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미술사 1: 선사시대 예술과 고대 미술 — 선사에서 그리스·로마까지
미술사의 흐름을 알기 위해 “서양 미술사”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이 글은 전체 시리즈 중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 전체 미술사 흐름이 궁금하시다면 [서양 미술사 총정리: 시대별 특징과 흐름] 게시물을 먼저 확인해 보세요.
만약 인류 최초의 ‘갤러리’에 입장한다면, 거기엔 금빛 액자도 조명도 없습니다. 대신 어둠 속 동굴의 벽, 손끝에 묻은 안료, 그리고 ‘영원히 남기고 싶다’는 간절함이 있지요. 서양미술사의 첫 장은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서양미술사”라고 부르는 거대한 강의 시작점에는 선사 시대 예술(Prehistoric Art)과 고대 미술(Ancient Art)이라는 두 개의 큰 물줄기가 있습니다. 이 시기의 예술은 ‘예쁘게 꾸미기’ 이전에, 당시 사람들의 생존과 종교, 그리고 세계관을 담아낸 기록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연표를 길게 외우기보다, 한 가지 질문만 붙잡아 보겠습니다. “이미지는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는가?” 이 질문을 따라가면, 태초의 예술이 어떻게 사실주의(자연주의)에서 기호·패턴(기하학적 양식)으로 이동했는지, 그리고 이집트와 그리스에서 예술이 어떻게 시간을 초월하는 규칙과 미적 이상을 세웠는지가 한눈에 정리됩니다.
이 글에서 딱 3가지만 가져가세요
① 구석기: 그림은 ‘장소·행위·공동체 경험’과 결합했습니다
② 신석기: 기호·패턴이 늘고, ‘기억(개인·조상)’을 다루기 시작합니다
③ 이집트·그리스: ‘규칙(영원)’과 ‘이상(아름다움)’이 서양 미술의 기준이 됩니다
1. 서양 미술사는 어디서부터 시작될까?
서양 미술사(Western art)는 보통 유럽을 중심으로, 유럽과 긴밀히 연결된 지중해 세계의 시각 문화를 뼈대로 삼아 설명합니다. 다만 “시작점”은 서술의 관점에 따라 두 갈래로 정리되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첫째, 에게(미노아·미케네)에서 출발해 그리스로 이어지는 지중해 중심의 서술입니다. 이 방식은 ‘그리스 고전주의(Classicism)’로 이어지는 계보를 곧장 잡는 데 유리합니다. 둘째,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근동)를 포함해 문명 예술의 출발을 더 앞에서 잡는 서술입니다. 이 방식은 ‘이미지가 종교·권력·질서의 도구로 기능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특히 유리합니다.
오늘 글은 두 관점을 모두 품되, 결론은 단순합니다. 선사 → 문명(근동·이집트) → 그리스·로마로 갈수록 이미지는 더 복잡한 사회와 사상을 담아내며, 결국 ‘규칙’과 ‘이상’이라는 기준을 만들어 냅니다.
2. 태초의 예술: 사실주의에서 기호로 (Prehistoric Art)
선사미술은 “원시적”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인류가 이미지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통제하려 했던 첫 시도입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분명한 흐름이 있습니다. 구석기에는 자연주의적 묘사가 강하고, 신석기로 갈수록 기호·패턴·기하학적 양식이 두드러집니다.
2.1. 구석기(Paleolithic): 동굴, 최초의 이미지 공간
구석기 미술의 핵심은 “잘 그렸다”가 아니라, 이미지를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놓았느냐에 있습니다. 동굴 깊숙한 곳에 그려진 동물들은 단순 장식이 아니라, 공동체가 세계를 해석하고 삶을 유지하기 위해 만든 하나의 ‘의식 공간’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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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주의적 동물 묘사를 통해 ‘이미지의 힘’을 실험하던 구석기 시각문화(라스코) |
라스코가 ‘동물’의 형상을 통해 세계의 힘을 붙잡으려 했다면, 아래의 손 스텐실은 그 공간에 ‘인간 자신’을 남기는 가장 직접적인 방식이었습니다.
| “내가 여기 있었다”를 가장 직접적으로 남긴 흔적—손 스텐실(negative hand stencil) |
짧은 메모: 동굴 공명(고고음향학)
일부 연구는 동굴 안에서 소리가 잘 울리는 지점(공명)과 벽화·표식의 위치가 겹치는 사례가 관찰된다고 보고합니다. 즉 동굴 이미지는 ‘보는 것’뿐 아니라, ‘듣는 경험(의식·행위)’과 함께 작동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2.2. 신석기(Neolithic): 상징과 ‘기억’의 기술
신석기 미술을 ‘기하학적 추상’이라고만 부르면 절반만 본 셈입니다. 정착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이제 ‘누가 여기 살았는가’ ‘어떤 공동체인가’를 남기고 싶어졌고, 그 욕망은 특정 개인과 조상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드러납니다. 익명의 상징에서 구체적 기억으로—이미지의 목적이 바뀌는 순간입니다.
| 예리코 ‘회반죽 두개골’(Jericho Plastered Skull) — 신석기(Pre-Pottery Neolithic B)의 조상 숭배 흔적 |
한편, 선사에서 시작된 ‘형식의 힘’은 이후 청동기·철기 시대의 문명 미술에서도 반복적으로 관찰됩니다. 다만 지역·시대별 차이가 크기 때문에, 이를 단정적으로 일반화하기보다는 장기간 넓게 관찰되는 경향으로 이해하는 편이 더 안전하고 정확합니다.
