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 입체주의를 연 20세기 미술의 시작, 상징, MoMA 비하인드 총정리
오늘은 20세기 미술의 역사를 완전히 바꿔놓은 단 한 점의 그림, 파블로 피카소의 걸작 <아비뇽의 처녀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이 작품은 피카소가 25세 때 유화로 그린 그림이지요. 이 작품이 왜 이렇게 큰 혁명이었는지, 함께 쉽게 살펴볼까요?
이 작품은 전통적인 원근법과 서양의 이상적인 미(美)를 의도적으로 파괴하고, 여러 시점을 한 화면에 담아내는 '입체주의(Cubism)'의 문을 연 기념비적인 그림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아비뇽의 처녀들>은 20세기 현대 미술의 진정한 시작점으로 평가받습니다.
작품 정보 요약
- 제목 : <아비뇽의 처녀들> (Les Demoiselles d’Avignon)
- 원 제목 : <아비뇽의 홍등가> (le bordel d’Avignon)
- 화가 :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 연도 : 1907년
- 소장처 : 뉴욕 현대미술관 (MoMA)
- 역사적 위치 : 20세기 현대 미술과 입체주의의 시작을 알린 기념비적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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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비뇽의 처녀들> 1907년, 243.9x233.7cm, 뉴욕 현대미술관(MoMA) |
1. 원래 제목은 ‘아비뇽의 홍등가’!
이 그림의 제목인 <아비뇽의 처녀들>은 사실 피카소가 직접 지은 이름이 아니랍니다. 피카소는 이 그림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아비뇽 거리'의 홍등가 매춘부 다섯 명을 그린 것으로, 원래는 <아비뇽의 홍등가>(le bordel d’Avignon)라고 부르길 원했어요. 왜냐하면 피카소에게 아비뇽은 항상 자신의 삶과 연결된 친숙한 이름이었고, 그는 아비뇽 거리 근처에서 종이나 물감을 사기도 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노골적인 제목 때문에 검열을 피하기 위해 시인 앙드레 살몽이 <아비뇽의 처녀들>이라는 완곡한 제목을 붙였어요. 피카소 자신은 이 제목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피카소는 이 그림을 야심을 가지고 9개월 동안 고심하며 준비 작업을 했어요. 특히 앙리 마티스의 혁신적인 작품 <삶의 기쁨>(La joie de vivre)에 대한 경쟁심이 피카소의 창작 의지를 불태우는 배경 중 하나였다고 해요.
2. 화면 분석: 원근법을 부수고 시점을 조각내다
이 그림이 혁명적이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전 서양 미술의 오랜 전통이었던 사실적인 재현, 공간의 깊이(원근법), 인체 이상화라는 규칙을 완전히 부쉈기 때문이에요.
이 작품의 핵심은 하나의 화면에 여러 시점을 동시에 담아낸 것이지요. 예를 들어, 인물의 눈은 정면인데 코는 옆모습으로 그려져 있어요. 심지어 가장 오른쪽 여성은 등을 보이며 앉아 있지만 목을 180도 돌려 정면을 바라보는 불가능한 자세를 하고 있어요. 인체는 부피감 없이 평면적으로 보이고, 배경 역시 제멋대로 깨진 유리 조각처럼 여러 단면으로 구성되어 있답니다.
인물과 배경의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그림 전체가 하나의 평평한 평면으로 압축되는 듯한 강한 시각적 에너지를 만들어내요. 피카소는 하나의 시점에서만 사물을 표현해야 한다는 기존 회화의 오랜 규범을 깨뜨렸답니다.
3. 상징: 아프리카 가면, 죽음과 성적 불안
<아비뇽의 처녀들>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인물들의 가면 같은 얼굴이에요. 당시 파리 만국박람회 등을 통해 아프리카와 고대 이베리아 조각들이 소개되었는데, 피카소는 이 원시적이고 강렬한 조형 방식에 충격을 받았고, 그 영향이 오른쪽 두 여성의 가면 같은 얼굴에 뚜렷하게 나타나 있어요. 이러한 ‘민족 조각의 형태’를 도입한 것은 서양의 전통적인 미의 기준을 상대화하려는 '이화 효과'를 노린 것이기도 하답니다. 이화 효과란(異化效果, Defamiliarization effect)란, 관람자나 독자에게 너무 익숙해서 무감각해진 대상이나 관념을 낯설게 만들어서 새로운 충격이나 인식을 불러일으키는 예술적 전략입니다.
