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icky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 – 스탕달 신드롬을 부른 비극과 진실

  안녕하세요. 여러분의 미술관 도슨트이자 큐레이터입니다. 오늘은 미술사에서 가장 슬프고도 아름다운 눈망울을 지닌 한 여인, 그리고 그 눈빛을 화폭에 담아낸 천재 여성 화가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혹시 스탕달 신드롬(Stendhal Syndrome)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뛰어난 예술 작품 앞에서 심장이 멎을 듯한 충격과 격렬한 감정의 동요를 느끼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용어와 함께 자주 언급되는 작가 스탕달이 피렌체에서 다리가 풀릴 듯한 충격을 받았다고 전해지는 바로 그 그림,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에 얽힌 미스터리와 감동적인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로마를 뒤흔든 비극 ― 베아트리체 첸치의 삶

작품 정보
  • 작품명 :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 (Portrait of Beatrice Cenci)

  • 제작자 : 지네브라 칸토폴리(Ginevra Cantofoli) 추정
    (귀도 레니 귀속설은 현대 미술사 연구에서 부정되는 경향)

  • 제작 시기 : 17세기 중엽 (약 1640–1660년경)

  • 기법 :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 소장 : 팔라초 바르베리니(Palazzo Barberini), 로마

  • 주해 : 베아트리체 첸치 도상은 엘리자베타 시라니 등 볼로냐파 여성 화가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재해석됨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 흰 터번을 두른 젊은 여성의 슬픈 눈빛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 17세기, 팔라초 바르베리니 소장

  그림 속 주인공인 베아트리체 첸치(Beatrice Cenci, 1577–1599)는 16세기 말 로마의 귀족 여성이었습니다. 그녀는 눈부시게 아름다웠지만, 그녀의 삶은 지옥과도 같았습니다. 아버지 프란체스코 첸치는 귀족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온갖 악행을 저질렀고, 심지어 친딸인 베아트리체를 상습적으로 학대하고 유린했습니다.

  견디다 못한 베아트리체와 가족들은 아버지를 살해하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곧 발각되었고, 교황 클레멘스 8세는 정당방위를 호소하는 로마 시민들의 탄원에도 불구하고 일가족에게 사형을 선고합니다. 1599년 9월 11일, 산탄젤로성 앞에서 그녀가 처형되던 날, 로마의 모든 시민이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그녀는 단순한 살인자가 아니라, 폭압적인 가부장제와 권력에 저항한 슬픈 저항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처형의 기억과 전설 ― 카라바조와 로마의 괴담

  여기서 잠깐, 소름 돋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습니다. 베아트리체가 처형되던 그날, 산탄젤로 다리 앞에는 수천 명의 군중이 몰려들었는데, 그 인파 속에 당대의 또 다른 천재 화가 카라바조(Caravaggio)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전설에 따르면 그는 이 끔찍한 광경을 직접 목격했고, 그 충격은 훗날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과 같은 강렬한 참수 도상으로 이어졌다고도 전해집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로마에는 400년 넘게 내려오는 괴담이 하나 있습니다. 베아트리체가 처형되기 전날 밤인 매년 9월 10일 자정, 그녀가 처형되었던 산탄젤로 다리(Ponte Sant’Angelo)에 유령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전설 속 그녀는 자신의 잘린 머리를 손에 들고 다리 위를 배회한다고 합니다. 이 슬픈 유령 이야기는 억울하게 죽은 그녀의 영혼이 아직도 안식을 찾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듯해, 로마 시민들에게는 공포보다는 연민의 대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귀속 논쟁과 과학적 분석 ― ‘감옥 스케치’의 신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은 오랫동안 바로크 거장 귀도 레니(Guido Reni)의 작품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처형 전날 감옥에 있는 그녀를 보거나 형장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고 이 초상을 남겼다고도 전해집니다.

  그러나 현대 미술사 연구와 과학적 분석은 이 낭만적 전설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1999년 복원 과정에서 실시된 엑스레이(X-ray)와 적외선 촬영 결과, 캔버스 아래에는 화가가 구도를 여러 차례 수정한 흔적, 즉 펜티멘티(Pentimenti)가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이 작품이 급박한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그려진 스케치가 아니라, 화실에서 오랜 시간 숙고하며 완성된 스튜디오 작품임을 보여줍니다.

  더 나아가 베아트리체가 처형될 당시 귀도 레니는 로마에 없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최근 학계에서는 이 작품을 볼로냐 출신 여성 화가 지네브라 칸토폴리의 작품으로 강력하게 추정하고 있습니다.

여성 화가의 시선 ― 엘리자베타 시라니의 공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은 수많은 화가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모사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별한 울림을 지니는 해석은 17세기 볼로냐의 여성 화가 엘리자베타 시라니(Elisabetta Sirani)에게서 발견됩니다.

  시라니는 귀도 레니의 제자였던 아버지 지오반니 안드레아 시라니의 그늘 아래에서 어린 나이부터 생계를 책임져야 했습니다. 재능이 부족했던 아버지는 딸의 노동에 의존했고, 이는 시라니에게 평생의 부담으로 남았습니다. 이러한 삶의 궤적은 아버지의 폭력에 희생된 베아트리체의 비극과 묘한 공명을 이룹니다.

  시라니가 즐겨 그린 주제는 역사 속 강인한 여성, 즉 ‘팜므 포르트(Femme Forte)’였습니다. 그녀의 베아트리체는 죄인이 아니라, 흰 터번을 두르고 슬픔을 삼킨 채 뒤를 돌아보는 순결한 희생자의 모습으로 재탄생합니다.

감상 포인트 ― 눈동자, 터번, 그리고 침묵

  시라니의 작품, 혹은 그녀의 화풍을 따르는 이미지들에서 베아트리체는 흰색 옷과 터번을 두른 채 고개를 돌려 관람자를 바라봅니다. 그녀의 눈은 젖어 있는 듯하지만 결코 비굴하지 않습니다. “죽음은 두렵지 않으나, 오명은 슬프다”고 말하는 듯한 깊은 우수가 그 안에 서려 있습니다.

  멜빌(Melville)과 같은 작가들이 이 표정에 매료되었다고 전해지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일 것입니다. 그녀가 두른 터번과 흰 옷은 당시 사형수의 복장이 아니라, 고대의 무녀(Sibyl)나 성녀를 연상시키며, 베아트리체를 범죄자가 아닌 순교자의 이미지로 끌어올립니다.

400년을 넘어선 위로

  엘리자베타 시라니는 27세라는 젊은 나이에 의문사했습니다. 위궤양 파열로 추정되지만 독살설이 돌 만큼, 그녀의 죽음 역시 많은 질문을 남깁니다. 그녀가 그린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은 아버지와 세상의 폭력에 희생된 두 여성의 영혼이 만나는 지점입니다.

  오늘날까지도 이 그림이 수많은 사람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이유는, 단순히 아름답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캔버스 너머로 전해지는 시라니의 연민과 베아트리체의 슬픈 역사가,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요?

댓글 없음

문의하기 양식

이름

이메일 *

메시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