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흰 수염의 노인이 정면으로 이쪽을 봅니다. 베네치아 화가 야코포 틴토레토가 일흔 가까운 나이에 그린 〈자화상〉입니다. 몸을 비틀지도, 손을 들지도 않고 얼굴 하나만 내놓은 이 그림은 무엇을 보여 주려 했을까요? 먼저 이 얼굴 하나를 차례로 살펴본 뒤, 마흔 해 전에 그린 젊은 날의 자화상과 나란히 놓아 보겠습니다.
이 그림은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소장품입니다. 다만 언제나 걸려 있는 그림은 아닙니다. 루브르 소장품 기록은 2025년 8월과 2026년 9월 두 시점 모두 이 그림을 전시되지 않은 작품으로 적고 있고, 2025년 9월부터 2026년 1월까지는 이탈리아 토리노의 팔라초 마다마(Palazzo Madama) 전시에 빌려 주었습니다. 루브르에 간다고 늘 만날 수 있는 얼굴은 아니니, 직접 보려면 떠나기 전에 박물관 소장품 기록에서 전시 여부를 확인하는 편이 좋습니다.
| 틴토레토, 〈자화상〉, 1588년경, 캔버스에 유채, 63×52cm, 파리 루브르 박물관, INV 572. 빛은 보는 쪽 왼쪽 위에서 들어와 이마 왼쪽과 콧등을 밝히고, 오른쪽 어깨 높이의 어둠 속에는 그 자신이라는 뜻의 라틴어 IPSIVS가 희미하게 남아 있다. |
1. 틴토레토 자화상의 배경, 작은 염색공이라 불린 거장
틴토레토는 1518년 또는 1519년 베네치아에서 태어나 1594년 같은 도시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루브르 기록도 태어난 해를 둘 가운데 하나로 열어 두고 적습니다. 조반니 벨리니에서 조르조네, 티치아노로 이어지는 베네치아 화파의 흐름 위에 선 화가입니다.
틴토레토는 본명이 아니라 별명입니다. 17세기 베네치아의 화가이자 전기 작가 카를로 리돌피가 1642년에 펴낸 틴토레토 전기는, 아버지 바티스타 로부스티가 옷감을 물들이는 염색공(tintore)이었기 때문에 아들이 틴토레토, 곧 작은 염색공이라 불렸다고 적습니다. 그래서 흔히 야코포 로부스티(Jacopo Robusti)로 소개되지만, 집안 성을 코민(Comin)으로 보는 연구도 있습니다. 화가 자신도 이 별명을 받아들였습니다. 1548년의 대작 〈노예를 구하는 성 마르코의 기적〉에 그는 염색공 야코모가 그렸다는 뜻의 라틴어 서명 JACOMO TENTOR F.를 남겼습니다.
그가 활동한 16세기 베네치아에서는 티치아노가 화단의 맨 앞에 있었고, 파올로 베로네세도 큰 주문을 나누어 가졌습니다. 틴토레토는 같은 도시에서 이들과 주문을 다투며 빠른 붓질과 강한 명암으로 자기 자리를 만들었고, 그래서 격정적인 사람이라는 뜻의 일 푸리오소(il Furioso)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의 생애 전체는 틴토레토의 생애와 작품에서, 이 자화상보다 마흔 해 앞서 서른 즈음에 그린 대작은 틴토레토의 〈세족식〉에서 더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2. 작품 상세 설명 : 정면으로 마주한 노년의 고백
이 그림에는 배경도, 장식도, 손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얼굴만 허공에 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확대해 보면 어둠 속에 몸이 있습니다. 수염 오른쪽 아래로 흰 셔츠 깃이 한 조각 비어져 나와 있고, 보는 쪽 왼쪽 가슴께에는 갈색 털 장식이 성긴 붓질로 얹혀 있습니다. 다만 아래로 내려갈수록 옷과 바탕이 같은 어둠으로 녹아들고, 무늬 없는 바탕에는 캔버스 올이 그대로 비칩니다. 그래서 화면에서 또렷한 형태를 가진 것은 위쪽 가운데의 얼굴과 수염뿐입니다. 하나 더 찾을 것이 있다면 보는 쪽 오른쪽 어깨 높이의 어둠 속에 희미하게 남은 라틴어 IPSIVS, 곧 그 자신이라는 글자입니다. 이 글자가 언제 적혔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얼굴은 세월을 숨기지 않습니다. 위 눈꺼풀은 눈동자 윗부분을 덮을 만큼 처졌고, 이마에는 가로 주름이 여러 겹 지나가며, 정수리 쪽은 머리가 벗어지고 옆머리만 짧게 남았습니다. 루브르 해설은 일흔 가까운 화가가 거울 속 자신을 보듯 엄격한 정면으로 자신을 그렸고, 세월의 흔적을 하나도 빼지 않았다고 적습니다. 같은 해설은 처진 눈꺼풀에도 불구하고 고정된 시선이 흔들림 없는 결의와 자기 재능에 대한 자각을 드러낸다고 봅니다. 화면에서 그 말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은 두 눈입니다. 눈꺼풀은 무겁게 내려앉았는데 두 눈동자는 모두 그림 밖 정면을 똑바로 향해 있어, 그림 앞에 선 사람과 곧바로 마주칩니다. 지친 얼굴과 물러서지 않는 눈이 한 얼굴 안에 함께 있는 것, 이 그림의 긴장은 거기서 나옵니다.
