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메르 〈우유 따르는 여인〉 해석과 특징, 지워진 바구니와 잊힌 적 없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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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명: 우유 따르는 여인(Het melkmeisje / The Milkmaid)
• 작가: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1632~1675)
• 제작: 1660년경(레이크스미술관 소장품 표기, 블랑케르트·휠록·리트케·프래니츠 네 학자의 추정은 1657~1661년 사이)
• 재료: 캔버스에 유채
• 크기: 45.5×41cm
• 소장: 암스테르담 레이크스미술관(Rijksmuseum), SK-A-2344

창가 탁자에서 하녀가 붉은 주전자로 그릇에 우유를 따르는 베르메르의 우유 따르는 여인
요하네스 베르메르, 〈우유 따르는 여인〉, 1660년경(레이크스미술관 표기), 캔버스에 유채, 45.5×41cm, 암스테르담 레이크스미술관, SK-A-2344. 우유 줄기와 오른쪽 아래 바닥의 발난로를 보십시오.

부엌 창가에서 한 여인이 붉은 흙 주전자로 그릇에 우유를 따르고 있습니다. 레이크스미술관은 이 그림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녀가 일에 완전히 몰두해 우유를 따르고, 우유 줄기를 빼면 모든 것이 멈춰 있으며, 여인은 밝은 방 안에 조각상처럼 서 있다. 이 글은 이 장면을 소장 기관의 설명과 1995년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도록, 2022년 레이크스미술관의 조사 결과를 따라 읽습니다. 〈우유 따르는 여인〉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와 함께 베르메르의 그림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 꼽힙니다. 2017년 이 그림이 처음 루브르에 걸린 베르메르 전시는 첫날에만 9,000명이 찾아 기록을 세웠다고 네덜란드 공영방송 NOS는 전했습니다.

우유 따르는 여인 특징, 화면에서 보이는 것

빛은 화면 왼쪽 창에서 들어와 여인의 흰 두건과 이마, 걷어 올린 소매 아래 팔뚝에 떨어집니다. 여인은 한 손으로 주전자 손잡이를 쥐고 다른 손으로 몸통을 받쳐 기울기를 맞춥니다. 시선은 우유가 떨어지는 그릇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식탁에는 빵이 담긴 바구니와 흩어진 빵 조각, 푸른 무늬의 돌 주전자가 놓여 있고, 창 옆 벽에는 고리버들 바구니와 구리 들통이 걸려 있습니다. 걷어 올린 소매 아래 팔뚝은 희게, 손과 손목은 붉은빛으로 칠해져 있어 두 빛깔이 대비됩니다.

이 장면이 특별한 이유를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도록은 이렇게 짚습니다. 네덜란드 회화에서 하녀 한 사람에게만 시선을 모은 그림은 드물고, 부엌에서 혼자 일하는 우유 따르는 하녀는 네덜란드 미술에서 이 그림 말고는 찾아볼 수 없는 주제라는 것입니다. 도록의 해설을 쓴 아서 휠록은 이 여인이 네덜란드 미술의 어떤 인물도 따라올 수 없는 육체적·도덕적 존재감을 지녔다고 보았고, 그 존재감이 생명을 이어 주는 음식을 마련하는 일의 건전함에서 온다고 썼습니다.

그 존재감에는 보는 눈높이도 한몫합니다. 휠록은 같은 도록에서 이 방의 소실점이 낮은 수평선 위에 놓여 있고, 그 낮은 수평선이 하녀의 몸이 지닌 존재감을 키운다고 설명합니다. 보는 사람은 하녀를 올려다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유 따르는 여인, 앞치마의 파랑과 붉은 치마

여인은 거친 노란 상의를 입고 초록 소매를 걷어 올렸으며, 짙은 파란 앞치마 아래로 붉은 치마가 드러납니다. 식탁에도 파란 천이 걸쳐 있어, 노랑과 파랑이 화면의 중심을 이룹니다. 도록은 이 노란 상의를 값싼 섀미 가죽으로 만든 거친 바느질의 옷으로 보고, 이 여인이 부엌에 속한 사람이며 베르메르가 「서민」을 그린 유일한 그림이라고 설명합니다.


