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 1841~1895)
• 작품명: 요람(Le Berceau)
• 제작: 1872년
• 재료: 캔버스에 유화
• 크기: 56 × 46.5cm
• 소장: 파리 오르세 미술관
• 비고: 1874년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 출품, 당시 미판매, 1930년 프랑스 국가 매입, 1986년 오르세 이관
한 사람의 얼굴에는 눈꺼풀과 콧날과 입술이 있고, 다른 한 사람의 얼굴에는 붉은 점 두어 개밖에 없습니다. 베르트 모리조의 〈요람〉(1872)에서 어머니와 아기는 팔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습니다. 그런데 화가는 두 사람을 같은 손으로 그리지 않았습니다.
두 얼굴 사이를 지나가는 것은 요람에 드리운 얇은 튈 천 하나입니다. 이 그림에서 베일은 모성이나 보호를 뜻하는 상징이기 전에, 화가가 붓을 바꾸는 자리입니다.
한 얼굴에만 눈과 입이 있습니다
여인의 얼굴부터 봅니다. 눈꺼풀의 두께, 콧날의 선, 다문 입술, 귀의 윤곽까지 또렷합니다. 목에는 검은 벨벳 리본이 감겨 있고 그 아래로 흰 레이스가 보입니다. 여기까지는 초상화의 손길입니다.
| 베르트 모리조, 〈요람〉, 1872년, 캔버스에 유화, 56 × 46.5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품 번호 RF 2849. 여인의 얼굴과 아기의 얼굴을 번갈아 보면 붓질의 촘촘함이 다릅니다. |
이제 오른쪽 아래의 아기 얼굴로 눈을 옮겨 봅니다. 이목구비가 거의 없습니다. 볼에 찍힌 붉은 점 두어 개, 눈과 입이 있어야 할 자리의 흐릿한 그림자, 그것이 전부입니다. 머리에는 리본 매듭이 하나 얹혀 있고 몸은 흰 옷에 싸여 있는데, 그 흰 옷은 침구와 잘 구분되지 않습니다.
차이는 형태의 또렷함에서 그치지 않고 붓 자체가 다릅니다. 어머니 쪽에서는 붓이 얼굴의 굴곡을 따라 짧게 움직이며 물감을 얇게 문질러 놓았습니다. 뺨에서 턱으로 넘어가는 면이 부드럽게 이어지고, 눈과 입은 가는 붓으로 한 번 더 눌러 놓았습니다.
아기 쪽에서는 붓이 얼굴을 무시하고 지나갑니다. 넓은 붓이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길게 끌린 자국이 아기의 이마와 볼 위를 그대로 가로지릅니다. 천의 결을 그리던 붓이 방향도 속도도 바꾸지 않고 얼굴 위로 그대로 넘어옵니다. 아기의 흰 옷과 침구가 잘 구분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그러니까 이 화면에서 베일은 인물 사이에 놓인 소품이 아니라 화가의 손이 바뀌는 지점입니다. 천 앞은 초상화이고, 천 뒤는 빛과 천을 그리던 붓이 그대로 이어진 자리입니다.
오른손은 베일을 젖히고, 왼팔은 뺨을 괸다
여인의 두 손은 서로 다른 일을 하고 있습니다. 화면 왼쪽 아래, 요람 테두리 위에 얹힌 손이 오른손입니다. 손가락은 움켜쥐지 않고 느슨하게 펴진 채 튈 자락을 살짝 젖히고 있습니다. 손가락 바로 옆으로는 분홍색 리본이 흘러내리는데, 흰색이 지배하는 이 화면에서 유일하게 따뜻한 색입니다.
반대편 왼팔은 굽혀 올려 뺨을 괴고 있습니다. 요람 안을 다시 보면 잠든 아기의 머리 옆에도 굽은 형태가 하나 놓여 있습니다. 다만 윤곽이 흐려서 그것이 팔인지는 화면에서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확실한 것은 그 형태가 여인의 굽은 팔과 같은 사선 위에 앉는다는 사실입니다.
이 두 손의 역할 분담이 그림의 성격을 정합니다. 한 손은 아기 쪽으로 다가가 천을 열고, 다른 팔은 자기 얼굴로 돌아와 몸을 받칩니다. 다가감과 물러남이 한 사람 안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같은 시기 카사트나 르누아르가 어머니와 아이를 살이 맞닿을 만큼 붙여 그린 것과 비교하면, 모리조가 택한 거리가 분명해집니다.
