632년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로 시작된 렘브란트의 단체 초상은 이 그림이 마지막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7년 뒤인 1669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준비 드로잉은 세 장이 남아 있습니다. 세 이사를 함께 스케치한 한 장은 베를린 동판화 전시관에, 선 얀스를 그린 습작은 로테르담 보이만스 판 뵈닝언 미술관에, 앉은 판 로엔의 습작은 라익스미술관에 있습니다. 라익스미술관은 렘브란트가 인물마다 습작을 그렸을 텐데 개별 습작은 두 장만 남았다고 설명합니다.

그림 뒷면에 붙어 있던 옛 라벨에 따르면 그림은 1771년 11월 27일 암스테르담 시청의 미술품실로 옮겨졌고, 1808년 8월 15일부터 암스테르담시가 미술관에 빌려주는 형태로 걸려 있습니다. 법적인 주인은 지금도 미술관이 아니라 암스테르담시입니다. 담배 상표 「더치 마스터스」의 상자 라벨에 이 그림이 쓰여, 그림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이 여섯 얼굴이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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