3. 고대 미술(Ancient Art): 영원(이집트)과 이상(그리스)의 탄생
‘고대 미술’은 넓게 보면 선사 이후의 문명 예술 전체를 포함합니다. 서양 미술사의 뿌리는 근동(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에게 세계(미노아·미케네), 그리스, 로마로 이어지는 복합적인 계통에서 자라났습니다. 그중에서도 이 글에서 꼭 잡아야 할 두 기둥은 이집트(영속성)와 그리스(미적 이상)입니다.
3.1. 영속성을 위한 예술: 이집트와 근동(오리엔트)
고대 오리엔트의 예술은 대개 숭배와 질서의 세계 속에서 기능했습니다. 봉헌물, 왕실 기념물, 종교 의식용 도구, 통치자의 권위를 드러내는 선전(프로파간다)까지—예술은 ‘장식품’이라기보다 사회가 작동하는 장치였습니다.
특히 이집트 미술은 ‘내세’와 결합하면서 독특한 안정성을 보여줍니다. 이집트 예술의 목표는 종교적 관점에서 사물의 형태·본질(essence)을 담아내는 것이었고, 이는 죽은 이가 내세에서 동행할 수 있도록 세계를 보존하려는 목적과 연결됩니다. 그래서 이집트에는 예술가들이 배워야 할 양식적 규칙이 강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얼굴은 측면, 눈은 정면, 어깨는 정면, 다리는 측면처럼 ‘가장 특징적인 각도’를 조합하는 방식(종합시점/복합시점)은, 현대의 사실주의와 다른 논리 위에서 작동합니다. 이집트인에게 이미지는 ‘보기 좋은 그림’이 아니라, 영혼이 깃들 ‘완전한 형태’를 확보하는 장치였기 때문입니다.
이 강력한 전통은 오랜 기간 지속되었고, ‘독창성’은 종종 미덕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이집트 역사 속에는 전통 규범이 흔들린 시기도 있었습니다. 예컨대 아크나톤(Akhenaten, 아멘호테프 4세) 시기에는 기존 종교 질서가 재편되며 예술 표현도 달라졌는데, 이를 “완전한 일신교의 발명”으로 단정하기보다는 아톤 중심의 종교 개혁과 그에 따른 양식 변화로 설명하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3.2. 서양 스타일의 기원: 고대 그리스(Ancient Greek Art)
그리스 예술은 ‘자연을 보는 눈’이 바뀌는 지점을 보여줍니다. 그리스어에서 예술에 해당하는 개념은 흔히 테크네(tekhné)—즉 기술·제작 행위—와 연결됩니다. 그리스인들은 장인과 예술가를 엄격히 가르기보다 ‘잘 만드는 일’을 중시했고, 초기에는 이집트 모델을 연구·모방하며 출발했지만 점차 형식(formula)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눈으로 현실(reality)을 관찰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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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클레이토스 ‘도리포로스’—그리스 고전주의가 만든 ‘이상적 인체 비례’의 표준 |
여기서 중요한 변화는 “추상을 버리고 생생함을 택했다”가 아니라, 추상적 형태에 생명을 불어넣는 방식을 찾아냈다는 점입니다. 기원전 5~4세기에는 철학의 번영과 나란히 시각 문화(건축·조각·회화)도 높은 지위를 갖게 되었고, 아름다움은 인간에게 정신적 고양을 준다고 여겨졌습니다. 알렉산더 대왕 이후 헬레니즘 세계는 그리스 미학이 광범위한 지역으로 확산되는 중요한 국면을 만들어냅니다.
3.3. 로마 미술: 계승과 확산의 시각 언어
로마는 ‘새로운 이상을 발명’하기보다, 이미 존재하던 양식과 기술을 제국의 규모로 계승·확산시키는 데 탁월했습니다. 공공건축과 기념물, 기록적 부조는 로마가 어떤 방식으로 ‘제국의 질서’를 시각화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4. 왜 이 시대가 중요한가: 서양 미술의 ‘기준’이 태어나다
선사에서 고대로 이어지는 이 긴 시간은 “옛날 그림”이 아닙니다. 여기서 이미지는 생존의 표식에서 공동체의 상징이 되고, 문명 속에서 권력과 신앙의 장치가 되며, 마침내 그리스에서 미적 이상과 고전주의라는 기준을 만들어냅니다.
18세기 미술사학자 요한 요아힘 빙켈만(Johann Joachim Winckelmann)은 그리스 고전 예술을 미의 영감의 원천으로 옹호하며, 이후 신고전주의와 서양 미술의 미적 기준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고대가 남긴 ‘조화로운 완벽함’의 이상은 르네상스, 바로크, 신고전주의, 그리고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서양 미술이 끊임없이 돌아보고 재해석하는 뼈대가 됩니다.
마무리: ‘이미지의 목적’이 바뀌면, 시대가 바뀝니다
선사미술은 ‘살아남기 위해’ 세계에 의미를 새겼고, 이집트는 ‘사라지지 않기 위해’ 형태를 규칙으로 고정했으며, 그리스는 ‘아름다움의 기준’을 세워 인간과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았습니다. 같은 이미지라도 목적이 달라지면 표현이 달라지고, 표현이 달라지면 결국 한 시대의 감각 자체가 바뀝니다.
읽으시며 가장 인상 깊었던 지점(동굴, 회반죽 두개골, 이집트의 규칙, 그리스의 이상)이 어디였는지 댓글로 남겨 주시면, 다음 글에서는 그 포인트를 기준으로 더 촘촘하게 확장해 드리겠습니다.
📚 서양미술사 총정리 시리즈
- 현재 글 1. 태초의 예술과 고대 미술 (Ancient Art)
- 함께 읽기 5. 르네상스 미술 총정리
- 👉 서양미술사 전체 흐름 한눈에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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