3. 틴토레토 자화상의 특징, 정면과 빛과 붓질
- ① 정면을 고른 구도 :
16세기 초상화에서는 몸과 얼굴을 비스듬히 돌린 4분의 3 측면이 흔한 방식이었습니다. 틴토레토 자신도 젊은 날의 자화상은 그렇게 그렸습니다(6장에서 나란히 봅니다). 이 그림은 몸과 얼굴과 시선을 모두 정면에 맞추었고, 루브르도 엄격한 정면성을 이 그림의 첫 특징으로 꼽습니다. 정면 자화상이 그 시대에 전혀 없었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지만, 이 화가가 그린 자기 얼굴 안에서는 분명한 방향 전환입니다.
- ② 얼굴로 좁힌 빛 :
빛은 보는 쪽 왼쪽 위에서 들어옵니다. 이마 왼쪽과 왼뺨, 콧등이 가장 밝고, 코의 오른쪽과 오른뺨은 그늘에 들어갑니다. 빛은 얼굴과 수염에서 멈추고 그 아래는 곧바로 어둠입니다. 이 어둠에서 화가의 고뇌나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읽고 싶어지지만, 그것은 화면이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이 얹는 의미입니다. 화면에서 확인되는 것은 빛이 닿는 범위를 얼굴로 좁혀, 다른 곳에 눈이 머물 거리를 남기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 ③ 빠른 획으로 만든 수염 :
수염을 확대해 보면 털을 한 올씩 그리지 않았다는 것이 보입니다. 어두운 바탕 위에 회백색 물감을 짧고 굵은 획으로 빠르게 얹었고, 획마다 끝이 말리거나 꺾여 있습니다. 가까이서는 거친 붓 자국인데 조금 물러서면 곱슬곱슬한 흰 수염으로 모입니다. 빠른 붓질로 이름났던 화가의 손버릇이 일흔 가까운 나이의 자화상에도 그대로 남아 있는 자리입니다.
| 틴토레토, 〈자화상〉 부분, 1588년경, 캔버스에 유채, 파리 루브르 박물관. 수염은 어두운 바탕 위에 회백색의 짧은 획을 빠르게 얹어 곱슬거림을 만들었다. |
4. 자화상과 성스러운 얼굴, 전능자 그리스도의 정면
완전한 정면 얼굴은 중세와 비잔틴 미술에서 그리스도를 그리던 방식을 떠올리게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만물의 통치자라는 뜻의 전능자 그리스도(Christ Pantocrator) 이콘입니다. 루브르 해설도 이 자화상이 구속자 그리스도의 표현을 떠올리게 한다고 적고, 그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할 모범이라고 덧붙입니다.
그런데 이 닮음을 어떻게 읽을지는 갈립니다. 붓을 든 화가를 창조자에 견주어, 틴토레토가 신의 형식을 빌려 자신을 창조자의 자리에 놓았다고 보는 해석도 있습니다. 루브르의 읽기는 방향이 다릅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을 모범으로 두는 신앙의 맥락, 곧 자신을 그리스도의 모습에 비추어 보는 쪽입니다.
| 작가 미상, 〈전능자 그리스도〉, 6세기, 나무판에 납화(밀랍에 안료를 섞은 물감), 약 84×45.5cm, 이집트 시나이 성 카타리나 수도원. 금빛 후광 안의 정면 얼굴, 축복하는 오른손, 복음서를 안은 왼손을 갖추었다. |
이콘과 나란히 보면 무게가 어느 쪽에 실리는지 드러납니다. 시나이의 그리스도는 금빛 후광을 두르고, 오른손을 들어 축복하며, 왼손에 보석 박힌 복음서를 안고 있습니다. 틴토레토의 자화상에는 그 가운데 어느 것도 없습니다. 빌려 온 것은 정면으로 마주 보는 얼굴이라는 형식 하나뿐입니다. 후광도 손짓도 없이 형식만 겹쳐 놓았으니, 스스로 신의 자리에 올랐다는 선언으로 읽기보다는 루브르처럼 그리스도의 모습에 자신을 비추어 본 그림으로 읽는 편이 화면에서 더 지지를 받습니다. 다만 어느 쪽도 화가가 직접 남긴 말은 아니고, 그림에서 끌어낸 판단이라는 점은 같습니다.
