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1881년 헤이그의 한 경매에서 2굴덴에 팔렸습니다. 지금은 베르메르의 그림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 꼽힙니다.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이 소녀가 누구인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 작품명: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Meisje met de parel / Girl with a Pearl Earring)
• 작가: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1632~1675)
• 제작: 1665년경(마우리츠하위스 표기)
• 재료: 캔버스에 유채
• 크기: 44.5×39cm
• 서명: 왼쪽 위 IVMeer(IVM 세 글자를 한 글자로 엮음)
• 소장: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Mauritshuis), 670
| 요하네스 베르메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1665년경, 캔버스에 유채, 44.5×39cm,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 670. 지금은 어둠뿐인 배경이 원래는 초록 커튼이었고, 왼쪽 위 서명은 그 배경이 어두워지면서 알아보기 어려워졌다. |
2굴덴에 팔린 그림
1881년 헤이그 경매에 그림 한 점이 나왔습니다. 상태가 나빴고 누가 그렸는지도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열람일에 두 사람이 이 그림에 주목했습니다. 문화 관료 빅토르 더 스튀르스와 수집가 데스 톰버였습니다. 둘은 서로 값을 올리지 않기로 했고, 데스 톰버가 2굴덴에 낙찰받았습니다. 여기에 수수료 30센트가 붙었습니다. 데스 톰버는 그해 이 그림을 마우리츠하위스에 맡겨 걸었습니다.
작가가 어떻게 확인됐는지는 이야기가 둘로 전합니다. 더 스튀르스가 훼손된 상태에서도 곧바로 베르메르를 알아봤다는 쪽과, 세척한 뒤에야 서명이 드러났다는 쪽입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데스 톰버는 1902년 12월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비밀 유언으로 그림 열두 점을 남겼고, 이듬해 마우리츠하위스에 정식으로 들어왔습니다.
참고로 1881년 이전의 소장 이력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여러 손을 거쳤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기록에 물음표가 붙어 있습니다. 이 그림이 어디서 왔는지조차 우리는 모릅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특징, 2020년 조사가 밝힌 것
마우리츠하위스는 2018년 이 그림을 관람객이 지켜보는 전시실에서 조사했고, 2020년 4월 28일 그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여러 영상 장비와 현미경, 물감 분석을 함께 쓴 조사였습니다. 결과를 따라가면 이 그림에서 시간이 지워 버린 것과,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던 것과, 화가가 어떤 순서로 칠했는지가 차례로 드러납니다.
가장 크게 바뀐 것은 배경입니다. 지금 소녀 뒤는 짙은 어둠이고, 1914년과 1935년 마우리츠하위스 도록도 이 배경을 고르게 짙은 녹갈색으로 적었습니다. 그런데 조사팀은 화면 오른쪽 위 구석에서 접힌 천을 시사하는 사선과 색의 차이를 찾아냈습니다. 베르메르는 소녀를 초록 커튼 앞에 그렸다는 것입니다. 배경은 검은 숯 물감으로 밑칠한 위에 반투명한 초록 글레이즈(아래가 비쳐 보이게 얇게 덮는 물감층)를 입힌 것이었습니다. 이 초록을 이루던 노란 웰드와 파란 인디고라는 두 유기 색소가 모두 바래면서, 커튼은 수백 년에 걸쳐 물리·화학적 변화로 사라졌습니다. 지금 도판의 오른쪽 위를 확대해도 보이는 것은 어둠입니다.
같은 화가의 〈우유 따르는 여인〉에서 텅 빈 벽은 베르메르가 그렸던 물건을 스스로 덮은 결과였습니다. 이 그림의 어둠은 다릅니다. 화가가 덮은 것이 아니라 시간이 바래게 한 것입니다.
배경이 어두워지면서 왼쪽 위의 서명도 알아보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나 서명은 사라지지 않았고 지금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 조사팀은 칼슘과 납이 화면 어디에 분포하는지 보여 주는 지도를 따라 그려 서명을 다시 보이게 했습니다.
|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세부. 두 눈동자에 흰 점이 하나씩 찍혀 있고, 맨눈으로는 눈 둘레에 속눈썹이 보이지 않는다. |
맨눈에 보이지 않던 것도 나왔습니다. 확대 도판에서 두 눈을 보면 이 소녀에게는 속눈썹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매크로 X선 형광분석(물감 속 원소가 화면 어디에 있는지 지도로 그려 내는 방법)과 현미경 조사에서 베르메르가 두 눈 둘레에 아주 작은 털을 그린 것이 드러났습니다. 철 성분 지도에 갈색 물감으로 그린 속눈썹이 나타난 것입니다. 반면 얼굴 어디에도 점이나 흉터, 주근깨는 없습니다.
