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스케스 '바쿠스의 승리', 400년 전 '퇴근 후 한잔'이 건네는 위로
혹시 고된 하루 끝에 친구와 나누는 술 한 잔에서 진정한 위로를 받아본 적 없으신가요? 벨라스케스의 <바쿠스의 승리>는 단순히 술의 신을 그린 신화화가 아닙니다. 이 그림은 잠시나마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을 수 있는, 평범한 우리 모두를 위한 '해방의 순간'을 담고 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화가들이 신화를 이상적이고 영웅적인 세계로 그릴 때, 벨라스케스는 과감히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신을 하늘에서 끌어내려 우리와 같은 땅을 밟는 인간의 옆자리에 앉혔고, 그 속에서 신화와 현실의 경계를 부드럽게 허물었습니다. 이 작품은 벨라스케스가 “가장 인간적인 신화”를 완성한 첫걸음이자, 왕실조차 놀라게 한 문제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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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쿠스의 승리 Los Borrachos>,165x225cm, 1628-1629년, 프라도 미술관 |
신과 인간이 같은 눈높이로 만나는 순간
그림의 중심엔 젊은 바쿠스가 앉아 있습니다. 그는 신답게 이상화된 창백한 피부와 부드러운 빛을 받고 있지만, 얼굴에는 위엄 대신 따뜻하고 장난기 어린 미소가 떠 있죠. 그의 주위엔 세비야의 농부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둥글게 모여, 포도주 잔을 들고 즐겁게 웃고 있습니다. 그들의 거친 옷, 햇볕에 그을리고 주름진 얼굴은 카라바조풍의 극사실주의를 연상시키지만, 그 표정엔 억압된 삶에서 해방된 인간 본연의 기쁨이 가득합니다.
벨라스케스는 여기서 놀라운 결단을 내립니다. 그는 신을 경배의 대상으로 멀리 두지 않고, 우리 옆에 앉은 친구처럼 동등한 눈높이로 표현했습니다. 이 순간, 신화는 더 이상 성스럽고 고결한 교훈이 아니라, 인간의 땀과 웃음이 섞인 삶의 이야기로 내려옵니다.
“신은 인간 위에 군림하지 않고, 인간의 옆에 앉아 있다.” 이 한 문장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입니다.
빛의 연출: 신성(神性)을 넘어 인간적인 온기로
이 그림의 진정한 매력은 빛의 사용법에 있습니다. 왼쪽의 바쿠스는 부드러운 빛에 감싸여 신화적 존재임을 드러내지만, 오른쪽 농민들은 어두운 배경 속에서도 각자의 개성과 표정이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이는 강렬한 명암으로 극적인 순간을 포착했던 카라바조의 테네브리즘(Tenebrism)을 연상시키지만, 그 목적은 완전히 다릅니다. 카라바조가 빛을 통해 죄와 구원의 종교적 드라마를 그렸다면, 벨라스케스는 이해와 연민의 시선으로 인물을 비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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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라바조의 바쿠스, 95 x 85cm, 1596년경, 우피치 미술관 |
그림 속 빛은 신의 광채가 아니라, 고단한 인간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위로의 빛입니다. 그늘 속에서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음 짓게 만드는 이 온화한 조명이, 그림 속 인물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줍니다.
더 알아보기: '바쿠스의 승리'에 대한 세 가지 궁금증
Q1. 왜 하필 '바쿠스'를 그렸을까요?
A: 17세기 스페인에서 와인은 단순한 술이 아닌, 일상의 고단함을 잊게 해주는 중요한 매개체였습니다. 벨라스케스는 가장 인간적인 욕망과 해방을 상징하는 신 바쿠스를 통해, 고전 신화를 당대 서민들의 삶과 연결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이는 고전 신화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을 왕실에 증명해 보일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Q2. 벨라스케스는 왜 이렇게 '사실적인' 그림에 집착했나요?
A: 벨라스케스의 초기 화풍은 그의 스승 프란시스코 파체코의 영향 아래, 세비야의 일상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리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여기에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의 극적인 명암법과 사실주의가 더해져 그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이 확립되었습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진실(Verdad)'을 그리는 것이 화가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 믿었습니다.
Q3. 이 그림, 지금 어디 가면 볼 수 있나요?
A: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Museo Nacional del Prado)에 소장되어 있으며, 미술관의 핵심 소장품 중 하나입니다. 만약 방문하신다면, 이 작품 앞에서 최소 10분 정도 머무르며 그림 속 인물들과 눈을 맞춰보세요. 특히 관객을 바라보는 바쿠스의 미소와, 그 옆 농부의 익살스러운 표정을 비교하며 감상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왕실이 놀라워한 이유: 정직함이라는 새로운 미학
이 작품이 완성됐을 때, 스페인 궁정은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당시 궁정의 미적 기준은 루벤스로 대표되는 플랑드르 바로크의 화려하고 역동적인 신화화였습니다. 그런데 벨라스케스는 신이 허름한 옷차림의 농민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는, 당시로서는 신성모독에 가까운 장면을 너무나 현실적으로 그려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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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벤스의 바쿠스,191 x 161.3cm, 1638-1640년경, 에르미타시 미술관 |
하지만 젊은 국왕 펠리페 4세의 눈은 달랐습니다. 그는 이 그림의 ‘불경함’이 아닌, 그 안에 담긴 ‘진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젊은 화가의 눈에는 진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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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펠리페 4세의 초상, 201x102cm, 1623-1628년경, 프라도 미술관 |
이 한마디로 벨라스케스는 궁정 화가로서의 입지를 굳힙니다. 이후 루벤스를 직접 만나 조언을 듣고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나며 본격적인 예술적 비상을 시작하죠. 그 위대한 여정의 출발점이 바로 이 한 장의 ‘술자리 신화’였습니다.
‘바쿠스의 승리’라는 제목의 반전
흥미롭게도 이 작품은 원래 ‘술 취한 사람들(Los Borrachos)’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바쿠스의 승리’는 후대의 미술사가들이 붙인 제목이죠.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승리”는 전쟁의 승리나 신의 영광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삶의 고단함을 잠시나마 웃음으로 이겨내는 ‘인간 정신의 승리’입니다.
결국 이 작품은 신이 인간을 구원하는 장엄한 서사가 아니라, 인간이 술 한 잔의 위로를 통해 스스로 존엄을 회복하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이 벨라스케스가 포착한 진짜 ‘승리’의 의미였던 것입니다.
결론 : 신의 승리가 아닌, 인간의 존엄을 위한 찬가
프라도 미술관이 이 작품을 “신화의 인간화(humanización del mito)”의 출발점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벨라스케스는 이 그림을 통해 신화를 현실의 땅으로 끌어내렸고, 이후 〈벌칸의 대장간〉, 〈직조하는 여인들〉을 거쳐 궁극의 걸작 〈시녀들〉에 이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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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칸의 대장간, 223x290cm, 1630년, 1630년 |
결국 <바쿠스의 승리>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단순합니다. 신성은 저 멀리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서 함께 웃고, 같은 잔을 부딪치며, “괜찮다, 너의 삶 자체로도 충분히 신성하다”고 말해주는 공감과 위로 속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400년 전 그림 속 웃음이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따뜻한 위안을 주는 이유입니다.
|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그림 속 자화상 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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