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 천지창조를 검색하면 사진마다 보여 주는 것이 다릅니다. 어떤 사진은 예배당 천장을 통째로 펼쳐 놓고, 어떤 사진은 천장 한가운데 줄지어 선 그림 칸만 잘라 놓으며, 가장 흔한 사진은 손가락 두 개가 서로를 향해 뻗은 한 장면입니다. 같은 이름인데 가리키는 대상이 셋입니다.
셋만도 아닙니다. 하이든이 쓴 오라토리오의 한국어 제목도 〈천지창조〉이고, 성경의 창조 사건 자체를 가리키는 보통 명사로도 쓰입니다. 그래서 같은 말로 검색해 들어온 사람들이 서로 다른 것을 찾고 있게 됩니다. 이 글은 먼저 그 이름을 갈라 놓고, 그 다음에 가장 널리 알려진 한 장면을 확대해서 봅니다. 거기서 확인되는 것은 하나입니다. 두 손가락은 닿아 있지 않습니다.
이 글이 정리하는 것은 셋입니다. 첫째, 미켈란젤로에게 〈천지창조〉라는 제목의 작품은 없습니다. 한국어에서 이 말은 다섯 가지를 가리킵니다. 둘째, 〈아담의 창조〉에서 두 집게손가락은 닿아 있지 않고, 그것이 닿기 전인지 떨어진 뒤인지는 화면이 말해 주지 않습니다. 셋째, 천장 가운데 아홉 칸은 성경의 순서대로 놓여 있지 않습니다.
| 미켈란젤로,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 부분, 1508~1512, 프레스코, 바티칸 시스티나 예배당. 바닥에서 올려다본 화면이다. 위에서부터 〈원죄와 낙원 추방〉, 〈이브의 창조〉, 〈아담의 창조〉 세 칸이 잇달아 놓이고, 칸 사이 모서리마다 벌거벗은 젊은이가 둘씩 앉아 청동빛 원판을 붙들고 있다. |
천지창조라는 이름이 가리키는 것
먼저 답부터 적겠습니다. 미켈란젤로에게 〈천지창조〉라는 제목의 작품은 없습니다. 이 말은 한국어에서 여러 대상을 한데 묶어 부르는 이름이고, 실제 쓰임을 모아 보면 다섯 갈래로 갈립니다.
-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 전체
- 천장 한가운데 늘어선 창세기 아홉 칸만
- 그중 손가락이 나오는 〈아담의 창조〉 한 칸만
- 하이든이 쓴 오라토리오의 한국어 제목
- 성경의 창조 사건 자체를 가리키는 보통 명사
앞의 셋이 미켈란젤로 쪽 갈래이고, 뒤의 둘은 그림과 무관합니다. 그런데 이 다섯이 뒤섞인 채로 돌아다닙니다. 국내 매체 가운데는 천장 가운데 칸들을 가리켜 「아홉 폭의 천지창조」라고 못 박아 쓴 곳도 있습니다. 반면 이미지 검색이나 기념품에서 이 말이 붙는 것은 거의 언제나 손가락 장면 한 칸입니다.
그림 쪽만 떼어 놓으면 이름은 분명합니다. 천장 전체는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이라는 뜻 그대로 볼타 델라 카펠라 시스티나(Volta della Cappella Sistina)라 부르고, 영어로는 Ceiling of the Sistine Chapel입니다. 한가운데 아홉 칸은 가운데 이야기들이라는 뜻의 스토리에 첸트랄리(Storie centrali)인데, 이 아홉 칸만을 부르는 고유 제목은 따로 없습니다. 손가락 장면 한 칸은 크레아치오네 디 아다모(Creazione di Adamo), 영어로 The Creation of Adam입니다.
영어로 옮길 때 조심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The Creation이라고만 쓰면 하이든 오라토리오의 영어 제목과 같아집니다. 아홉 칸 전체를 말하려면 Stories of Genesis, 손가락 장면 하나면 The Creation of Adam이라고 적어야 갈리지 않습니다.
이 글은 천장 전체를 다루되, 화면을 확대해서 들여다보는 대목은 〈아담의 창조〉 한 칸입니다. 그 칸이 이 이름을 달고 가장 많이 유통되는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닿지 않은 두 손가락
![]() |
| 미켈란젤로, 〈아담의 창조〉, 1510, 프레스코, 280×570cm, 바티칸 시스티나 예배당. 두 집게손가락은 닿아 있지 않다. 아담의 손목은 아래로 꺾여 늘어졌고 팔은 세운 무릎에 얹혀 있는데, 하느님의 팔은 허공에서 혼자 뻗어 있다. 아담 쪽에는 아담 하나뿐이고 나머지 사람은 전부 하느님을 감싼 천 안에 있다. |
두 손가락은 닿아 있지 않습니다. 가로 3천 화소가 넘는 도판에서 손 부분만 잘라 크게 키워 보면, 아담의 집게손가락 끝과 하느님의 집게손가락 끝 사이에 회벽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간격은 손가락 끝 굵기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조금 좁습니다.
