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1881년 헤이그의 한 경매에서 2굴덴에 팔렸습니다. 지금 이 그림은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얼굴입니다.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이 소녀가 누구인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1665년경, 44.5×39cm,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 |
2굴덴에 팔린 그림
1881년 헤이그 경매에 그림 한 점이 나왔습니다. 상태가 나빴고 누가 그렸는지도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열람일에 두 사람이 이 그림에 주목했습니다. 문화 관료 빅토르 더 스튀르스와 수집가 데스 톰버였습니다. 둘은 서로 값을 올리지 않기로 했고, 데스 톰버가 2굴덴에 낙찰받았습니다. 여기에 수수료 30센트가 붙었습니다.
작가가 어떻게 확인됐는지는 이야기가 둘로 전합니다. 더 스튀르스가 훼손된 상태에서도 곧바로 베르메르를 알아봤다는 쪽과, 세척한 뒤에야 서명이 드러났다는 쪽입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데스 톰버는 1902년 12월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비밀 유언으로 그림 열두 점을 남겼고, 이듬해 마우리츠하이스에 정식으로 들어왔습니다.
참고로 1881년 이전의 소장 이력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여러 손을 거쳤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기록에 물음표가 붙어 있습니다. 이 그림이 어디서 왔는지조차 우리는 모릅니다.
소녀는 누구일까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이고, 답이 없는 질문입니다.
이름을 알려 주는 문서가 없습니다. 베르메르와 어떤 관계였는지 밝혀 주는 기록도 없습니다. 화가의 딸이었다거나 집안의 하녀였다는 추측은 오래전부터 반복됐지만 확정할 근거가 나온 적은 없습니다.
애초에 이 그림은 누군가를 기록하려고 그린 것이 아닙니다. 트로니라는 장르에 속합니다. 특정 유형의 표정과 이국적인 복식, 그리고 화가의 솜씨를 보여 주려고 그린 머리 연구입니다.
그러니 두 질문을 나눠야 합니다. 모델이 앉았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과 이 그림이 누구의 초상이냐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2025년, 새 이름이 나왔다
지난해 새로운 후보가 제기됐습니다.
영국의 미술사학자 앤드루 그레이엄딕슨이 2025년 10월 신문 기고와 저서에서 막달레나 판라위번을 모델로 지목했습니다. 베르메르의 주요 후원자였던 피터르 클라스 판라위번과 마리아 더 크나위트의 딸입니다.
그는 이 그림의 제작 시기를 통설보다 늦은 1667년에서 1668년 사이로 봅니다. 그 연대라면 막달레나는 열두 살 무렵입니다. 이름이 성경의 마리아 막달레나와 이어진다는 점을 근거로, 그는 이 그림을 그 성인의 이미지로 읽었습니다.
이 주장은 크게 보도됐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 근거가 어디까지인지도 함께 봐야 합니다.
추론이 여러 단계를 거칩니다. 판라위번 부부가 주문했으리라는 가정, 화가와 가까운 소녀라면 그 집 딸이리라는 가정이 먼저 깔립니다. 여기에 통설과 다른 연대, 당시 성인세례를 받았으리라는 가정이 얹힙니다. 이 사슬을 이어 줄 직접 증거는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열두 살이라는 숫자에도 조건이 붙습니다. 막달레나는 1655년생입니다. 연대를 통설대로 1665년경으로 보면 아홉 살에서 열 살이 됩니다. 열두 살은 그레이엄딕슨의 재연대를 받아들여야만 나오는 숫자입니다.
소장 쪽 연구진은 여전히 신원 미상 입장입니다. 1696년 기록이 이 그림을 트로니로 분류했다는 점, 그리고 실제 소녀가 쓰고 다닐 리 없는 터번과 지나치게 큰 귀걸이를 근거로 듭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새로운 발견이 아니라 논쟁적이고 아직 입증되지 않은 가설입니다. 흥미로운 제안이지만 사실로 굳은 것은 아닙니다.
그리트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나
이 그림의 모델을 떠올릴 때 가장 많이 나오는 이름은 그리트입니다. 베르메르의 집에서 일하던 하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리트는 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가 1999년 소설에서 만든 인물입니다. 기록에서 찾은 이름이 아니라 그림의 빈자리를 상상으로 채운 결과입니다. 2003년 영화가 나오면서 이 이름은 더 널리 퍼졌습니다.
허구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소설의 이야기와 그림의 사실을 섞으면 안 됩니다. 그리트는 소설 속 인물이고, 실제 모델은 여전히 미상입니다.
이 그림이 스타가 된 것은 최근이다
1881년에 다시 세상에 나온 뒤 이 그림이 곧바로 유명해진 것은 아닙니다.
1885년에 이미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1984년과 2000년 일본 전시에서는 카탈로그 표지에 쓰일 만큼 주요작이었습니다. 그래도 오늘날 같은 위치는 아니었습니다.
바뀐 것은 2003년입니다. 영화가 나오면서 일반 대중의 인지도가 크게 올랐고, 그때부터 이 그림은 미술관의 대표작을 넘어 하나의 아이콘이 됐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2굴덴에 팔린 그림이 국가의 얼굴이 되기까지 120년이 걸렸고, 그 마지막 도약을 만든 것은 소설과 영화였습니다.
그동안 소녀의 이름은 끝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은 애초에 누군가를 알아보게 하려고 그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밝혀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밝힐 이름이 처음부터 없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사람들은 그 빈자리에 이름을 넣어 왔습니다. 딸이라고도 하고 하녀라고도 했으며, 소설은 그리트라는 이름을 지어냈고, 지난해에는 막달레나라는 이름이 나왔습니다. 이 그림이 유명해진 방식이 그렇습니다. 답이 있어서가 아니라 빈자리가 있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