칠한 순서도 밝혀졌습니다. 베르메르는 밑칠 단계에서 소녀의 윤곽을 가는 검은 선으로 잡았습니다. 그리고 초록빛 배경과 얼굴 피부를 칠한 뒤 노란 웃옷, 흰 옷깃, 머릿수건, 진주를 차례로 올렸고, 마지막에 왼쪽 위에 서명했습니다. 그리는 도중에 고친 곳도 세 군데 있습니다. 귀를 위로 옮겼고, 뺨과 머릿수건 사이의 경계선을 조정했고, 목 뒤의 윤곽을 부드럽게 했습니다. 밑칠에는 윤곽선이 있었지만 표면에서는 선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배경과 얼굴처럼 맞닿는 두 색면 사이에 좁은 틈을 남겨 경계가 부드럽게 보이도록 했습니다.
|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세부. 위의 밝은 점과 아래의 흐린 반사광, 두 번의 붓질이 진주의 전부이고 귀에 거는 고리는 그려져 있지 않다. |
제목이 된 진주는 착시입니다. 소장처의 설명에 따르면 베르메르는 이 진주를 흰 물감 두 번의 붓질로 그렸습니다. 아래쪽은 흰 옷깃을 비추는 한 번, 위쪽은 두껍게 찍은 한 번입니다. 그 밖에는 아무것도 없고, 진주를 귀에 거는 은 고리조차 없습니다. 확대 도판에서도 진주의 둥근 윤곽은 선으로 그어져 있지 않고, 아래쪽 반사광은 목의 그늘 속으로 흐려집니다. 진주는 이미 완성된 목 피부색 위에 그려졌습니다. 다만 지금 보는 진주는 처음 칠한 그대로가 아닙니다. 낡은 캔버스 뒤에 새 천을 덧대는 배접 처리를 과거에 하면서 두껍게 올린 물감이 눌려 납작해졌습니다.
이 진주가 진짜였는지도 의문입니다. 마우리츠하위스는 진짜이기에는 너무 크다고 봅니다. 광택을 죽이려고 바니시를 칠한 유리 진주일 수도 있고, 베르메르의 상상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세부. 아랫입술 가운데와 오른쪽 입꼬리에 찍힌 작은 흰 점 때문에 입술이 젖어 보인다. |
같은 방식은 입술과 눈에도 쓰였습니다. 조사팀은 입술과 눈에 하이라이트로 찍은 아주 작은 겹붓질이 촉촉함과 생기를 만든다고 설명합니다. 눈동자의 흰 점과 아랫입술의 흰 점을 번갈아 보면, 이 얼굴의 생기가 넓은 면이 아니라 몇 개의 점에서 나온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감의 출처도 처음으로 지도처럼 정리됐습니다. 머릿수건과 웃옷에는 천연 울트라마린이 넉넉하게 쓰였습니다.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에서 난 청금석을 갈아 만드는 파랑으로, 17세기에는 금보다 귀했던 안료입니다. 이번 조사에서는 이 돌을 먼저 높은 온도로 가열했을 가능성도 새로 나왔습니다. 옷깃과 진주, 눈에 쓴 흰 물감(연백)의 납은 동위원소 분석 결과 잉글랜드에서 온 것이었고, 붉은 색소 코치닐은 지금의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에서 왔습니다. 연구진은 천연 울트라마린을 많이 쓴 것 말고는 베르메르의 팔레트가 17세기에 꽤 전형적이었다고 정리했습니다. 파랑 하나를 빼면 재료는 당시 화가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조사로 소녀가 누구인지도 밝혀졌을까요. 마우리츠하위스 관장 마르티너 호셀링크는 발표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요, 이 젊은 여성이 누구였는지, 실제로 존재했는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가까워졌습니다.」
소녀는 누구일까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이고, 답이 없는 질문입니다.
이름을 알려 주는 문서가 없습니다. 베르메르와 어떤 관계였는지 밝혀 주는 기록도 없습니다. 화가의 딸이었다거나 집안의 하녀였다는 추측은 오래전부터 반복됐지만 확정할 근거가 나온 적은 없습니다.
애초에 이 그림은 누군가를 기록하려고 그린 것이 아닙니다. 트로니라는 장르에 속합니다. 특정 유형의 표정과 이국적인 복식, 그리고 화가의 솜씨를 보여 주려고 그린 머리 연구입니다.