피카소는 이 작품을 통해 성적 욕망과 그 이면에 깔린 불안, 그리고 죽음의 공포라는 주제에 정면으로 도전했어요. 그림 앞쪽에 놓인 과일들은 ‘바니타스’, 즉 삶의 덧없음을 상징합니다. 달콤한 과일이 시간이 지나면 썩어 없어지듯이, 인간의 육체적 쾌락도 한순간이며 결국 육체 역시 부패한다는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지요. 오른쪽 아래에 앉아 있는 여성은 당시로서는 스캔들이 될 만한 자세(다리를 벌리고 나체를 드러냄)를 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어요. 또한, 화면 중앙의 두 여성은 끝없이 이어지는 남성들의 행렬을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는 것처럼 보여요.
4. 구상과 비평: 사라진 남자들과 관람자의 시선
이 그림의 최종 버전에는 다섯 명의 여성만 등장하지만, 피카소의 초기 구상(준비 드로잉)에는 두 명의 남성 인물이 포함되어 있었어요. 원래 구상에는 사창가의 고객을 상징하는 수병(선원)과 해골이나 책을 든 의대생이 등장했습니다. 의대생은 죽음이나 성병에 대한 경고, 즉 '덧없음'을 상징하는 전통적인 우화(allegory)적인 요소였지요.
하지만 피카소는 최종적으로 이 두 남성 인물을 삭제했어요. 남성 인물들을 지워버림으로써, 그림을 감상하는 '관람자'가 그들의 역할, 즉 손님이나 엿보는 사람(voyeur)의 자리에 강제로 놓이게 되는 효과를 낳습니다. 그림 속 여성들은 이제 캔버스 밖의 우리를 정면으로 쏘아보며 성적인 도발과 자극에 직접 노출시키지요.
이러한 공격적인 시선과 왜곡된 여성의 이미지는 훗날 페미니즘 비평의 핵심 주제가 되었습니다. 초기 남성 비평가들이 이들을 '위협적', '야만적'이라고 본 것은 당시 남성성의 위기나 타자에 대한 공포가 투영된 것이라는 해석이지요. 또한, 오른쪽의 아프리카 가면은 피카소가 아프리카 미술을 식민주의적 편견 속에서 '전유(appropriation)'한 것이라는 탈식민주의적 비평의 초점이 되기도 한답니다.
5. 혹평을 넘어 MoMA의 보물이 되기까지
이 혁명적인 그림은 완성 직후 미술계에 큰 충격과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훗날 입체주의의 동지가 되는 조르주 브라크마저 이 작품을 혹평하며 피카소가 "이 그림 뒤에 목을 맬 것"이라고 말했다고 해요. 충격적인 반응 때문에 피카소는 이 그림을 10년 가까이 자신의 작업실 한구석에 숨겨두었어요.
이렇게 외면받았던 작품이 현재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가장 중요한 대표 소장품이 되기까지의 과정도 극적입니다. 1924년 피카소는 패션 디자이너 자크 두세에게 이 작품을 팔았는데, 두세가 사후 루브르 박물관에 기증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작품은 개인 딜러에게 넘어갔답니다.
이 소식을 접한 MoMA의 초대 관장 알프레드 바(Alfred Barr)는 이 작품의 미술사적 가치를 가장 먼저 꿰뚫어 보았어요. 그는 이 그림이 세기의 걸작이 될 것을 확신했지요. 당시 MoMA의 재정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고가였기 때문에, 바 관장은 기존 소장품 일부를 처분하고 기부금을 모아 1939년에 이 작품을 당시 거금인 2만 4천 달러에 구매하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답니다. 그의 뛰어난 안목 덕분에 <아비뇽의 처녀들>은 MoMA의 위상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결론: 20세기 미술의 새로운 문을 열다
<아비뇽의 처녀들>은 단순히 충격적인 그림이 아니라, 전통적인 서양 회화의 규범이었던 원근법, 이상적인 인체, 고정된 시점 등을 완전히 부수고 해체함으로써 20세기 현대 미술의 새로운 길을 개척한 이정표가 되었어요. 이 작품은 대상을 보이는 대로 모방하는 것에서 벗어나, 예술가가 자신의 생각과 내면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어주었답니다. 피카소의 야심과 예술적 투쟁이 고스란히 담긴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현대 예술의 근본적인 변화를 목격할 수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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