5. 숨겨진 조력자, 화가가 된 딸 마리에타
틴토레토의 공방에는 딸 마리에타 로부스티(Marietta Robusti)가 있었습니다. 리돌피가 1648년에 펴낸 베네치아 화가 열전은 그녀를 아버지가 가장 아끼던 딸로 그립니다. 어릴 때는 사내아이 옷을 입혀 어디든 데리고 다녔고, 소묘와 채색을 직접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녀는 특히 초상화를 잘 그렸고, 쳄발로를 치며 노래도 잘 불렀다고 전합니다.
같은 책에 따르면 마리에타가 그린 골동품 전문가 야코포 스트라다의 초상을 본 막시밀리안 황제가 아버지에게 그녀를 보내 달라고 청했고, 스페인의 펠리페 2세와 페르디난트 대공도 같은 청을 했습니다. 틴토레토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딸을 늘 곁에 두려고 보석상 마리오 아우구스타와 혼인시켰습니다. 궁정화가라는 직함을 받았다는 기록은 없으니, 왕실의 초빙 요청이 있었다는 데까지가 기록이 말하는 범위입니다. 오늘날 그녀의 작품으로 확실하게 꼽히는 그림은 많지 않습니다.
마리에타는 1590년 서른 살에 세상을 떠났고, 리돌피는 아버지가 그녀를 몹시 슬퍼했다고 적습니다. 아이를 낳다가 죽었다는 이야기는 이 전기에 나오지 않습니다. 여기서 날짜를 하나 짚어 둘 필요가 있습니다. 루브르 〈자화상〉은 1588년경의 그림이고, 마리에타의 죽음은 그보다 두 해쯤 뒤의 일입니다. 처진 눈꺼풀에서 딸을 잃은 아버지의 슬픔을 읽고 싶어지지만, 제작 연대로 보면 순서가 맞지 않습니다. 이 얼굴은 그 일이 일어나기 전의 얼굴입니다.
6. 두 개의 자화상, 두 개의 인생: 40년의 세월을 넘어
이 그림과 나란히 볼 짝이 있습니다. 서른 안팎의 틴토레토가 1546~1548년경에 그린 젊은 날의 자화상입니다. 거의 같은 구성의 판본이 두 점 있어, 하나는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하나는 런던 빅토리아 앨버트 미술관에 있습니다. 아래 비교 도판의 왼쪽은 필라델피아 판입니다.
흔히 틴토레토가 평생 자화상을 단 두 점만 남겼다고 소개되지만, 정확한 말은 아닙니다. 리돌피는 젊은 틴토레토가 베네치아의 번화한 상점 거리 메르체리아(Merceria)에 자신과 동생의 초상을 내걸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적었고, 빅토리아 앨버트 미술관은 그가 자화상을 여러 점 그렸던 듯하지만 지금 확인된 것은 젊은 날의 자화상과 훨씬 뒤의 루브르 자화상뿐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니 오늘날 틴토레토의 자화상으로 확실하게 꼽히는 것이 이 두 얼굴이라고 말하는 편이 맞습니다.
| 왼쪽: 틴토레토, 〈자화상〉, 1546~1548년경, 캔버스에 유채, 45.1×38.1cm, 필라델피아 미술관, 1983-190-1. 오른쪽: 틴토레토, 〈자화상〉, 1588년경, 캔버스에 유채, 63×52cm, 파리 루브르 박물관, INV 572. 왼쪽은 어깨 너머로 돌아보고 오른쪽은 몸까지 정면이며, 두 그림 모두 손이 없다. 도판 속 1546년 표기는 제작 연대 범위의 첫해만 적은 것이다. |
두 그림을 나란히 놓으면 마흔 해 사이에 바뀐 것이 얼굴만은 아닙니다. 젊은 날의 그림에서는 검은 옷을 입은 등과 어깨가 화면 앞쪽을 차지하고, 고개만 어깨 너머로 돌려 이쪽을 봅니다. 빅토리아 앨버트 미술관은 이 강한 시선이 거울을 들여다보는 모습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몸은 다른 쪽을 향한 채 막 돌아보는 한순간입니다. 루브르 자화상에서는 몸과 얼굴과 시선이 모두 정면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젊은 화가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을 붙잡았다면, 늙은 화가는 처음부터 마주 앉은 자세를 골랐습니다.