마우리츠하위스는 이 그림을 초상이 아니라 트로니, 곧 상상의 인물을 그린 그림이라고 설명합니다. 아마 앉아 준 모델은 있었겠지만 트로니의 목적은 특정한 성격이나 유형을 나타내는 머리를 연구하는 데 있었고, 네덜란드 미술에서 이 장르를 유행시킨 사람은 1630년 무렵의 렘브란트였습니다. 트로니라는 말은 중세 프랑스어 trogne에서 왔는데, 기괴하거나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가리키던 말입니다.
그러니 두 질문을 나눠야 합니다. 모델이 앉았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과 이 그림이 누구의 초상이냐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베르메르의 트로니 세 점
오늘 베르메르의 트로니로 알려진 그림은 세 점입니다. 이 그림과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 of Art)의 〈붉은 모자를 쓴 소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의 〈젊은 여인 습작〉입니다. 한때 네 번째로 꼽히던 워싱턴의 〈플루트를 든 소녀〉는 2022년 그 미술관이 베르메르 공방의 동료가 그렸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정하면서 베르메르의 작품 목록에서 내려갔습니다. 수준이 베르메르에 못 미친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베르메르의 작품 수가 기관마다 조금씩 다르게 세어지는 것도 이런 판정 때문입니다.
| 요하네스 베르메르, 〈붉은 모자를 쓴 소녀〉, 1669년경, 목판에 유채, 22.8×18cm,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1937.1.53. 넓은 모자의 그늘 아래에서 몸을 돌려 이쪽을 보고, 등 뒤로는 태피스트리가 걸려 있다. |
〈붉은 모자를 쓴 소녀〉는 베르메르의 그림 가운데 가장 작은 축에 들고, 그가 늘 쓰던 캔버스가 아니라 나무판에 그렸습니다. 소녀는 의자에서 몸을 돌려 보는 이를 곧바로 봅니다. 넓은 붉은 모자와 파란 옷, 뒤에 걸린 태피스트리까지 화면이 색과 물건으로 차 있어서, 빈 배경 앞에 얼굴 하나를 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와는 첫인상이 다릅니다.
| 요하네스 베르메르, 〈젊은 여인 습작〉, 1665~1667년경, 캔버스에 유채, 44.5×40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1979.396.1. 어두운 배경 앞에서 어깨 너머로 돌아보는 자세와 왼쪽에서 드는 빛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와 겹친다. |
가까운 쪽은 메트의 〈젊은 여인 습작〉입니다. 크기가 44.5×40cm로 이 그림과 거의 같고, 연구진은 두 그림이 비슷한 시기에 그려졌을 것으로 봅니다. 두 소녀 모두 왼쪽에서 드는 빛을 받으며 어깨 너머로 이쪽을 돌아봅니다. 지금은 둘 다 어두운 배경 앞에 있지만, 앞에서 본 것처럼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배경은 원래 초록 커튼이었습니다. 처음 완성됐을 때 두 그림의 차이는 지금 보이는 것보다 컸을 수 있습니다.
2025년, 새 이름이 나왔다
2025년 새로운 후보가 제기됐습니다.
영국의 미술사학자 앤드루 그레이엄딕슨은 2025년 10월 영국 주간지 옵서버(The Observer)와의 인터뷰와 저서에서 막달레나 판라위번을 모델로 지목했습니다. 베르메르의 주요 후원자였던 피터르 클라스 판라위번과 마리아 더 크나위트의 딸입니다.
그는 이 그림의 제작 시기를 통설보다 늦은 1667년에서 1668년 사이로 봅니다. 그 연대라면 막달레나는 열두 살 무렵입니다. 이름이 성경의 마리아 막달레나와 이어진다는 점을 근거로, 그는 이 그림을 그 성인의 이미지로 읽었습니다.
이 주장은 크게 보도됐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 근거가 어디까지인지도 함께 봐야 합니다.
추론이 여러 단계를 거칩니다. 판라위번 부부가 주문했으리라는 가정, 화가와 가까운 소녀라면 그 집 딸이리라는 가정이 먼저 깔립니다. 여기에 통설과 다른 연대, 당시 성인세례를 받았으리라는 가정이 얹힙니다. 이 사슬을 이어 줄 직접 증거는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열두 살이라는 숫자에도 조건이 붙습니다. 막달레나는 1655년생입니다. 연대를 통설대로 1665년경으로 보면 아홉 살에서 열 살이 됩니다. 열두 살은 그레이엄딕슨의 재연대를 받아들여야만 나오는 숫자입니다.