모리조 요람, 시선과 천의 사선이 엇갈리는 자리
이 화면을 조직하는 것은 수직선이 아니라 사선입니다. 요람의 천이 오른쪽 위 고리에서 왼쪽 아래로 쏟아지고, 뒤쪽 커튼도 같은 방향으로 흐릅니다. 여기에 여인의 시선이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의 아기 얼굴로 내려갑니다. 천의 방향과 엇갈리는 또 하나의 사선이 여기서 생깁니다. 여인의 굽은 팔과 아기 곁의 굽은 형태도 이 사선 위에 놓입니다.
| 요람의 천과 여인의 시선이 만드는 사선이 화면에서 만나 하나의 덩어리를 이룹니다. |
이 사선들이 만나 어머니와 아기를 하나의 큰 삼각 덩어리로 묶습니다. 위쪽 꼭짓점은 요람의 천이 매달린 고리이고, 아래 두 모서리는 여인의 어깨와 요람의 끝입니다. 흩어질 수 있는 요소들이 이 덩어리 안에서 한 묶음으로 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색의 배치도 이 구조를 돕습니다. 왼쪽 배경은 푸른 기가 도는 흰 커튼이어서 여인의 청회색 줄무늬 옷과 목의 검은 리본이 또렷하게 떠오릅니다. 반대로 오른쪽 위는 갈색에 가까운 어두운 공간이고, 그 어둠 덕분에 얇은 거즈가 스스로 빛을 내는 것처럼 보입니다. 흰색만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는 화면이 실은 두 종류의 배경 위에서 계산된 것입니다.
베르트 모리조, 1874년 서른 명 가운데 한 사람
1874년 4월 15일, 파리 카퓌신 대로에 있던 사진가 나다르의 옛 작업실에서 전시회 하나가 문을 열었습니다. 살롱의 심사를 거치지 않고 화가들이 직접 기획한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였고, 서른 명 남짓이 참가했습니다. 〈요람〉은 이 자리에 걸렸습니다.
이 전시의 참가자 명단에서 여성은 베르트 모리조 한 사람이었습니다. 개인의 사정 때문만은 아닙니다. 프랑스의 국립 미술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가 여학생을 받기 시작한 것은 1897년입니다. 그때 모리조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습니다. 정규 교육 과정이 닫혀 있었으므로 여성 화가는 개인 교습과 화가들의 작업실을 통해 배워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모리조가 공식 무대 바깥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1864년부터 관전인 살롱에 작품을 냈고 여러 해 입선했습니다. 살롱에 들어갈 수 있었던 화가가 심사도 상도 없는 새 전시에 합류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1874년의 선택은 배제의 결과가 아니라 스스로 내린 결정에 가깝습니다.
〈요람〉은 이 전시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모리조의 그림에 쏟아진 평가가 어떤 성격이었는지는 2년 뒤에 더 분명해집니다. 1876년 4월 3일 르 피가로에 실린 알베르 볼프의 글은 인상주의 화가들을 조롱하면서 모리조를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여성의 우아함이 착란한 정신의 범람 한가운데서 유지된다.” 작품이 아니라 성별을 먼저 보는 문장입니다. 이 글을 읽은 모리조의 남편 외젠 마네가 볼프에게 결투를 신청하려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모리조는 언니를 어떻게 앉혔는가
화가는 언니를 아기를 안은 자세로 앉히지 않았습니다. 에드마는 요람 밖에 앉아 한 손으로 천을 들추고 다른 팔로는 자기 뺨을 받칩니다. 아이 쪽으로 몸을 기울이지 않은 자세입니다. 같은 시기의 화가들은 어머니와 아이를 껴안은 자세로 그렸습니다. 모리조는 두 사람 사이에 앉을 자리와 천 한 겹을 남겨 두었습니다.
요람 곁에 앉은 이 여인은 화가의 언니 에드마이고, 잠든 아기는 에드마의 딸 블랑슈입니다. 에드마도 화가였지만 결혼한 뒤로는 작품을 내지 않았습니다. 〈요람〉은 그 이후의 에드마를 그린 그림입니다. 베르트는 계속 그렸고, 언니는 그리는 쪽이 아니라 그려지는 쪽에 앉아 있습니다. 두 자매가 함께 배우고 함께 살롱에 냈던 시절은 베르트 모리조의 생애를 다룬 글에서 따로 다뤘습니다.
모리조 요람이 국가 소장품이 되기까지
〈요람〉은 팔리지 않았습니다. 모리조는 이 그림을 파는 데 성공하지 못했고 이후 전시에 내는 것도 그만두었습니다. 그림은 모델의 집안에 남았습니다.
그다음이 이 작품의 이력에서 가장 특이한 대목입니다. 이 그림을 오래 소유한 사람은 요람 안에 잠들어 있던 그 아기였습니다. 블랑슈 퐁티용은 자라서 결혼했습니다. 1930년 프랑스 국가가 루브르 박물관을 위해 이 그림을 사들일 때의 소장자가 바로 그였습니다. 그림 속에서 얼굴도 제대로 그려지지 않은 채 잠들어 있던 아이가, 반세기 뒤에 그 그림을 국가에 넘긴 당사자가 된 것입니다.
이후 그림은 1947년부터 1986년까지 튈르리 정원의 죄드폼에 걸려 있었습니다. 인상주의 컬렉션이 새 미술관으로 옮겨 가면서 오르세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작은 도판에서는 이 화면이 흰색 하나로 보입니다. 크게 확대해 보면 그 흰색이 푸른 기와 회색과 옅은 노란 기가 겹쳐진 얇은 층이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아기의 얼굴을 흐리게 남긴 손과 그 흰색을 여러 겹으로 나눈 손은 같은 손입니다.
베르트 모리조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시다면 아래 글을 함께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