바뀌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두 그림 모두 어두운 바탕에서 얼굴이 떠오르고, 빛은 왼쪽에서 들어오며, 손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빅토리아 앨버트 미술관은 젊은 날의 자화상을 두고, 그림을 만들어 낸 바로 그 수단인 손이 빠져 있다고 짚습니다. 화가가 자신을 그리면서 붓을 쥔 손을 보여 주지 않는 방식이 마흔 해 동안 그대로였다는 점은, 둘을 나란히 볼 때 오히려 더 눈에 띕니다.
7. 틴토레토 자화상의 여정, 왕비의 컬렉션까지
이 자화상은 처음부터 왕궁에 있던 그림이 아닙니다. 루브르에 따르면 틴토레토는 이 그림을 베네치아에 자리 잡은 독일 출신 금세공인이자 미술상 한스 야코프 쾨니히(Hans Jakob König)를 위해 그렸습니다. 쾨니히는 화가들의 초상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완성된 뒤에 우연히 그의 손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 컬렉션을 위해 그린 얼굴입니다.
루브르의 소장 이력을 따라가면 그림은 쾨니히의 딸 카타리나 오트에게 넘어가 1603년경 그녀의 유산 목록에 올랐습니다. 이후 파리로 건너가 1653년 마자랭 추기경의 소장품 목록에 나타나고, 오를레앙 공작부인 앙리에트를 거쳤을 가능성도 있으며, 오를레앙 공작 가문이 팔레루아얄과 생클루 성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1785년 오를레앙 공작에게서 마리 앙투아네트를 위해 사들였습니다. 루브르는 그 근거로 같은 해 생클루 성의 목록을 듭니다.
이 이력은 제목의 고백이라는 말을 다시 보게 합니다. 이 얼굴은 혼자 간직한 일기가 아니라, 화가 초상을 모으던 수집가의 진열장에 걸릴 화가의 얼굴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틴토레토는 꾸밈없는 정면의 늙은 얼굴을 보냈습니다. 남에게 보일 그림에서 세월을 하나도 감추지 않았다는 점에서 고백이라는 말은 비유로 뜻을 얻지만, 내밀한 속마음을 털어놓은 그림이라는 뜻으로까지 넓히기는 어렵습니다.
8. 틴토레토 자화상의 의의, 심리적 초상화
이 그림을 르네상스의 문을 닫고 바로크로 넘어가는 길목에 두는 설명이 흔하지만, 자화상 한 점으로 한 시대 전체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더 좁고 더 분명합니다. 한 화가가 마흔 해를 사이에 두고 자신을 두 번 그렸고, 두 번째에는 돌아보는 몸짓을 버리고 꾸밈없는 정면을 골랐다는 것입니다.
이다의 책 『인간을 탐구하는 미술관』은 틴토레토의 이 자화상을 렘브란트의 자화상과 나란히 싣습니다. 두 노화가의 얼굴을 함께 놓고 읽는 시각도 있는 셈입니다. 실제로 견주어 보면 차이가 더 또렷해집니다. 예컨대 렘브란트가 1661년에 그린 〈사도 바울로 분한 자화상〉에서 그는 두 손으로 서신을 잡고 옷섶에 칼자루를 품어, 소품으로 바울이라는 역할을 입습니다. 틴토레토는 소품도 손도 없이 얼굴 하나만 남겼고, 그리스도를 떠올리게 하는 것도 물건이 아니라 정면이라는 형식뿐입니다. 한쪽은 더해서 말하고, 다른 쪽은 덜어 내서 말합니다. 이 그림을 심리적 초상이라 부른다면, 그 근거는 특별한 표정보다 이 덜어 냄에서 찾는 편이 화면에 더 가깝다고 봅니다.
틴토레토는 이 그림을 그린 뒤 여섯 해쯤 더 살았습니다. 베네치아 교구의 사망 기록에 따르면 그는 보름 동안 열병을 앓다가 1594년 5월 31일에 세상을 떠났고, 마돈나 델로르토 성당에 있는 장인의 묘, 먼저 간 딸 마리에타가 묻힌 그 자리에 묻혔습니다. 오늘날 확인된 그의 자화상 가운데 가장 늦은 이 얼굴이, 제목이 말하는 마지막 자화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