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성화묵상] 틴토레토의 '세족식' "예수님이 왜 구석에 그려졌을까?"
고난주간을 맞아 독특한 구도를 가진 성화 한 점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화파의 거장, 틴토레토의 <세족식>입니다.
틴토레토(Jacopo Tintoretto, 1518~1594)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베네치아 화파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그의 본명은 자코포 로부스티이지만, 아버지의 직업이 염색공(tintore)이었기 때문에 ‘작은 염색공’이란 뜻의 ‘틴토레토’라는 별명으로 더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강렬한 명암 대비, 역동적인 구도, 그리고 빠른 붓질로 유명하여, "일 푸리오소(il Furioso, 격렬한 자)"라는 별명도 얻었습니다.
<세족식>은 신약성경 요한복음 13장에 근거하여 최후의 만찬 중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당시 손님의 발을 씻기는 일은 가장 신분이 낮은 하인이 하는 일이었기에, 스승인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것은 매우 충격적인 행동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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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세족식> 1548-49년, 210x533cm,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
이 작품의 구도 역시 충격적입니다. 주인공인 예수께서 중앙이 아닌 오른쪽 구석에 작게 위치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화폭의 중앙에는 강아지 한 마리가 편안하게 누워있네요. 틴토레토가 이렇게 독특한 구도로 그림을 그린 이유는 이 그림이 걸릴 성당의 특이한 건축 구조와 관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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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마르쿠올라 성당 내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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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측면에 위치한 출입구 |
이 작품은 베네치아의 산 마르쿠올라 성당(산 마르코 성당이 아님) 제단화로 의뢰되었습니다. 이 성당은 특이하게도 정면이 아닌 건물 측면에 주 출입구가 있습니다. 틴토레토는 성당에 들어서는 신자들이 제단 오른쪽 벽을 가장 먼저 보게 될 것을 계산했습니다. 그래서 그림 오른쪽 구석에 예수님을 배치하여,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 가장 먼저 예수님의 모습을 마주하도록 연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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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그림이 걸려 있던 위치(현재는 복제품 전시) |
현재 원본 <세족식>은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17세기 영국 찰스 1세에게 팔린 후 여러 소장가를 거쳐 프라도 미술관에 오게 되었습니다. 현재 성당에는 카를로 리돌피가 제작한 복제품이 걸려 있습니다. 참고로 제단 왼쪽 벽에는 틴토레토의 또 다른 걸작 <최후의 만찬>이 걸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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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단 왼쪽에 걸린 틴토레토의 <최후의 만찬> |
그림의 배경은 당시 베네치아 건축 양식을 반영하여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줍니다. 깊은 원근법이 강조된 가운데, 제자들은 믿음, 놀라움, 혼란 등 복합적인 감정을 보입니다.
예수님은 겉옷을 벗은 채 자세를 낮추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며 겸손과 섬김, 사랑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계십니다. 예수님 앞에 앉은 사람은 베드로입니다. 처음에는 스승이 자신의 발을 씻기는 것을 극구 사양했지만, 이내 한 발을 대야에 넣으며 순종하고 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신발을 벗는 등 분주한 모습입니다.
이 작품의 배경을 알고 나니 언젠가 산 마르쿠올라 성당을 직접 방문해서,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예수님과 마주하는 경험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드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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