그 틈에는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습니다. 빛도 없고 불꽃도 없습니다. 회벽 바탕과 그 위를 지나가는 가는 균열망뿐입니다. 프레스코는 회벽이 마르기 전에 물감을 올려 벽과 한 몸이 되게 하는 기법인데, 오백 년이 지난 표면에는 잔금이 그물처럼 퍼져 있고 굵은 금 두어 줄이 배경을 가로지릅니다. 두 손 사이 구역도 그 금이 지나갑니다.
더 볼 것은 두 손의 상태가 정반대라는 점입니다. 아담의 손은 힘이 빠져 있습니다. 손목이 아래로 꺾여 늘어졌고, 집게손가락은 펴져 있기는 하나 곧게 서지 못하고 처졌습니다. 나머지 손가락들은 구부러진 채 늘어져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그 팔은 스스로 들려 있는 것이 아니라 세운 무릎 위에 얹혀 지탱되고 있습니다. 무릎이 없으면 팔이 그 높이에 머물 수 없는 자세입니다.
하느님의 손은 정반대입니다. 손목부터 손가락 끝까지 곧게 뻗어 팽팽하고, 집게손가락이 단단하게 앞으로 내밀려 있습니다. 나머지 손가락은 아래로 굽었습니다. 그 팔은 받쳐 주는 것 없이 허공에서 혼자 뻗어 있습니다.
높이도 어긋나 있습니다. 하느님의 손가락 끝이 아담의 손가락 끝보다 약간 위에 있고, 아래쪽을 향해 겨눕니다. 두 손가락은 같은 직선 위에 놓여 있지 않습니다. 마주 보는 두 점이 아니라, 한쪽이 다른 쪽을 내려다보며 겨누는 배치입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면 화면이 말하지 않은 것을 말하게 됩니다. 흔히 이 장면을 아직 닿지 않은 순간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화면에는 시간의 앞뒤를 정할 단서가 없습니다. 아담의 팔에 힘이 빠져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그가 아직 생기를 받지 못한 것인지, 방금 받고 손을 거두는 중인지 갈리지 않습니다. 둘 다 이 자세와 어긋나지 않습니다. 그림은 둘 중 어느 쪽도 가리키지 않습니다.
확인되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두 손가락 사이에 빈 자리가 있고, 그 빈 자리에는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습니다.
붉은 천 안의 사람들
손에서 눈을 떼고 화면 오른쪽으로 옮기면 사람이 많습니다. 하느님을 감싼 붉은 천 안에 하느님 말고도 최소한 열한 명이 들어 있습니다. 몸이 겹치고 천에 잘려서 정확히 몇 명인지는 세지 못했습니다.
천부터 보겠습니다. 단일한 빨강이 아닙니다. 어두운 적갈색에서 자줏빛에 걸쳐 있고, 가장자리로 갈수록 밝아집니다. 모양은 사람들을 감싸 안은 닫힌 껍질에 가깝습니다. 위쪽이 넓고 오른쪽 아래가 안으로 말려 들어가며, 오른쪽으로 긴 자락이 빠져나가 아래로 흘러내립니다.
천 안에서 분간되는 인물들은 이렇습니다. 하느님의 왼쪽 어깨 밑에 곱슬머리 어린아이가 아래를 보고 있고, 위쪽 가운데에는 그늘에 거의 묻힌 얼굴 하나와 옆얼굴을 보이는 금발 젊은이가 있습니다. 아래 가운데에서는 금발 곱슬머리 하나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이 인물의 몸이 하느님을 아래에서 떠받치는 덩어리를 이룹니다. 오른쪽 아래로는 맨 다리와 등이 더 보이지만 얼굴은 가려져 있습니다.
이 무리에서 시선이 가장 또렷한 인물은 하느님의 왼팔 아래에 있는 금발 여성입니다. 눈을 크게 뜨고 화면 밖 아담 쪽을 똑바로 봅니다. 천 안의 다른 얼굴들이 고개를 숙이거나 옆을 보거나 그늘에 묻혀 있는 사이, 이 얼굴 하나가 아담이 있는 방향으로 정면을 향합니다.
