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치오의 성삼위일체, ‘원근법의 혁명’이라 불리는 이유 5가지 (산타 마리아 노벨라)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에 가면 반드시 봐야 할 단 하나의 그림이 있습니다. 바로 마사치오(Masaccio)의 걸작 <성삼위일체(The Holy Trinity)>입니다. 이 작품이 왜 ‘원근법의 혁명’이라 불리는지—현장에서 더 선명하게 보이는 디테일 5가지를 차근차근 풀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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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사치오 - <성삼위일체>, 프레스코,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피렌체) |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Santa Maria Novella)에 들어서면 왼쪽 벽면에서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분명 평평한 벽인데, 마치 벽 안쪽에 또 다른 예배당이 있는 것처럼 뻥 뚫려 보이는 그림이 있죠. 바로 르네상스 회화의 아버지, 마사치오(Masaccio)의 <성삼위일체>입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종교화가 아닙니다. 서부 미술의 역사를 ‘이 그림 이전’과 ‘이후’로 나눌 정도로 중요한 전환점이죠. 도대체 무엇이 그리 특별할까요? ‘원근법의 혁명’이란 별명이 허풍이 아님을, 그림 속 디테일 5가지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1. 미술 역사상 최초의 ‘완벽한 3D’ 마법
마사치오의 성삼위일체가 가장 유명한 이유는 선원근법(Linear Perspective)을 ‘벽화’에 거의 완벽에 가깝게 구현해냈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으로 성화는 상징과 위계가 우선이었지만, 이 작품은 수학적 계산으로 실제 공간처럼 보이는 깊이를 만들어 냈습니다.
2. 서 있는 하나님? 인본주의의 시작
그림 중앙 십자가 뒤를 자세히 보세요. 하느님(성부)이 십자가를 받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전의 중세 성화들과 달리, 하느님은 구름 위에 둥둥 떠 있거나 거대한 손으로만 표현되지 않았습니다.
놀랍게도 하느님은 두 발로 땅(선반)을 딛고 서 있습니다. 심지어 발이 앞으로 나온 모습(단축법)까지 사실적으로 묘사했죠. 이는 신을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인간처럼 무게를 지닌 실재적인 존재로 표현한 것입니다. 신 중심의 중세에서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결정적 증거가 바로 이 ‘하느님의 발’입니다.
3. 섬뜩하지만 우아한 경고: 해골의 비밀
그림의 가장 아랫부분, 제단 밑을 보면 해골이 누워 있는 석관이 보입니다. 이 해골 위에는 이탈리아어로 섬뜩한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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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골이 누워 있는 석관 부분 확대(메멘토 모리) |
"나도 한때는 그대와 같았노라, 그리고 그대 또한 현재의 나와 같아지리라."
이것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의 메시지입니다. "너희도 언젠가 죽는다"는 경고죠. 하지만 너무 무서워하지 마세요. 마사치오가 보여주는 흐름은 오히려 명료합니다. 죽음은 피할 수 없지만(해골), 기도와 믿음의 자리로 초대받으며(기증자·성모·요한), 궁극적으로는 구원의 전망(삼위일체)으로 시선이 올라갑니다.
4. 300년 동안 숨겨져 있었다고?
이 그림은 하마터면 영영 사라질 뻔했습니다. 16세기, 피렌체의 통치자 메디치 가문의 명령으로 성당을 리모델링하던 조르조 바사리는 이 그림 위에 새로운 제단을 설치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마사치오를 존경했던 바사리는 그림을 부수는 대신, 새 제단 앞에 가벽을 세워 그림을 덮어버렸습니다. 덕분에 이 걸작은 19세기 중반까지 어둠 속에서 완벽하게 보존될 수 있었죠. 바사리의 ‘아름다운 은폐’가 없었다면 우리는 이 그림을 보지 못했을 겁니다.
5. 그림 속의 두 남녀는 누구일까?
그림 양옆에 무릎 꿇은 두 사람, 바로 이 그림을 주문한 기증자(Donors)들입니다. 빨간 옷을 입은 남자는 당시 피렌체의 고위 관직자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놀라운 점은 이들의 크기입니다. 중세 시대에는 기증자를 성인들보다 훨씬 작게 그리는 게 관례였어요. 하지만 마사치오는 이들을 성모 마리아나 예수님과 거의 같은 비중으로 배치합니다. “인간도 신성한 장면 속에서 존엄을 가진다”는 르네상스적 선언이,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입니다.
정리하자면,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마사치오 <성삼위일체>는 ‘성화’라는 틀 안에서 원근법(선원근법)이 회화의 규칙을 바꿔버린 순간을 눈앞에서 증명하는 작품입니다. 다음에 이 벽화를 다시 마주치실 때는, “왜 벽이 뚫려 보이는가”를 넘어 “왜 이 한 장이 원근법의 혁명인가”를 꼭 떠올려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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