<우유를 따르는 여인>의 윗 부분을 확대하여 보여주는 이미지

부분: 창에서 들어온 빛과 벽에 걸린 바구니·구리 들통, 하녀의 두건.

노란 상의에는 당시 가장 밝은 노랑이던 납주석황이, 앞치마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난 청금석을 베네치아를 거쳐 들여와 만든 천연 울트라마린이 쓰였습니다. 17세기에 이 파란 안료는 금보다 귀했다고 마우리츠하위스는 적고, 베르메르는 흑백으로 먼저 명암을 잡은 위에 이것을 한두 겹 두껍게 덮어 앞치마의 깊은 광택을 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09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전시를 다룬 뉴욕타임스 평은 이 울트라마린이 하녀의 앞치마에 15세기 성모의 옷 같은 광채를 준다고 썼습니다.

도록은 치마 가장자리의 밝은 파랑이 그 아래에 깐 흰 물감 층의 밝기로 살아난다고 설명합니다. 베르메르가 쓴 값비싼 안료와 카메라 옵스큐라를 둘러싼 논쟁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생애와 작품에서 더 자세히 다뤘습니다.

우유 따르는 여인, 빛을 올린 붓질

식탁 위 빵과 바구니에는 작은 빛 알갱이가 점점이 흩어져 있습니다. 레이크스미술관은 수백 개의 색 점으로 만든 빛이 사물의 표면 위에서 움직인다고 설명합니다. 도록은 정물 부분을 투명한 덧칠과 문지르기, 두껍게 쌓은 물감을 섞어 질감을 냈다고 분석합니다. 창틀의 살과 여인의 흰 두건, 노란 상의의 세부는 아래 물감이 마르기 전에 위 물감을 올리는 방식으로 그렸습니다.

이 정밀한 빛 때문에 베르메르가 카메라 옵스큐라라는 광학 장치를 썼으리라는 이야기가 오래 이어졌습니다. 1781년 네덜란드를 여행한 조슈아 레이놀즈는 같은 기록에서 얀 판 데르 헤이던의 그림을 두고 카메라 옵스큐라로 본 자연 같다고 적었지만, 이 그림에는 한 그릇에서 다른 그릇으로 우유를 붓는 여인이라는 짧은 메모만 남겼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 장치를 썼다는 역사 기록은 없고, 1676년 유품 목록에도 장치나 렌즈는 적혀 있지 않으며, 종이에 그린 그의 소묘도 한 장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미술사학자는 그가 이 장치를 보조 도구로 썼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지만, 얼마나 기댔는지는 지금도 의견이 갈립니다.

여인의 실루엣을 또렷하게 하는 장치도 있습니다. 도록에 따르면 베르메르는 여인의 팔과 어깨를 따라 흰 윤곽선을 그어 그늘진 몸이 뒤의 밝은 벽에서 떨어져 보이게 했습니다. 벽에는 못이 박혔던 자리와 패인 자국이 보이고, 창유리 한 장은 깨져 있습니다. 도록은 이런 깨진 유리와 패인 맨벽을 이 방의 꾸밈없는 모습으로 읽습니다.

우유 따르는 여인 해석, 큐피드 타일과 발난로의 상징

벽과 바닥이 만나는 자리에는 델프트 타일이 붙어 있고, 그 가운데 하나에 활을 겨눈 큐피드가 그려져 있습니다. 바로 앞 바닥에는 숯을 담아 발을 데우는 나무 발난로가 놓여 있습니다.


<우유를 따르는 여인>의 아래 부분을 확대하여 보여주는 이미지

부분: 빵 바구니와 식탁, 바닥의 델프트 타일과 발난로.