오른쪽 끝에는 아기가 하나 있습니다. 하느님의 왼팔이 이 아이를 감싸고 있고, 왼손 손가락이 아이 어깨 위에 놓여 있습니다. 오른팔은 아담 쪽으로 뻗어 있고 왼팔은 아이를 안고 있는 셈입니다. 한 인물의 두 팔이 서로 다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색으로 한 군데가 더 눈에 띕니다. 아래쪽 인물 하나가 초록 천을 걸쳤고 그것이 붉은 천 밖으로 길게 흘러내립니다. 붉은 천 안에서 초록을 걸친 사람은 이 하나뿐이고, 그 자락만 천 밖으로 나와 있습니다. 붉은 천과 살빛 사이에서 그 한 줄기만 다른 색입니다.
다만 이들이 누구인지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이 장면에 붙은 공식 설명은 날아오르는 천사들이 하느님을 떠받치고 있다는 정도이고, 개별 인물의 이름을 적어 놓은 기록을 찾지 못했습니다. 여성 인물을 두고 이브라는 이야기가 널리 돌지만 그 동정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화면에서 확인되는 것은 그가 거기 있고 아담 쪽을 본다는 사실까지입니다.
이제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대비가 분명해집니다. 아담 쪽에는 아담 한 사람뿐입니다. 화면 절반에 다른 인물이 없습니다. 아담은 비스듬히 누워 오른팔을 몸 아래로 접어 상체를 받치고, 왼쪽 무릎을 세워 그 위에 왼팔을 얹었습니다. 스스로 일어난 자세가 아니라 아직 땅에 붙어 있는 자세입니다. 입은 조금 벌어져 있고 시선은 하느님 쪽을 향합니다.
아담이 누운 자리는 풀빛이 도는 갈색 비탈이고, 그 뒤로 푸른 잿빛 덩어리가 있는데 바위인지 하늘인지 화면에서는 갈리지 않습니다. 배경은 거의 비어 있습니다. 나무도 건물도 없습니다. 한쪽에는 사람이 열 명 넘게 뭉쳐 있고 다른 쪽에는 한 사람이 빈 비탈에 누워 있습니다. 두 손가락 사이의 틈은 그 두 덩어리 사이에 있습니다.
아홉 장면이 놓인 순서
|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 배치 도해. 작성 TTaylor, CC BY 2.5. 그림 오른쪽 끝이 제단 벽, 왼쪽 끝이 입구 벽이다. 가운데 가로줄이 창세기 아홉 칸이고 그 위아래로 예언자와 무녀가 번갈아 앉으며, 짧은 두 벽에 요나와 즈카르야가 있다. 이야기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히는데, 그린 사람은 왼쪽부터 그렸다. |
천장 가운데 칸들은 성경 순서대로 늘어서 있지 않습니다.
먼저 읽는 방향을 정해야 합니다. 아홉 칸은 제단 벽에서 시작해 입구 벽 쪽으로 읽습니다. 세 칸씩 세 묶음이고, 각각 우주의 기원과 인간의 기원과 악의 기원을 다룹니다. 〈아담의 창조〉는 가운데 묶음의 첫 칸이니 아홉 칸 중 넷째입니다.
어긋나는 곳은 마지막 묶음입니다. 노아 이야기 세 칸 가운데 제단 쪽에 노아의 번제가 있고, 그 다음 칸이 대홍수입니다. 성경에서는 홍수가 먼저이고 번제는 물이 빠진 뒤의 일입니다. 천장에서는 그 둘이 뒤집혀 있습니다.
![]() |
| 미켈란젤로, 〈대홍수〉 부분, 1508~1509, 프레스코, 바티칸 시스티나 예배당. 오른쪽 뒤에 나무 상자 모양의 방주가 있고 그 옆구리에 사람들이 달라붙어 있다. 그 앞 물 위에 둥근 배 한 척이 떠 있고, 가운데는 짐과 식구를 이고 언덕으로 올라가는 무리다. |
왜 뒤집어 놓았는지에 대한 설명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화가가 남긴 말도, 예배당을 관리하는 쪽의 해설도 이 대목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확인되는 것은 배치가 그렇다는 사실뿐입니다. 그러니 아홉 칸을 성경 순서라고 소개하는 설명을 보면 한 번 걸러서 들으시면 됩니다.
순서와 관련해 하나가 더 있습니다. 그린 순서가 읽는 순서와 반대입니다. 이야기는 제단에서 입구로 읽히는데, 화가는 입구 쪽에서 시작해 제단 쪽으로 그려 나갔습니다. 1510년 8월에 절반을 끝냈는데 그 절반이 입구 벽에서 〈이브의 창조〉까지였습니다. 즉 그는 이야기의 끝에서 시작해 처음을 향해 거슬러 올라간 셈입니다.
칸의 크기도 같지 않습니다. 큰 칸과 작은 칸이 번갈아 나옵니다. 작은 칸은 원래부터 작게 설계된 것이 아니라, 네 귀퉁이에 벌거벗은 젊은이들(이뉴디)이 앉아 화면을 눌러 좁힌 결과입니다. 〈아담의 창조〉는 그 젊은이들에게 눌리지 않은 큰 칸 쪽입니다. 천장 사진을 보실 때 칸의 크기가 들쭉날쭉해 보인다면 그 때문입니다.