소장 쪽 연구진은 여전히 신원 미상 입장입니다. 실제 소녀가 쓰고 다닐 리 없는 터번과 지나치게 큰 귀걸이가 그 근거로 꼽힙니다. 1696년 기록도 자주 언급되지만 여기에는 조건이 붙습니다. 소장처의 이력은 이 그림이 1696년 암스테르담 디시우스 경매에 트로니로 나온 세 점 가운데 하나였을 수 있다고, 물음표를 달아 적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새로운 발견이 아니라 논쟁적이고 아직 입증되지 않은 가설입니다. 흥미로운 제안이지만 사실로 굳은 것은 아닙니다.
그리트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나
이 그림의 모델을 떠올릴 때 가장 많이 나오는 이름은 그리트입니다. 베르메르의 집에서 일하던 하녀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록에 그런 하녀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트는 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가 1999년 소설에서 만든 인물입니다. 기록에서 찾은 이름이 아니라 그림의 빈자리를 상상으로 채운 결과입니다. 2003년 영화가 나오면서 이 이름은 더 널리 퍼졌습니다.
허구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소설의 이야기와 그림의 사실을 섞으면 안 됩니다. 그리트는 소설 속 인물입니다.
이 그림이 스타가 된 것은 최근이다
1881년에 다시 세상에 나온 뒤 이 그림이 곧바로 유명해진 것은 아닙니다.
1885년에 이미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훗날 마우리츠하위스 관장이 되는 아브라함 브레디우스가 데스 톰버의 집에서 이 그림을 보고 이렇게 썼습니다. 「베르메르가 나머지를 모두 압도한다. 그림을 보고 있다는 것을 잊을 만큼 훌륭하게 빚어 낸 소녀의 머리와 단 하나의 빛줄기만으로도 눈을 붙든다.」 1984년과 2000년에는 일본 전시에도 나갔습니다. 그래도 오늘날 같은 위치는 아니었습니다.
2003년 영화가 나온 뒤로 일반 대중의 인지도가 크게 올랐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뒤의 행보는 이 그림이 어떤 자리에 있는지 보여 줍니다. 마우리츠하위스는 2012년부터 2014년까지 건물을 크게 고쳤습니다. 그동안 소장품 상당수는 헤이그 시립미술관(Gemeentemuseum) 별관에 걸렸고, 이 그림은 일본과 미국으로 나갔습니다. 2012년 여름 도쿄도미술관(Tokyo Metropolitan Art Museum), 그해 가을부터 겨울까지 고베시립박물관(Kobe City Museum)을 거쳤고, 2013년에는 샌프란시스코 드영 미술관(de Young Museum)과 애틀랜타 하이 미술관(High Museum of Art)에 걸렸습니다. 마지막은 2013년 10월 22일부터 이듬해 1월까지 뉴욕 프릭 컬렉션(The Frick Collection)이었습니다. 2023년에는 암스테르담 레이크스미술관의 베르메르전에 3월 30일까지 걸렸다가 헤이그로 돌아왔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2굴덴에 팔린 그림이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120년이 걸렸고, 그 마지막 구간에 소설과 영화가 있었습니다.
그동안 소녀의 이름은 끝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은 애초에 누군가를 알아보게 하려고 그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밝혀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밝힐 이름이 처음부터 없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사람들은 그 빈자리에 이름을 넣어 왔습니다. 딸이라고도 하고 하녀라고도 했으며, 소설은 그리트라는 이름을 지어냈고, 2025년에는 막달레나라는 이름이 나왔습니다. 이 그림이 유명해진 방식이 그렇습니다. 답이 있어서가 아니라 빈자리가 있어서입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자주 묻는 질문
누가 그렸나요?
요하네스 베르메르가 1665년경 그렸습니다. 화면 왼쪽 위에 IVMeer라는 서명이 있습니다.
어디에 있나요?
네덜란드 헤이그의 마우리츠하위스에 있습니다. 1881년 데스 톰버가 이 미술관에 맡겨 걸었고, 1903년 그의 유증으로 정식 소장품이 됐습니다.
모델은 누구인가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이 그림은 특정인의 초상이 아니라 트로니입니다.
그림 속 진주는 진짜 진주인가요?
소장처는 진짜이기에는 너무 커서 유리로 만든 모조 진주이거나 화가의 상상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림 속 진주는 흰 물감 두 번의 붓질이고, 귀에 거는 고리도 그려져 있지 않습니다.
소설과 영화의 이야기는 사실인가요?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1999년 소설과 2003년 영화는 허구입니다. 하녀 그리트는 소설이 지어낸 인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