휠록은 이 두 사물을 함께 읽습니다. 1614년 로머르 비스허르(Roemer Visscher)의 엠블럼 책에 실린 것처럼 발난로는 연인의 한결같음과 돌봄을 바라는 마음과 연결된 상징이었고, 바로 뒤의 큐피드 타일이 그 뜻을 강화한다는 것입니다. 발난로는 숯불의 온기가 치마 속으로 올라온다는 점 때문에 은근한 욕망과도 연결되었습니다. 같은 엠블럼 책은 발난로를 「여인들의 애인」이라 부르며, 겨울에 여자들은 발난로를 무엇보다 아끼고 남자는 잘해야 두 번째라고 노래합니다. 다만 휠록은 이 그림에서 두 사물이 낭만적인 사랑보다 하녀의 따뜻한 인간미와 자기 일에 대한 헌신을 가리킨다고 결론짓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네덜란드·플랑드르 회화를 맡았던 큐레이터 월터 리트케(1945~2015)는 달리 읽었습니다. 그는 발난로 옆의 큐피드 타일이 이 하녀를 「은근한 욕망의 대상」으로 보이게 한다고 보았고, 걷어 올린 소매 아래 드러난 팔뚝도 그 나름으로 매혹적이라고 썼습니다. 반대로 레이크스미술관 관장 타코 디비츠는 이런 큐피드 타일이 네덜란드 집 어디에나 있던 것이어서 큰 뜻이 없을 수도 있다고 보았습니다.

우유 따르는 여인의 모델은 누구인가

그림 속 하녀가 실제로 누구였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1663년 무렵 베르메르 가족과 같은 집에 타네커 에베르풀이라는 하녀가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 그림의 모델을 그와 잇는 추측이 오래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그가 모델이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문서는 없습니다. 레이크스미술관은 소장품 설명에서 그림 속 인물을 그저 「한 하녀」라고 적습니다. 관장 타코 디비츠도 미술관 팟캐스트에서 베르메르에게 하녀가 있었다는 것은 알지만 이 그림이 그 하녀라고까지 말할 용기는 없다며, 이 하녀에 대해서는 사실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우유 따르는 여인, 과학 조사가 찾아낸 지운 물건들

베르메르가 처음 그린 것을 지웠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습니다. 1995년 도록은 X선 사진에서 여인 뒤 벽에 걸려 있던 벽걸이, 아마도 지도를 지운 흔적을, 적외선 사진에서 오른쪽 아래 구석에 빨래 바구니를 그렸다가 지금의 바닥과 발난로, 타일로 바꾼 흔적을 보고했습니다.

2022년 9월 8일 레이크스미술관은 마우리츠하위스 등과 함께 매크로 X선 형광분석과 반사영상분광법, 단파적외선 영상으로 이 그림을 다시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 조사는 이듬해 열릴 대규모 베르메르전을 앞두고 이루어졌습니다. 렘브란트 〈야경〉 연구인 「나이트워치 작전」에 쓰였던 기법입니다. 새로 드러난 것은 셋입니다. 여인의 왼팔 아래에서 급히 그은 두꺼운 검은 물감 선이 나와, 베르메르가 세부를 다듬기 전에 먼저 빠르게 명암으로 장면을 잡았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여인 머리 뒤 벽에서는 손잡이 달린 나무판에 주전자 여러 개를 건 주전자 걸이를 스케치했다가 더 그리지 않은 흔적이 나왔습니다. 베르메르가 약 350년 전에 덮은 이 선이 이번에 처음 드러난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알려져 있던 오른쪽 아래의 바구니는 빨래 바구니가 아니라, 버드나무 줄기로 엮어 아기를 데우고 기저귀를 말리던 화로 바구니로 판정되었습니다.

레이크스미술관은 이 발견으로 베르메르가 아주 천천히, 처음부터 극도로 정밀하게 그렸다는 통념을 고쳐 보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디비츠는 주전자 걸이와 화로 바구니를 덮어 그린 덕분에 방이 더 고요해졌다고 설명했습니다. 베르메르 자신의 유품 목록에도 이런 화로 바구니가 있었다고 레이크스미술관은 덧붙입니다. 1676년 유품 목록에는 주전자를 거는 선반(kannebort)도 적혀 있어, 지운 두 물건 모두 그의 집에 실제로 있던 것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텅 빈 벽과 고요한 바닥은 처음부터 비어 있던 것이 아니라 덜어 낸 결과입니다.

