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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가의 머리빗기, 평범한 순간을 포착한 붉은색의 걸작 — Art is long

드가의 머리빗기, 평범한 순간을 포착한 붉은색의 걸작

  '발레리나의 화가' 또는 '여성의 화가'로 불렸던 프랑스 화가 드가의 <머리 빗기 Combing the Hair>라는 작품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드가(Edgar Degas, 1834-1917)는 발레를 소재로 한 그림을 많이 남겼지만, 그의 궁극적인 관심 대상은 언제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인상주의 화가로 분류되고 동료들과 교류했지만, 당대 유행하던 풍경화보다는 오직 사람이라는 주제에만 집중했습니다.

 

 드가의 작품에는 유독 여성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는 왜 이렇게 여성을 많이 그렸던 것일까요? 특히 발레리나를 많이 그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파리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드가는 젊은 시절 돈 걱정 없이 자유롭게 그림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동생들이 사업에 실패하면서 가세가 기울자, 드가는 돈을 벌기 위해 치열하게 그림을 그려야만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상업적으로 인기가 있었던 발레리나의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발레리나뿐만 아니라 머리 빗는 여자, 목욕하는 여자, 노래하는 여자, 다림질하는 여자 등 평범한 여성들의 매우 사적이고 일상적인 장면을 화폭에 남겼습니다.

 

  일부 비평가들은 드가가 여성혐오증이 있었다고 말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시 발레리나는 대부분 가난한 하층민 소녀들이었고, 생계를 위해 매춘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드가는 자신의 유명한 조각상 모델이었던 마리 반 고템을 후원한 적이 있으며, 동료 여성 화가인 메리 커샛과 베르트 모리조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고 평생 소장하기도 했습니다.

 

<머리 빗기>를 보여주는 이미지
<머리 빗기> 1896년경, 114.3x146.7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드가는 머리 빗는 여성을 주제로 여러 작품을 남겼는데, 긴 머리의 느낌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모델을 불러 몇 시간 동안 직접 머리를 손질해주기도 했습니다. 모델과 사적인 관계를 전혀 맺지 않아 성불능자가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가 그린 머리 빗는 그림 중에서 야수파의 거장 앙리 마티스가 오랫동안 소장했던 <머리 빗기>가 가장 유명합니다.

 

  <머리 빗기>는 두 여성이 머리를 손질하는 순간을 독특한 붓놀림과 색채로 섬세하게 담아냈습니다. 전체적으로 붉은색이 지배하는 분위기는 강렬하면서도 신비롭습니다. 배경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옷도 붉은색과 분홍색 계열로 묘사했습니다. 또한 드가는 파스텔을 젖은 붓으로 문지르거나 증기를 쏘이는 등 독창적인 기법을 사용하여 몽환적인 효과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림의 구도는 역동적이며 약간 비대칭적입니다. 앉아있는 여성이 캔버스의 왼쪽을 채우고, 그녀는 한 팔로 머리카락을 움켜잡은 채 몸을 뒤로 젖히고 있습니다. 이 여성은 배가 나온 듯 보여 임신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서 있는 여성은 하녀로 보이는데, 긴 머리를 빗질하는 모습이 매우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두 여성의 얼굴 특징이 명확하게 그려져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인물의 감정보다는 몸짓과 전체적인 분위기에 더 집중하게 됩니다. 뚜렷한 배경 묘사를 생략하고 인물과 그들의 상호 작용에 집중함으로써, 드가는 관람객이 그림에 정서적으로 깊이 몰입하도록 유도합니다.

 

  <머리 빗기>라는 작품을 통해서 알 수 있듯, 드가는 꾸밈없는 여성의 일상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관찰하고 그렸을 뿐, 결코 여성을 비하하거나 왜곡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드가 자신은 여성과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한 채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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