천장의 크기와 위치
바티칸 시국 안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입니다. 주소로는 로마 안에 있지만 이탈리아가 아니라 바티칸 시국에 속합니다.
크기는 이렇습니다. 예배당 내부는 길이 40.23m, 너비 13.41m이고, 천장 꼭대기까지의 높이가 20.70m입니다. 긴 두 벽에 창이 여섯 개씩 나 있습니다. 천장에 그림이 올라간 면적은 약 750㎡입니다. 이 값들은 예배당을 관리하는 박물관이 자체 간행물에 적어 둔 수치입니다. 인터넷에는 이와 다른 숫자도 함께 돌아다니는데, 기관이 내놓은 값은 위의 것입니다.
숫자보다 먼저 감이 오는 것은 높이입니다. 20.70m를 올려다보는 자리에서 그림을 보게 된다는 뜻입니다. 앞 절에서 본 손가락 사이의 빈틈은 사진으로는 크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높이 위에 있습니다.
이 건물의 내력도 짧게 정리해 두겠습니다. 예배당 이름은 교황 식스토 4세에게서 왔습니다. 그가 1477년부터 1480년 사이에 옛 대예배당을 고쳐 지었고, 1483년 8월 15일에 봉헌했습니다. 벽면의 15세기 그림들은 페루지노와 보티첼리, 기를란다요, 코시모 로셀리를 비롯한 화가들이 나누어 그렸습니다. 이들 가운데 기를란다요의 그림은 상징으로 가득한 기를란다요의 최후의 만찬에 따로 적어 두었습니다.
그때 천장에 있던 것은 미켈란젤로의 그림이 아니었습니다. 피에르 마테오 다멜리아가 그린 별이 박힌 하늘이었습니다. 파란 바탕에 별을 뿌린 천장이 먼저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걷어 내게 된 계기는 건물 쪽에 있었습니다. 1504년 5월에 천장에 긴 금이 갔고, 당시 궁 건축을 맡고 있던 브라만테가 예배당 위쪽에 쇠막대를 넣어 묶었습니다. 그럼에도 옛 그림이 입은 손상이 컸고, 그것이 천장을 새로 그리게 한 이유로 설명됩니다. 같은 시기 바티칸 안에서는 라파엘로도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그린 그림은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이 시기 전체의 흐름은 르네상스 미술 총정리에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연도 하나를 바로잡겠습니다. 흔히 이 천장화의 복원 기간을 1980년부터 1994년까지로 적고 12년 만에 다시 공개됐다고 쓰는데, 그 기간은 천장만이 아니라 벽 윗단의 반달꼴 칸과 제단 벽까지 차례로 손본 전체 일정입니다. 천장 프레스코만 떼어 보면 1984년 11월 7일에 시작해 1989년 12월 31일에 끝났습니다. 1994년 4월은 제단 벽의 〈최후의 심판〉 쪽 작업까지 마쳤다고 알린 시점이고, 예배당 전체 복원의 마무리 행사는 1999년 12월에 있었습니다.
미켈란젤로 천장화 보는 법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천지창조라는 말은 다섯 가지를 가리키므로 무엇을 보고 있는지부터 정해야 하고, 천장 가운데 아홉 칸은 제단에서 입구로 읽히되 그린 사람은 반대 방향으로 그렸으며, 그 칸들은 성경 순서대로 놓여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장 널리 알려진 한 칸에서 두 손가락은 닿아 있지 않습니다.
다음에 이 그림을 다시 보시게 되면 세 가지를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째, 두 손가락 사이의 빈 자리입니다. 거기에는 빛도 불꽃도 없고 회벽만 있습니다. 둘째, 두 팔이 무엇으로 지탱되는지입니다. 한쪽은 무릎에 얹혀 있고 다른 쪽은 허공에 혼자 있습니다. 셋째, 사람이 어디에 몰려 있는지입니다. 붉은 천 안에는 열 명이 넘고 맞은편에는 한 사람뿐입니다.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고 천장 일이 그의 생애에서 어디쯤에 놓이는지는 미켈란젤로, 자신을 화가로 부르지 않은 사람에 적어 두었습니다.
이 천장에는 아직 이름을 부르지 않은 것이 많습니다. 옥좌에 앉은 예언자와 무녀들, 창 위 반달꼴 면에 그려진 사람들, 네 귀퉁이의 장면들이 그렇습니다. 다만 그 목록을 외우는 것이 이 그림을 보는 일은 아닙니다. 손가락 사이의 빈 자리 하나만 제대로 보아도 화면은 달라집니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