우유 따르는 여인은 잊힌 적이 있었나

베르메르는 1675년 마흔셋으로 세상을 떠난 뒤 오래 잊혔다가 19세기에 다시 발견된 화가로 흔히 소개됩니다. 베르메르의 이름을 되찾아 준 사람은 프랑스 비평가 테오필 토레였습니다. 토레는 1842년 무렵 헤이그 미술관(지금의 마우리츠하위스)에서 〈델프트 풍경〉을 처음 보고 놀랐다고 회고합니다. 1848년 이후 정치적 이유로 프랑스를 떠나 영국·독일·벨기에·네덜란드를 옮겨 다니면서 그는 베르메르의 그림을 하나씩 찾아 나섰고, 「W. 뷔르거」라는 필명으로 글을 썼습니다. 1866년 그는 10년 전만 해도 베르메르가 프랑스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화가 전기와 회화사 책에도 이름이 빠져 있었다고 썼습니다. 그해 10월부터 12월까지 「가제트 데 보자르」에 세 차례 연재한 글에서 그는 베르메르 작품 목록을 처음으로 정리했고, 이 목록이 오늘날 베르메르 연구의 토대가 되었다고 평가됩니다. 토레는 남은 기록이 거의 없는 이 화가를 「나의 스핑크스」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이 그림 한 점만 놓고 보면 기록은 꽤 이어집니다. 레이크스미술관의 소장 이력에 따르면 그림은 델프트의 피터르 클라스 판 라위번과 그 사위 야코프 디시우스를 거쳤을 것으로 추정되고(레이크스미술관은 물음표를 붙여 적습니다), 1696년 5월 16일 암스테르담 디시우스 경매에 2번으로 나와 175길더에 팔렸습니다. 도록이 전하는 경매 목록의 문구는 「우유를 따르는 하녀, 뛰어나게 좋음」입니다.

1701년 경매에서는 320길더에 팔렸고, 1719년 경매 목록은 이 그림을 「이름난 우유 따르는 하녀, 델프트의 베르메르 작, 솜씨 좋음」으로 적었습니다. 그때 값은 126길더로 오히려 떨어졌습니다. 1781년에는 영국 화가 조슈아 레이놀즈가 암스테르담의 수집가 집에서 이 그림을 보고 기록을 남겼고, 1798년 경매에서는 「이 흉내 낼 수 없는 거장의 가장 아름다운 작품 가운데 하나」라는 소개와 함께 도록이 「아주 높은 값」이라고 부른 1,550길더에 팔렸습니다. 도록은 「이 작은 그림은 그 역사 내내 이름이 나 있었다」고 씁니다.

그림은 그 뒤 식스 가문에 들어갔고, 1908년 레이크스미술관이 렘브란트 협회의 지원을 받아 이 그림을 포함한 식스 컬렉션 39점을 한꺼번에 사들였습니다. 매입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도록에 따르면 미국의 J. P. 모건이 이 그림을 노린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논쟁은 의회까지 갔으며, 당시 만평은 「네덜란드에서 가장 예쁜 우유 아가씨」가 미국인 구혼자 엉클 샘을 거절하는 모습으로 그렸습니다.

2023년 2월부터 6월까지 레이크스미술관이 연 베르메르 전시에는 28점이 모였고, 전시 전체에 113개국에서 65만 명이 찾아와 이 미술관 역사상 가장 많은 관람객을 기록했습니다. 레이크스미술관은 지금 알려진 베르메르의 그림을 약 35점으로 봅니다. 화가가 연도를 적은 그림은 〈뚜쟁이〉, 〈지리학자〉, 〈천문학자〉 세 점뿐이고, 〈우유 따르는 여인〉에는 서명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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